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가부도의 날: 누구의 위기였고 누구의 기회였나
김정우 /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현대사를 다룬 영화들에 대한 감상은 조금 특별해지기 마련이다. 영화에 대한 감상이 그 작품 자체를 넘어서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그 당시의 기억, 그리고 현시대에서 그 사건이 지니고 있는 의미와 결합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국가부도의 날>은 개인적으로 남다른 현대사 영화였다. <택시운전사>의 배경인 1980년의 광주나 <1987>의 배경인 1987년 6월은 교과서로만 접했을 뿐, 개인적인 기억이 전혀 없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 경험했던 IMF에 대한 기억은 단편적이나마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한국어로 풀어주어도 어려운 IMF라는 국제기구는 정확한 의미도 알지 못한 채 수없이 듣고 말하면서 초등학교 때 이미 익숙해졌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당시 뉴스들을 보며 캉드쉬라는 이름이 어렴풋이 떠오르고, 아나바다 운동이나 금 모으기 운동도 기억이 났다. 영화를 보면서 ‘저 때 관광버스는 저렇지 않았는데’, 혹은 ‘저 때는 ‘개’라는 접두사를 쓰지 않았던 것 같은데’라며 굳이 사실과 다른 점을 집어낸 것을 보면 나도 그 시기를 지나왔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온전히 그 시기를 살아냈던 세대와는 그 감상이 다른 것 같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조금 생겼다. 사업이 어려워지고 깊은 절망에 빠져 고민하는 초등학생 아이들의 아버지 갑수(허준호 배우)를 보면서 아버지 생각이 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우리 집은 IMF가 오기 1년도 더 전에 경제적 어려움에 빠졌으니 IMF 충격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아버지가 그 시절 참 고생하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우연히 알게 되었고 무심히 흘려보낸, 아버지가 20여년 전에 결핵을 앓았다는 사실이 영화를 보고는 다시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단편적 기억과 IMF에 대한 추상적 지식이 영화 속 구체적인 사건들을 통해 연결되는 듯한 느낌은 영화가 주는 즐거움이었다. 이를테면,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이름의 캉드쉬라는 사람이 한국에 왔다는 뉴스를 본 기억과 IMF를 계기로 한국이 본격적인 신자유주의적 체제로 변모했다는 지식은 그동안 별개의 것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것이 영화를 통해 나의 기억들이 설명되는 듯했다.
이러한 즐거움과 호기심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 IMF에 대해 좀 더 찾아보게 만든 것은 이 영화의 큰 미덕이다. 영화 덕분에 많은 사람들과 매체들이 IMF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정보들을 쏟아낸 것도 도움이 되었다. IMF 구제금융에 이르게 한 당시 한국의 정치경제 구조와 맥락은 초등학생이 이해하기에는 버거운 내용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이후로는 이 문제에 대해 천천히 살펴본 적이 없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건인데도 말이다. 이런 면에서 이 시기를 잘 알지 못했지만, 오늘날 이 때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내 또래 세대들이 이 영화를 더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고나면 ‘위기는 곧 기회’라는 영화 속 대사를 곱씹게 된다. 보통은 ‘전화위복’과 같은 맥락으로 사용하지만 ‘(누군가의) 위기는 곧 (다른 누군가의) 기회’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한국의 위기는 미국의 기회가 될 수 있고, 서민들의 위기가 곧 기득권층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 위기와 기회를 말할 때 그것이 ‘누구의’ 위기이고 ‘누구의’ 기회인지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고하고, 항상 깨어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영화 속 한시현(김혜수)의 말은 오늘날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