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 딸아이 백혈병은 삼성반도체 때문”

[독자제보 확인취재] “같은 라인 근무자 1년새 2명 백혈병 사망…”

정소현 기자

삼성전자 다니던 딸 잃은 아버지 한맺힌 절규

“삼성 반도체에서 내 소중한 딸을 잃었습니다!” 지난 4월23일 기자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제보전화. 강원도 속초시에 살고 있다는 한 남성은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반도체 원판 세정작업을 하던 자신의 딸이 해당 생산라인에서 일한 지 6개월만에 백혈병 판정을 받았고, 발병 1년도 채 안돼 사망하고 말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특히 딸아이와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 5명이 같은 병(백혈병)으로 죽었다며 자신의 딸이 산업재해를 당한 것으로 주장했다. 평소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던 딸아이를 ‘어처구니없이’ 잃게 된 한 아버지의 한 맺힌 절규를 들어봤다.

“딸아이 백혈병은 삼성반도체 때문”

강원도 속초에 살고 있는 황상기. 그는 지난 4월 말,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친인척 중에 백혈병을 앓은 사람도 없고, 평소에 감기 한 번 안 걸리던 애(딸아이)였는데,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가더니 갑자기 백혈병을 얻어왔다”면서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느냐”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석연치 않은 죽음

황상기에 따르면 딸 유미(23)가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입사한 것은 2003년 10월이다. 당시 유미는 속초상업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스스로 포기하고 돈을 벌겠다며 직접 상고에 진학했던 유미가 3학년 졸업반이 되면서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취업이 된 것이다.

유미는 디퓨전(확산) 공정에서 13개월 동안 근무하다 2004년 12월, 3라인(6인치 웨이퍼를 만드는 라인)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곳에서 그녀는 하루 8시간씩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를 각종 화학용액에 담갔다 빼는 작업을 담당했다.

“부모가 걱정할까봐 힘들다는 말 한 마디 안 하더군요. 그 독한 화학약품 속에서 하루종일 있으면서도 늘 명랑하던 애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자꾸 피곤하다고 하더라고요. 살짝만 부딪혀도 쉽게 멍이 들고, 어지럽다고 하고…. 음식도 잘 가리지 않던 아이인데, 뭘 먹기만 하면 토하는 거예요. 그제서야 병원에 데려갔죠.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렇게까지 쉽게 보내지 않는 건데…”

황상기는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그냥 몸이 좀 피곤한 것이려니’ 싶어 무관심하게 딸아이를 내버려뒀던 자책감에 다시금 시달리는 듯했다.

유미는 2005년 6월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3라인에서 일한 지 6개월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유미의 어머니는 충격으로 쓰러졌고, 아버지 황상기는 생업이던 택시운전을 포기했다.

기흥공장 근무도중 덜컥 백혈병…“산업재해 분명한데 삼성에서 은폐”

“같은 라인 근무자 1년새 2명 백혈병 사망…우연이라기엔 너무 이상”

유미는 백혈병 발병 후 휴직을 하고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다. 2005년 12월에는 골수이식수술도 받았다. 2006년 9월, 휴직기간이 끝나 복직을 해야 했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퇴직을 선택해야만 했다.

아버지는 “업무상 재해” 주장

제발 살아주기만을 바랐던 부모의 간절한 소망을 뒤로 한 채 유미는 ‘백혈병’ 진단을 받은 지 9개월 만인 지난 3월6일, 결국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의 나이 이제 고작 스물 셋이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병마와 싸우는 과정에서 황상기는 ‘이상한’ 얘기를 전해들었다. 유미와 같은 라인에서 근무하던 또 다른 여성도 ‘백혈병’으로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3라인에서 일하던 이아무개 역시 ‘백혈병’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이아무개는 지난해 6월 발병해 두 달 만에 사망했어요.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 특히 유미가 하던 작업이 화학물질을 다루던 일이었어요. 게다가 그 일을 하게 된 지 6개월 만에 갑자기 ‘백혈병’에 걸린 거죠. 유미의 업무와 백혈병 발병이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지 여부는 조사를 해봐야 밝혀질 일이겠지만, 저희로선 너무 억울하고 원통할 따름입니다.”

유미의 사연은 월간 <말> 4월호에 기사화되기도 했다. 월간 <말>은 유미의 주치의였던 박준성 교수(아주대병원 종양혈액내과)의 소견서를 통해 “본 급성 백혈병은 그 원인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본 환자에서처럼 장기간의 화학물질 노출이 그 발병에 일정부분 기여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돈 많이 벌어서 부모님께 효도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애였는데…. 그렇게 쉽게 떠나보낼 줄 알았다면 삼성(삼성반도체)에 보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가진 게 없고 못 배운 부모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유미의 죽음은 분명 석연치 않아요. 유미가 하늘나라에서라도 편하게 쉴 수 있게 제발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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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입장 확인취재

“개인질병일 뿐…산업재해 아니다”

삼성전자 기흥공장 측은 이번 일에 대해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관계자는 그러나 1년 새 같은 라인에서 일하던 두 명(유미와 이아무개)의 직원이 ‘백혈병’으로 사망하게 된 것에 대해선 ‘개인적 질병이며, 업무상 재해로 보기 힘들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1997년 최초 발병 이래 6∼7명이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황유미를 포함한 5명은 모두 사망했다. 이 중 황유미와 이아무개는 같은 라인에서 근무했고, 1년 사이 ‘백혈병’이 발병해 숨졌다.

“백혈병 일으키는 물질은 아예 쓰지도 않는다”
“작업환경 전혀 문제 없다…우연의 일치일 뿐”

관계자는 “함께 일하던 직원을 잃게 돼 안타깝지만 이들의 백혈병 발병 원인이 업무 때문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면서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정이 많은 만큼 작업환경에 철저히 신경쓰고 있다. 유해물질을 법적 기준치 이하로 관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백혈병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물질로 알려진 벤젠과 같은 물질은 아예 쓰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같은 라인에서 근무하던 직원 두 명이 1년 사이에 같은 병으로 사망하다보니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보는 것 같은데, 그것은 정말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면서 “1997년 이래 삼성전자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례는 대한민국 평균 발병률보다 낮은 수치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백혈병이 발병했다는 가능성이나 개연성이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관계자는 특히 “백혈병 발병이 업무상 재해인지 여부는 공신력있는 전문기관에서 조사해야 할 일”이라면서 “유족이나 망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지만 ‘백혈병’은 개인적 질병일 뿐, 산업재해라고 보긴 어렵다. 전혀 개연성이나 연관이 없는데 괜한 오해를 받고 있어 회사입장에선 난감하고 억울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