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 대형병원, 산재환자 강제지정에 “앙금 남아”

뉴시스 | 기사입력 2007-05-31 08:24

【서울=메디컬투데이/뉴시스】

정부가 내년 7월부터 산재환자도 서울대병원 등 대형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종합전문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시행키로 하자, 해당 병원들은 “일단 수긍은 하되 앙금은 남았다”는 반응으로 이에 따른 병원계의 후폭풍이 예고된다.

노동부는 지난 29일 종합전문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과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 징수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통과, 내년 4월부터 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동안 의료기관이 산재요양기관 지정을 신청하면 근로복지공단이 이를 지정했던 ‘신청 지정제’에서, 종합전문요양기관은 무조건 산재환자 진료를 수행해야 한다.

◇빅5 병원, “왜 대학병원만 적용?”

‘종합전문요양기관 당연지정제’가 시행되면 서울대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가톨릭강남성모병원, 서울중앙병원 등 소위 빅5 대형병원도 국민건강보험법상 종합전문요양기관이 법률규정에 의거 당연히 산재보험요양기관으로 지정된다.

다만 이들 종합전문병원을 제외한 종합병원, 병원 및 의원급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현행과 같은 ‘신청 지정제’가 유지된다.

이같이 이원화된 산재환자 요양기관 지정 방침에 대해, 종합전문병원들은 한결같이 “왜 우리만 강제로 지정돼야 하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규모가 크고 시설과 진료의 질이 좋다는 이유로 종합전문병원만 당연지정제를 한다는 것은 부당하다”며 “재활기간이 상당히 필요한 산재보험환자는 대학병원보다 재활전문의료기관에서 치료받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관계자는 “고난이도 급성기 환자와 중증질환 환자 등을 집중 진료하기 위한 종합전문병원에서 장기간 재활을 요하는 산재환자 입원할 경우 오히려 일반 환자들의 불편이 가중될 것”이라며 강제 지정에 반대를 표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일단 정부 방침에 따르긴 하겠지만, 향후 산재환자 수용에 따른 폐해는 고스란히 다른 환자들이 지게 될 것”이라며 이번 당연지정제에 따른 병원계의 앙금이 남아있음을 내비쳤다.

◇산재환자, 이래서 받기 곤란해

이들이 산재환자 강제지정으로 인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재원환자가 많이 늘어남에 따라 정작 입원이 필요한 환자가 피해를 입게 되고, 병상회전율이 떨어져 병원 수익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그동안 강제지정에 반대해 온 이들 빅5 병원은 “산재환자의 입원일수는 건강보험환자보다 3~4배 이상 길어, 산재환자를 입원시킬 경우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가 차질을 빚을 수 있는 한편 병원경영상 막대한 손실이 예상된다”며 산재환자 강제 지정에 반대를 표해왔다.

실제로 지난 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윤희숙 부연구원이 조사한 ‘재활진료 정상화와 산재보험재정’ 보고서에 따르면, “산재보험 환자의 요양기간이 건강보험 환자보다 최고 9배나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의 2002년 건강보험 청구 자료와 산재보험자료를 분석한 결과, 허리 염좌의 경우 산재보험 환자의 평균요양일 수는 69일, 요양비용은 138만6000원이었으나 건강보험 환자는 8일, 12만7000원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를 보면 산재환자의 재원일수가 건강보험환자보다 길면 병원 수익이 증대할 것처럼 보이지만 병원들은 실상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종합전문요양기관의 건강보험 종별가산율은 30%인데 반해 산재보험 종별가산율은 45%로 단순 비교할 때는 병원 수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지만, 산재환자는 동일한 질병이라도 본인부담금이 없어 장기입원을 원하는 환자들이 많아 병상회전율이 낮아 오히려 손해라는 것.

만약 같은 질환으로 내원했더라도 진료일수에 차이가 생기면, 병원으로선 진료비 삭감원인으로 작용해 수익성 및 병상운용에도 효율적이지 못하고, 일반환자들의 민원도 속출하는 이중고를 겪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이에 그동안 대학병원은 산재환자의 ‘강제퇴원 및 전원조치’시킬 수 있는 법적근거를 의무조항으로 바꿔줄 것과 이것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인 보상책 마련을 주장했으나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산재의료원 중심 ‘진료 질’ 향상 절실

이처럼 현재 대형종합병원에서 산재환자를 기피하는 것을 해소하고 산재환자들이 원하는 양질의 진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산재의료원 중심의 진료 향상이 시급하다는 것이 병원계의 주장이다.

병원협회 관계자는 “강제지정을 위한 명분으로 정부가 내세운 이유가 ‘산재환자의 우수한 의료시설 접근’을 위한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산재의료관리원에서 적정한 투자와 운영의 효율화를 통해 의료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즉, 산재환자를 위한 양질의 진료 서비스를 위해서는 일반 건강보험환자들이 중심이 된 종합전문요양기관에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산재보험으로 운영되는 산재의료관리원 스스로 의료의 질을 높이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

또한 병원 측은 산재환자 종합전문요양기관 당연지정에 앞서, “산재보험제도 운영에서 의료기관에 대한 적정수가 보전과 합리적인 관리방안이 선행되면 의료기관에서 자율적으로 지정신청을 하게 될 것”이라며 향후 강제지정에 따른 수가 개선 보완책도 주문했다.

석유선 기자 sukiza@md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