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불꽃축제 보면
당신들의 억울한 죽음 기억할게요
2월 14일 오전, 대전에서 화재로 3명의 노동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 ‘또’라는 말이 붙었습니다. 8명의 사망 노동자는 모두 다른 사람인데, 각각 다른 세계가 사라졌는데 멋쩍어졌습니다.
1년에 2천여 명이 오로지 일을 하다가 사망하고 있는 현실이 못내 안타깝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고백하는 날에 누군가는 가족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24세의 노동자 두 명과 5살 난 딸의 아버지, 31세의 노동자 한 명의 사망 소식입니다.
아마 ‘한화’ 하면 서울에서 열리는 불꽃 축제 후원 기업을 떠올릴 것입니다. 화약회사인 만큼 폭발 사고의 위험이 늘 존재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작년에 5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2018년 5월 29일, 대전의 한화 공장 51동에서는 화재 발생으로 5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당합니다. 당시 만 23세부터 만 31세에 이르는 청년들이었습니다.
노동부에 따르면 ‘산화성 물질 및 그 혼합물 사용 시 부적절한 작업방법 실시, 작업방법 변경에 대한 위험성 평가, 변경관리 미실시, 안전운전 절차서 누락, 위험 물질 인식 및 교육 부족’을 사고의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별근로감독 결과 51개의 산업안전보건법 법 조문을 위반해 486건을 적발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감독도 했는데, 왜 예방이 안 되었을까요?
한화는 무슨 자신감으로 공장을 가동하게 된 걸까
▲ 2월 14일 폭발사고로 사망한 3명의 한화 노동자가 모셔진 대전 장례식장에 고 김용균 부모님이 방문해 조문하고 있다 | |
ⓒ 노동건강연대 |
올해 2월 14일 사고가 난 후, 장례식장에 모인 유가족들은 무얼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합동 장례식장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작은 장례식장 한 층에 한 명씩 모셨습니다. 작년 사고 이후에 예방조치는 왜 안 된 걸까? 왜 이렇게 짧은 기간에 젊은 노동자들이 8명이나 죽게 된 걸까? 왜일까. 왜일까. 의문이 한가득 들었습니다.
회사 관계자들과 직원들을 만나 자료를 모으고 추리하던 유가족들은 2월 21일 고용노동부를 찾아갔습니다.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듣고 싶었습니다. 특히 출근한 지 한 달 안 된 인턴 노동자도 사망자 명단에 끼어있었습니다. 대기업에 취직하게 되어 너무도 좋아했었다고 알려주는 김형준씨의 어머니. 그러나 노동부에서는 면담을 거절했습니다.
다음날 2월 22일, 정부 과천청사의 방위사업청으로 갔습니다. 한화는 방위산업체입니다. 왜 방위사업청은 이렇게 위험한 회사와 계약을 체결했는지, 작년 사고 이후에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역시 면담은 거절당했습니다.
그리고 서울 한화 본사로 찾아간 유가족들은 왜 또 사람을 죽였냐며 절규했습니다. 당시 한화 본사 앞에 나와 있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는 이유를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장례를 치르게 하겠다 합니다. 작년 5월 사고 이후 어떻게 대처했던 걸까요? 아직 그 사고의 원인도 제대로 모르겠다는 한화는 무슨 자신감으로 공장을 가동하게 된 걸까요?
물음표투성이인 자식들의 사망. 진상규명이라는 말이 이렇게 사무치는 말일까요. 2월 23일, 고 김용균님의 부모님이 대전 장례식장을 찾았습니다.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서 너무 힘들고 괴롭다는 유가족의 울분에 김용균님 부모님도 함께 울었습니다. 그간의 경험을 차분하게 들려주고 싶었지만 차마 차분할 수 없었던 자리였습니다.
준비 없는 죽음 예방하려면 국가와 사회는 무얼 해야 하나
▲ 2월 14일 폭발사고로 사망한 3명의 한화 공장 노동자 유가족들이 서울 본사 항의 방문을 하고 있다 | |
ⓒ 노동건강연대 |
2월 26일, 유가족이 국회 정론관에 섰습니다. 기자회견을 해야 하는데 차마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가족들의 오열은 어떤 말보다 아팠습니다. 그리고 3월 8일, 다시 한화 본사를 찾은 유가족. 진상규명과 사고 예방에 책임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길 원했고, 사고가 난 지 28일 만에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유가족의 장례식장에서 애태우는 모든 시간과 감정, 회사 동료들과 나눴던 일과 회사 생활에 대한 기나긴 이야기들까지 모두 적지는 못했습니다만, 위험 예방을 하지 못한 기업, 고용노동부와 방위사업청에 이르는 관계 기관까지, 진상규명, 예방책임,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의 필요성을 남긴 유가족들의 발걸음을 알리기 위해 글을 남깁니다.
1년에 2천 명이 넘는 사람이 일을 하다가 죽는 이 나라에서, 준비 없이 맞이하는 죽음을 예방하려면 국가와 사회는 무얼 해야 하는 걸까요? 마음 추스를 여력도 없는 유가족들이 책임자를 찾고 진상규명도 약속받고 예방까지 힘겹게 요구해야만 하는 몰염치한 나라에서 고개가 숙여집니다.
3월 13일, 한화 대전공장 앞에서 합동 장례를 치릅니다.
가시는 길 조용히 마음속 국화 한 송이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