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연구동향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효과가 있었나
이주연 / 노동건강연대 회원
소개 연구: Kosny A, Tonima S, Ferron EM, Mustard C, Robson LS, Gignac MA, Chambers A, Hajee Y. Implementing violence prevention legislation in hospitals: final report. Project report. Toronto: Institute for Work &Health; 2018.
2018년의 막바지 국회,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정의와 예방, 피해근로자 보호 조치 등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 (이하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2013년 9월 한정애 의원이 최초 발의한 후 임기만료로 폐기된 지 5년이 지나서다. 2018년 9월 12일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후에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한차례 진통을 겪었으나 이번에는 다행히도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일터에서 괴롭힘을 당한 많은 노동자들의 고통이 세상에 알려지고 나서야 이런 법률이 통과될 수 있었다. 특히 보건의료 현장에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은 많은 이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한림대 성심병원과 대구가톨릭대병원 간호사들이 병원 관계자, 환자와 신부 앞에서 선정적인 춤을 추도록 강요받은 사건이 폭로되었고,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박선욱 간호사의 사망사건을 통해 병원의 고질적인 인력부족과 ‘태움’ 문제가 이슈화되었다. 하지만 고(故) 박선욱 간호사 사망 후 1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서울아산병원은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으며, 재발 방지대책에 대해서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번에 통과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서 사업주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한 조치와 예방 교육을 실시해야하고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할 경우 행위자를 징계하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괴롭힘 가해자를 처벌하는 내용이 없어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최소한의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보건의료 현장에서의 직장 내 괴롭힘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5년 11월 12일, 캐나다 윈저의 한 병원(Hotel-Dieu Grace Hospital)에서 회복실 간호사 로리 뒤퐁 (Lori Dupont)이 같은 병원의 마취과 의사인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하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전형적으로 의사가 “직장 내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간호사에게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고통“을 가한 사건이었다. 살해 당하기 전 로리 뒤퐁은 병원 측에 계속해서 구조를 요청했고 병원 측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살인까지 이르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기회를 84차례나 놓쳤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보건의료 현장이 폭력과 괴롭힘 예방, 피해자 보호에 구조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는 폭력과 괴롭힘을 ‘업무상 위해 (occupational hazard)’로 규정하는 산업안전보건법 (Occupational Health and Safety Act)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2010년 6월 15일부터 발효된 개정안 (Bill 168)은 사업주의 폭력예방정책 수립과 매년 검토, 직장 내 폭력과 괴롭힘 감독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과 관리, 직장 내 폭력과 괴롭힘 발생 시 신고와 대처, 직장 내 폭력과 괴롭힘에 관한 실태조사, 직장 내 폭력과 괴롭힘 예방을 위한 교육 등을 포함한다. 뒤이어 직장 내 폭력과 괴롭힘의 범위에 성폭력과 성희롱까지 포함하도록 확대한 개정안 (Bill 132)이 2016년 9월부터 발효되었다.
하지만 온타리오 주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로리 사망 직후 노동부는 이 사건을 수사할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온타리오간호사노동조합(Ontario Nurse Association)과 로리의 동료, 가족들의 끈질긴 요구 끝에 비로소 노동부는 수사에 착수했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위한 권고를 발표하게 된 것이다. 온타리오간호사노조를 주축으로,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겪는 폭력이 마치 업무의 일부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조직 문화에 균열을 내고, 고용주인 병원과 이사회가 보건의료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책무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법의 적극적인 집행을 촉구하는 운동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 결과, 2013년 2월과 3월에는 온타리오 노동부가 221개 보건의료기관을 285차례 불시 점검하고 산업안전보건법에 근거하여 307건의 시정명령을 내리는가 하면, 2015년 10월 1일에는 온타리오병원협회에서 온타리오 주 전체의 급성기 영역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폭력예방 간담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2017년 온타리오 주 노동부는 일터에서의 폭력을 보건의료 영역의 최우선 과제로 지정했다.
그렇다면 개정된 온타리오 주 산업안전보건법이 보건의료 현장을 안전한 일터로 변화시켰을까? 한국보다 앞서 직장 내 괴롭힘을 일터의 안전보건 문제로 이슈화시킨 캐나다 사례는 우리사회에 중요한 단서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 일과건강연구소 (Institute for Work & Health)가 2018년 2월에 발간한 보고서는 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연구팀은 정책결정자와 온타리오 주에 위치한 대표적인 5개 급성기 병원을 선정하여 병원 경영자, 보건의료 노동자, 비–보건의료 노동자를 대상으로 개별 인터뷰와 초점집단면접을 실시했다. 개별 병원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Bill 168)에서 정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취한 조치들을 탐색하고 폭력 예방정책 실행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개선 사항을 분석하고자 했다. 인터뷰 참여자 대부분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보건의료 현장에서 폭력이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문화적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주목할 만한 제한점들이 도출되었다.
캐나다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은 정규 교육과정에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있지 않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 따라 개별 병원에서 실시하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이 유일한 교육 기회였다. 조사에 포함된 네 개 병원 모두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대응에 대한 직원 교육을 실시했고, 응급실 같은 고위험 분과 의료진에게는 필수 교육에 더해 심화 교육이 제공되었다. 하지만 예방교육 자체의 부담이 커지면서 병원들이 온라인 교육에만 의존하고 되었고, 직원들은 업무시간 외에 자율적으로 교육을 이수하도록 방치되고 있었다. 교육 내용에서도 수평적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괴롭힘이 과소 대표되는 등 포괄적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교육 대상 또한 충분히 포괄적이지 않았는데, 특히 병원 내 봉사자들이 충분한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개별 병원에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를 실시하고는 있지만 표준화된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병원마다 조사 주기와 형식이 상이했다. 실태조사의 목적과 과정에 일관성이 부족하다보니 직원들 사이에 혼란이 초래되기도 했다. 안전보건공단(Public Services Health and Safety Association)에서 개발한 실태조사 툴킷이 유용한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었지만, 개별 병원의 개별 부서에서 이를 변형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실태조사가 사전적 조치로 실시되기 보다는 사건 발생 후에 사후적으로 실시되는데 그쳤다.
병원은 직장 내 괴롭힘 예방을 위해 숙련된 응급팀(Code White team)을 상시 대기시키고, 개별 노동자들에게 경보기를 지급하여 폭력 발생 시 도움을 요청하도록 했다. 병원 노동자들의 경보기 도입에 대한 만족도는 높았지만, 경보기 자체의 기술적 문제는 차치하고 (예컨대, 주차장에서 작동하지 않음) 경보 발생 시 대응 과정, 예컨대 경보 발생 시 대응의 책임자가 누구이고 개별 노동자들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여전히 모호하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소규모 지역사회 병원 한 곳을 제외하고 네 곳의 병원 모두 보안요원을 고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안서비스는 병원 예산이 삭감되면 가장 먼저 축소하는 영역인 만큼, 주 단위에서 병원 보안 프로그램의 역할과 구조에 대한 표준화된 기준이 필요한데 이것이 미흡했다. 주목할 만한 차이는 보안 요원을 직접 고용한 병원의 노동자들이 외부 업체에 도급을 준 병원의 노동자들보다 보안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는 점이다. 병원에 직접 고용된 보안요원은 급여가 높을 뿐 아니라 이직률이 낮기 때문에 병원이 전문화된 폭력 예방교육에 투자할 유인 또한 높게 나타났다.
폭력과 괴롭힘에 대한 적극적인 신고는 예방 정책과 교육의 중요한 동인이다. 하지만 언어폭력, 괴롭힘, 상해 없는 폭력 등의 특정 범주는 신고율이 특히 낮다. 길고 복잡한 신고 절차, 신고 접수 후 후속 조치와 투명성 부족은 신고를 방해하는 중요한 장애물로 나타났다. 신고를 해도 구체적인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회의감이 신고를 꺼리게 만들고 있었다. 폭력과 괴롭힘 사건 발생 후 후속 조치는 전적으로 감독관의 의지에 달려있었고, 신고에 따른 낙인에 대한 공포가 여전히 존재했다.
마지막으로, ‘공격적인 환자 표식 제도’를 둘러싼 논쟁이 있다. 보건의료 현장은 직장 내 괴롭힘이 동료 의료진에 의해서뿐 아니라 환자에 의해서도 일어난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따라서 병원에서는 폭력을 행사한 이력이 있거나 공격적 성향을 지닌 환자를 표식하는 것이 의료진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환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하는 병원의 의무와 충돌할 뿐 아니라 환자를 낙인찍는 비윤리적인 행위이다. 병원의 노동자와 경영진 모두 이러한 법률의 충돌과 모호함 때문에 공격적인 환자 표식 제도에 대해 불확실함을 느끼고 있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경험은 우리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다. 예방교육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실태조사가 표준화되지 않고 사후적으로 실행되는 데 그친다면,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현장과 함께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