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내 한국서도 석면피해자 속출한다”
한일 공동심포지엄 열려 … 사용된 석면의 해체·폐기 필수, 피해자 보상대책 정비

구은회 기자/매일노동뉴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약 1억2천500만명이 작업 도중 석면에 노출돼 있으며, 이중 최소한 9만명이 매년 숨지고 있다. 그러나 ‘살인 분진’, ‘조용한 시한폭탄’으로 일컬어지는 석면에 의한 피해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석면은 사문암이나 각섬석에서 추출한 극히 미세한 섬유형태의 광물질이다. 부식과 마모에 강하고, 단열효과가 탁월해 단열재 등 건축자재에서 배관용 파이프 피복재, 방음재, 방화복, 자동차 브레이크 패드, 램프 심지까지 수천 가지 용도로 사용돼 왔다.

미세한 석면섬유는 먼저 형태로 공기 중에 떠다니다, 인체에 흡입되면 빠져나가지 않고 장기간의 잠복기를 거쳐 암을 유발한다. 석면을 다루는 직업에 20년 이상 종사한 경우 폐암발병률이 일반인의 10배, 석면먼지가 늑막이나 복막을 뚫고 침투해 생기는 중피종 암에 걸리면 대개 1년 내에 사망하게 된다. 또 석면먼지를 오랜 기간 많이 들이마시게 되면 진폐증처럼 폐가 섬유화돼 호흡곤란을 일으켜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석면은 ‘인체에 암을 일으키는 것이 확실한’ 1급 발암물질로 분류돼 있다.

60~70년대 석면을 집중적으로 사용한 서구 및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10~30년의 잠복기를 거친 석면으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 일찍부터 석면을 사용한 유럽과 일본, 미국 등 각국에서는 매년 3천여명이 석면으로 인해 사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90년대 초반 석면 수입량이 최고치에 달했던 것을 감안하면, 향후 20년을 전후해 석면피해자가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문제는 지금 당장 석면 노출을 중지시킨다고 해도, 그 효과는 30년 후에나 기대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지난 18~19일 한국과 일본의 노동조합, 환경단체, 시민단체, 석면피해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2007 석면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공동 심포지움’에 참석한 이들은 “한국 정부는 하루 속히 석면 함유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석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일본, 석면 ‘비상’

일본석면협회에 따르면, 1930년대부터 일본에 수입된 석면은 총 1천만톤에 달한다. 그중 80~90%는 건축자재로 사용됐다. 주요한 석면함유자재의 제춤출하량만 약4천344만톤에 달하며, 여기에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면량은 약 541백만톤으로 집계되고 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목조건축이 발달한 국가이지만, 관동 대지진 피해를 겪은 후 ‘화재에 강한 마을 만들기’에 나선 바 있다. 이에 60년대 고동성장 시기와 맞물려 일본사회에 건설붐이 일기 시작했고, 일본은 불에 잘 타지 않는 석면을 주택이나 빌딩건설현장에 불연재로 대량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건축업 종사자의 비중이 전체 취업자의 10% 이상을 차지한다. 석면이 집중적으로 사용된 60년대 이후 많은 노동자들이 건설현장에서 석면 분진에 노출돼 온 셈이다.

일본의 중소건설현장은 노동자, 사장이자 직원인 노동자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노동자와 사업주 모두 석면 분진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일본 전국건설노동조합총엽합 도쿄연합회가 지난 2000~2002년 2만여명의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폐 상태를 검사한 결과, 13%가 넘는 노동자들이 진폐나 흉막비후 소견을 보였다.

일반적으로 석면 관련 질환의 잠복기가 10~30년 이상(석면폐 5~25년, 폐암 20-40년, 증피종 20-40년, 흉막플라크 10-30년)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사회에서 석면사용으로 인한 사망자는 앞으로도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경우도 건설노동자이 공정에 따라 공사현장을 자주 옮겨 다니기 때문에 회사를 특정하기 어렵고, 그 결과 병이 발생하더라도 어느 현장에서 석면에 노출됐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건설노동자 외에도, 외국에서 수입한 석면을 선박에서 하역하는 작업을 하는 항만노동자, 석면이 사용된 기관차의 수리·유지 노동자, 석면을 함유한 재료를 사용하는 고무공장의 노동자, 함선을 수리하다 석면에 노출된 미군기지 노동자, 석면이 분사된 학교에서 근무한 교사 등 다양한 직종에서 석면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석면 ‘2차 피해’ 보여준 구보타 파동

일본사회에 석면의 위험성을 일깨워 준 결정적인 계기는 2005년 발생한 ‘구보타 파동’이었다. 석면을 다루거나 석면이 분사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석면 사용 현장 인근의 주민들에게까지 2차 피해가 확산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일본의 대형 건설기계 업체인 구보타는 지난 2005년 5월 석면피해를 입은 공장주변 주민들에게 32억엔을 보상하기로 했다. 석면 중에서도 독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청석면을 취급해온 구보타는 1978~2004년에 걸쳐 전·현직 직원과 하청업체 종사자 등 총 79명이 중피종으로 사망하고 공장주변 주민들의 피해 호소가 잇따르자 지난해 석면 사용을 중단하고, 추가보상을 결정한 바 있다.

구보타 파동 이후 일본의 노동조합과 환경단체 등은 석면 피해를 최소화하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기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벌여오고 있다. 후루야 스기오 일본석면대책전국연락회의 사무국장은 “구보타 파동 이후 일본정부는 석면으로 인한 향후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관계법령을 개정하고 구제신법을 제정하는 등 종합대책을 시행 중이며, 시민단체가 이를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있다”며 “한국정부도 더 늦기 전에 제도보완에 나서야 한다”고 충고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석면으로 인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해왔다. 지난 1월 지하철 방배역 등 17개 역사 승강장 천장에서 석면이 검출돼 논란이 됐고, 지난해에는 노후된 학교 건출물에서 석면가루가 날려 문제가 됐다. 최근 5년간 석면으로 인한 직업병수는 총 43건으로 폐암 28명, 악성중피종 11명, 기타(석면폐 등) 4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이에 한국정부 역시 오는 2009년부터 모든 석면제품 사용 금지와 석면 해체·제거업체 등록제 도입을 위한 법개정을 추진하는 등 단계적으로 대안을 마련하고 있으나, 일찌감치 대응책 마련에 나선 선진국에 비해 초보적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최상준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최상준 책임연구원은 “현재 건축물에 분포돼 있는 석면의 안전한 관리가 필요하며 △과거 석면노출자에 대한 석면질환 조기 발견 및 치료 △안전한 석면 해체 및 폐기 △직업적·비직업적 석면 노출로 인한 질환자의 국가보상체계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7년05월21일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