이 글은 6월 9일 한겨레 신문에 실린 시론입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483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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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지난 4월 대학교 4곳을 다니며 학생들을 만났고 2곳의 노동조합 교육에 초대받아 다녀왔다. 2016년에 큰 충격을 주었던 20대 청년노동자들의 메탄올 급성중독과 실명 사건을 기억하실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출판사는 <실명의 이유>라는 제목을 붙였다.

남북관계 급변의 흥분 속에 저 우울한 제목의 책은 몇 군데의 서평란에 짧게 실린 후 잊혀 갈 것이라 예상되었다. 저자와 나는 실망했다. 대학생들로부터 북토크를 하고 싶다는 소식이 오기 전까지는. 다른 학교, 다른 전공의 학생들이 1~2주 간격으로 연락을 해 왔다.

질문지를 보내 오고, 곳곳에 플래카드를 걸고, 가는 학교마다 일처리도 야무졌다. 4월 초의 캠퍼스는 벚꽃이 가득하고, 4월 말의 캠퍼스는 초록이 생생했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눈빛이, 책마다 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여 와서 질문하는 정성이 감동이었다. ‘우리가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마지막 질문은 늘 같았다. 나 역시 학생들에게 물었다. ‘벚꽃이 이렇게 예쁜데 이 재미없는 이야기를 들으러 온 이유가 무엇인가요?’

 

뒤풀이를 하러 가는 길 답이 왔다. “촛불 특수 같아요.” 촛불 이후 학생들은 사회문제에 더 관심이 많아졌고, 파견노동 같은 마이너(?)한 주제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어쩐지 18학번 신입생이 많더라.

인천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희망찬 기분을 즐겼던 것 같다. 십여명의 여성 노동자가 오순도순 앉아 있는데 오랜만에 만난 듯 수다가 많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들 앞에서 파견 노동자의 실명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자니 멋쩍었다.

“메탄올을 3차 하청만 썼다고요? 우리는 1차 하청인데도 쓰고 있었어.” 실명 사건으로 공단이 술렁일 때 라인은 계속 돌아가고, 교육을 한다고 의사가 들어왔다고 한다. ‘여러분이 직업병에 걸릴 확률은 버스정류장에 서 있다가 매연으로 암에 걸릴 확률만큼 낮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질문 있으면 하라는 의사의 말에 노동자들은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어느 날 라인을 따라 종이가 돌았다. 조장은 다니면서 서명을 하라고 재촉했다. “라인 돌아가니까 제목도 안 보이는데 사인을 한 거야.” 종이는 안전교육 확인 서류였다. “야, 내 밑으로 다 사인하지 마.” 서류를 본 고참 언니가 소리 질렀다.

3개월마다 계약서를 새로 쓰는 날, 그 라인의 노동자들은 뚜렷한 이유 없이 재계약을 거부당했다. 오래 다닌 공장이었다. 여성 노동자들은 새로운 인력업체를 찾아 흩어지고, 공장이 서로 달라졌다. 그 노동자들이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사연이었다.

최저임금 계산법이 어지러운 지금, ‘촛불 특수’는 왜 평등하게 도달하지 못하는가. 사회 모순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대학 캠퍼스의 활기가 공장의 저임금 노동자, 파견 노동자들에게는 언제 도착하는 것인가.

상여금은 25%, 복리후생비는 7% 초과분이 최저임금에 들어간다고? 사회단체에서 일하다가 정보통신기술(IT) 업계로 전직한 이를 알고 있다. 임금이 하도 복잡해서 이해를 포기했다면서 인력파견 업체가 주는 대로 받는다고 한다. 그 덕분인가, 사회보험료 내고 있다는 업체 말을 믿고 있다가 연체통지서가 날아왔다. 눈 뜨고도 사기당하는 한국의 임금체계를 개혁하지는 못할망정 거기에 한 숟가락을 얹은 촛불 의회라니 안 믿긴다.

실명 사건을 정부가 왜 막지 못했는가 물어온 학생에게 근로감독관의 과로를 걱정하는 답을 하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