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기업살인
기업살인법, 비관과 낙관 사이에서 상상하고 희망을 찾아보다
전형배 / 강원대학교 법학대학원
2018년 10월 25일, 노동건강연대가 한 달에 한번 여는 이야기모임에 전형배 회원(강원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을 모시고 ‘기업살인법’ 에 대하여 어떤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다고 열어두고 토론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기업을 정말 처벌할 수 있을지, 지금의 검찰과 법원은 왜 기업을 처벌할 수 없는지, 기업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기업살인법을 계속 말해야 하는지 이야기해보기로 했습니다. 박제처럼 교조처럼 현실에서 일어나는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서 같은 구호만 외우는 것은 운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현실에 대한 비관과 낙관, 사실과 전망에 대한 생각이 성글게 오갔습니다.
그런데 가능과 불가능, 중단과 지속에 대하여 열어두고 이야기 할수록 상상력과 희망이 생긴다는, 희망을 만들 수 있다는 분위기, 공감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조금 거칠지만 함께 나누고 싶어 긴 이야기를 그대로 풀어서 전합니다.
(녹취: 한지훈 정리: 전수경)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하면 원청기업, 하청기업이 처벌되는 구조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업살인법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게 우리나라에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자 합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법률 후반부에 벌칙 규정이 있습니다. 여기 나와 있는 각종 의무를 사업주가 이행하지 않으면 처벌이 되죠.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기업이잖아요, 개인이 아니라.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처벌하는 법 이론은 개인을 처벌하는 것과 좀 다릅니다.
양벌규정이라고 해서, 의무규정을 실제로 위반한 사람을 특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로 안전, 보건을 담당하는 관리자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조항을 위반했다고 검사가 딱 집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게 1단계입니다.
딱 집었는데 회사가 그 관리자를 제대로 지휘감독하지 못했다고 인정이 되면 회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2단계입니다. 그러니까 관리자가 법상의 의무를 다 했거나, 법령상 의무가 없었다면 처벌이 안 됩니다. 그리고 회사가 성실하게 지휘감독을 했다고 증명하면 관리자만 처벌되고 회사는 빠져 나갑니다. 안전보건 관리자도 노동자죠. 법의 세부 조항을 보면 700개 정도가 되는데 이 중에 위반한 것을 뒤지는 거죠.
그 다음 도급이 있습니다. 조금 더 복잡합니다. 하청노동자가 죽습니다. 원청기업 노동자가 죽는 게 아니라 하청기업 노동자가 죽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하청기업 안전관리자가 잘못한 것을 잡아내야 하고, 그 지휘감독을 못한 하청기업을 처벌해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1단계와 2단계죠. 그리고 이제 원청기업을 처벌하려면 원청의 안전관리자가 잘못한 것을 잡아내야 합니다. 3단계죠, 이게 인정이 되면 원청기업이 지휘감독을 잘못한 것을 잡아내서 검사가 증명해야 원청기업이 처벌되는 겁니다, 드디어, 4단계입니다.
그러니까 원청 기업이 처벌되려면 이 4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검사와 전화변론설
검사 입장에서는 기소했을 때 유죄가 나와야 합니다. 무죄가 나오면 검사는 앞길이 막힙니다. 무죄는 검사에게 엄청난 타격을 주기 때문에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있으면 기소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괘씸해도 하지 않아요. 그래서 하청기업만 기소하는 겁니다. 게다가 산업안전보건법으로 하려면 수백 개의 조문 중 해당하는 것을 검사가 정확하게 찾아야 해요. 잘못 찾으면 무죄가 나오잖아요. 검사 입장에서는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형법에 있는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적용해서 중간관리자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어서 사건을 마무리합니다.
검사의 기소독점주의라는 형사법의 원칙이 있으니까요, 검사가 기소하지 않으면 판사가 직권으로 처벌을 못합니다. 판사가 기록을 보면서 기업법인이 유죄라고 심증을 가져도 판사가 확대해서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검사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전혀 적용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습니다. 저는 검사를 만날 일이 있으면 이야기합니다. 힘드시겠지만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하시라고, 압력이 들어와도 굴하지 마시고 조문을 꼭 찾아서 기소해 달라고요. 현재로서는 검사가 위험부담을 안고서 기소할 이유가 없거든요. 기업을 처벌하는 것은 그다지 메리트가 없습니다.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승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최근에 사망사고가 많고 언론들 관심이 높고 중앙정부의 압박도 있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처벌하는 일이 전보다는 많아졌어요.
저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소문에 의하면’, 자본력 있는 대기업은 ‘전화변론’을 한다고 합니다. 전관 출신, 고위 검사장 출신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해당 지방검찰청 검사장에게 전화를 하는 거죠. 해당 사건 검사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해서 원청 기업을 처벌하려고 하면 ‘원청 빼라, 하청만 넣는다’ 이러면 따를 수밖에 없다는 풍문이 있어요. 검사 개인이 하려고 해도 검찰 안에서, 전관예우라는 법조세계의 구조 때문에 쉽지 않다는 거죠. 돈 많은 기업은 당연히 사건담당 검사, 검사장과 친한 변호사를 선임해서 변론을 맡기는데, 이게 바로 전화변론이라는 것입니다.
전화 한통에 10억, 전화 한통에 5억…기소 대상에서 빠지면 10억을 주는 겁니다. 심지어 기록에도 남지 않습니다. 변호사 수임료를 공식적으로 받지 않고 하는 행위, 돈도 혹시 현금 가방으로 받는게 아닐까 추측만 할 뿐입니다.
기업살인을 처벌하기 위한 현재의 요건
법률가들은 도급, 수급 용어를 씁니다. 민법에 그렇게 되어 있어요. 원하청은 일본식 용어이고요, 도급인을 처벌할 때 한 번 더 복잡해지는 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4단계를 만족한다고 해서 무조건 처벌되는 것이 아니라,…4단계는 기업이 처벌되는 원리이고요, 실정법으로 처벌하려면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첫째, 사업 중 일부만 도급을 주었다는 것이 인정돼야 합니다. 전부를 도급 주었다면 도급인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건설업에서 종합건설회사가 책임을 지는 이유는 아파트를 짓는데 비계, 도장, 전기, 콘크리트 등을 따로 도급을 주잖아요, 이것을 일부 도급으로 보고 처벌하는 겁니다. 전에는 처벌을 하지 않았어요. 비계 공사를 전부 도급준 것이라고 대형 로펌에서 변론하여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난 적도 있습니다. 이 판결 이후에 노동부가 ‘전문건설업에 의한 전부 도급은 처벌한다’고 법조문을 넣어서 이제 처벌할 수 있게 되었죠. 이슈였죠, 무죄판결이 만들어낸.
둘째, 도급인의 사업장 즉 원청기업에서 원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가 같이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혼재작업’ 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이 용어를 싫어하는데요, 혼재작업은 이쪽 노동자와 저쪽 노동자가 물리적으로 같이 하는 작업 같잖아요, 그런데 건설현장, 공장에서 원청기업 관리자는 얼굴보기가 어려워요. 나타나질 않아요. 혼재작업이라고 부르면 이 상황에서 처벌하기가 어려워요. 같이 있지 않으니까. 혼재작업은 일본식 해설서에 나오는 용어거든요. 그래서 저는 공동 작업이라는 표현을 쓰자고 주장하는데 지지를 못 받고 있어요.
세 번째, 아무 장소에서나 일어나는 사고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22개 위험장소가 정해져 있어요. 법률에. 그 장소 밖에서 일어난 사고는, 사람이 죽어도 원청기업이 처벌받지 않아요. 이 장소가 많이 확대돼서 거의 커버되고요, 이번에 나온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서 장소적 제한을 다 풀었어요. ‘모든 장소’로 만들었어요. (법안은 2018년 12월 국회 통과)
대법원판례 세 가지를 말씀드릴게요.
한화건설이 원청이었던 아파트 공사 현장이었어요. 낙하방지망 있잖아요, 사람이나 물건이 떨어질 때 걸리라고 그물을 층층이 넣어요. 그런데 이 낙하방지망을 철거하다가 바람이 불어 충격을 받으면서 하청노동자가 떨어져 사망했어요. 이 노동자가 떨어진 이유가 뭐냐면, 안전대에 고리를 묶고 일을 해야 하는데, 줄이 몸에 달려있어서 엄청 불편해요. 그 줄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기도 하거든요. 이걸 뺐어요, 망을 빨리 철거해야 하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야 하니까. 검사는 원청, 하청 다 기소를 했어요. 그런데 2011년 대법원에서 한화건설에 무죄판결이 나왔어요. 안전줄을 묶는 것은 하청기업 수준에서 하라고 했으면 되는 거다, 원청기업도 안전띠, 안전모 하세요 말했으면 할 수 있는 건 다 한 거다, 원청의 구조적인 문제로 보기 어렵다, 이거죠. 지금도 이 판례를 받아서 안전모, 안전대, 안전띠를 하지 않아 일어나는 사고에대해서는 원청의 책임을 빼고 있습니다. 이건 원청이 책임지기는 어려운 것이다 해서 하청이 관리하는 것으로 거의 정리가 되어있는 상태입니다.
두 번째는 LG디스플레이라는 회사입니다. 파주에 공장이 있는데 휴대폰 화면, TV화면을 만드는데, 안전설비가 잘 되어 있어서 정상적으로 일할 때는 화학물질 노출 등의 사고가 거의 일어나지 않아요. 시설을 개보수하거나 바꿀 때 사고가 나요. 모든 사고는 이 때 나요.
장비를 개보수 하는데 사람이 들어갔어요, 거기에 질소가스가 있었는데, 하청노동자들은 들어가라는 말을 듣고 들어갔어요. 질소가스를 빼지 않고 들어간 겁니다. 두 명이 죽었습니다. 검사가 원청, 하청을 기소했습니다. 의정부지방법원은 하청은 책임이 없고, LG디스플레이만 처벌을 했어요. 하청노동자를 불러서 일을 시켰으면 전적으로 LG디스플레이가 책임을 져라, 작업장에 들어가고 나가는 것에 대해서 하청은 책임이 없다고 판결을 했어요. 이 사건은 대법원에 올라가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이천의 SK하이닉스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났습니다. 여기는 SK하이닉스와 함께 하청도 기소해서 유죄판결을 받았어요. 이 사건도 대법원에 올라가 있습니다.
원청 현장으로 들어가면 하청기업의 재량이 적어지는 것은 맞지만 하청기업의 책임을 아예 빼는 것은 너무 형식적인 것 아닌가 저는 생각하는데요, 질식사고 같은 것은 하청기업 안전관리자가 산소농도도 재고, 위험한지 봐야죠. 어디에 질소가스가 있다, 어디에 아르곤가스가 있다 업체들은 알거든요. 대법원에서 어떤 판결을 내놓을지 봐야겠죠.
세 번째는 2016년 판결입니다. 서울도시가스공단에서 서울을 권역으로 나누어 도시가스 배관수리 업무 하청을 주는데 하청업체는 이를 다시 재하청을 줍니다. 영등포에서 맨홀을 열고 배관수리 노동자 2명이 들어갔는데 한명은 사장, 한명은 직원이었어요. 가스가 새서 한명은 사망하고 한명은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이런 사건은 전에는 전부도급이라고 해서 무죄판결이 났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공동작업, 혼재작업에서 원청 관리자가 반드시 현장에 있을 필요는 없다, 현장에 와서 지켜보라는 뜻이 아니라, 전반적인 관리만 하면 혼재작업이라는 뜻이다, 라고 해서 원청기업이 처벌됩니다. 앞으로는 이 판결 덕분에 건설회사에서 비계, 전기 등 도급을 줄 때 전부도급이라고 해서 원청이 빠져나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의미 있는 판결입니다.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어요. 다단계 도급에서 맨 밑에 있는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검사가 하청, 중간하청, 원청기업을 다 기소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몇 년 전 대법원에서 중간하청이 무죄를 받았어요. 이번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중간하청 처벌안을 넣었는데, 경영계가 반대하면서 빠졌어요. 엄청 로비를 하고 있어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노동부 규제심사, 국무총리실 규제심사, 법제처 규제심사를 거치면서 처음에 비해 많이 완화됐습니다.
기업살인법? 기업과실치사법?
이제 기업살인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번역을 하면 ‘기업과실치사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국에서는 기업중과실, 과실치사 및 살인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꼭 살인을 넣어달라고 주장했다고 해요. 통과시켜야 하니까 제목에 넣고, 내용은 중과실치사죄 라는 겁니다. 기업 등 단체의 중과실치사죄입니다.
이걸 국내 운동 진영에서는 기업살인법으로 밀고 나가고 있는데 법조인들이 볼 때는 난감한 법입니다. 우리나라는 기업을 처벌하려면 행위자인 관리자가 처벌되어야 하고, 지휘감독한 기업이 잘못이 있으면 기업을 처벌합니다. 영국의 과실치사법을 보면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사고가 일어나면 일단 기업을 처벌합니다. 기업 처벌을 하고, 임원이 잘못했으면 공범으로 처벌하는 구조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도 영국은 일단 기업을 처벌합니다. 영미법이라고 해서 영국, 미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이 그렇습니다.
한국은 영국법이 아니라 독일, 프랑스법을 일본을 통해 수입해서 만들었어요. 독일은 기업을 처벌하는 게 아니라 잘못한 개인을 잡고, 법인을 처벌해요. 우리나라 법체계에서는 환경법, 식품위생법, 의료법도 이런 방식입니다. 산업안전보건 영역에서만 영국처럼 뒤집어서 해달라고 하면 국회의원 절반 가까이가 법조인인데, 동의를 해 줄 수가 없는 거죠.
영국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하면 기업과실치사법이 있기 전에도 벌금이 100억 이상 나왔습니다. 사람이 여럿 죽으면 회사가 망할 정도로 벌금을 매깁니다. 그렇다면 영국의 기업살인법이 무슨 기능을 하느냐 논쟁이 있는데, 기업살인법은 세게 처벌하려고 만든 법이 아닙니다. 산업안전법이 행정규제법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있어서, 사장들에게 그게 아니라 너는 형사범죄자라는 각인을 주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겁니다. 우리는 대표이사를 처벌하고 기업을 세게 처벌하기 위해서 기업살인법 제정운동을 10년 동안 했지만, 영국은 ‘행정규제법 위반이 아니라 형사법 위반이다’ 라는 각인이 필요해서 법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우리는 노동자가 일하다 죽으면 산업안전보건법 66조의 2를 적용해서 처벌하는데, 하청노동자는 해당이 안 됩니다. 하청노동자가 죽으면 원청기업이 처벌되는 것은 산업안전보건법의 다른 의무를 위반했기 때문이지 사망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법원에 양형위원회가 있습니다. 전직대법관, 판사, 판사 출신 변호사, 판사 출신 교수. 이 사람들이 모든 처벌규정의 양형기준표를 만듭니다. 판사들이 형을 선고할 때 이 양형기준표를 참고하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사람이 죽으면 과실 범죄로 봅니다. 교통사고처럼 실수로 죽인 것으라 보기 때문에 높은 형량이 나오지 않습니다. 양형기준이 바뀌지 않는 이상, 3억 이하의 벌금이라고 되어 있으면 30만원, 300만원 벌금을 물릴 수도 있어요. 경영계는 도급인(원청)에게 사망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현재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국회로비를 하죠.
건설산업 연구자에게 들으니 ‘건설업에서 직접 시공 비율을 높이면 사람이 덜 죽을 것’이라 하더라구요. 대규모 건설현장에서 원청기업 안전관리자는 한두 명이고, 이들은 하루 한 번도 현장을 다 돌아보지 못합니다. 직접 시공 비율을 올리면 원청 관리자가 일을 하겠죠. 그런데 직접시공 비율은 노동부 소관이 아니라 국토부가 규정을 바꿔야 합니다. 건설을 다 쪼개서 도급을 주니까 컨트롤타워인 원청에서는 컨트롤이 안 됩니다. 무전기나 전화 하나로는 안 돼요. 정말 사고를 줄이고 싶으면 원청에서 현장 감독자를 늘려야 해요. 이번 여름 폭염의 건설현장에서 휴게시설 가는데 걸어서 20분 걸려요. 휴식시간이 10분인데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공공 공사는 입찰자격을 심사할 때 산재사고를 점수로 매깁니다. 그런데 원청회사의 사망사고만 세고, 하청에서는 아무리 많이 죽어도 대기업 건설회사는 사망자가 없는 게 돼요. 전에는 이것도 반영하도록 했지만 10년 동안 규제완화 되면서 없어진 거예요. 국토부가 이걸 규제완화 전으로 회복시키면 좋을텐데, 꿈도 안 꾸고 있어요. 자유로운 도급을 가능하게 하는 이런 법을 바꾸지 않으면 노동부 쪽에서 할 수 있는 게 너무 적어요. 그래서 우리가 국토부, 산업자원부 같은 데를 압박할 수 있는 무언가를 잡아내야 하는데, ‘노동, 산재만 하다 보니까 기업의 현황을 너무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업의 트랜드를 잘 모르니까 안전을 위해서 투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업의 아킬레스건이 무언지 잡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영 상층부가 고민하는 것, 숨기고 싶어 하는 것, 이걸 잡아내지 못하니까 안 먹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기업을 효과적으로 압박하기 위해서는 그 업종의 특성을 보고, 문제를 찾고, 압박할 수 있는 연구역량이 노동계에 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도 노동법을 하고 연구의 상대가 기업이지만 기업을 잘 몰라요. 사고가 나는 저 기업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생리로 돌아가는지 들여다보질 못하거든요. 기업과 맞설 때 압박할 수 있으려면 우리도 경영을 좀 알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토론 주요 내용>
이상윤/노동건강연대 대표 : 기업살인법 운동의 핵심은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기업의 최고 책임자가 산재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이 문제가 해결된다, 형사 처벌이든 행정 형벌이든 교육이든, 한국적 맥락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가? 법인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거나, 대표이사나 최고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회사에서 누가 죽었으면 내 책임이구나’ 하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까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영국 기업살인법이 과실치사법이라고 하는데, 한국의 경우 산재사망은 과실이 아니라 고의다. 모두 다 그런 건 아니더라도 같은 장소, 같은 회사에서 몇 년 동안 비슷한 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나면 이건 고의로 봐야 한다. 이게 과실이든 아니든 고의에 준하는 처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하청, 중간하청 만이 아니라 원청기업에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세 가지가 저희의 문제인식입니다. 별도의 특별법이나 형법상 기업을 처벌하는 것이 어려우니까 산업안전보건법을 고쳐서 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과징금이나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경제적 타격을 주는 방안은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전형배: 큰 기업이 두려워하는 것은 대표가 노동부, 법원, 검찰에 나와서 조사 받고 재판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형 로펌을 사서 대응하죠, 기업 책임을 물으려면 노동만으로는 어려워요,
국민적 관심과 지지를 받으려면 노동을 넘어서, 국민연금에서 대기업 주식을 많이 갖고 있는데, 스튜어드십 코드, 이런 걸 활용하는 활동을 배워야 하겠죠. 부당노동행위로 노동조합을 탄압하거나, 노동자가 사망하는 기업은 주총에서 대표이사의 소명을 듣도록 하자고 주장했더니, 상법 연구자들이 ‘연금의 중립성에 위배된다’고 해요. 상법 교수들이 연기금 위원회에 많이 들어가 있는데 마인드가, 공공성 개념이 없어요. 주식 오르내리는 거, 기업지배만 생각해요. 국민연금에 벌을 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주주총회에서 주주가 내년에도 사고 나면 어떻게 할 거냐, 대표이사 옷 벗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정치적인 액션도 해야 한다는 거죠. 참고할 수 있는 사례가 있는데,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보면 환경보건법이 개정되어서 특정 환경성 질환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이 들어왔어요. 국민 여론이 올라오니까 이게 가능해진 거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