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이야기 손님
정다운 / 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이율도 / 이주노조 활동가
허환주 / 프레시안 기자
녹취 한지훈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온도계공장에서 일하는 열다섯 살 청소년은 이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배달앱이 시키는 대로 치킨을 배달하고, 햄버거를 배달하는 청소년은 있다. 학교에 가면 교복 입은 학생인데 공장으로 보내져서 어른들 대신 기계를 돌리는 청소년은 있다. 일을 해야 할 때는 노동자의 마음을 강요당하고, 사고가 나면 노동자로서 권리가 없다고 한다. 청소년노동자 자리에 이주노동자를 갖다 놓아도 그렇다, 자본주의가 원하는 생산성을 갖지 못했는데, 일을 하고 싶은 중증 장애인 노동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충청도의 소년은 야간 학교를 다니고 싶어서 서울의 온도계공장에 들어갔다. 그는 온몸에 수은을 두르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30년이 흘러도 소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행이다. 그런데 기억만으로는 모자라다.
그 소년과 같은 이들이 21세기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많다.
[전수경] 오늘은 우리 사회의 경계 사이에서 노동하고 있는,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세히는 모르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소박하게 나누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마련했습니다. 이야기손님으로 함께 해 주신 분들 소개 부탁드립니다.
[허환주] 안녕하세요.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입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정다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다운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율도] 안녕하세요. 이주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율도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가 좌담이나 강연을 가끔 기획하는데 관객 수는 적지만 기획이나 초대 손님은 항상 훌륭한 분들만 모신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관객들도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개를 해주셨는데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님은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문제를 오랫동안 취재하고 『현대조선잔혹사』라는 아주 유명한 책도 큰 출판사에서 발간한 작가이거든요.
책은 잘 안 팔렸다고 하더라구요(웃음). 저희가 북토크라도 진행했어야 하는데 죄송한 마음이 있구요. 정다운 활동가와 이율도 활동가 역시 이야기를 재밌게 잘해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나눌 이야기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었는데 못된 존재, 또는 어떻게 불리고 싶은데 불리어지지 못한 노동자들에 대한 것인데요. 일과 일 사이, 이런 존재와 저런 존재 사이에서 느끼는 혼란이 있다면 무엇이 있는지 초대 손님 자신의 경험을 말씀해 주시는 것으로 시작해 볼까요?
[허환주] 먼저 말씀드리면 저는 기자 생활이 10년 정도 됐는데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취재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결과물로 책도 나오긴 했는데. 이 질문을 듣고 고민해 봤는데 ‘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사실 조선소 취재는 2010년에 시작해서 2016년까지 6~7년 정도 하고 지금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사가 정체된 느낌이 들어요. 반복되는 구조에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계속 죽고. 제가 처음 기자생활 했을 때 ‘어떻게 이런 세상이 있지?’이랬어요. 며칠 전에 현대중공업에서 사내하청 사장이 단가 후려치기하는 상황이 힘들다는 기사를 썼거든요. 과거에 썼던 기사와 똑같거든요. 산재기사도 그렇고.
7년 전에 썼던 기사를 아직도 쓰고 있고 똑같이 반복되는 구조적인 한계를 나는 극복할 수 있을까? 기자로서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기사를 쓰고는 있는데 힘에 부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율도] 노동조합 활동을 한지가 1년도 안되었는데요. 노동조합 활동가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방탕한 삶을 살다가 기회가 돼서 노조활동을 하고 있는데 노동조합하면 강경하고 막 빨간 띠 매잖아요? 저는 노조에 굉장히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기도 해요. 개인주의적이고 한 사람 한 사람에 집중하는 사람이고, 조직적인 결정이나 움직임에 저항하는 사람이기도 해요. 그런데 제가 노조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지금은 노조에 와서 어떻게 하면 조직적으로 생각하고 대응해야 하는가 생각해요. 하지만 개인적인 것을 벗어나지 못해 갈등하고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정다운] 예전에 동동프로젝트라고 있었어요. ‘노동 그리고 활동’의 중간에서 고심하고 있는 청년활동가들의 인터뷰였거든요. 한정된 예산구조가 있고, 사장이 없고, 내가 힘든데 힘들 때 배운 대로 문제제기 할 대상을 찾다보면 나더라. 인상 깊었던 것이, 다른 구조를 상상하면서도 기업 안에서 하는 것처럼 문제제기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책임과 권한을 나누려고 하고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나누고 있는 상황에서, 그 5~6명 일하는 곳에서 조직문화를 만들려고 하는 게 나인데? 나로 수렴되는 문제를 겪으면서 누가 나의 문제를 해결해주나 하면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전수경] 각자 활동공간으로 삼고 있는 곳에서 이주노동자, 장애노동자 그리고 허환주 기자는 고등학교 실습생을 심층 취재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 듣고 싶어서 모셨는데요. 이 노동자들이 어느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들이고 굉장히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로 언론에서 다루고 하는데요, 이 분들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율도] 이주노동자가 처한 어려움에 대해 말하고자 하니 많은 생각이 드는데요. 이주노동자가 되려고 결심하는 것부터가 문제적 상황이거든요. 일단 이들은 자국에서 대부분 경제 활동이 자체 해결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런 청년들, 가장들이 이주노동을 선택하게 됩니다. 경제적으로 난민이라고 부르고 싶은데요. 제가 네팔에서 2005년에 1년 정도 지내면서 본 모습은 일단 청년들이 많은 시간을 놀아요. 할 일이 없고 직장이 없고 그들이 자국에서, 내가 성인으로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거의 전무하다고 보면 되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은 그들에게 어쩌면 할 수만 있으면 꼭 해야만 하고, 하고 싶은 선택입니다. 오고 나서 상황이 어마어마한 것이죠. 존재 자체에 대해 드러낼 수 없고 숨죽여 지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정서적으로는 그렇고요. 시스템 문제가 많아요. 차차 이야기 하겠지만 이 시스템 자체가 이주노동자를 옥죄고 스스로 인간으로 느끼기 힘든 구조에 있습니다. 오늘 대담 제목을 보고 이주노동자의 현실이랑 딱 걸맞구나 생각을 했어요. ‘노동자가 되지 못한 노동자’ 앞에 ‘이주’만 붙이면 딱 이주노동자의 현실이에요. 스스로 노동을 하러 왔지만 노동자로, 노동자의 권리도 챙김 받지 못하고 스스로 챙길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정다운] 장애인 노동자의 현실은 노동을 하지 못하는 존재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 핵심이죠. 정부에서 고용률, 비경제활동인구를 측정하잖아요. 실업률의 분모가 구직을 원하지만 실직상태인 자이고, 분자는 그 중에 현재 직업이 없는 사람이잖아요? 중증장애인은 어디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중증장애인은 일할 의사가 없는 사람으로 보는 거죠. 물어봤는지는 잘 모르지만 워낙 실업률이 낮게 나오니까 어느 순간부터 사라지고 계산방법이 어느 순간부터 바뀌었어요. 그러니까 노동자라고 하고 나서야 다양한 노동자정책 이런 것도 있을 수 있잖아요? 장애인이 정책대상으로도 취급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허환주] 저는 현장실습생을 취재한지 2~3년 정도밖에 안 되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취재하면서 학생들 만나며 느꼈던 것을, 특성화고에 한정해서 말씀드리면요. 공부 열심히 하고 준비를 잘하는 친구들은 문제가 없는 것 같아요. 방향성을 잘 잡은 친구들은 최대한 많은 것을 습득하고, 자기 길을 고민하는 친구들은 그렇게 가더라고요. 문제는 특성화고에 진학하는 학생 상당수는 집안 환경이 열악한 게 통계에서도 나오거든요. 중식 제공 지원을 보면 저소득층만 가능한데 그 비율이 30퍼센트 정도 되요. 일반 고등학교는 10퍼센트 정도인데, 그 친구들이 집안이 어려우니까 고등학교 졸업하고 빨리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에 등 떠밀려 가요. 중3때 고민을 하지 못하고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고, 고3 되면 취업을 하라고 하니까 현장실습을 하라고 하니까 아무데나 들어가는 거죠. 학교에서 추천해 주는 곳에,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어디에서 하는지도 모르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을 주지 않고서 등 떠밀려서 가는 구조가 되어 있는 거죠. 주체적으로 고민해야 하는데 계획 없이 들어가면 힘들어 하죠.
10인, 20인 영세기업에서 학생들을 데리고 가거든요. 그런 기업에서 학생들을 어떻게 케어할 수 있겠어요. 사회인의 눈으로 학생을 바라보죠. 선생님께 대들고 게임하고 장난치며 놀던 친구들이 하루아침에 저녁 늦게 퇴근하고 점심시간 딱 맞춰서 지켜야하고, 상사라고 하는 사람이 지시내리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데 하루 만에 그런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굉장히 괴로워하고 아파하죠. 현장실습을 고쳐야 하고 사회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전수경] 오늘 당사자 분들, 이주노동자 장애인노동자, 현장실습 학생을 부르면 더 좋았을 텐데 부르기가 여의치 않아서 어떻게 보면 대변인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활동하는 분들을 모신 건데요. 세 주인공들이 각 영역 안에서 어떤 싸움을 진행하고 있는지 말씀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다운] 장애인의 노동권을 주제로 대응한 게 저희 단체 10년 역사에서 짧아요. 작년부터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을 상대로 농성을 하면서 고용노동부와 협상을 계속했죠. 그때 저희가 한 세 가지 요구가 최저임금법, 중증장애인은 최저임금을 예외로 해도 된다는 조항을 없애라는 것, 공공일자리라고 해서 문재인 정부가 81만 개의 공공일자리를 만든다고 했는데 그런 것처럼 중증장애인의 노동도 민간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는 일자리를 만들어달라는 요구하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을 개혁하라 이런 요구였어요. 지금 중증장애인 노동과 장애인을 고용하는 정책은 공단을 통해 전달되고 있는데 조직이 경직되어 있고 중증장애인을 무시하는 태도가 팽배해 있어요. 제가 아는 분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갔는데 당신과 같은 중증이 일할 곳은 없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장애 때문에 취업이 어려운 분들을 지원하는 기관이 공단인데 중증장애인들은 문턱도 못가보고 있구요. 공단 평가를 취업률로 하다 보니 취업이 쉬운 경증 장애인 위주로 취업을 매칭하고, 고용을 지속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잘 파악하지 않고 매칭만 해요. 돌려막기 식으로, 취업했던 경증장애인이 훈련받고 다른 곳 취업하고 그만 두고 다시 취업하고. 정말 취업이 어려운 사람들 지원은 거의 없다고 생각될 정도예요. 저희는 ‘돈 먹는 하마’ 기관 이라고 불러요.
[허환주] 작년 11월 제주도 이민호 군이 사고를 당하고 나서 교육부에서 현장실습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발표를 했어요. 그런데 올해 2월에 바꿔서 선도 기업을 선정해서 현장실습을 실시하겠다고 방향을 돌렸죠. 학생 학부모 기업 모두가 현장실습 폐지를 반대했어요. 현장실습을 폐지하는 순간 여러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죠. 기업은 최소한 3~4개월 동안 싸게 쓸 수 있는데 못쓰니까 반대하고 학교는 취업률을 높여야 하는데 실습제도를 없애면 2월 이후 취업을 해야 하는데 전문대 애들이랑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기업은 전문대 애들을 데리고 가겠죠. 학부모 입장도 학생이 3학년 2학기에 놀 바에는 뭐라도 배우고 최저임금에 못미처도 8~90만원 받는 게 어디냐 하는 생각인 것이죠. 교육부가 결국에는 조건부로 현장실습을 하기로 한 거죠. 올해 다시 시작할 텐데 선도 기업을 누가 선정하는지 실습을 누가 관리감독할 것인지 걸리면 처벌을 누가 할 것인지 준비 없이 진행하고 있어요. 교육부에서 올해 5월 3500개 기업을 전수조사 하겠다고 발표했어요. 그것도 상당한 문제들이 있어요. 학생들이 죽어나가니까 발맞추어 해보려 하지만 ‘생색내기’ 식이 아닌가, 변화가 있는 것인가 생각이 듭니다.
[이율도] 현장실습생 상황을 들으며 이주노동자의 상황과 비슷하다, 너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학생들도 낯선 환경에서 낯선 지위로 바뀌는 것에 대해 어려움이 있는 거잖아요? 이주노동자들도 마찬가지거든요. 이주하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겪는 갈등과 적응하지 못했을 때 상황이 있어요. 그 중에서 제도적인 것에 대해 많이 투쟁하고 있어요. 노조니까요. 2000년 초반에 이주노동자들이 처음으로 투쟁할 때는 우리사회에 자신들이 존재를 던지는,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있다’ 존재를 던지는 투쟁을 했던 것 같구요. 요즘은 좀 구체적으로 바뀌었는데요. 이주노동자가 가장 고통 받는 제도는 ‘고용허가제’. 이름 보고 알 수 있다시피 노동자의 권리가 배제되어 있는 노동자를 생각하지 않는 제도에요. 고용주를 위한, 고용주가 편하게 고용할 수 있는 제도거든요. 목적도 그렇게 명시되어 있어요.
‘한국 경제에 원활히 인력을 수급하기 위한 수단이고 균형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여기서 균형은 영세사업주, 중소사업주, 대기업이 균형을 맞추겠다는 것이죠. 사람은 수단이 되는 거예요. 사람을 수단으로 쓰려면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겠죠, 그래서 움직이지 못하게 합니다. 사업장 이동을 하지 못하게 하거든요. 자유가 없는 거예요. 어떤 상사를 만나고 어떤 조건에서 일을 하든 노동자는 직장을 옮길 자유가 없어요. 사장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고, 사장이 허락하지 않으면 노동자는 죽고 싶은 곳으로 계속 가서 일해야 하고, 보고 싶지 않은 동료를 만나야 하는 것이죠.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달라, 우리에게 자유가 필요하다는 투쟁을 하고 있고요.
또 최근 이슈로, 이주노동자들에게 필수적으로 기숙사가 제공이 되겠죠. 다른 나라에서 오는데 오자마자 일을 하게 되고 숙식을 해야 하는데 주거공간을 선택할 수가 없다보니까 사업주가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 기숙사가 아주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거죠. 여성노동자 방에 문고리를 아예 떼서 문고리에 구멍이 나 있어요. 사용자가 아무 때나 그 여성들 방에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야 너 나와서 일하라 했잖아’ 그냥 밀고 들어와요. 쌍소리하고, 나와서 일하라고 윽박지르고 밀고 당기는 상황도 있구요. 노동자들이 직접 찍은 영상들이 있어요. 화장실이 없어서 여성노동자들이 삽을 들고 나갑니다. 땅을 파고 용변을 보고 둘씩 셋씩 짝을 지어서, 요즘 이야기입니다. 오래된 이야기 아닙니다. 컨테이너 이런 것을 주거 공간으로 주는데요. 그런 임시가건물 같은 경우에도 농수로가 있는 곳에 1~2미터 정도 파 놓고 그 사이에 걸쳐서 컨테이너를 놓습니다. 가옥이라고 하기 미안한 상황인데, 그런 곳에서 지내게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기숙사가 작년부터 돈을 받기 시작했어요. 기숙사 숙식비를 받아도 된다고 노동부가 말해서, 작년 2월부터 그 지침을 활용해서 공짜로 제공하던 기숙사들도 한 달에 5~60만원 공제하는 경우도 많구요. 그래서 그 지침을 폐기하라고 하고 있구요.
하나 더 하면 근로기준법 63조를 보면 너무 어렵게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은 쉬운 거예요.
농업 축산업 이런 노동자들은 근로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아요. 농번기 이런 때에 시키는 대로 시키는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6시간 일하면 1시간은 쉴 수 있어야 하는데 사업주가 ‘지금은 딸기 농번기니까 너는 쉬면 안 돼, 해 뜨면 나오고 해 지면 들어가, 쉬는 시간 없어’ 해도 저항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 근기법 63조거든요.
올해는 숙식비 문제가 곪아서 최저임금에 숙식비까지 뜯기면서 일해야 하나,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이주노동자 탄압하는 거 아니냐, 투쟁을 해야겠는데 이주노동자들과 투쟁을 하려니까 깜깜한 거예요. 한 달에 두 번, 아예 못 쉬는 사람도 있는데, 어떻게 서울에 불러가지고 청와대 앞을 가고 노동부를 갈까, 이 사람들이랑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오라고 하면 올까? 직접 못 오는 노동자들을 찾아가기로 마음먹고 지난 5월에 버스를 타고 문제되는 곳을 투어를 했거든요. 투쟁투어라고 해서 투투버스라고 하고 다녔어요. 가장 최근에 한 투쟁입니다.
[전수경]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 상황이라 관객 분들에게 양해 부탁드립니다. ‘돈 먹는 하마’ ‘생색내기’ ‘돌려막기’ ‘취업률’ 처음 만났는데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 주시네요.
청와대로 향하는 오체투지를 했다고 들었어요. 장애인에게 최저임금이 제외된다는 것을 저도 이거 준비하면서야 알았어요. 이주노동자들 숙식비 문제는 저는 정부가 바뀌면 해결될 줄 알았어요. 설마 비닐하우스 내주고 하숙비를 계속 받게 할까 생각했는데 대화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하더라구요. 현장실습도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저도 토론회 가서 화도 내고 했는데 당사자들이 그거 아니거든, 답이 없거든 이런 상황이네요.
[허환주] 시민단체는 현장실습제도를 폐지해야한다고 이야기를 해요. 학생들, 특성화고 권리위원회, 특성화고 졸업생노조 같은 데서는 하면서 내용을 강화해야 한다고 해요. 잘 모르겠어요. 폐지하는 것이 맞는지 존치해서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 맞는지. 학생들이 현장실습 과정에서 산재를 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실습제도 때문에 그런 것일까? 교육부, 노동부가 감독을 잘 못해서 그런 것일까, 감독을 제대로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조선소 취재를 하며 느낀 것은 관리감독을 해도 사람들은 죽고 하루에 노동자들이 5명씩은 죽고 있잖아요, 관리감독을 안 해서 그럴까?
현장실습 학생들은, 학생인지 노동자인지 모르겠어요. 사건이 터지면 제주 이민호 학생 같은 경우 노동부가 특별감독을 했는데 교육부는 산업현장을 근로 감독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고3이잖아요? 2015, 16년 즈음에 교육부, 학생, 학교, 기업이 표준협약서를 작성하기로 했는데요. 학생에 맞게 하는 것이 아니라 표준협약서대로 하기로 되어 있어요. 이민호 학생이 하루 15시간 일해서 250만 원을 받았어요. 어마어마하게 일을 한 거죠. 표준협약서에는 하루 7시간 이하로 일을 하도록 돼 있어요. 근로계약서는 일을 더 해도 되고요. 사업주나 학교가 처벌받으려면 표준협약서로 처벌을 해야 하는데 노동부가 근로계약서를 가지고 근로감독을 하니까 처벌 수위가 낮아져요. 이민호 학생 아버지는 내 아들은 학생인데 왜 노동법으로 처벌하냐, 표준협약서로 해야 하는데. 그런데 교육부는 현장 조사 권한이 없는 거예요.
아주 골 때리는 상황인 거죠. 이민호는 학생으로 죽었는지 노동자로 죽었는지 모르는 거죠. 교육부에서 3500여 업체를 전수조사 한다고 해요. 무슨 권한이 있어 조사를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노동부가 특별감독 권한이 있어서 그나마 들어가는 것이지 교육부가 무슨 명분과 권한으로 하겠냐는 거죠. 알아보니 현장을 가서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장에 체크리스트를 줘서 우리는 노동조건을 준수합니다, 시간외근무를 시키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이런 설문지를 줘서 체크하는 것을 전수조사 한다고 한 것이죠. 정말 답답하죠. 눈 가리고 아웅 인데. 학교를 움직여야 하는데 학교도 기업눈치를 보죠.
학교의 고충은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너무 없다는 것이죠. 교사들이 다니면서 ‘우리학교와 제휴를 맺어 주십쇼’ 하는 식이죠. 잘 나가는 중견기업은 실습생을 받고 싶어 하지 않거든요. 전문대생, 실력 있는 친구들을 모집하지, 소위 말하는 질 낮은 노동력을 뽑으려고 하지 않죠. 학교도 눈치를 보다보니 감독을 하지 못하는 거죠. 그러니까 조사는 아니고 체크리스트인데 한번 부탁드릴게요, 이렇게 읍소하게 되고, 현장은 그대로인 식이 되는 것이죠.
답답하더라고요. 취재를 하면 할수록 모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해가 가거든요.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면서 열이 받는 거죠.
[이율도] 현장실습생, 이주노동자를 관통하는 흐름이 그것인 것 같아요. 노동자를 싸게 쓰려고 한다. 이 관성이 이주노동자와 현장실습생을 고립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생각이 말씀하시는 동안 계속 들었어요. 이들을 어엿한 노동자로 보지 않고 그냥 싼 인력으로 보기 때문에 제도를 허술하게 만들었고, 교묘하게 하는 것 같아요.
[전수경] 5월에 다녀오신 현장순회버스, 투투버스 이야기를 좀 더 해주시겠어요.
[이율도] 여러 가지가 떠오르는 데요. 사업장도 문제가 많지만 고용센터라고, 이주노동자는 기본적으로 고용센터에 기대게 되거든요, 처음 와서 정보를 받는 것이 이곳이고 문제가 있을 때 먼저 고용센터를 가게 되는데, 이주노동자를 관리하는 의무가 있는 공무원인데도 이들에 대한 차별, 하대, 반말, 민원 자체를 거부하는 게 좀 있어요. 그걸 따지러 갔어요.
이주노동자 민원을 잘 받지도 않고 처리하지 않느냐, 진정을 넣은 곳이 있는데요. 이 민원에 어떻게 하고 있느냐 물었더니 검토를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두 달이 지났는데. 노동청이 특별근로감독을 하는 과정에서도 이주노동자가 한국말을 서툴게 하면 증언 자체를 믿지 않는다거나 ‘너 한국말 못하면 통역할 사람 데리고 와’ 이런 식으로 하는 거죠. 딸기 농장인데 아예 근로계약서가 00시에서 00시, 사업주가 일하라는 시간에 무조건 하는 거예요. ‘사장님 제가 이만큼 일했어요’ 수기로 적어서 내요. 이번 달에 180만원을 받아야 하는데 왜 120이에요? 하면 ‘너 여기서 먹고 자고 했잖아 그거 뺀 거야’ 70만원 떼는 것도 봤어요. 투투버스 하면서 이런 거 문제제기하고 그랬습니다.
[정다운] 연결점이 있는 것 같아요. 생산성과 효율성. 중증장애인들이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 노동자? 노동을 할 마음이 있다고 아예 보지를 않고, 취업 대상으로 보지 않아요. 고용과 연결되어 있는데, 중증장애는 노동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존재하고 살아가는 거 자체가 불가능한 존재로 낙인 받는 상황이죠. 탈시설 운동이, 학교도 못 가고, 버스도 못타는 존재 이렇게 여기는데 이런 것을 바꾸어 나가야 하는 것이죠. 옛날에 영국의 산업혁명 중에도 일할 수 있는 가난한 사람은 다 공장으로 잡아들였는데 광인, 아동, 노인, 절름발이 이런 사람들이 공장으로 가지 못하고 구빈원에 격리되는 것이 시설의 역사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요, 노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최저임금 제외라는 것이, 비장애인이 하는 일이 100프로다 하면 그보다 얼마나 생산력이 떨어지느냐 측정하는 것이고, 이 사람은 중증장애인이니까 안 줘도 돼, 하는 것이 아니고 중증장애인이 있으면 평가를 받아요. 노동부가 인가를 해주는 거죠. 이 사람은 생산선이 떨어지니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제도이거든요. 비장애인의 생산성을 맞추지 못하는 것에 대해 손실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전수경] 최저임금 아래로 주려면 인가를 받아야 하잖아요?
[정다운] 공단에서 평가를 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전수경] 받는 비율이 얼마나 있는지,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설명해 주세요.
[정다운] 전체 장애노동자 중에서 많지는 않고요. 만 명 정도 되는데 늘어나고 있는 추세구요. 만 명 중에 대부분은 직업재활시설로 중증장애인시설, ‘보호작업장’ 이렇게 말하는 곳인데 장애인이 만드는 빵 같은 것이 보호작업장에서 생산되는 생산품인데요. 훈련을 받는 사람들이에요. 복지시설인데 근로감독관이 와서 최저임금을 감독하면, 인가를 받아야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복지부에서 원래 훈련 수당을 주던 것을 노동자로 신고하도록 바꾼 거에요. 그래서 최저임금 제외로 가고, 고용장려금이 있는 거예요. 훈련생일 때는 노동자가 아니에요 훈련수당을 주면 되요. 노동자로 신고를 하면 직업재활시설이 사업주로 바뀌어요. 고용장려금이, 한 사람당 돈이 나오는 그 돈을 사업주가 가져가는 거죠. 이주노동자도 그렇고 고용주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어요. 고용에 의무가 있는 것은 사업주이고 고용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고 고용을 잘하면 착한 사업주니까 지원을 해주는 것이 장애노동자를 지원하는 정책이에요.
[전수경] 장애인노동자들이 노동과 재활 사이에서 일인지 일이 아닌지 사업주인지 시설장인지에 대해서 왔다갔다 한다는 것이잖아요? 현장실습생도 학생인데 실습 나가면 사장이 있고, 복잡하게 되어 있는데 허환주 기자님, 취재할 때 사업주의 입장을 들어 보셨나요?
[허환주] 악독한 사장도 많을 거예요. 제주 이민호 학생 회사도, 2년 전 자살한 학생도, 작년 엘지유플러스 자살도, 안 좋은 업체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한 사업주가 다시는 실습생을 받지 않겠다고 하더라고요. 최저임금 이상으로 주고 7시간을 지켰고, 일을 할 때도 견습으로 지켜보면서 했는데, 학생이 이상했다고 하더라고요. 최대한 배려해주고 했는데 사수가 화가 나서 몇 마디 안 좋은 소리를 했는데 그것에 자살 시도를 했다는 거죠. 더 취재를 해보니 이 학생이 다른 곳에서 일을 하다가 소위 ‘복귀’를 당한 적이 있는 거예요. 학교로 돌려보내져서 ‘빨간 명찰’을 대기하고 있던 학생이래요. 업체는 괜찮은 학생인 줄 알고 뽑았는데 학교에게 ‘속았다’고 표현을 했어요. 업체 입장도 이해가 가요. 극과 극으로 갈려 있고 그 간극이 커질수록 안 좋은 일이 일어나거든요. 각자가 억울하고 피해자라고 하는 구조가 난감하더라고요.
[전수경] 이주노동자, 장애인노동자도 노동의 능력에 대해 평가하는 잣대가 있죠, 이주노동자의 경우는 미등록노동자도 있고요,
[이율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있을 텐데, 요즘 이주노동자의 트렌드는 불법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거예요. 고용허가제가 그것을 막아놨어요. 처음에 3년을 계약하고 들어와요. 3년 후 마지막 사업장에서 사장이 1년 10개월 더해보지 않을래? 하면 총 4년 10개월을 일할 수 있고, 잘 하고 돌아가면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져요. CBT(computer-based test)를 통해 다시 한 번 한국에 올 수 있도록 해놨어요. 불법체류를 하지 않고 경쟁을 뚫고 와서 다시 한국에서 돈 많이 벌어가, 이런 제도를 마련해 놓은 거죠.
이주노동자들이 그 안에서 안전하게 지내다가 가고 싶어 해요. 한국사회에 잘 보이고 사장에게 잘 보여야, 낮은 자세로 있어야 다음 기회가 주어지니까. 그런데 안타까운 방식으로 제도를 벗어나려 해요. 자살 사건이 많아요. 고용허가제 안에서 무력함을 느끼고 있거든요. 벽 앞에 서 있다는 느낌을 주는 제도예요. 내가 가지고 있는 신체적 자유를, 나에게 매일같이 욕을 하고 삿대질 하고 나를 사람으로 안보는 저 사람이 나의 목숨 줄을 가지고 있는 상황을 고용허가제가 허락하고 있으니까요. 이주노동자들은 저항심을 가지고 투쟁하기보다는 그냥 죽어야 겠다는 판단을 하는 거죠. 내가 정말 무력하다 하는 생각으로 자살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올해만 해도 네팔 이주노동자가 13명이 돌아가셨어요. 그 중에 4명이 자살이었어요.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정다운] 중증장애인은 노동자가 되기 어려우니까 본인이 아예 노동을 해야겠다는 정체성이 없는 것 같아요. 저희 박경석 대표님은 기생적 소비계층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요(웃음). 나는 중증이라서 일할 것이 없다고, 직업재활시설에서 얼마를 받든, 얼마를 뜯겨도 말도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일할 곳이 직업재활시설밖에 없는 것이 낮은 자존감, 복지혜택을 받더라도 받는 사람들이 무력감. 패배의식, 노동을 해도 이 정도 취급을 받아도 아무렇지도 않고 이 정도도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전수경]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자살 문제와 연결해서 여쭈어 보려고 하는데요. 안전이나 건강, 조직의 문화가 일반 기업과 달라서 더 열약한 지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건강상의 어려움도 우리가 잘 모르는 부분, 감추어져 있는 부분이 있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허환주] 현장실습 학생들은 있는 곳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음식점에서 일하는 친구부터, 농고, 상고, 공고 나누고 다시 별의별 게 다 나누어져 있고요. 노동환경과 건강권을 특정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주노동자에 대해 이야기한 것처럼 실습생도 노동자가 되기 위해서 노동을 하는 것이거든요. 현장실습이 끝나면 정식계약을 맺어요. 노동자로 인정받고 계약을 하기 위해서 온갖 일을 해요. 열심히 일하고 좀 더 성과를 내면 계약이 되는 거죠. 아니면 복귀조치를 당해서 학교에 돌아가 온갖 갈굼을 당하는 거죠. 빨간 명찰을 달고 교무실로 불려가서 하루 종일 서있는 경우도 있고, 담임이 공식적으로 교실 앞에서 패배자, 루저, 이런 욕을 하면서 너희는 얘처럼 되면 안 된다, 자존심을 구기게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고 들었어요.
더 열심히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거죠. 돌아갈 수 없는 거예요. 돌아가면 루저가 되고. 노동환경이 좋고 안 좋고는 영향을 받지 않아요.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거죠. 엘지유플러스 홍수현 학생 사건을 취재할 때도 보니까 굉장히 일을 잘 했어요. 디펜스 부서에는 아무나 보내지 않는대요. 정말 잘하는 친구만 보낸다는 거예요. 응대를 정말 잘해야 하고 한 명이라도 해지를 못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나 보내겠냐고 하더라고요. 현장실습생 친구들이 고3이라는 것을 고려 안 하는 거죠. 그 친구들은 제가 지금 사회생활하면서 느끼는 스트레스나 힘든 것을더 많이 느낄 수밖에 없죠. 노동환경이 복합적으로 열악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다운] 중증장애인 15세 이상 인구가 77만 명인데 그중에 경제활동 참가율이 20퍼센트라고 하거든요. 60만 명의 비경제활동인구가 있는 거잖아요. 어떻게 살고 있나 하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거나, 가족의 부양책임으로 떠넘겨져 있는 것인데요. 이들 중에 노동을 하고 싶은 분들이 있죠. 그런데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게 의료급여 문제가 있어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면 의료급여 자격자가 되요. 거의 무료로 진료를 받을 자격이 되는데 일정 소득 이상이 되면 의료급여에서 탈락되거든요. 소득이 없고 생계가 어렵지만, 일을 하고 싶어도 의료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의료급여를 포기하기 어려워서 일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율도] 이주노동자는 막 심각한 환경을 생각하실 것 같은데, 사소한데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사소하지 않은 것이에요. 엄청 더운 나라에 살던 이주노동자들이 냉동 창고에서 일을 하면 한 번도 영하 날씨를 경험 못한 노동자가 일을 하다 보니 비염 같은 게 생기는 것에요. 이 사람은 ‘비염’이라는 말도 없는 곳에서 온 사람인데 그런 환경에 놓이면 직장을 옮길 수도 없고 사장님한테 ‘콧물이 계속 나요. 기침이 나요. 머리가 아파요’하면 사소한 병이라고 생각하니까. 산재도 어렵고 사장님이 들어주지도 않고. 바다에 있는 나라에서 왔지만, 이 사람은 배를 타본 적도 낚시를 해 본 적도 없어요. 그런데 어업으로 와서 곤란한 일들을 겪는 거죠. 한국의 어업 현장은 굉장히 거칠거든요. 국가와 국가가 양해협약을 통해 고용허가제로 온 것이거든요. 우리나라 노동자가 부족하니까 그쪽 나라 노동자를 1년에 얼마만큼 보내주면 좋겠다, 이런 제도를 통해서 오는 것인데 노동환경에 대한 양해는 구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문제가 생기죠. 현장실습생처럼 이주노동자들도 어린 친구들이 많아요. 열아홉, 열여덟, 이런 친구들. 그 나라에서는 잘 커서 온 친구들일 거잖아요, 없는 돈에 한국어도 배우고 한 달에 10만 원 정도 든다고 하는데, 그 국가 기준에는 굉장히 많이 드는 거예요. 생활비 수준을 투자하면서 집안에서 키운 아인데 아까 현장실습생처럼 상황이 비슷하죠.
몸빼 바지 입고 호미를 차고, 괭이질도 하고. 내가 왜 이렇게 됐지 하면서 감정적인 병이 있고, 느긋한 나라에서 오는 경우가 있잖아요, 말을 하면 통하는 곳에서 일하다가 한국에서는 말을 해도 통하지 않으니까, 기술적으로 언어가 안 통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프다고 하면 의심을 갖지 않는 나라에서 아프면 쉬는 식으로, 복지수준이 우리나라보다 높아요. 아픈데 어떻게 일을 해 이런 생각을 하는데 한국은 아프긴 뭐가 아파 이런.
요즘 과로사가 참 많아요. 자다가 돌아가시는 경우도 있고. 저임금으로, 장시간 일을 하니까 사업주가 시키기도 하지만, 하게 되는 거예요. 철야하고 야근하고 휴일도 반납하고 일을 하는 거죠. 여성노동자는 성폭행, 성희롱 문제가 많은데, 사장님이 갈비 사 준다, 피자 사 준다, 모텔 갈래,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농업에는 너무 많아요. 계속 그래요. 여성노동자들이 금방 알아들어요. 일상적으로 사업주, 이웃, 계속 그런 거죠. 남성노동자도 마찬가지에요. 며칠 전 제주 선원 사건도 있었는데 선장이 바다에 밀어 버렸거든요. 형사소송을 하고 있어요. 남성노동자 성희롱도 자주 일어나요. 산재라고 생각해요. 국가에서는 산재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이번에 성폭행 당한 여성 이주노동자에 대해 3일 안에 사업장 이동을 하게 조항을 만든다는데 폭력은 뺀다는 거예요. 폭력 사건이 얼마나 많은데. 노동자에 대한 산재는 이런 것부터 포함해야 해요. 이주노동자에게 이런 상황이 있으면 그 사업주에게는 이주노동자를 보내지 말아야 하잖아요? 문제가 생겨서 나가면 다른 노동자로 바꿔주고 이게 고용허가제거든요. ‘원활한 인력수급, 균형적 경제발전’ 이런 상황입니다.
[전수경] 뉴스타파에서 봤는데요, 불교신자인 노동자가 장어 양식장에 배치가 됐는데 장어를 잡아야 해서 고통스러워 하더군요. 사업주는 양보할 생각이 없다고 하고요.
관객 중에서 질문하실 분 있으신지요?
[청중] 정다운 활동가한테 질문하고자 합니다. 장애인 고용 관련해서 예술작업에서도 고용을 인정해 달라 등을 생각 중인데 투쟁의 성과나 변화의 지점이 있나요?
[정다운] 중증장애인 고용이나 노동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직업재활시설이 보호고용 개념인데 중증장애인이 작업현장에서 일하기 힘드니까 시설을 갖추고 모아놓고 노동을 하는 것이거든요. 사회 통합적이지 않고, 비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구조가 아니잖아요. 이런 격리구조가 문제다, 보호고용은 훈련을 통해서 비장애인만큼 일할 수 있게 훈련을 받는 거죠. 훈련을 받아서 일반 노동시장으로 가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 되어버렸죠. 요즘은 지원고용이라고 해서, 현장 중심형 일자리라고 하는데 실제 직장에 배치하고 여러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이죠. 각 필요는 다를 수 있죠. 발달장애인은 앉아서 하는 것을 힘들어 한다면 일어나도 앉을 때까지 기다려 주거나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죠. 내년부터는 확대될 것 같아요. 그런 요구들이 많았거든요. 현장 중심형 일자리로 갈 수 있게 접근 자체가 바뀌어가는 것이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훈련 반복이 아니라, 이 사람이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에요. 효율성 자체가 인간중심적인 사고가 아니잖아요? 이윤을 추구하는 것에 중증장애인이 맞출 수는 없어요. 이런 것을 추구할 때도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 어떤 서비스가 필요할까 고민을 시작했다, 바뀌어 가는 과정이에요.
[전수경]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워라밸’(워크–라이프 밸런스, 일과 삶의 균형), 요즘에는 ‘가심비’라는 말이 있대요. 가격대비 심리적인 만족이라더군요. 세상이 좋아진다고 생각하다가 오늘 이 자리를 생각하면 착각 같다는 생각이 들고 헷갈리네요. 정말 세상이 좋아지고 있나 알고 싶고요. 법적으로 주 52시간 노동으로 난리가 났는데, 상황변화를 잘 받아들이고 있잖아요. 두 가지 물어볼게요. 정부는,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리고 우리가 오늘 함께 한 노동자들은 더 나은 노동을 하게 될까요?
[허환주] 누가 봐도 어렵지만 어찌 보면 간단한 것 같아요. 주체들이 만나서 논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각자 첨예하게 입장이 다른 상황에서 정부가 개입한다고 문제가 바로 해결될 것도 아니라서, 모여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논의하면서 전수조사든 법이든 논의하는, 한 번도 그런 자리가 없었으니까요. 박정희 때 이후 현장실습제도는 변한 것이 없어요. 4차 산업을 말하는데 현장실습은 변하지 않는. 공고, 상고가 아니라 명칭도 엄청 다양하게 변했어요. 4차 산업 맞춘다고 듣도 보도 못한 이름으로 바뀌는데, 어떻게 바꿀지 공론의 장을 만든 적이 없어요. 첫 스타트로 필요하지 않을까요, 정부도 시민사회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정다운] 공감이 되는데 중증장애인도 특수학교 가서 졸업하고, 취업이 안 되서 정부가 나서서 전공과도 만들고 바리스타도 배우고 복지부 따로 노동부 따로 운영은 하는데 정말 범정부적인 협의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이율도] 이주노동자에게 필요한 정부 정책과 사회적 측면에 대해서 생각해 봤는데 정부는 책임을 졌으면 좋겠어요.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을 데리고 온 것이에요. 그 나라와 협약을 맺었잖아요. 16개 나라나 되는데, 4년 10개월 노동자로 쓰고 다음에도 받아서 한국경제 발전시키려고 데리고 온 것인데 책임을 지지 않아요. 사업주에게 권한을 준 것 같지만 사실을 책임을 떠넘긴 것이죠. 이주노동자를 쓰는 사업주들은 내국인들이 잘 하고 싶지 않은 사업을 하는 것이거든요. 이주노동자를 먼저 쓰려고 하지는 않아요. 내국인을 쓰려고 구인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해요. ‘내국인이 안 옵니다’ 인정이 되어야 이주노동자를 모실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주노동자를 받을 때는 정말로 좋지 않은 기숙사에서, 여성노동자들 희롱하고 월급 뜯어 가면서 시키는 거예요. 정부가 관리 감독은 해야죠. 실태조사도 하고. 기숙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고, 나갈 때는 어떻게 살았는지도 묻고, 분쟁이 생기면 뒤로 빠지는 게 아니라 개입도 하고. 영세한 사업자와 힘없는 노동자를 싸움 붙이고 그 분쟁에서 빠져 있으면 안 되는 것이겠죠, 정부가.
사회적인 부분은요, 이번에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여름캠프를 갔다 왔는데요. 전에 사회복지시설에서 일 했었는데, 사회복지시설이랑 노조랑 너무 달라요. 사회복지시설은 철저하게 짜고 방 배정 다 하고. 노동조합은 너무 식은 죽 먹기인 게 바다에만 데려다 주면 된다는 거예요. 밥도 고민할 필요 없고 술도 고민할 필요 없다는 거예요. 정말요? 정말요? 했는데 진짜 그랬어요. 그만큼 소박한 기대감. ‘바다를 보고 싶다’ 하나였어요. 작년에는 노조에서 ‘템플스테이’를 데리고 갔다고 해요. 너무 불만이었다는 거예요. ‘어쩜 템플스테이에 데리고 갈 수 있느냐? 우리는 사람이 보고 싶다’는 거예요.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사회 구성원이 되고 싶은 거예요. 사람들 보고 모임하고 옷 트렌드도 보고. 한국을 선택하는 이유가 TV나 DVD를 보면 한국도시의 화려함, 한국 남자들의 스윗함, 다정함, 여성들의 발전된 화장 문화 이런 건데요. 자기작업 현장에서는 볼 수가 없는 것이죠.
너무 보고 싶고 너무 그런 시간을 가지고 싶고, 그래서 우리가 사회적으로 이주노동자를 볼 때 좀 더 친근하게 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마음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주노동자도 좀 워라밸을 생각할 수 있도록.
[전수경] 워라밸을 말하는 시대에서 세 현장의 노동자는, 그렇게 되지 못한 노동자가 많겠지만, 우리도 그렇게 일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오늘 당사자가 오신 것이 아니라 고민을 했지만, 이야기해 보니 깊은 이야기도 있고, 할 말도 많은데요. 더 하지 못해서 아쉽고요,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들을게요. 제주에 온 예맨 난민들이 섬을 나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물리적으로도, 상징적으로도 읽히잖아요. 오늘 이 자리의 우리도 이것을 넘어갈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정다운] 제가 처음에 장애인 야학에서 컴퓨터를 가르쳤거든요. 노들야학에서 수업을 했어요. 저의 학생들은 중증장애를 가진 분들이고 마우스도 떨리는 손 때문에 잡을 수가 없어서 보조공학기기가 필요하고, 한글을 읽지 못하는 거예요. 제가 아무리해도 안 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제가 의지를 가지고 잘 가르치면 취업이 될 것이다, 이런 의지를 가지고 했지만 수차례 좌절감을 맛보고 든 생각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노동을 안 할 수는 없잖아요?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까. 좋은 제도가 필요하다, 진짜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어야 한다 생각하면서 시작한 활동이에요.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도 폐지, 기초보장 제도를 잘 만드는 것, 이런 생각조차도 깨지고 있는 중이에요. 어느 교수가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고, 노동을 할 수 있는 지원체계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는데, 누가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노동할 수 있는 사람은 노동을 하고 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은 그냥 복지제도를 선택하라는 거냐? 노동을 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되면 안전한 사회제도 하에서 살라는 것이냐? 그 사람 선택은 없는 거죠. 노동을 하고 싶으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해서 지원하는 제도로 가야 하는 것 아닐까. 오늘 이야기하면서 정말 좋은 사회가 올까 하는 생각이, 노동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할 때 우리가 생각하는 노동은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 하는 것이 진정한 노동이라면 그렇게 바꿔 가자고, 다르게 이야기하자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이율도] 우리는 다들 노동자잖아요. 들으시면서 무거울 수도 있고, 각자의 고통이 다를 뿐, 고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같으니까요.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사례가 좀 세다 보니까 아 진짜, 이렇게 느끼실 것 같은데 사실은 이주노동자가 헤쳐 나가야 할 문제에요. 사업주도 의식이 바뀌어야 하겠지만. 이주노동자가 가지고 있는 장르적 어려움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이주노동자 사례를 듣고 우리나라가 이따위 인권감수성 밖에 없다는 열패감을 갖지 않기를 바라고요, ‘노동자는 하나’라는 말을 저는 많이 하거든요. 어떤 노동자라도 모두 하나, 내가 노동자이듯이 이주노동자도 권리투쟁을 하고 있구나, 받아들여 주시고 저희는 그래서 누구누구씨 라고 안하고 동지라고 해요. 노동자가 무엇을 위해 싸워가야 하는지 알아가는 것으로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허환주] 부끄러운 게 제가 2012년에 조선소에 위장취업을 한 적이 있어요. 한 달을 계획하고 가서 2주 만에 나왔거든요. 이러다 죽을 수 있겠구나, 다치는 것이 바보 취급받는 현장이었어요. 일하는 노동자들은 다치는 사람들이 멍청해서 그렇다, 어리숙해서 그렇다, 자기는 다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며 이야기를 해요. 어떻게 그런 확신을 하는지 몰라서 무섭고, 나는 그런 확신을 가지지 못해서 나와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현장실습을 취재하면서도 비슷한 생각이었어요. 학교도, 교육부도, 학생도, 공부 잘 하는 친구들도 만나고 못하는 친구들도 만나 봤어요. 나는 다치지 않을 거다, 학부모들도 그렇게 생각 하더라고요. 학교도요. 우리는 잘 가르쳐놨는데 실습생이 잘못한 것이다, 사업주도 우리는 잘못 없다, 실습생이 문제다.
조선소에서 사고는 무조건 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고, 100분에 1이든 얼마든 분명히 사고가 나는데 모른 척하는 것인지, 반복하는 것이죠. 나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아닐 것이다. 내 사업장은 아닐 것이다. 주문처럼 외우면서 모른 척하는 것은 아닐까.
‘사과가 백 개 들어있는 상자 안에 독사과가 들어 있으면 그것은 독이 든 상자다’ 사과가 천개 만개 있어도, 그 안에 하나라도 있으면 독사과가 든 상자예요. 우리사회는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 사회가 아닌가, 처음에 말할 것처럼 나의 존재에 대해서 회의감이 들기도 하지만 좀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수경] 네 오늘 세 분 이야기 감사합니다. 신청해 주시고 와 주신 관객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좋은 기획 대담으로 초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