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일 올해 들어 가장 많은 비가 내리던 날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13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추모위원회 주최 측이 예상한 것보다 두 배 이상의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이들은 30년 전온도계를 만들다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15세 소년 노동자 문송면을 기억하기 위해서 모였다올해는 한국 사회 노동자 건강권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문송면의 산재사망 30주기이자 국내 최대 산업재해 사업장인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투쟁 30주기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문송면을 잘 알지 못한다. 1988년이라는 시점이내가 태어나기 이전이기도 하고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왔던 것처럼 올림픽이 열렸고 골목의 따뜻한 정은 남아 있으면서 경제적 풍요가 확산되던 시기라는 인상 때문일 수도 있다조금씩 살림살이가 좋아지고 있다는 믿음 가운데 15세의 소년이 일하다 죽었다풍요로움이 넘치는 지금에도 어디선가 일하다 사망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먼 듯 가까운 문송면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지고원진레이온이라는 회사명이 삼성전자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게 된 건 올해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위원회에 노동건강연대를 대표하여 참여하면서부터였다많은 활동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7월 1일의 모란공원그리고 반올림과 함께 한 문화제와 대토론회였다.

앞에서 이야기한 모란공원 풍경을 뒤로 하고두 날의 이야기를 전해보려 한다.

살아오는 문송면함께 걷는 황유미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를 맞아 노동·안전 시민단체학생법률가보건의료인들은 이윤보다 건강한 삶이라는 슬로건으로 추모위원회를 꾸리고 추모제문화제대토론회사진전연극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노동건강연대도 추모위원회 기획 단계에서부터 함께 했다추모위는 OECD 산재사망 1위라는 불명예를 버리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문송면원진노동자를 기억하고 더 나아가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을 활동 목적으로 했다.

문송면의 이야기는 먼 이야기도 남의 이야기도 아니었다추모위원 모집에 3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참여했다문송면이 이토록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은 문송면과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구의역 김군현장실습을 하다 사망한 이민호 학생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7명의 청년 노동자들최근 시안화수소 중독으로 사망한 23세 청년 노동자까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문송면 같은 청년 노동자들이 일하다 다치거나 죽고 있다그리고 문송면이 그랬듯 자신이 다친 이유아픈 이유가 일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지내거나 자신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들에게 사과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문송면이 사망한 지 30년이 지났지만그를 기억하는 활동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추모위는 살아오는 문송면함께 걷는 황유미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문송면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을 넘어서 반올림을 비롯한 현재의 노동자 건강권 이슈를 함께 제기하며 활동했다그 일환으로 30주기 행사를 반올림 농성 1000일에 맞춰 서울 강남역의 삼성 본관 앞에서 진행하고삼성 포위의 날을 함께 했다. 30주기 추모위 활동 때문이라고은 할 수 없지만 마침 많은 활동들이 마무리 될 무렵 반올림과 삼성 간의 조정이 시작되었다는 기사가 발표되고반올림은 농성을 마무리했다앞으로 문송면 40주기, 50주기는 반올림의 10주기, 20주기와 함께 기억될 것 같다.

산재사고는 변화하였는가?

문송면의 죽음과 원진노동자의 투쟁 이후지금 우리는 좀 더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냈을까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낼 만한 능력은 없기에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의 이야기를 전해본다.

7월 17일에 열린 산업재해 피해자 및 노동안전보건 과제 대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백도명 교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산재사고는 변화하였는가?” 한국의 경우 산재가 심각한 것은 맞지만 최근에 계속 좋아지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맞는 말이다백도명 교수의 말처럼 산재 통계가 수집된 1963년 이후 초기에는 산재가 급격히 증가했지만최근에는 산재가 꽤 많이 줄어들었다그렇다면 일터에서 노동자들은 보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게 된 것일까?

백도명 교수에 따르면 최근의 산재사망 감소는 산업재해 특성의 변화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전체적으로 자살을 제외한 사고 사망 전체는 꾸준히 줄어들었고산재 역시 그와 비슷한 양상으로 줄어들었다다시 말해 사업장의 자체적 관리나 정부 대책 때문에 산재 사망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전반적 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사고사망의 감소만큼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백도명 교수는 한국사회 30년의 산업재해 대책이 결과적으로 시혜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에 불과하고작업장의 위험을 줄이려는 정책적 시도들은 미미했다고 진단했다그 이유는 기존의 시혜적 체계를 뛰어 넘는 대안적 체계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참여하는 모든 주체들에 있어각 주체들이 갖고 있는 자신의 의제와 목적이 일정한 수준에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

문송면 30주기를 맞아 우리는 시혜의 30을 뛰어넘을 근거를 만들어 내야하며노동자 건강권 운동의 새로운 목적새로운 상상력을 제시함으로써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그것이 30주기 활동을 마무리하며 내가 얻은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