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소식
긱 이코노미와 노동자 권리, 끝나지 않는 투쟁
박진욱 / 계명대학교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는 새로운 고용 형태가 출현하면서 긱 이코노미 종사자들의 노동권 관련 이슈가 가끔 뉴스가 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긱 이코노미와 노동자 권리에 관한 영국의 몇 가지 사례들을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플랫폼 기반 노동, 혁신적 일자리 창출인가 비정규직 양산인가
긱 이코노미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되지만, 좁은 의미로는 온라인 노동시장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임시적 일자리 또는 초단기 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 노동시장에서는 일을 하는 시간과 공간이 정해져 있지만, 긱 이코노미는 그러한 제한 없이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서비스가 제공된다. 차량 운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버(Uber)’의 운전자, 자전거로 음식을 배달하는 ‘딜리버루(Deliveroo)’의 라이더, 아마존의 총알배송서비스인 ‘프라임 나우’의 최종 배송을 담당하는 아마존 플렉스, 단기 아르바이트 중개 업체인 ‘태스크래빗(TaskRabbit)’ 같은 회사를 통해 부업을 하는 사람들, 퀵서비스 업체 ‘포스트메이트(Postmate)’의 배달부 등이 대표적인 긱 이코노미 노동자들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기반으로 음식 배달, 대리기사, 반려 동물을 돌봐주는 펫도우미, 가사도우미 등이 긱 이코노미 노동자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긱 이코노미를 독립적인 단기계약 작업 또는 프리랜서 노동을 특징으로 하는 자유롭고 유연한 새로운 형태의 노동시장으로 바라볼 것인가, 예전부터 존재해 왔던 호출근로나 특수고용 노동자가 단지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동한 새로운 착취 형태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엇갈린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 긱 이코노미 작업자의 대다수가 노동자로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저임금의 불안정한 고용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영국에서는 이들의 고용 상 지위를 노동자로 볼 것인지에 대한 공방이 진행 중이고, 더불어 긱 이코노미 작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예상할 수 있듯 긱 이코노미 종사들의 투쟁이 있었다.
긱 이코노미 종사자들의 파업 투쟁
2016년 8월, 딜리버루의 라이더들은 불공정한 계약 조건 변경에 맞서 약 일주일간 파업을 조직하여 승리를 이끌어냈다. 딜리버루의 첫 파업이었다. 그 후 배달, 청소 등 플랫폼 기반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의 크고 작은 투쟁들이 이어졌다. 최근인 2018년 10월 4일, 영국의 7개 도시에서 외식업 노동자들과 긱 이코노미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다. 맥스트라이크(McStrike)라고 이름 붙여진 이 파업에는 맥도날드, TGI 프라이데이, 웨더스푼에서 일하는 외식업 노동자들, 우버 이츠(UberEats)와 딜리버루의 배달 노동자들이 참여했다. 외식업 노동자들과 외식업체의 음식을 배달하는 이들의 첫 번째 연대 파업이었다. 이들의 요구는 임금 인상, 노동권 확보, 노동조합 인정 등이었다. 이 파업은 남미와 유럽 등에서 진행된 글로벌 패스트푸드 노동자 파업과 연대해 진행되었다. 그리고 10월 8일에는 우버 운전자들이 24시간 파업에 들어갔다. 이들은 요금 인상, 수수료 인하, 사실상 해고와 다름없는 불공정한 앱 비활성화 중단 등을 요구했고, 파업기간 동안 우버앱을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파업에 힘을 보태달라고 대중들에게 호소했다.
엇갈린 판결: 우버 운전자는 노동자, 딜리버루 라이더는 자영업자?
긱 이코노미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과 더불어 소송을 통한 권리 확보 노력도 활발해지고 있다. 2016년 우버 운전자 두 명은 생활 임금, 휴가, 휴식과 병가에 대한 운전자 권리를 보장하라는 소송을 우버 측에 제기했다. 법원은 운전자의 손을 들어 주었고, 우버는 항소했다. 그러나 2018년 12월, 영국 항소 법원은 고등법원과 마찬가지로 우버 운전자를 자영업자가 아닌 피고용인으로 인정하며 고용 상 지위를 둘러싼 우버와 우버 운전자 간의 법정 싸움에서 운전자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 결정을 통해 우버 운전자들은 최저 임금과 유급 휴가 등의 권리를 확보하게 되었다. 물론 판결 직후 우버는 대법원에 항소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항소 법원의 결정이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
한편 2017년 영국의 중앙 중재 위원회는 딜리버루의 라이더들이 노동자가 아닌 독립적인 계약자이므로 단체교섭권을 가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서비스 제공에 강제적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노동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주된 이유였다. 이에 노동조합은 단체교섭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유럽 인권 조약 위반이라고 고등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2018년 12월, 영국 고등법원은 딜리버루 라이더들은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단체교섭권이 없다고 판결했다. 노동조합은 법원의 결정에 항소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따라서 이 역시 최종 확정 판결은 아니다.
테일러 리뷰와 영국 정부의 노동 개혁
긱 이코노미 종사자들이 독립적인 계약자이니 자영업자로 봐야 한다는 입장과 플랫폼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로 인정하고 완전한 노동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 외에도, 종속적인 계약자로 간주하고 자영업자와는 구분해서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도 존재한다. 영국 정부는 2017년 ‘테일러 리뷰’라는 현대 경제의 노동 행태에 대한 정부 보고서를 발표했다. 왕립학회장이었던 매튜 테일러가 주도해서 작성한 보고서는 현대적인 비즈니스 모델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는 고용 관행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는데 초점을 두었고, 일련의 개선 권고안을 제시했다. 테일러 리뷰는 특히 파트 타임과 유연 노동 같은 긱 이코노미에 집중했다. 보고서는 영국 경제에서 ‘모든 일은 공정하고 괜찮은 것(fair and decent)’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딜리버루나 우버 같은 플랫폼 기반 사업체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종속적인 계약관계에 있으므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용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영국 정부는 테일러 리뷰의 권고를 수용하여, 2018년 12월 긱 이코노미 노동자들에 초점을 맞춘 개혁안을 발표했다. 법안의 핵심은 근무 첫날 종사자에게 임금과 병가 등의 권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것, 종사자가 예상 근무 시간을 요청할 권리 등이다. 법안 발표 후 긍정적 반응도 있지만, 노동조합의 입장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단체 교섭을 할 권리를 얻지 못하는 한, 결국 긱 이코노미 종사자들은 소모품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영국에서 유럽으로, 현재 진행형
2016년 영국에서 시작된 긱 이코노미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후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영국의 경우 노동자들의 잇따른 투쟁과 더불어 노동권 확보를 위한 법정 투쟁이 진행 중이고, 정부는 미온적이나마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비전통적인 노동 형태의 출현을 둘러싼 혼란은, 완전한 노동권을 인정받으려는 노동자들과 이를 부정하는 플랫폼 기업들 간의 싸움으로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