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진단한 특수검진기관 ‘성실 검진’ 약속
민주노총에 87개 병원 확약서 제출…일부 대학병원·대기업 부속병원 거부

김미영 기자/매일노동뉴스

지난해 노동부의 특수건강검진기관 일제점검에서 ‘엉터리진단’으로 처벌을 받은 119개 기관 가운데 86개 병원이 민주노총이 요구한 확약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부터 새롭게 특수건강검진기관으로 등록한 JS메디칼의원은 자발적으로 민주노총에 확약서를 전달해 모두 87개 기관이 양심적이고 성실한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하겠다고 서명했다.

민주노총은 노동부 일제점검에서 특수건강검진기관 99%가 미자격 의사의 진단이나 판정 조작 등 부실로 판정이 되자 이에 대한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120개 특수건강검진기관에 확약서 제출을 요구했다.

확약서는 △자격이 되는 양질의 의사 및 의료인으로 검진 실시 △양심적이고 공정한 판정 △사업주로부터 특검결과에 대한 판정번복이나 허위판정 요구를 받더라도 양심과 전문지식에 따라 공정한 검진 △재검 필요시 노동조합과 본인에게 사정 설명 후 동의 얻어 검사를 진행할 것 등에 준수하겠다는 내용으로, 선언적 수준이다.

13일까지 민주노총에 확약서를 제출한 병원은 모두 87개로 고대 안산병원, 산재의료관리원 인천중앙병원 등 상당수 병원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강북삼성병원, 전남대병원(화순병원 포함) 등 대형병원과 (주)포스코 부속의원 등 대기업 부속병원 등 20여개 병원은 확약서 제출을 거부했다.

민주노총 김은기 노동안전부장은 “대체로 소규모 민간병원들은 확약서 요구에 즉각 응했지만 대학병원 등은 이를 꺼려해 몇 차례 촉구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전남대병원을 비롯해, 영남대병원, 건국대 충주병원 등은 확약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또한 인천 세브란스병원 산업보건센터, 고려대 환경의학연구소 등 의과대학 부속 산업의학센터들도 대체로 확약서 제출을 거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대기업 부속의원들 모두 확약서를 제출하지 않아 이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수건강검진기관으로 등록된 현대자동차(주) 부속의원, (주)대한항공 김해부속의원, (주)포스코 부속의원 및 광양제철소 부속의원 등 4개 병원은 단 한곳도 확약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금속노조 윤종선 노동안전부장은 “현대차의 경우 지난 4월 부속의원이 참여한 가운데 산업보건위원회를 개최해 △회사의 공개 사과 △검진실시계획서 사전제출 및 검진항목·시기 노조와 합의 △검진 후 노조의 감사권 인정 등 구속력이 강한 조항에 합의했다는 이유로 확약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확약서 미제출 기관에 대해서는 특수건강검진을 의뢰하지 않겠다는 방침이어서 이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윤종선 부장은 “확약서 제출과 관련해 민주노총 방침에 따라야 한다”며 “오는 16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회 회의에서 이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노동부로부터 업무정지 등 처벌을 받은 특수건강검진기관 가운데 대한산업보건협회(회장 최병수) 소속 4개 기관은 지난 4월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업무정지 취소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업무를 재개해 처벌의 실효성도 논란이 되고 있다. 노동부는 “이번 가처분 결과는 단지 본안소송 전까지 처분을 미룬다는 결정일 뿐 업무정지 등 행정처분이 잘못됐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으나, 특수건강검진 ‘성수기’인 4월부터 업무가 재개됨에 따라 처벌에 따른 불이익은 사라지게 된 셈이다.

이처럼 부실판정을 받은 특수건강검진기관들이 선언적 수준의 확약서 제출도 거부한 채 처벌마저 피해감에 따라, 노동부의 무더기 처벌에도 불구하고 특수건강검진제도의 근본적 개선에 의구심이 일고 있다.

민주노총은 우선 확약서 제출기관을 대상으로 올해 특수건강진단 및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이후 철저한 감시를 통해 부실 검진을 추방해나가겠다는 계획이다. 김은기 노동안전부장은 “특수건강검진지관에서 확약서 내용을 성실히 수행해 부실검진을 개선할 수 있도록 기관과의 협조와 긴장관계를 꾸준히 유지하고 나아가 특수건강검진 제도개혁을 위해 노동부와 산업의학회, 전문가와도 지속적으로 논의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수검진, 올해는 달라질까?

특수건강검진기관 99%가 부실판정을 받은 것은 노동자 직업병 예방에 구멍이 뚫려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이에 노동부는 지난 5월 산업의학전문의만 특수건강진단을 할 수 있도록 의사자격기준을 강화하는 등 개선안을 내놨다. 노동부는 유해물질에 따라 필요한 항목 검진, 의사가 건강검진 시 노동자에게 취급물질의 유해성을 의무적으로 설명토록 하는 등 ‘근로자건강진단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관련규정 개정을 통해 내년부터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노총도 생물학적 모니터링에 따른 제대로 된 검진 실시와 충분한 검진을 위해 1시간에 15명 초과 금지, 검진결과 설명회 개최 등 특수건강검진 실무지침을 각 단위사업장에 전달하고 엉터리 검진을 개선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는 특수건강검진이 개선된 형태로 진행될 수 있을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편, 특수건강검진은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6개월~2년마다 1회 실시하도록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되어 있다. 보통 4월부터 11월 사이 각 사업장마다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하지만 올해는 특수건강검진기관 무더기 처벌로 예년보다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2007년06월14일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