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2018.08.28]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66104

 사고 다음날 적막한 세일전자 공장 정문 앞


22일 인천지하철 신연수역에서 내려 남동공단으로 가는 길. 공단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벽돌로 지은 공장들을 지나다 보면 전날 화재로 9명이 사망하고 6명이 다친 세일전자 공장이 나온다. 

정문 앞에 서 있는 경찰과 소방관이 아니라면 불이 난지도 몰랐을 정도로 건물은 깨끗했다. 공장 앞에는 흰 국화꽃 한 송이 놓여있지 않았다. 사고가 일어난 4층의 까맣게 탄 창문 몇 개, 골목을 들어선 순간부터 진동하는 매캐하고 고약한 악취가 사고 당시의 심각성을 알려주고 있었다.

사고가 난 세일전자는 건물만큼 깨끗한 회사는 아니었다. 이곳은 대통령이 방문하고,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지만 2015년 10월 파견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해 벌금 150만 원과 27명을 직접 고용하라는 행정명령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편입하는 꼼수를 부린다는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던 회사였다. 화재로 사망한 노동자 9명 중 4명은 협력업체 직원(협력을 가장한 불법 파견인지의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이었고, 세일전자 직원 5명 중 한 명은 비정규직이었다. 연령대 역시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9명 중 한 명의 노동자는 이주 노동자라고 한다. 

이처럼 연령과 성별, 국적과 고용형태를 가리지 않고 9명의 사망자를 낸 세일전자는 사고 하루 뒤라는 점을 감안해도 너무나 잠잠했다. 세일전자 노동자들은 작업중지 명령으로 출근하지 않았고, 주변에 많은 공장이 있음에도 점심시간에조차 거리를 지나는 노동자들을 볼 수 없었다. 공장 앞 신호 에 멈춘 차들의 운전자만이 종종 공장을 쳐다볼 뿐이었다. 공장 앞에는 사고를 취재하러 온 몇몇 기자와 어떤 물질이 인화해 발생했을지 모르는 매캐한 냄새를 마스크 하나로 버티고 있는 경찰, 소방관 십여 명이 출입제한을 위해 서 있을 따름이다.

22일 오전 10시에 시작된 현장 감식은 필자가 민주노총 인천본부 관계자들과 함께 이날 오전 11시 30분에 공장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소식도 전해주지 않고 있었다. 단체로 몰려온 인천시의회 의원들만 폴리스 라인 안쪽에 있는 브리핑장에서 브리핑을 받았을 뿐이다. 브리핑이 없자 기자들이 하나씩 사라졌고, 함께 공장에 방문한 민주노총 인천본부 사람들과 시신이 안치된 길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사고원인 묻는 유족에게 믿어달라는 말만 하는 사장

 유가족의 물음에 묵묵부답인 세일전자 사장
▲  유가족의 물음에 묵묵부답인 세일전자 사장
ⓒ 노동건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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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주차장과 연결된 장례식장은 휑했다. 이름을 살펴보니 사망자 명단에 있는 노동자의 빈소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였던 만큼 돌아가신 분의 얼굴은 빈칸으로 놓여있기도 했고, 어떤 노동자의 빈소 안내판에는 상주조차 없었다. 5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막 준비되기 시작한 합동분향소를 위한 꽃들이 함께 올라가고 있었다.

5층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장례식장 한 켠에서 세일전자 사장과 관리팀장이 유가족과 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을 하고 질의를 받고 있었다. 진행은 유가족들이 꾸린 대책위의 대표가 맡았다. 기자와 유가족 그리고 누군지 모를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 곳곳에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브리핑을 들으러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는 세일전자 관리팀장이 공장 설계도를 보여주며 사고 경위를 설명하고 있었다. 유가족 중 하나가 설계도와 실제 공장이 동일한지 묻자 관리팀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브리핑은 그런 식이었다. 사장은 자신을 믿어달라는 말만 반복했고, 신나 사용여부나 법률 대응 여부와 같은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관련 담당자를 불러 설명하라는 유가족의 외침에도 마찬가지였다. 유가족들은 논란이 되고 있는 스프링클러 작동여부(23일 2차 현장 감식에서 스프링클러 미작동이 밝혀졌다)와 위험한 화학물질을 일상적인 공간에 둔 회사에 책임을 물으며 이번 사고가 인재임을 주장했다. 인재인 만큼 정확한 사고의 원인이 밝힐 때까지 청와대에 가서라도 싸울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회사관계자의 브리핑에도 불구하고 사고에 대한 이해가 어렵게 되자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점차 높아졌다. 유가족들은 짧은 시간에 불이 그만큼 커졌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했고, 오기 전 보도를 꽤나 많이 읽고 온 나 역시도 순식간에 일어난 불이 어떻게 9명의 목숨을 앗아갔는지에 대한 이해 가능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회사 관계자의 브리핑 이후 인천시 관계자가 인천시의 사건 대응 경과를 보고했다. 여러 가지 말을 했지만 ‘대책을 세우겠다는 대책’과 곧 시장이 방문할 것이라는 들으나 마나 한 이야기였다. 유가족은 길병원 내부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해 사건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구청과 같은 넓고 오픈된 장소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하고 사건이 밝혀질 때까지 유지되길 요청했다.

사장과 관리팀장의 묵묵부답과 유가족들이 사망한 노동자들의 자세한 경위를 묻는 시간이 길어지자 기자들은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탈출한 직원들과 사망 경위를 자세히 나누고 싶다는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공식적인 브리핑을 종료되었다.

울고 있는 유족 앞에 정부는 무엇을 했을까

 세일전자 관계자가 유가족 앞에서 화재사고를 브리핑하고 있다.
▲  세일전자 관계자가 유가족 앞에서 화재사고를 브리핑하고 있다.
ⓒ 노동건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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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핑이 종료된 후 유가족들과 회사 관계자들에게 기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사장은 언론들의 물음에 브리핑 때와 다르게 의연하게 답했다. 자신에게 불리하기에 답하지 않았던 질문들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자신을 변호해야 할 부분에는 명쾌하고 당당하게 답변했다. 유가족들의 말처럼 자신의 변호사에게 법률적 조언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세일전자 화재 생존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유가족 이외의 분들에게 함께 간 민주노총 관계자가 명함을 주기도 하고 몇 가지 질문도 던졌지만 유가족들은 난색을 표하며 흔쾌히 이야기를 나눠주지 않았다. 나 역시도 몇몇 분들에게 명함을 드렸지만 할 얘기가 없다며 다시 돌려주셨다. 1층으로 내려와 조문을 온 전 세일전자 직원들과 몇 마디를 나눴을 뿐이다.

장례식장을 휘감은 감정은 분노와 슬픔이었다. 분노와 슬픔의 근저에는 갑작스레 일어난 이해할 수 없는 사고에 대한 당혹감이 보였다. 사랑하는 자신의 가족이 왜, 어떻게, 무엇 때문에 사망했는지 알 수 없기에 발생한 당혹감 말이다. 슬픔과 분노, 그리고 당혹감은 온전히 유가족이 떠맡을 수밖에 없었다. 

병원을 나오며, 제주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사망한 고(故) 이민호 군의 아버님 말이 떠올랐다. 

“우리 아들이 죽었을 때 장례식장에서 근로복지공단 직원이 와서 한다는 말이 유족급여를 얼마 받을 수 있다는 거였어요.”

노동부는, 근로복지공단은 장례식장 한 켠에 있었을 것이다. 당혹감에 휩싸인 유가족들에게 그들은 어떤 안내를 해주고, 그들의 안정을 위한 조치를 취했을까? 혹여 이민호 군의 아버지에게 했던 것처럼 했을까?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경찰과 소방서 뒤에서 뒷짐 진 채 사태를 관망하고 있을까?

세일전자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포털에 세일전자를 다시 검색해 봤다. 대부분의 기사는 사고 사실을 전하는 기사였다. 몇 개의 기사는 사망 노동자의 안타까운 사연을, 또 다른 기사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연관을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9명의 노동자가 사망할 수밖에 없었던 공장의 작업환경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다. 정부 역시 대책을 세우겠다는 말만 늘어놓고 회사와 유가족의 다툼 뒤에 숨어있는 형국이었다.  그나마 만이 대형 화재를 일으키는 원인인 샌드위치 패널을 다룬 기사를 내보냈을 뿐이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아침에 보던 신문을 다시 꺼냈다. 22일 1면은 곧 한반도를 강타할 태풍의 경로와 사진이 크게 실려 있었다. 1면 구석에 세일전자 화재가 10면에 실려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9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참사는, 태풍이 다른 뉴스를 쓸어가듯이 언론에서 이내 사라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기업이, 정부가 모든 산재사고에 전적인 책임이 있진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9명 사망이라는 수년에 한 번 있을까말까 한 대형 산재사고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과 무대응의 신호는 노동자들의 계속되는 산재사망사고로 이어질 것이고, 그 책임은 기업과 정부의 몫임이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정우준 노동건강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