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8년 6월 22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입니다.
극독성 물질을 바가지로… 23살 노동자의 죽음
인천 남동공단 영세 업체 노동자, 시안화수소 중독으로 사망… ‘위험의 외주화’ 여전
정우준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6월 12일 안전보건공단은 직업환경과 의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낸다.
“18.5.28.(월) 인천 소재도금사업장에서 환기 및 보호구 착용 없이 도금조에 물과 시안화나트륨을 혼합하는 작업을 하다가 노동자 1명(남, 23세)이 시안화합물(시안화수소)에 중독되어 의식소실, 중증의 대사성 산증 및 저산소성 뇌손상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선생님의 환자 진료 시 직업에 대한 신중한 검토를 부탁드립니다.”
메일이 오기 보름 전 인천 남동공단에서 23세 청년 노동자가 시안화수소 중독으로 뇌사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얼마 후 뇌사에 빠진 노동자는 사망했다. 남동공단은 2016년 초 메탄올 중독으로 인해 청년 노동자가 실명한 곳이기도 하다.
청년 노동자가 중독된 시안화수소는 시안화합물(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청산가리’)이 물과 반응하여 생겨나는 독성가스다.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 쓰이기도 했던 시안화수소는 교과서 상에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에 최근 들어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고 알려진 물질이다.
이처럼 위험한 물질임에도 직원이 7명밖에 되지 않는 영세기업에서 제대로 된 안전관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사용되고 있었다. 사고가 난 5월 28일부터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에게 메일이 온 6월 12일까지 보름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이 사건은 사망한 청년 노동자의 장례식이 있던 19일 처음으로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메탄올 중독, 구의역, 특성화고 실습생 등 청년들이 일하다 다치거나 죽는 일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청년·비정규직에게 위험한 업무가 전가되는 ‘위험의 외주화’는 근절되고 있지 않다.
위험에 노출된 공장 안의 ‘장그래’
그렇다면 사건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시안화가스에 중독된 노동자는 남동공단에 A업체라는 직원이 7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A업체는 냉장고에 들어가는 프레스를 대기업 하청업체에 납품하는 회사로 길고 긴 원·하청 고리의 5차 내지 6차에 해당하는 회사이다.
사망한 노동자는 A업체에 2018년 5월 2일 입사했다. 주로 건조작업을 했고, 도금 준비작업, 포장공정 이송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사고가 난 5월 28일 당일, 사망한 노동자는 평소와 다른 작업을 지시받았다. “도금액 교체” 작업을 지시받은 것이다. 이 작업은 원래 다른 직원이 하는 일이지만 직원의 출근이 늦어져 업무를 대신하게 됐다.
사망한 노동자는 업무지시를 받고 도금액을 교체하기 위해 2개의 도금조에 담길 물질을 바닥에 쏟고 물과 시안화나트륨을 도금조에 채웠다. 시안화나트륨은 보관창고에서 바가지로 퍼왔고, 그 과정에서 그는 어떠한 보호구도 제공받지 않았다.
작업이 끝난 후 화장실에 갔다 음료수를 마신 후 작업장에 들어선 순간 그는 쓰러졌고 인근 길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뇌사판정을 받았다. 그 후 인근 요양병원으로 옮겨졌고 6월 18일 23살의 젊은 노동자는 결국 사망했다.
시안화합물이라는 극독성의 물질을 보호구와 배기장치도 없는 회사에서 버젓이 사용했고, 그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극독성의 물질을 어떤 안전장비 없이 바가지로 퍼 나르고, 치우는 작업을 일상적으로 진행한 것이다.
시안화수소는 최근 사업장에 방문한 안전보건공단 직원조차 방독면이 없으면 시안화수소가 담긴 도금조의 뚜껑을 열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독성이 강한 물질이다.
일터에 닿지 못하는 촛불
자칫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고 혹은 죽음이 될 뻔한 이 사건은 노동건강연대 회원인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안전보건공단에서 온 이메일을 노동건강연대에 보냈고, 노동건강연대가 사건을 파악하고 언론에 사건을 알림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사망한 노동자가 사고 당시 어떤 환경에서, 정확히 무슨 공정을 수행했으며, 시안화수소의 농도가 얼마나 어느 정도 였기에 노동자가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사고가 난 A업체의 시안화수소 작업환경을 측정한 보고서에 따르면 A업체는 2017년 하반기와 2018년 상반기 모두 시안화수소 노출기준에 부합하는 작업환경을 갖췄다. 사고가 난 이후 노동부가의 산업안전감독관이 사업장에 방문하여 감독을 실시했지만 이미 공정에 작업 중지 명령이 난 이후였기 때문에 사망한 노동자가 사고 당시 얼마나 시안화수소에 노출되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수년간 언론에서 청년실업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에게 어떤 대통령은 눈높이를 낮추라고 했고, 또 다른 대통령은 중동으로 가보길 권했다. 청년실업을 걱정하던 두 대통령은 감옥에 갔지만 눈높이를 낮춘 청년이 간 공장에서는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고, 시안화수소로 사망에 이르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정규직이 되지 못한 ‘장그래’는 비정규직으로 남아있을 뿐더러 언제든 사고로 다치거나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일하고 있다.
촛불로 새롭게 집권한 대통령은 산재로 인한 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아직, 촛불의 성과는 청년·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닿지 않고 있다.
원문보기_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47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