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 김명희 / 편집위원장
대담 김신범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
녹취 한지훈 / 노동건강연대
이른 더위가 온 7월 초, 면목동 녹색병원 7층에 자리한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김신범 부소장을 만났다.
그는 사람을 홀리는 설득력 있는 말솜씨를 가졌다. 그가 물건을 팔면 꼭 사야할 것 같고, 전도를 하면 꼭 믿어야만 할 것 같은 솜씨다. 그러나 김신범 부소장을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이런 말솜씨가 아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진정성 있게 소통하는 ‘기품’, 치밀하면서도 대담한 추진력, 사회정의와 연대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모습이야말로 그의 진정한 미덕이다. 서비스 노동자들과 함께 한 ‘의자 캠페인’, 배달노동자 안전을 위한 ‘30분 배달제 폐지 캠페인’, 노동–환경–소비자 단체가 함께 하는 ‘발암물질 없는 사회 만들기 국민행동’ – 그는 이런 새롭고 힘 있는 연대운동에 산파역할을 해왔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태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살충제 계란, 독성 생리대, 최근 라돈방출 침대에 이르기까지 환경보건 이슈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요즘. 이 문제들에 대한 진단과 해결의 방안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전문가이자 활동가로서, 그를 만나고 왔다.
[김명희] 간단하게 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김신범] 우리 연구소의 공식 직책은 부소장이구요. 업무는 화학물질과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김명희] 제가 잘 구분을 못하고 있는데, 발암물질 감시 네트워크와 화학물질 감시 네트워크가 완전히 다른 조직인가요? 둘 다에서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김신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발암물질 감시 네트워크는 발암물질이나 환경호르몬을 없애기 위한, 그러니까 노동조합부터 환경운동단체까지 포괄하는 ‘발암물질 국민행동’이에요. 여기에서 운영위원장 맡고 있어요. 화학물질 감시 네트워크에서는 정규 역할 없이 좀 떨어져서 지원을 하고 있어요.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는 화학 사고를 다루는 지역네트워크거든요. 여기서는 정부 측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다름없는데, 뭐냐 하면 화학물질 감시 운동 쪽에서 2016년부터 지역이 환경부랑 같이 화학 사고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문제는 지자체 역량이 아직 갖춰져 있지 않으니까… 저는 주민대표, 지방정부, 기업, 지방의회 등이 모여 거버넌스를 만들어서 지역의 위험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대책을 세우는 테이블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어요.
[김명희] 거버넌스의 촉진자 역할을 하신 거군요.
[김신범] 올해 10개 지역 째 하고 있구요. 조만간 전국네트워크를 발족시킬 예정입니다.
[김명희] 그 10개 지역들은 사고가 막 나거나 이미 경험한 지역인가요? 아니면 그냥 자발적으로 위험성이 있다고 모인 것인가요?
[김신범] 사고가 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인식을 안 했겠죠. 올해에 사업한 곳이 경북 영주시인데 SK Materials라는 곳에서 사고가 난 곳이고.. 청주는 몇 년 전에 폭발사고로 사람들이 꽤 많이 돌아가셨고 그래서 시에 담당부서가 생겨날 정도.
[김명희] 맞아요, 거기 LG 화학 엄청 크잖아요. 위험은 높지만 아직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곳은 그런 조직들이 만들어지지 않는 건가요?
[김신범] 사실, 사고가 생기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 생각이고 사고는 계속 나고 있지만 모르고 있었던 것에 가깝죠. 지역주민들은 (화재) 연기를 보거나 이야기를 듣거나 정부에 집계가 되지 않았던 것 뿐이었죠.
[김명희] 어쨌든, 높은 분이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정리하겠습니다 (웃음).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요즘 가장 큰 환경보건 이슈인데, 대진침대 이야기부터 하면 좋겠습니다. 이 사건의 본질을 좀 정리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신범] 가습기 살균제, 대진침대, 살충제 계란, 생리대 다 똑같은 문제예요. 어떤 것을 생산하기 전에 이것이 누군가에게 노출이 되고 노출된 사람에게 무슨 위험이 있을 수 있는가 판단을 하며 생산을 해야 하잖아요? 그게 제조자의 책임인데… 제조물 책임이 누락된 사건이에요. 모자나이트 이런 광석을 쓰면 몸에 좋은 음이온이 발생한다고 하는데 이건 우리 연구소에서도 발생시킬 수 있어요. 음이온이 부산물로 나오는 기계가 있거든요. 원자들에 x선을 딱 쏴서 전자를 튕겨내면 그것 때문에 음이온이 발생하거든요. 저희는 이걸 통해 파장을 파악해서 무슨 물질이 들어 있나 분석하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방사능이 발생하게 해서 음이온이 나오는 것을 건강에 좋은 것처럼 포장을 했다는 말이에요.
[김명희] 저도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도대체 음이온이 만병통치약인가…
[김신범] 가습기 살균제는 어땠어요? 습도를 조절하라고 의사들이 권고를 했잖아요. 가습기를 빵빵 틀어대는데 곰팡이가 잘 슬어, 그러니 소독을 잘하는 것이 좋겠어. 이런 생각에 살균제를 쓴 거죠. 근데 사실 젖은 수건 걸어놔도 되잖아요. 우리 몸에 좋은 것이라지만 상품으로 만들어진다고 하면 이윤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이윤을 전제로 하는 것에 대해서는 효과가 실제로 있는지, 과대광고는 아닌지 검증하는 시스템이 있기는 한데… 근데 이것도 제대로 작동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가습기 살균제도 처음에는 과대 광고에 대해서 처벌을 받았거든요. 아이들 건강에 좋은지 아닌지 테스트도 안 해 놓고 ‘우리 아이를 위하여’ 이런 식으로 굉장히 좋은 도구인 것처럼 포장해서 생활 속에 들어오고 있거든요. 어떤 위험이 있는지는 평가하지 않고 좋은 점만 강조하면서 이윤을 챙기는 시스템이 작동해 왔던 거죠. 살충제 계란도 똑같아요. 진드기가 있으면 닭이 힘드니까 살충제를 뿌려야 하는데 ‘뭘 뿌리는 게 안전할까?’를 검토하지 않고 피프로닐을 사용했죠. 피프로닐을 농부들이 나쁜 줄 알고도 쓴 게 아니에요. 그리고 피프로닐은 무허가 제품이 계속 유통되는 중이구요
[김명희] 한국에서 현재 무허가 유통이 가능해요? 21세기에?
[김신범] 무슨 소리 (웃음) 가짜휘발유가 이렇게 많이 유통되는 나라에서… 한국은 이제야 공급망을 관리할 수 있는 나라로 접어든 것에 불과해요. 생리대도 마찬가지죠. 생리대에 뭐가 들어 있는지를 모르잖아요? 다 똑같죠.
[김명희] 그런데 가습기 살균제는 위생이나 환경에 관련된 것이고 생리대도 그런데 사실 침대에서 그런 유독한 성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못했어요. 의자를 만드는 회사도 비슷할 것 같은데, 건강과 직접 관련성이 없는 제품에서는 건강 유해성을 일일이 점검할 것 같지 않잖아요. 어쩐지 그래서 생리대, 가습기, 계란하고 침대는 성격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어디까지 점검해야 하나…
[김신범] 대진침대가 사람들에게 공분을 자아냈던 건 특별히 ‘건강에 좋다고’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생활용품에 의한 피해사례는 예상보다 훨씬 많아요. 우리가 흔히 쓰는 인조가죽 의자들을 보면 불타지 말라고 난연재가 잔뜩 뿌려져 있거나 프탈레이트 등이 첨가제로 들어가 있어 자꾸 방출이 되요. 피부에 묻으면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죠. 또 피자박스 같은 경우, 기름에 젖지 말라고 과불화화합물을 쓰는데, 그게 관절염 같은 것을 일으킬 수 있고…
[김명희] 알면 아무것도 못 먹어요.
[김신범] 어떤 특정한 기능을 위해서 굉장히 많은 화학물질이 쓰이고 있어요. 그것들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고 있고. 대구 수돗물에서 화학물질이 검출된 것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살충제 계란 파동 때, DDT가 검출되었잖아요? 그동안 DDT를 그렇게 뿌려놓고서는 검출 되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잖아요? 이게 이상한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화학물질에 대해 약간 환상이 있어요. 좋은 것만 하겠지… 하지만 사실은 ‘득과 실을 따져 보고 득이 크니까 쓰는 거야’ 하는 프레임이 아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어요. 이것을 벗어날 필요가 있죠. 환경정의 관점이 도입되어야죠.
[김명희] 그러면 대진침대 건도 그렇고, 이렇게 유해성이 확인된 이후 대응과정에서는 무엇이 제일 심각한 문제일까요?
[김신범] 연결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우체부들이 이걸 수거 했잖아요?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당연히 들죠. 예전에 석면 베이비파우더 사건 났을 때, 그걸 보령 메디앙스에서 생산했거든요. 제일 먼저 ‘보령메디앙스 노동조합’을 검색해 보았는데, 아무 것도 안 나오더라구요.
[김명희] 노동조합이 없는 건가요?
[김신범] 모르겠어요. 찾아봐도 안 나오는 것을 보면 노조가 없거나 활동이 굉장히 약하겠구나 짐작만… 탈크를 쓰면 당연히 작업환경측정을 했을 것이고, 그러면 탈크 중에 석면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게 정상인데… 그런 프로세스만 제대로 작동했으면 소비자에게까지 석면 탈크가 전달될 일이 없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대진침대 생산 공정에서 노동자들의 방사능 노출량이 얼마인가 점검을 하다보면, ‘이거 소비자에게도 노출되는 것 아냐? 되게 세네?’ 이런 것이 확인되지 않을 리가 없거든요.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절차들이 없으니까 결국 최종 소비자가 피해를 입게 된 것이지 이것을 분리해서 ‘제조단계는 그렇다 치고’ 이렇게 생각하면 문제가 안 풀리죠. 노동이 무시되어 왔고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까지 위태로워진 것인데 또 마무리는 노동이 하고… 앞뒤는 무시한 채 가운데 부분만 강조를 하니 이 문제들이 반복되는 거죠.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이 안전해지기 위해서는 생산이 안전해져야 하거든요. 예를 들면 아이쿱이나 한살림 같은 생협이 안전한 것만 골라서 소비하면 되지 왜 생산에 개입할까? 결국 생산을 안전하게 해야 안전하게 소비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이런 개념이 전국적으로 필요하죠. 모든 국민들에게…
[김명희] 대진침대 수거의 경우, 일반 택배회사들이 거부를 해서 우체국 직원들이 나섰는데, 정상적으로라면 어떻게 수거를 해야 올바른 수거라 할 수 있나요?
[김신범] 대진침대에서 수거를 해야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렇게 위험한 침대를 어떻게 우리 집 안에 둘 수 있어? 빨리 수거해 가. 정부는 뭐하고 있는 거야? 정부는 도대체 뭐하는 거야?’ 이래서 정부가 움직인 건데. 그런데 왜 정부가 개입해야 할까요? 정부가 이 침대를 사라고 소개해 준 게 아니잖아요?
[김명희] 정부가 허가를 해줬잖아요.
[김신범] 본인이 기업으로부터 속아서 구매를 해놓고 이에 대한 책임은 다른 누군가가 대신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태도에 대해 정부가 기민하게 대응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적절한 수거 방식은 제조자가 제안을 하고, 정부는 그것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일텐데, 정부가 이윤을 얻은 기업 대신에 수습하는 것은 세금을 공정하게 쓰는 일이 아닌 거죠. 가습기 살균제 때에도 정부는 무한책임을 가진 존재였고 도대체 정부가 이럴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을 던졌어요. 제가 가습기 살균제 특조위에 들어가 있었잖아요. 저도 똑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러 들어간 거에요. ’정부는 도대체 뭘 한 거냐? 왜 이렇게 엉망이었느냐? 누구의 책임이냐?‘… 가서 알게 된 건 ’정부는 책임을 질만한 존재가 아니다‘라는 거예요. 정부에게 책임을 지라고 했던 것이 오버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점차 들기 시작했어요. 신규 화학물질들을 검토하면서 왜 정부가 유독물질 지정을 안 하냐고 비판했는데 기업은 쥐꼬리만한 정보를 제출하고 국립환경과학원에 있는 연구원들이 인터넷을 다 서치해가지고 ’이렇게 유해한 정보가 호주에 있대..‘하면서 일일이 찾아내서 유독물 지정을 한다는 거에요. 기업은 자료를 하나도 안 내놓는데, 이걸 토대로 정부 담당자는 온갖 서치를 다 해야 하고… 그러면 선생님이 가건 제가 가건 간에 전 세계 가장 뛰어난 독성학자가 와도 실수를 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인 거죠. 기업이 할 일을 모두 정부에게 미루는 상태에서 구멍이 안 난다는 것은 말이 안되요.
[김명희] 어쨌든 정부가 기업을 쪼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김신범] 정부가 도대체 무엇을 했냐고 질문 하려면 정부가 할 일이 명확했어야 해요. 그런데 정부는 그냥 무한 책임자인 거예요. 가습기 살균제 특조위에 들어가서 감염병과 화학물질과 비교해보게 되었어요. 그렇게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던 메르스가 돌았을 때 감염자, 사망자가 몇 명이었지? 그렇게 심각한 건 사실 아니었는데…
[김명희] 거의 40명 정도 돌아가셨죠.
[김신범] 이것도 작은 숫자는 결코 아니었죠. 박근혜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 중 하나이고. 어쨌든 감염병은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된 것이나 다름 없고,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정부도 모든 말단 조직까지 대응 업무가 정해져 있어요. 구청은 청소 위생업무, 식당에 대해서는 식중독 감시, 보건소는 예방접종, 공항에서는 열감지 센서 운영 같은 검역소 업무 등등…. 이렇게 하니까 큰 유행이 돌아도 사망자 수가 몇 백 명이 되고 그러지는 않는 거잖아요. 그러나 화학물질 문제는 1940년대에 대량생산 대량소비 체제로 돌입하면서 시작되었어요. <침묵의 봄>이 나온 게 62년이잖아요. 문제를 깨닫기 시작한 게 60년대, 말하자면 100년도 안 된 문제에요. 100년도 안된 문제를 정부가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죠. 아마도 그래서 전 세계 곳곳이 화학물질문제로 몸살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미나마타병, 이타이이타이병, 우리나라 원진레이온… 조금 확장해서 환경보건 문제라고 하면 광우병, 전자파 등등 ‘신종’ 위기에 대해서 ‘뭐 이런 것이 다 있어?’하면서 대응하는 중이고…. 어떤 패턴이냐 하면 후쿠시마 원전 터졌을 때 일본 장관이 물고기 먹는 퍼포먼스 하고 영국 장관은 광우병 사태 때 햄버거 먹는 퍼포먼스 하고… 우리나라 식약처도 만약 생리대가 남성용품이었으면 차고 나왔을 거예요. 이렇게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하는 건 미지의 문제에 대해 능력 없는 자들이 대응하는 전형적인 모습들이죠. 이런 것들을 겪으면서 국민 불신이 극도로 쌓이면 정부도 ‘여기에 세금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대충 하면 안 될 것 같아’ 하면서 질적 변환이 일어나는 거죠. 그게 유럽이 REACH 같은 제도의 뿌리잖아요. 미국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서 ToSCA를 좋게 못 만들고 있잖아요.
[김명희] 선생님 지적은 정부가 PHMG 같은 개별 물질이 유해한 지 아닌지 쫓아다니고 뒷수습하는데 그게 정부의 역할은 아니라는 거죠? 그럼 정부는 선제적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거죠?
[김신범] 기업의 책임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거죠.
[김명희] 불러가지고 가르치면 되는 건가요? 너무 약한데?
[김신범] 지금 제조하고 수입하는 사람들은 유해성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러면 팔지 못하게 해야 해요. 그들은 팔아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이걸 관리하는 거죠.
[김명희] 규제를 통해서?
[김신범] 아주 엄격하게 하고 거기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는 거죠. 그리고 정부가 기준을 만드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져보아야 해요. 기준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정부의 책임처럼 생각되지만, 신종 화학물질이 계속 등장하는데 그것에 맞추어서 규제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잖아요? 그러면 기준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화학물질을 생산한 사람과 쓰는 사람에 대한 ‘일반적 책임(General Duty)’은 무엇인가, ‘위험성 평가’를 사전에 제대로 하라고 할 수 있어야죠.
[김명희] 정부가 규제 지침을 제대로 만들어주고 새로운 물질이 들어올 때마다 따르도록?
[김신범] 그쵸. 모든 것에 보편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책임을 명확하게 하고 이런 책임이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죠. 그렇다면 이런 책임이 어떻게 작동하냐? 사고가 났다, 기본적 위험성 평가를 안 했다, 그러면 징벌적 배상을 할 수 있는 제도적, 법적 장치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이런 시스템이 없으니까 대법원에서 판단이 어려워지는 거죠. 개별 목록의 구체적 기준만 있고 그것만 지키면 기업들이 책임을 다한 것처럼 되버린 거죠.
[김명희] 산업안전보건법이 그렇잖아요.
[김신범] 모든 법이 다 그래요. 환경법도 다 똑같아요. 그러니까 기업은 책임지지 않고 정부에게 무한 책임이 돌아오는 거에요.
[김명희]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가 하라는 대로 다했다…. 이런 거죠.
[김신범] 이 문제를 어떻게 벗어날 것이냐, 우리 사회가 그나마 나은 시스템으로 갈 수 있을 것이냐의 분기점과 같다고 생각해요. 정부의 가장 큰 고민은 이거라고 생각해요. 정부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포장해왔는데, 어떻게 하면 욕을 덜 먹으면서 그동안 뻥을 쳤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 있지? 이런 거죠.
[김명희] 실제로 대진침대 노동자들의 작업환경 노출이나 이런 자료가 없는 거예요? 작업환경측정을 하지 않았을까요? 측정을 했어도 라돈을 했을 거 같지는 않아요. 가구제조업에 방사선이 필수항목인가요?
[김신범] 여기서 또 문제가 드러나는데, 유해물질 관리를 하려고 해도 정부가 가로막는 경우들이 있어요. 이게 진짜 정부의 책임인데, 뭐냐 하면 이번 대진침대 사건의 관리주체가 누구였죠?
[김명희]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김신범] 네, 원안위에요. 왜, 어째서, 원안위가 이걸 관리하지? 어린이제품특별법은 책임소관이 어디인 줄 아세요? 산자부(산업통상자원부)에 있어요. 강력한 규제를 만들 수 없도록 기업을 양성하는 부처에 규제가 선점되어 있는 형태에요. 개발도상국 시기에 ‘안전 따져서는 기업경쟁력을 가질 수 없어, 일단 돈 좀 벌고 나서 챙길게’ 말하던 시절의 시스템이 지금까지 작동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가습기 살균제도 환경부가 아니라 산자부가 관리하던 제품이에요. 그런데 산자부는 일 터지자마자 비관리품목이었다며 도망가버렸죠. 그 전에 환경부는 제품에 포함된 발암물질을 관리하고 싶다고 법을 만들면서 산자부에 의견을 요청했었어요. 그런데 ‘제품이라는 말은 빼라, 모든 제품은 이미 품공법(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으로 관리한다, 입방정 떨지 말아라’ 하던 산자부가 도망가버리니까 환경부가 드디어 찬스를 얻어 이 건을 말 그대로 주워오게 된 거예요. 욕을 그렇게 먹어가면서도… 이제 환경부도 주워오는 것 그만하고 전략을 세워야하지 않겠나는 이야기가 많았죠..
[김명희] 그래도 환경부가 다른 부처보다는 나은 편인 것 같은데요.
[김신범] 나으니까 이렇죠. 구미 불산 사건은 누구 책임일까요? 노동부 책임이죠. 욕 하나도 안 먹었잖아요. 환경부가 욕 다 먹고 담당하던 과장은 쓰러졌어요.
[김명희] 그거 결국 환경부가 처리했나요?
[김신범] 그래서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을 만든 거잖아요.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니까, 선점하고 있던 기존의 시스템이 도망가 버리니까 뺏어올 수 있었던 거예요.
[김명희]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환경부에서 관리하나요? 선진국들을 보면 국가가 산업을 직접 관리하는 경우는 없잖아요. 규제를 만들면 만들었지… 예를 들면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은 거 되게 한국적인 거잖아요.
[김신범] 그렇죠.. 독재국가에서 가능한 경우였던 거죠. 그렇지만 유럽이나 미국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어요. 1920년대 미국에서 가솔린의 납이 문제가 되었고 보건부에서 테이블을 만들어 엘리스 해밀턴 같은 사람들, 기업대표들, 기업을 대변하는 의사들이 모였죠. 정상적인 시스템이 작동한 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솔린 납을 허용했던 이유는 신시내티 대학의 로버트 케호 교수 같은 분이 기업에서 많은 연구기금을 끌어와서 그들을 위한 연구를 많이 했던 거죠. 이런 사람들이 엘리스 해밀턴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냐 하면 ‘맞아요, 당신 말처럼 기업이 문제가 있을 수 있죠. 그런데 그런 비판을 매일 수 없이 듣고 있어요. 정말 문제가 있는지를 입증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생산을 안할텐데… 문제가 있을 거라고 겁만 퍼뜨리는 사람들 때문에 기업은 힘들어 죽겠어요. 증거 좀 가져오면 안 될까요?’ 이 때 엘리스 해밀턴이 진 거죠. 피해자에게 입증을 강요하는 시스템이 이쪽은 되게 젠틀해 보일 뿐이지, 잔인한 시스템은 유럽,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은 것 아닐까 싶어요.
[김명희] 대진침대 건도 그렇고 가습기 살균제도 그렇고, 민주노총 등 노동현장의 대응은 어떤가요? 누구나 자동으로 생각할 것 같은데. 소비자가 노출되었으면 당연히 노동자도 노출 되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민주노총이 진상조사 같은 것을 요구해야 하는 게 아닐까….
[김신범] 그게 민주노총 혼자의 힘으로는 안 될 걸 같고… 정부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 생리대, 계란 이런 일들이 터지면 정부에게 역학조사를 요구하잖아요? 역학조사라는 게 그렇게 신뢰할 만한 도구인가? 예컨대 식약처는 생리대 기준을 가지고 있지만 그 기준이 세척제 기준보다 못한데, 역학조사가 제대로 될까…. 그보다는 노동자들 노출부터 소비자, 시민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적 피해 가능성에 대해 사실 확인을 하는 조사위원회 같은 거를 국민참여로 발족시키라고 요구하면 어떨까
[김명희] 본격적 역학조사라기보다 우선 스코핑(scoping)?
[김신범] 프레임을 바꿨으면 좋겠어요. 민주노총만 욕먹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사실은 자신의 역할을 과도하게 선점하고 밥벌이와 연계시켰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재생산되는 것이 아닐까. 국민위원회를 만들자, 그리고 국민이 추천한 전문가가 절반 들어오고 정부 전문가가 절반 들어오라고 해라. 그래서 공정한 조사, 문제를 어떻게 진단할 지부터 정하자는 거예요. 정부에게는 능력이 없지 않느냐, 이걸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10군데 지방정부를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있다고 했잖아요? 환경부에서 처음에 저랑 내기를 했어요. ‘싸운다 안 싸운다’ 주민들이 참여하니까 환경부에서는 주민들이랑 정부랑 기업이랑 싸울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저는 ‘안 싸운다’에 내기를 걸었어요. 제가 이겼어요. 한 군데도 싸우지 않았어요. 첫 만남 자리에서 ‘우리 동네에서 불산 쓰는데 관리 계획 같은 것이 있어?’ 하는 순간 문제가 꼬여버려요. 저는 그 질문을 바꾼 거죠. ‘불산이 쓰이고 있네요. 관련 계획이 없네요. 어떻게 하죠?’ 이렇게 하면 ‘아 맞아요. 계획이 없어요’ 하고 답해요. 그러면 또 ‘담당자도 없어서 그런 거죠?’ 라고 말하면 ‘맞아요. 담당자도 없어요’ 이런 답이 나와요. 주민들이 듣고 있다 보면, 담당자도 없고 그러면 누구한테 욕을 해야 하지?‘ 궁금해지는 거죠. 그러면 ‘왜 담당자도 없는 거예요?’라고 물어보게 되고 왜 이 모양 이 꼴인지를 물어보면 공무원들이 오히려 굉장히 편해져요. 포장할 게 사라지니까. ‘담당자 원래 다 없어요. 배출감시 이런 것 하는 사람들이 어쩌다 일 터지면 갑자기 달려가서 수습하는 거지 이 업무가 주 업무 아니고 사이드 업무에요’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게 되고 그러면 거버넌스가 가능해져요.
[김명희] 그게 더 화가 나야하는 상황 아닌가요?
[김신범] 아니죠. 그러니까 역사적 판단이 필요한 거죠. 화학물질은 그동안 세금을 투입하지 않았구나… 우리가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를 비판할 때, 물인지 기름인지 구분도 못하고 검증되지 못한 일에 세금을 쏟아 부어? 멍청한 놈들…이라고 하는 것처럼 세금은 검증된 곳에 투입해야 해요. 그런데 검증하기 어려운 대표적 영역이 환경보건이죠. 화학물질 이런 영역은 세금 쓰기 어려운 상황이니 사전주의 접근(precautionary approach)라는 원칙이 등장하는 거잖아요. 사실 정부는 돈 쓰기 정말 힘들죠. 어떤 아웃풋이 나올지 모르는데 돈을 써야 한다니. 심지어 돈을 쓰면 사람들이 알게 되니까 리스크만 커져, 얼마나 써야하는지 견적도 못 뽑겠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돈을 쓰냐고요. 우리가 인정을 하고 수용을 해줘야 해요.
[김명희] 너무 정부 측 인사 같은데?
[김신범] 내가 너무 많이 갔나? 그래서 지금 정부가 저를 좋아해요. 대놓고 욕을 안 하니까. 그런데 사실 가장 큰 욕을 하는 거죠. ‘너네 능력이 안 되잖아.’ 정부 입장에서는 그게 시원하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그 말을 못해서 가짜 모래성들을 쌓아왔는데,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그런데 그 말을 해주니 너무 고맙다는 거에요.
[김명희] 그렇게 1단계에서 서로 ‘인정’을 하고 나면 무엇인가 진전이 이루어지나요?
[김신범] 진척이 되는 거죠. ‘그러면 담당자부터 만들자’ 이러면서 시민사회가 토론회를 하기 시작하고 그 다음에 ‘비상계획도 수립하자’ 이렇게 되고. 그런데 평택 같은 경우를 보면 공장들이 완전히 흩어져 있어요. 비상계획을 수립하려면 100군데는 세워야 할 거예요. 평택시는 한 번도 여기에 예산을 확보해본 적이 없는데, 1건당 2천만 원 이렇게 4~5건 정도 해서 1억 원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거든요. 그렇게 하면 20년 걸려요. 이러면 공무원들이 못해요. 내가 용기를 내서 100개 지역을 대상으로 화학물질 사용량 순으로 20년 계획을 세웠다고 치면. 항상 사고는 아직 하지 않은 85번째 쯤에서 나는 거죠. 그러면 어떤 놈이 이런 계획을 세워가지고 사고를 엉망으로 대응했냐고 하면서 징계를 먹는다는 거죠. 적극적으로 사업기획을 하는 공무원은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 구조예요. 그러니 조례를 안 만들려고 철저하게 방어를 하는 거죠. 자기가 위험해지니까… 거버넌스가 어떻게 가능한가 하면, 주민대표가 ‘100개 계획을 우리가 잡은 걸로 하고 당신 책임 아닌 것으로 해줄게’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공무원이 일할 수 있게 되요. 내 책임이 아니게 되니까. 주민대표를 제가 설득해요. ‘어차피 처벌도 안 되는데, (주민대표가) 책임져주겠다고 말을 해줘야 당신의 권위가 서고 공무원들은 일을 할 수 있어… 당신들은 일을 하는 공무원을 얻게 될 것이고 사업기획을 할 수 있게 될 거야… 대신에 당신들도 비난을 감수할 책임이 있어’ 가장 큰 독이 뭐나 하면 우리에게도 결벽증이 있다는 거예요. 욕먹고 책임지는 일은 기피하는 거죠. 내가 싫어서라기보다, 내가 대표도 아닌데 결정해도 될까? 이런 의문이 있는 거죠.
[김명희] ‘우리’는 누구를 말하는 거죠? 운동사회? 아니면 주민들?
[김신범] 전부 다에요. 무언가를 대표해서 자리에 서는 사람이 실제로는 대표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 이건 지역의 민주주의가 천박하니까, 경험하지 못했으니까… 결국은 목소리 제일 큰 사람이 대표로 들어가는데 이게 무슨 대표성이에요? 그러니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고, 제일 잘하는 것은, 욕만 선명하게 하면 역할을 다 한 것처럼 보이니까 욕만 하고 있는 거죠. 무능한 정부, 시스템이 없는 정부, 그리고 욕만 하는 주민, 욕만 하는 NGO…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반복되는 상황인 거죠. 그런데 해결책이 있는 거죠. 우리사회가 이걸 언제까지 용납할 수 있겠냐 천천히 이야기를 하다보면 ‘맞아 맞아’ 하는 거죠. 우리에게는 기회가 온 거예요. 강력한 기업불신과 정부불신을 가지게 되었잖아요? 이러한 불신이 가지는 긍정적 메시지는 ‘너도 책임이 있어’라는 거예요. ‘네가가 정부나 기업이 다 해주기를 바랬지? 아무 것도 안 하니 어떻게 되는지 봤지? 못 하잖아! 네가 확인하지 않으면 안 돼!’ 귀찮아서 안하려 했던 거고 정부에게 권위를 줬던 거잖아요. 심리학 논문을 보면 사람들이 왜 위험을 인정하지 않을까에 대해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하죠. 위험을 인정한 순간 파괴되는 안락함이 싫어서…
[김명희] 시민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내가 일일이 가습기 살균제 함유물질 확인해야하고 일일이 우리 동네 무슨 공장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것이 힘드니까
[김신범] 그래서 규제가 등장하는 거죠. 화장품 전성분 공개처럼 화학물질 명단을 공개하고, 시민들이 그거 보고 무엇이 위험한지 알아야 하는 건가요? 아니죠. 어차피 규제가 작동하지 않는데. 우리는 그동안 ‘규제를 가장한’ 시스템만 얻은 거예요. 사다리와 화학물질이 똑같아야 해요. 사다리는 흔들어 보면 알아요. 안전한지 안전하지 않은지를 그리고 발로 차보면 알 수 있죠. 그래도 못 믿겠으면 ‘네가 올라가 내가 잡아줄게’ 하면 되는 거죠. 화장품도 시민이 일일이 성분을 확인하라는 것이 아니라, 써있는 방식대로만 하면 안전해야 하고, 그 정보가 잘못되었다면 그 기업은 망하면 되는 것이 규제인거죠. 일반적 책무를 통한 규제 시스템이 바로 이런 거예요.
[김명희] 그동안 많은 환경 NGO들이 요구했던 것이 전성분을 다 표기해라, 특히 화장품 같은 경우 이렇게 많이 이야기했는데 제가 항상 의문이었거든요. 어차피 글씨가 너무 작아서 확대해도 안 보이고 그 물질이 뭔지도 모르는데 계속 공개하라고 하는 게 과연 바른 메시지인가? MSDS(물질안건보건자료)도 그렇고, 작업현장에 비치해봤자 노동자가 그거 보고 알 수 있나? 그게 과연 기업의 책무성인가? 선생님이 생각하는 알권리운동은 어떤 것인가요? 깨알같이 써놓고, 여기에 적혀 있는데 네가 못 본거잖아, 이런 것은 아니잖아요.
[김신범] 알권리는 시스템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1970년대 미국에서 알권리 운동이 일어났을 때, 노동자들이 지방의회에 가스통을 들고 가서 밸브를 확 열어버렸어요. 가스 냄새가 퍼지고 경찰들이 오고 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도대체 이게 무슨 가스야?’ 이러니까 노동자가 한 말이 ‘우리도 그게 알고 싶어요’ 이런 퍼포먼스를 한 거죠. 그 당시에는 무엇이 알권리였냐 하면 성분을 확인하는 거였어요. 왜냐하면 제조자들이 성분을 알리지 않고 자신들이 만든 상표명으로 유통시키니까 정체를 알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카터 대통령 때, 라벨에 성분표시를 하는 것이 의무화되었고 이를 폐기한 게 레이건 대통령. 그러면서 등장한 게 1983년 MSDS 제도였던 거죠. 우리나라 MSDS에 영업비밀이 잔뜩 제외된 이유는 이때 라벨에 성분을 공개하는 제도를 없애고 만든 것이라서 그래요. ‘노동자들이 성분을 알면 뭐하나, 유해성 정보나 잘 알면 되지’ 하면서 그 부분만 전달을 했던 거죠. 그래서 당시에 미국에서도 이것을 알권리 법이라고 안 부르고 ‘숨길 권리법’이라고 불렀어요. 공중보건학회 이런 곳에서 성명서도 냈고요. 유럽은 좀 달랐어요. 1958년도에 로마협약으로 경제공동체를 만들기로 하면서 관세 장벽을 철폐하기 시작했는데, 비과세 장벽으로 등장한 것이 화학물질 표시였어요. 독일하고 프랑스하고 철도교역을 하는데 발암성 표기가 서로 다른 거에요. 표준이 없어서 교역 시에 위법이 되거나 하는 상황이 발생한 거죠. 단일 표시를 만들어야 겠구나 했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성분을 라벨에 표기하는 거죠. 그래서 1960년대부터 라벨에 성분표기를 하고 이동을 하게 된 거죠. 비밀을 유지해서 얻는 이득보다 경제공동체를 만들어서 얻는 이득이 더 크니까. 미국은 소수 화학물질 제조자의 독점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이 작동한 것이고 유럽은 무역의 발전이라는 고민 속에서 시스템이 나온 거죠. 사실 라벨에 성분이 공개되었어도 환경과 건강 개념이 들어온 것은 10년이 지난 후였어요.
[김명희] 그러니까요. 써있다고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김신범] 이 제도가 건강과 안전에서 활용되었을 뿐이지… 유럽은
[김명희] 처음부터 염두 해두고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김신범] 대부분의 역사가 이렇지 않나요? 미국 뉴저지 같은 경우에는 MSDS를 주 정부가 만들었어요. 팩트시트(fact sheet)라고 지금도 있어요. 노동자들이 기업이 만든 안전보건자료를 믿지 못하니까 주 정부가 공신력 있는 정보를 생산하자고 했던 거죠. 이게 1970년대 미국의 알권리 운동이었고,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1970년대에 멈춰있는 거죠.
[김명희] 그거라도 하라고 하는 게 현재 우리의 상황인 거잖아요.
[김신범] 그렇죠. ‘너네들이 생산한 자료를 어떻게 믿어? 그러니까 최대한 성분정보를 공개하게 해서 감시자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해’ 이런 아주 근본적인 불신에서 한 단계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죠. 사기 치는 기업이 요만큼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모든 기업이 사기 치는 기업이라고 여기는 사회라면 무지하게 후진 사회인 거죠. 화장품 영역의 알 권리는 조금 다른데, 왜 그렇게 간 것이냐 하면요. 유럽에서 먼저 전성분 공개가 도입되었는데 여기는 규제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위험성 평가가 의무화되었어요. 그런데 예전에는 화장품에 성분정보가 허가된 것만 쓰였는데 ‘그래도 더 좋은 것을 선택하고 싶은 사람들은 물질을 확인하시고 고르세요’라는 차원에서 전성분 공개가 도입되었어요.
[김명희] 그러니까 기본은 당연히 지키고, 우린 거기에 천연장미오일을 더 넣었다 이런 거 알리기 위해서라는 거죠?
[김신범] 네 우리나라에서는 탱자가 된 거죠. 위험성 평가 등은 안 하면서 전성분 공개만 하고 있어요. 기업에게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전성분 공개를 한 것이고 그게 낡은 프레임과 맞아 떨어진 거죠. 그래서 화장품법이야 말로 최악의 법률이라고 할 수 있죠. 이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이 ‘알권리? 웃기지 마라 뭐가 도움이 되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거예요. 좀 더 바람직한 알 권리는 뭐냐면 규제시스템과 공조하는 알권리인 것이죠. 켄 가이저(Ken Geiser) 교수가 미국에서 독성물질저감법을 만들어내던 80~90년대 즈음, 기업이 발암물질을 쓰면 무조건 사용을 줄이는 정책을 수립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백혈병 걸린 아이들, 영화 <시빌 액션 Civil Action>이 그 동네에서 나온 건데요, 폐기물 때문에 수질오염 되고 아이들 백혈병 걸려서 죽고… 그러면서 굴뚝관리, 파이프관리로는 안 되겠다, 사용 자체를 줄여야겠다 이런 판단을 한 거죠. 그런데 법을 만들려보니 어려운 거예요. 제품 당 함유량은 낮춰도 기업이 장사가 잘되면 사용 총량 자체는 늘어나잖아요. 그러면 이 기업은 죄를 지은 건지, 안 지은 건지 판단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계획은 세우되 집행을 해서 처벌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법을 만들었고 그래서 켄 가이저 교수가 욕을 잔뜩 먹었어요. 운동진영으로부터요. 이게 작동하겠느냐, 이런 비판이었죠. 그러자 켄 가이저 교수가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에게는 어마어마한 알권리를 가진, 작동하는 시민사회가 있다. 어떤 기업이 계획을 성실하게 냈는지 이행하고 있는지, 우리 지역사회가 이것을 감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작동하는 모든 규제들은 투명성에 기반해서, 사회가 알게 해서 기업이 비난 받게 하는 시스템과 공조하는 것이지, 특히 기업관련 규제를 정부가 단독으로 맡았을 때 정부가 부패하면 끝이고 정부가 무능해도 끝이라는 거죠. 사회적 힘들이 공조해야 기업이 규제된다는 것은 당연하잖아요. 캘리포니아에서 왜 알권리법이 만들어졌을까? 이것은 정부가 가진 한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에요. 시민사회에, 시장의 힘을 도입한 것이에요. 규제는 이런 것이죠. 특히 화학물질과 제품안전에 관련된 규제들은 알권리, 즉, 선택할 권리, 저 기업을 비난할 권리와 연결된 알권리이죠. 그러니까 내 몸을 지킬 권리가 아니라 ‘우리가 저 기업 꺼 사면 안 되겠어’라는 큰 액션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조직될 때 의미가 있는 권리이지, 안전보장을 위해서 내가 알아야겠어, 이런 건 아니라는 거죠.
[김명희] 한국에서 잘못 이해되고 있는 부분이 크군요.
[김신범] 그래서 매번 MSDS 강조하고… ‘눈에 튀면 15분 동안 흐르는 물에 씻으십시오’ 이런 이야기나 하고. 그런데 이게 실질적으로 가장 도움이 되는 정보에요.
[김명희] MSDS는 엄청 두껍잖아요? 노동자가 이걸 일일이 찾아보게 될까요?
[김신범] 유럽에서 만들어진 REACH의 목적 자체가 MSDS를 잘 만들자에요. 제조와 수입단계에서 누가 노출되는지 신경도 안 쓰고 그냥 보편적 경고문구만 들어가는 상황인데, 만일 아이가 노출된다면 또는 임산부가 노출된다면, 또는 호흡기에 노출된다면 어디로 노출된다면? 그런 것에 따라 다 달라져야하고 노동의 조건자체가 디자인될 필요가 있어요. 그것을 MSDS에 담겠다는 거죠. 그래서 REACH 등록할 때 CSR이라고 해서 화학물질 위험성 평가 보고서를 제출하게 하면서 노출 시나리오별로 평가 하고 위험관리 척도를 명시하게 했어요.
[김명희] 물질 하나하나마다?
[김신범] 이것이 MSDS 문구로 삽입되는 시스템이 되는 거죠. 안전정보가 생산자로부터 최종 사용자에게 도달할 때까지 위험하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 이런 개념인 거죠?
[김명희] 그러면 작업현장에서 어마어마하게 두꺼워질텐데, 소용이 없지 않을까요?
[김신범] 이것은 회사가 보는 자료인 거죠.
[김명희] 아 노동자 개인을 위한 자료가 아니라는 거죠?
[김신범] 노동자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에요. 노동자가 알아야 할 것은 ‘몸이 이상하면 의사에게 문의하시오’ 이것만 알면 되고요. 꼼꼼한 사람들은 여기에 이런 규정들이 있는데 지키고 있는가에 대해 액션할 권리로서 사용하는 것이구요.
[김명희] 제가 많이 오해했군요. 아니 저걸 언제 다 읽어, 저 쓸모없는 것을 왜 가져다 놨냐 하는 생각 했죠. 연관된 질문이기도 한데, 최근 노동건강연대에서 제기했던 메탄올중독도 그렇고 최근 시안화수소 중독처럼 문송면 시절에나 생길법한 아주 재래식의 화학물질 문제가 끊이지 않잖아요? 이런 건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 거죠? 형광등 수은노출이랑 메탄올 뉴스 나왔을 때 제가 뭘 잘못 본 줄 알았어요.
[김신범] 후진적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재래형 사고’라고 정의하는 것이 또 하나의 프레이밍이라고 생각해요.
[김명희] 예컨대 반도체는 우리가 모르는 물질도 있을 수 있으니 사전주의 원칙으로 가고, 이런 것은 재래형 사고,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죠?
[김신범] 저는 아니라고 봐요. 예를 들어 반도체에서도 정비하는 공장에서 아르신(AsH3) 가스가 새어 나왔는데 누가 봐도 위험한 것이고 아직도 저런 사고가 나? 백혈병이 걸려? 이거랑 똑같은 거잖아요? 오히려 반도체야말로 첨단을 가장한 재래형 사고가 숨어있는 곳 같아요. 그래서 재래형 사고라는 개념이 적절한지 아직 판단을 못하겠어요. 재래형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우리 사회가 진즉 이 정도는 해결했어야지’ 이런 생각을 전제하는 건데, 우리사회가 진짜 그 정도에 와 있는가? 화학물질에 대한 생각들이 충분히 바뀐다면 앞으로는 재래형 사고라는 말을 써도 될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이번에 국회활동하면서 변할 수 있겠다는 느낌은 받았어요. 2013년도에 화평법, 화관법 만들 때 제가 회의 자리에 시민대표로 가면 기업들이 저한테 ‘지금까지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됐는데 갑자기 법을 지키라 하면 어찌합니까?’ 이런 말을 했어요. ‘제품을 만들 때 어떻게 원료를 다 확인합니까?’ 이런 말도 했어요. 우리는 안전성 평가를 요구하는데 세상에 원료조차 확인하지 않는 상황이었던 거죠. 그러면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그 때까지 모든 기업은 ‘우리는 안전을 위한 확인을 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던 거죠. 기업총수들한테 ‘가습기 살균제 위험성을 어떻게 파악했나?’ 질문하니까 ‘판매량이 많았음에도 큰 문제가 없어서’ 이렇게 답했어요. 국민들을 실험동물처럼 생각했던 거죠. 사전에 확인도 안 하고, 팔고 나서 문제없으면 더 많이 팔고…. 그런데 청문회를 하면서 마지막 날 홈플러스 부대표라는 사람 말이 멋졌어요. ‘우리같이 소비자와 접점에 있는 기업이 안전을 확인했더라면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안전을 확인하는 기업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그 때 원료를 확인하지 못한다는 말은 사라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실제로 그 이후 회의에 기업관계자들이 와서 저에게 무슨 말을 했냐면 ‘원료확인이 얼마나 힘든지 아시죠? 하겠지만 힘들다는 것은 알아주세요’ 이러더라구요. 우리사회는 이제야 위험을 확인하는 사회가 되었을 뿐이에요. ‘재래형 사고’라는 말은 위험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는 이미 알고 ‘그 정도 위험도 관리하지 못하면 부끄러워’라는 생각이 있는 사회에서나 쓸 수 있어요. ‘재래형 사고’라는 프레이밍을 적용하게 되면 소규모 사업장, 열악한 사업장, 마치 안전보건문제가 그런 곳에 집중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프레이밍을 하기보다는 이런 사고들이 가지는 공통점을 빨리 분석해야 해요. 메탄올 사건은 왜 일어났고, 이번에 도금공장 사망은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사고로부터 배우는 진지한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해요. 여기에서 공통점들이 발견되면, 더 이상 이런 것들은 용납하지 않겠다, 이걸 토대로 절차들을 만들고 해야 사망사고 50% 줄이기에 힘이 실리고 구체적 무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장관이나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이나 산재사망 50% 줄이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지만 하루아침에 될 문제는 아니잖아요. ‘이렇게 의욕을 보여도 잘 안 되니 얼마나 더 많은 투자를 해야겠습니까’라는 말이 나와야하는데 ‘그래서, 줄였어?’ 이러고 있으니… ‘재래형 사고’보다 ‘재래형 대응’에 대해 이야기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요. ‘재래형 국가 비난’ 이런 것으로…
[김명희] 국가비난에도 선진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시군요. 그런데 실제 영세사업장들은 안전성 평가에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예를 들면 가습기살균제 같은 대형 제조업자들 말고 작은 영세사업장에게는 어떤 책임과 기대를 해야 하는 것인가요?
[김신범] 무슨 기대를 해요? (웃음). 두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요.. 우선 사전에 위험요소가 발견되면 기업은 위험을 외주화 하려는 속성이 있죠. 그런데 삼성 같은 대기업이면 투자를 해서 충분히 잘 관리하며 쓸 수 있는 물질이라고 판단이 났는데 이것을 외주화하려 한다면 이것은 옳은 것이 아니다 비판해야죠.
[김명희] 그러니까 공급사슬 차원에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김신범] 네. ‘영세사업장은 위험할 수밖에 없어’가 아니라 ‘영세사업장은 능력이 없는데 왜 이렇게 위험한 화학물질을 가져다주고 관리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니?’라고 비난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되죠.
[김명희] 핵심 위험은 대기업이 관리하고 영세사업장은 안전한 것을 줘라…
[김신범] 그렇죠. 그러니까 노동력 많이 들어가는 거, 이윤도 잔뜩 나지 않는 거, 하지만 위험하지 않은 거… 이런 것은 뭐라고 안 그럴게, 이야기하는 거죠. ‘너희 대기업들은 능력도 없는 쪽에 왜 위험한 화학물질을 쓰라고 미루는 거야?’ 이렇게 비난받아야 하는 거죠. 두 번째는 영국의 안전보건청(HSE)이 1990년대 중반 쯤에 중소기업주들이 법을 잘 지키는지 평가를 해 봤어요. 그런데 결론은 ‘법을 모르네?’였어요. 우리나라 중소기업주들에 대한 평가는 뭔가요? 자원 없음, 마인드 없음, 아무것도 할 수 없음. 이러면서 클린사업인가 이런 것만 하잖아요. 영세사업장은 못해, 규제 작동 안 해, 말해서는 안 되고 도와주기만 해야 되… 이렇게 생각하기 쉽죠. 그런데 HSE가 영세사업주들이 진짜 마인드가 없나 평가해보니까, 사업주들은 자기가 생각할 때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관리하고, 안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관리를 안 하고 있는 거예요. 근데 안전한가 여부가 과학적 사실들과는 달라. 뭐냐 하면 순전히 경험에 근거한 것이라는 거예요. 남의 이야기, ~카더라 이런 거. 그래서 HSE는 정부가 만든 과학적 정보를 전달하고 실제 위험을 알게 되면 이들도 충분히 관리할 거라는 생각을 한 거죠. 저도 이 논문을 읽고 나서 테스트를 해 봤어요. 우리나라 100군데 영세사업장을 가지고. 그랬더니 똑같아요. 사업주들이 직접 사고를 경험해본 부분에 대해서는 엄청 열심히 관리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진짜 위험한 것에 대해서, 사고 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경우에는 안 하는 거죠. 그래서 영국 HSE가 안전보건관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질병자 수를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것이라고… 상기도감염 환자가 몇 명이고 피부병이 몇 명이고, 본인이 경험한 게 다가 아니라 실제 객관적 위험을 인식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이게 어느 정도나 위험한 일인지 정확한 정보를 주고 이것을 사업주가 받아들이면 관리를 하는 거죠. 직원을 병들게 만들고 싶은 사장이 진짜 몇 명이나 되겠어요?
[김명희] 노건연 정해명 노무사가 말하기를 영세사업주 중에 실제로 산재를 경험해본 이들은 거의 없다고 하더라구요. 전체통계에는 중소기업 산재가 많지만 각각 개인으로 보면 평생 한두 번 밖에 없어서 진짜 모른다고.
[김신범] 그런 상황에 기여하고 있는 게 산재통계죠. 그러니까 직업병이, 대표적으로 피부질환이 겨우 몇십 몇백 명이겠냐구요, 말도 안 되잖아요. 산재가 눈에 들어올 수 없는 거죠. 피부가 왜 이래? 이러면 너는 몸이 왜 이 모양이냐 하고 일은 하겠냐? 이런 식의 반응이니까요. 체질이 문제라고 여기는 거죠. 이건 정부가 만들어낸 거죠. 그래서 산재통계가 적극적으로 문제를 발굴해서 공개하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주어야 해요.
[김명희] 예전에 박두용 선생님이 산재 모라토리엄 해서, 일단 모두 공개하게 하자, 처벌은 하지 말고. 그런 이야기를 하셨죠.
[김신범] 그게 어려워요. 지금도 공장에서 화학사고 나면 지역 언론한테 하도 깨지니까 욕 안 먹기 위해 자체 대응하다가 오히려 대형사고가 되는 게 한국 문제에요. 자기들이 관리를 잘 못할 것 같으면 주변에 알리고 협력을 구해야하는 데 그러는 순간 욕을 먹으니까… 무엇이 잘못한 것이고 무엇이 덜 잘못한 것인가, 무엇이 수용가능한 잘못이고 무엇이 수용불가능한 잘못인가에 대해 구분하지 않고 모두 욕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 사회가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고 생각하고 이것은 우리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김명희] 화관법(유해화학물질관리법),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것도 이제 3년이 넘었는데, 법안을 간략히 소개해주시고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이야기해주세요.
[김신범] 화관법은 구미불산사고를 경험하고 박근혜의 국정농단이 한창이던 2013년도에 법이 제정되었어요. 다행히 세부적 기술기준들은 약화되지 않고 처벌기준만 약화되었어요. 그래서 사업주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있지요, 시설기준을 맞춰야하니까. 그러니까 이건 법이 작동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어디에 무슨 시설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뭐가 관리가 안되는지 파악이 되고, 기본적으로 새로운 공장을 지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룰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김명희] 거기에는 중소사업장도 다 적용되는 거죠?
[김신범] 네 그렇죠.
[김명희] 화관법과 화평법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김신범] 화학물질관리법은 사고를 관리하는 법이구요. 화평법은 화학물질의 정보를 확보해서 전달하는 법이죠.
[김명희] 화평법 관련해서도 진전이 있었나요?
[김신범] 화평법은 구미불산사고를 경험한 것처럼 가습기살균제사고를 경험하지는 않았어요. 2011년도에 질병관리본부가 결과를 발표했지만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것은 2016년이죠. 옥시불매운동으로 시작되었죠.
[김명희] 그 시간 간격이 미스테리…
[김신범] 아니죠. 김앤장과 옥시의 합작품이었던 거죠. 질병관리본부가 역학조사를 했는데 거긴 화학물질에 대해 조사를 하는 곳이 아니니까 김앤장이 옥시에게 코치를 해준 거죠. 질병관리본부가 실험을 제대로 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공격할 만한 여지가 있겠지, 그래서 서울대와 호서대 교수에게 실험을 맡긴 거죠. 법원이 인정할 만한 최고의 전문가들에게…
[김명희] 그런데 제가 볼 때는 국가기관이 지금까지의 사건 중 가장 빠르게 개입해서 역학조사를 하고 위험을 직접 확인한 최초의 사건이었는데…
[김신범] 대응이 훌륭하기는 했죠. 그런데 법원이 판단은 달라요. 김앤장이 보고서를 제출할 때 무슨 이야기를 했냐 하면 ‘꽃가루나 황사도 이런 문제를 일으킨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 때 모든 언론이 김앤장 멍청이, 나쁜 놈들이라고 욕을 했지만 저는 소름이 돋았어요. 이게 법원으로 가면, 질병관리본부는 화학물질전문가가 아니잖아요. 화학물질 최고전문가들이 실험을 했는데 안 나왔습니다, 그러면 대법원은 오히려 정부를 안 믿죠. 그러면서 피해자들에게 ‘가습기 살균제로 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닌 사람도 있으니 이 소송에서 판단을 내리기는 힘듭니다, 합의하십시오’라고 종용을 합니다. 이게 2011~2015년까지 일어난 일이에요. 옥시가 이러한 거짓말 실험을 만들어낸 이유는 수렁에 빠트리기 위한 장치였던 것이죠. 검찰조사를 통해서 교수들에게 돈을 주고 샀다는 것에 사람들이 폭발한 것이지, 지난 5년 동안 피해자들은 원인을 모를 때보다 더 끔찍한 시간을 보낸 거예요.
[김명희] 이 사건 초기에 저희 연구소에도 도와줄 수 있냐고 연락이 왔었는데, 저는 안이하게도 도와줄 것이 없다고 판단했어요. 그 동안 직업병의 인과성을 입증하는 것이 어려워서 함께 싸운 경험이야 많지만, 이건 정부 기관인 질병관리본부에서 떡하니 결과를 확인해 줬잖아요. 그래서 그 다음 절차는 뭐 어려운 것이 있겠냐 싶었던 거죠. 이 사건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어요.
[김신범] 옥시가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했다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인 것이죠.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2013년도에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화평법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어요. 국정농단 시기에 거지같이 만들어진 거죠. 원래 환경부가 만들고 싶었던 법률은 이게 아니었는데… 그래서 2016년 옥시 불매운동을 겪으면서 정부에 대한 극도의 불신에 힘입어 대책위들이 만들어지면서 계속 법안이 수정되었어요. 그래서 2018년 올해에 최종적으로 법 개정을 하게 되었는데, 말하자면 5년이라는 시간동안 법을 다듬는 일만 한 셈이에요.
[김명희] 화평법이 공식적으로 발효가 된 상태에서 계속 개정이 진행되었던 건가요?
[김신범] 작동은 거의 안 되고 있었어요.
[김명희] 개정안이 최종 통과는 되었나요?
[김신범] 통과는 되었는데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아서 국회에서 환경부에게 로드맵을 요구했어요. 2030년까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비전을 가지고 화평법이나 이런 것들을 개정하며 일을 하면 좋겠다 해서 그 로드맵을 만드는 데 제가 참여하고 있어요.
[김명희] 그 과정에서 발암물질 감시 네트워크,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는 어떤 역할들을 했는지 소개를 좀 해주세요.
[김신범] 2016년도에 처음 만들어졌어요. 처음에 ‘발암물질감시네트워크’에서 ‘발암물질 없는 사회 만들기 국민행동’으로 넓어진 것이죠. 고용노동부가 안을 만들 때, 백도명 선생님하고 몇 분이 모여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 공표하자고 했던 거죠. 전문가들이 1년에 12번 회의를 하고 목록을 국회에서 발표했어요. 여기가 출발점이에요.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발암물질은 생산과 소비가 같이 없애자 하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공장가서 발암물질을 찾아내도 노사는 해결할 수 없어요. 노동자들도 회사가 망하면 안 되잖아요. ‘대체물질이 없다는데 어떻게든 써야 되요’를 너무 쉽게 말해요. 그런데 소비자들은 너무 단호하게 ‘우리가 왜 이것을 사줘야 되?’를 이야기하는 거죠. 이들이 만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발암물질 없는 사회 만들기 국민행동’이라고 해서 생협, 환경운동단체, 소비자단체, 노동 쪽이 다 모인 거죠.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는 구미 불산 사고 나는 것을 보고 조례제정운동, 지역 알권리 운동 이런 것들이 터져 나왔을 때, 이 흐름을 통해 화관법을 제대로 만들도록 하고 알권리 조항들을 액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야겠다 해서 한시적으로 운영하려 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가고 있는 거죠.
[김명희] 그렇다면 주체들이 많이 겹쳐 있는 것은 아닌가요?
[김신범] 꼭 그렇지도 않아요. 워낙 우리나라에 화학물질 활동가가 없으니까 동네 가면 다 겹치기는 하는데 아직까지는 괜찮아요.
[김명희] 그러니까 발암물질 없는 사회 만들기 국민행동은 운동단체 중심인 거죠? 시민사회, 소비자, 노동 등이 다 모인 거 같고, 화학물질 감시 네트워크는 지역 풀뿌리인 거죠? 사회운동 조직이 아닐 수도 있는 거죠?
[김신범] 네. 그래서 발암물질 국민행동은 주로 정책 생산 쪽을 맡고 있고, 로드맵 연구를 하건 무엇을 하건 전성분공개 이런 거에 개입해서 화장품과 다른 전성분 공개 방식을 만들었거든요. 정부에 DB가 만들어지는 것을 우선시 하고, 이 중에 무엇을 쓸지 말지는 거버넌스를 통해 기업들이 참여해서 사전에 검토하는 회의체계를 만들고, 소비자 알권리는 그 다음에 오도록…. 이런 종류의 일들을 하고 있어요. 사회가 계속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김명희] 달라지는 거 같기는 하는데 사실 화학물질이라는 게 끝이 없잖아요. 그래서 계속 뒤꽁무니만 쫓아가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해요.
[김신범] 재밌었던 것이 아이쿱하고 ‘바디버든’ 프로젝트를 함께 했거든요. 소변 중 프탈레이트 이런 것을 검출해서 분석 했는데… 아이쿱 조합원들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깨끗한 분들이니까 프탈레이트가 줄긴 줄었는데 엄청 힘든 실험이어요. 웃긴 거는 미국의 보통 시민들 농도가 아이쿱 조합원 농도와 같았다는 거에요.
[김명희] 그렇게 극성맞게 조심하며 살았는데도?
[김신범] 미국은 그런 물질들은 이미 금지해 나가고 있으니까 농도가 낮은 거죠. 그렇다면 미국은 무슨 물질로 대체했느냐? 뭔지 모르는 것으로 대체해서 쓰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한창 동물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죠.
[김명희] 좋은 게 좋은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다?
[김신범] 모르겠다는 거죠. 그렇다면 늦어졌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언제든 미국보다 빨라질 수 있어요. 지금껏 써왔던 물질을 ‘독성이 확인된 덜 유해한’ 것으로 바꾸는 순간 미국을 앞서는 거죠. 무언가 끝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끝은 분명히 존재하고 이 질서를 확립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인류의 계속되는 도전이었을 뿐이에요. 하지만 내가 끝내야겠다는 마음만 없으면 조급할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우리의 활동이 아무리 나쁜 선택을 하고 타협적인 일을 많이 해도 이것이 공개되면 누군가 이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겠죠.
[김명희] 협력하는 거버넌스가 중요하면서도, 각 주체별로 미션이 조금씩 다를 것 같아요. 노동, 시민사회, 소비자단체, 정책커뮤니티, 학계 각자마다 주요 미션이 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요?
[김신범] 모르겠어요. 각자 위치가 있다는 것은 각자 겪는 문제가 다르겠다는 것이겠죠. 전문가들도 주요하게 연구하고 관여하는 문제가 특별히 있구요, 그게 전문가니까. 그렇다면 각자 겪는 문제가 전체 중에 무엇에 해당하는지를 보는 눈이 필수적인 것 같아요. 침대 운반 중에 노출되는 우체부, 침대를 생산하는 노동자, 침대를 사용하는 소비자를 구분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잖아요? 이런 것을 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하는데, 각각의 주체들을 모아놓고 함께 고민하자고 하면 될 문제인지, 아니면 어떤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국가에도 시스템이 존재해야 하지만 사회의 모든 분야에 운영방식이 있어야 하고, 마찬가지로 NGO, 전문가 집단 모두에게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화학물질 같은 경우에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고 무엇에 기인하는지 가닥을 잡는 그런 토론들이 활성화되어야 하고, 그런 토론의 결과물이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공급이 되어서 누구와 손을 잡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그리고 내 문제가 단순한 문제인지 복잡한 문제인지 이런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일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문가들이 이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는데…
[김명희] 그런데 최근 전문가들이 트렌드는 전문 분야가 점점 더 세분화되는 것이잖아요. 학계 풍토가….
[김신범] 그래서 학교에 있는 전문가는 이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거죠. NGO, 시민사회에 들어가 있는 전문가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이나 저 같은 사람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은 아닐까 해요. 모두 드러내놓고 결해 봅시다 하면서, 답이 하나라고 생각하지 말고 여러 개의 답을 마련해서 무엇이 작동하는지 봅시다, 그래서 오늘과 내일이 좀 다르게 해봅시다… 이런 차분함과 사회적 실험이 가능해진다는 것에 사회적으로 확신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사회는 분명히 더 앞으로 전진할 거에요.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고 봐요.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다는 거죠. 내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역할을 하는 때가 온 거죠.
[김명희] 그래서 더 나서기 힘든 것이 있는 거죠. 이중의 정체성이 있는 거죠..
[김신범] 지금까지는 정말 상황이 영 아닌데도 불구하고 목소리 크고 책임 안 질 것처럼 하는 사람들이 득세하던 경우가 많았어요. 토론을 통해 공동결정을 하고 함께 실험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런 자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고. 이게 반드시 시민단체 활동가가 정부조직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지금 제 자리가 그런 역할을 하는 자리라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민간이 가진 공공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더라구요. 환경보건이나 화학물질 문제는 세금이 투입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먼저 실험을 하는 것이 필요해요. 정부가 못하는 거 욕만 하지 말고 ‘우리가 할게, 그 대신 쪽 팔린 줄은 알아라’ 이렇게 하는 거죠. 우리도 정부에 직접 들어가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이 될지 몰라요. 공무원만큼 디테일한 행정능력이나 기획력은 가지고 있지 않거든요. 하지만 문제를 종합적으로 사고해서 자원들을 끌어다가 합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은 있죠. 그래서 시민사회 안에서 이러한 지위를 어떻게 단단하게 만들 것이냐.. 정부가 ‘저 사람들 없으면 우리 일 못할 것 같아’ 인정하게 만들 것이냐 생각해봐야 해요. 정부에 들어가서 어떻게 큰 꿈을 이룰 것이냐 하는 것은 큰 착각이에요. 우리가 있는 이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 자리인지를 깨닫고 인정하게 되면 사회가 바뀌게 되는 것이죠. 스웨덴 가면 ‘노르딕 스완라벨’이라고 친환경 에코라벨이 엄청 좋은 것이 있어요. 작년에 스웨덴가서 우리나라 환경운동연합 같은 단체를 방문했는데, ‘제비표 라벨’을 운영하고 있는 거에요, 독자적으로. 그래서 ‘너희 같은 시기에 만들었니?’ 물어봤죠. ‘스완라벨이라는 좋은 것이 있는데 왜 이것까지 하지?’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러니까 ‘응 비슷했는데’ 하길래 왜 이런 것을 또 하냐고 물어봤어요. 활동가가 실망스러운 눈초리로 저에게 하는 말이 ‘정부 기준이랑 우리 기준이랑 똑같아? 우리에게는 우리기준이 있잖아’ 하는 거예요. 노르딕 스완라벨이 전 세계 최고의 환경라벨이 될 수 있었던 힘은 민간의 제비표와 경쟁하고 있었기 때문인 거죠. 국가를 건강하게 만드는 힘은 쪽팔리지 않게 하는 거죠. 이런 것이 민간의 공공성이죠.
[김명희] 국가가 어지간히 정신이 있어야 쪽팔린 걸 알지 않을까요?
[김신범] 우리사회도 그 정도는 진입하고 있어요. 언제까지나 거짓말만 하고 있지는 않겠죠. 그리고 평화, 노동시간, 임금 이런 문제야 말로 이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전제조건 아니겠어요? 이런 이야기들이 현재 화두로 등장하고 있잖아요. 이제 다음 세대에는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합리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아니 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준비하고 있어야죠. 그래서 저의 최대 관심사는 20대 친구들을 많이 만나는 거예요. 방황하는 별들… 옳은 일을 하고 싶고 그렇게 살고 싶은데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르겠어서 눈빛이 흔들리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값지고 아름다운지 알려주는 거죠. 그들에게 두려움을 제거해주는 정도?
[김명희] 아우, 왜 이렇게 낙관적이야… 마지막으로 노동건강연대 회원들에게 부탁하거나 나누고 싶은 것을 이야기해주세요.
[김신범] 제가 노동에 기대하는 것은 자기가 중심에 있다는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다는 것이에요. 노동조합이 다른 단체와 다른 것 중 하나는 회의를 잡을 때 자기네 회의실로 오기를 원해요. 여러 단체들과 함께 공론화하는 자리를 만들려고 해도, 자기네만 따로 와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요. 공무원 같아. 자기네들이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인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공론화 자리에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노동자들의 상황을 알리고 문제 해결 주체로서 리더십을 보여주면 좋겠는데, 그런 소통이 적다보니 의제형성에서 노동이 계속적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노동을 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느냐를 문제 삼기보다 직접 노동을 이야기하면 좋겠어요.
[김명희] 선생님 보시기에, 노동, 소비자, 환경 운동이 함께 하면서 노동이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는데 충분치 못하다는 불만이 있으신 것 같아요
[김신범] 그렇죠. 노동은 조직된 사람들을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면 아이쿱은 전국민의 3퍼센트를 조직하겠다고 하는데 이미 노동은 몇백 만의 조직력을 가지고 있잖아요. 물론 노동조합의 조합주의가 가진 숙명 같은 것도 있죠. 모든 문제에 대해서 정의롭게 나서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올바르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다만 석면탈크, 방사선에 노출된 노동자들을 생각해보면, 노동이라는 것이 좀 더 공개된 형태로 사회에 전달되고 노동을 안전하게 만듦으로써 사회 전체가 안전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굉장히 고유하고 막중한 책임을 가진 존재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어저께 문송면 30주기였지만, 1980년대에 민주노총에 안전보건 담당자를 세우자, 노동조합에 안전보건담당자를 세우자 요구했던 사회운동이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죠. 죽어가는 노동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그렇게 시작했다면, 병들어가는 아이들, 원인 모를 질병에 고통 받는 아이들, 이들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이제 노동이 나서서,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지 ‘생산의 주체’로서 말을 해야지, 진짜로 가치 있는 운동을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저는 노동자가 세상을 바꾸는 주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어요. 진짜 그런 경험들을 했구요. 안산에 있던 사업장에 가서 발암물질 조사를 해보니 스프레이에 프탈레이트랑 환경독성물질이 잔뜩 들어 있길래 ‘이거 쓰지 마세요’ 했더니 ‘왜?’ 하길래 유해하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옆에 동료가 ‘나도 쓰지 말아야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 분은 야외에서 하루에 5분밖에 안 쓰는 분이라 그것까지 쓰지 말라 고는 말하지 못하겠는데, 그분은 ‘그래도 쓰지 말아야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계속 괜찮다고 사주면 이런 것을 모르는 노동자는 하루 종일 뿌려 댈지도 모르잖아?’ 아는 사람들이 시장 내에서 팔리지 않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모든 노동자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주먹 쥐고 길바닥에 안 나와도 세상을 바꿀 수 있겠다, 생산의 주체라고 하는 것은 정말 거대한 톱니바퀴를 움직이는 힘을 가진 이들이고, 자신들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고 깨닫는 사람들이구나 생각했어요.
이들에게 연대의식만 있다면, 타인의 생명에 대한 책임감만 있다면, 정말로 멋진 일들을 할 수 있겠구나 싶었던 거죠. 저는 맑시즘은 잘 모르지만 노동자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주체라는 것은 믿어요.
그런데 그렇게 멋진 일들이 잘 안 일어난다는 것이 문제인거죠.
[김명희] 자주 벌어지면 멋지다는 생각이 안 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