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의료영리화가 지워버린 간호사의 목소리
– 『코드 그린』 북토크 참관기
한지훈 / 노동건강연대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국제녹지병원’ 설립을 허가함에 따라 노동·시민·정당 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영리병원의 물꼬가 트이면서 의료공공성이 무너질 것에 대한 깊은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018년 12월 6일(목) 저녁 7시,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코드 그린(데이나 베스 와인버그 지음, 티티 펴냄)』 북 토크가 진행되었다. 북토크에서 오고간 대화는 보건의료의 영리화가 보건의료인과 환자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중요한 단서들을 주었다.
문서상의 성공, 현실상의 실패
‘코드 그린’은 긴급하게 탈출해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1990년대 미국, 의료분야의 시장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효율성을 최우선시 하는 병원들의 인수합병과 구조조정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는 코드 그린 상황이 되었다. 이 책은 오랫동안 좋은 간호의 모범이었던 미국 보스턴의 베스이스라엘 병원과 하버드대 수련병원인 뉴잉글랜드 디코니스 병원의 합병 사례를 통해 시장적 의료개혁이 간호사의 일, 그리고 간호의 질에 어떤 영향을 초래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합병된 베스이스라엘 디코니스 메디컬센터(이하 BIDMC)는 환자 개개인에게 맞춤화된 전인적 간호를 벗어나 비용절감과 수익증대에 초점을 둔 방식, 업무를 세분화하고 간호인력의 역량 수준에 따라 이를 표준화해서 분장시키는 형태로 변화했다. 이를 통해 간호사들에게는 ‘환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사라졌다. 전인적인 일차간호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간호사들의 역량이 훼손되고 소진되며 환자안전도 위협받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간호사들이 이직을 택하거나 파트타임으로 전환하고, 아예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나타났다.
BIDMC 간호사들이 겪은 문제는 미국 특정 병원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간호사들에게만 국한된 문제일까? 답변은 한국사회 병원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의 목소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나쁜 간호사가 되고 싶지 않다
토론자로 참여한 최원영 간호사(서울대병원 응급중환자실,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한국의 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거대한 나무의 가지를 다 처내고 기둥만 남은 것 같은 상황이에요. 입퇴원 수속이나 기본 처치에만 집중해야 하고 환자가 좋아지기 위한 다양한 간호는 할 수가 없어요. 베스이스라엘 병원의 이야기는 1990년대 미국 상황이지만 지금의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병원 합병만 빼고는 같다고 보아야 합니다.”
“병상회전율에 대해 끊임없이 신경 써요. 환자들은 ‘아직 퇴원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왜 자꾸 나가라고 하지?’ 생각하죠. 하지만 병원 입장에서 보면 각종 진단검사와 수술 과정에서는 수익이 크게 나지만 그 이후 회복 과정은 병원에 별로 도움이 안 돼요. 그래서 그 시간을 줄이고 있죠.”
“표준이나 기준을 낮추고 있어요. 예를 들면 예전에는 수술하면 가스 아웃이 된 후 식사하도록 했는데 이제는 가스가 안 나와도 식사해도 괜찮아 하는 식으로 바뀌고 있어요. 중환자실 침대 시트 교체도 마찬가지죠. 원래 매일 갈아주었는데 이제는 더러우면 교체하는 식이구요. 약간이기는 하지만 대변이 묻었는데 그런 시트에 환자를 4일이나 두어야 하는 상황도 있었어요. MRI가 고장나도 그렇게 했을까요? 아니라는 거죠”
보건의료 분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나의 경험도 떠올랐다. 라섹수술을 하기 위해 안과를 방문했는데, 수술 자체는 양쪽 눈을 합쳐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대기 풍경은 마치 제조업공장의 컨베이어벨트와 같았다. 수술을 받고 한 동안 장님이 되어 누어있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강남에 7층짜리 건물전체를 사용하는 안과를 운영하려면 수익을 얼마나 내야 하는 것일까? 수술에 이용된 장비 가격을 검색해보니 약 11억 정도였다. 수술실에 나란히 놓여 있던 라섹수술장비 7대가 쉬지 않고 돌아가는 이유가 있었다. MRI 가격이 10억에서 40억 정도라고 하니, MRI 고장에 대한 조치는 정말 잠시라도 지연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병원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수술실 간호사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을 보면서 일반 시민들은 충격을 받잖아요? 그런데 의사나 간호사들은 터질 일이 터졌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수술실에서 의료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에요. 배에서 가위가 나오고 거즈가 나오는 것, 오른쪽 무릎 수술해야 하는데 왼쪽 무릎 수술하는 것, 흔한 일이에요. 이런 일이 없으려면 의사가 외래중단하고 환자를 확인하러 와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하잖아요. 다 마취된 상태에서 허겁지겁 뛰어 올라와서 수술하다 보니 확인도 제대로 못하고,. 간호사들이 수술용품 정리를 하는 중에도 의사들은 수술을 빨리 끝내야 해요. 무슨 공중화장실도 아니고 사람들이 빨리 나오라고 나오라고 하는 상황이 정말로 너무 힘들어요.”
“임상 말단에서 일하는 간호사한테는 이런 상황이 너무 힘들어요. 병원이 아니라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고, 수술실 간호사들은 환자 이름이나 환자 얼굴을 볼 기회가 없는데 일부러도 그렇게 하지 않거든요. 저는 그게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게 굉장히 힘들어요. 그래서 수술할 때 몇 번방 환자 이런 식으로 말해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양심 상 일을 할 수가 없는 아주 심각한 지경이고, 이런 것이 수술실 바깥에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힘들어요”
수술실 간호사로 일을 했던 그녀의 경험은 환자 안전에 대한 고민, 인간으로서 윤리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었다. ‘공중화장실’, ‘공장’이라고 표현된 병원의 모습은 의료영리화 현장에서 간호사가 겪는 아픔을 잘 말해준다. 간호사들은 직업적 소명의식과 전문성, 그리고 병원의 돈벌이 강요 사이에서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림대 성심병원 간호사들의 장기자랑 동영상이나 고 박선욱 간호사의 자살 사건을 통해 병원의 일터 괴롭힘, 태움 문화를 알게 되었다. 왜 순응하고 동료를 괴롭히는지, 개선을 위해 함께 행동하지 못하는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상한 개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분명히 있는 것이었다.
간호사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코드그린』 을 읽다보면, 합병된 BIDMC에서의 조직 갈등은 성급하고 잘못된 인수합병(M&A)의 결과로 치부할 수만은 없었다. 이 갈등에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이 달려 있다. 비용절감과 수익창출을 위해 과감한 구조조정을 실시했을 때, 보이지 않지만 아주 중요한 과정들이 생략됨으로써 의료인력들은 고통 받았고, 환자의 안전은 위협받았다.
간호사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널리 알려지면서 대통령 직속일자리 위원회는 제 9차 회의에서 대책을 발표했다. 2022년까지 간호사를 충원하고 태움 문화 방지를 위한 교육전담간호사 배치, 간호·간병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간호보조 인력을 충원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간호 인력을 충원한다고 해도, 수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보건의료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이상,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더 안전하고 질 높은 서비스가 보장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직접 환자와 대면하는 간호사의 권리가 보장되고 노동환경이 안전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