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보다 법정서 풀 산재 문제 많았다”
<인터뷰> 무료 법률상담 하는 산업의학의 박영만 씨

김미영 기자/매일노동뉴스

“사실 의학보다 ‘의료’에 관심이 있어서 의사가 됐죠. 정작 현실은 병원보다 법정에서 풀어야할 문제가 더 많더라고요.”

‘산업의학 전문의’ 박영만 씨는 올 2월부터 ‘산업재해 전문변호사’라는 명함이 하나 더 생겼다. 박영만 전 녹생병원 산업의학과장의 변신은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리 충격적인 사건은 아니다. 의대시절 ‘사회운동’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서클 ‘의료연구회’에서 활동하면서 농민건강과 산업재해 같은 약자의 건강권에 관심이 많았다. 제대를 한 후 자연스럽게 산업의학을 선택했고, 성모병원 진폐병동에서 전공의 과정을 거쳤다.

“감기 같은 호흡기질환이 치명적인 진폐 환자에게 겨울나기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는 것과 같아요. 일단 올 겨울만 넘기면 다음해 겨울까지는 살 수 있다고 해요. 레지던트 시절 겨울에 환자를 보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가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울산의 석유화학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한 노동자의 진료를 맡으면서부터다. 서울과 울산을 오가며 조사한 결과, 백혈병의 원인은 벤젠이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법정 노출기준치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업무관련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벤젠은 노출만으로 암이 생길 수 있는 발암물질입니다. 하지만 법에 나온 노출기준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요. 당시 우리나라 벤젠 노출기준이 10ppm, 미국이 1ppm이었는데 쉽게 설명하자면, 벤젠을 다루는 노동자 중 1%는 포기하고 나머지 99%를 보호하겠다는 말과 다름없죠.”

그의 노력으로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는 법정에서 산재로 승인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부인을 설득해 서울 신림동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지난 2월 대학서클 ‘의료연구회’ 이름을 딴 메디컬법률사무소 ‘의연’을 개업했다.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적자다. 변호사가 된 그에게 의사친구들은 “너는 환자 편이냐, 의사 편이냐”부터 물었다. 산업의학 전문의 출신 변호사 박영만 씨가 맡고 싶은 사건은 어떤 것일까?

“얼마 전 법정에서 간질환 환자의 ‘과로’를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한 첫 판례가 나왔어요. 그 사건을 맡은 변호사가 지난 2004년 근로복지공단이 모 대학병원에 용역 의뢰한 ‘간질환과 과로의 인과관계 보고서’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는데 한 발 늦어서 참 아쉽더라고요.”

과로와 간질환이 관련이 없다고 결론짓고 있는 이 보고서는 일본과 한국의 직장사회에서만 통용되는 과로를 연구하면서도 참고한 문헌 50개 중 3개만 한국사례였다. 3개 사례마저도 2개는 1950년대 주한미군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나머지 1개도 과로가 아닌 ‘운동과 간질환의 인과관계’를 연구한 논문이었다. 산재사건이나 의료사고, 보험사건 등은 특히 의학에 해박한 이해가 필요한 분야이다.

“변호사는 당연히 의뢰인 편이죠”라고 말하는 박영만 씨. 다음달부터(1, 3주 월요일) 녹색병원 진료실이 아닌 무료법률상담소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다.

2007년05월28일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