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의 공포 (하)] [서울신문 탐사보도] 건축땐 권장… 철거땐 ‘엉성한 폐기’

[서울신문]2007-06-15

정부의 석면 대책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석면의 수입·제조·사용에서 건축물의 철거에 이르기까지 석면 관리에 관련된 부처는 노동·건설교통·환경·문화관광·교육인적자원부 등이다.
그러나 부처간 협조체계가 없고 범정부적인 석면 관리 시스템도 없다.

현재로서는 석면을 직접 다루는 근로자들의 피해가 가장 심각하기 때문에 노동부가 석면관련 업무를 주로 맡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석면 규제가 이뤄진다.
석면이 공기중에 비산(飛散)되면 근로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도 피해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환경부 소관의 대기환경보전법에는 대기중의 석면 관련 기준이 없다.
일본은 대기 중의 석면 입자수를 1㏄당 0.01개 이하로 규제한다.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신예섭 사무국장은 14일 “공사장 안에는 석면 농도의 기준이 있고, 바깥에는 없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석면 가루가 공사장 안에서만 머물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법령간, 부처간 좌충우돌
법령간 충돌 현상도 심각하다.
건축법 시행규칙 24조에서는 건물주나 해체업자는 건축물 철거시 시·군·구에 통보해야 하며, 기초단체장은 신고서를 검토해 석면이 함유된 것으로 확인되면 지방노동관서에 통보해야 한다.
하지만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은 화재에 대비해 석면시멘트판(석면과 시멘트를 섞어 만든 내벽재)을 쓰도록 권장한다.
건물을 지을 때는 석면 사용을 권장하고, 철거할 때는 석면을 철저히 없애라는 충돌과 모순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석면을 규정대로 해체해도 폐기가 문제다.
현행 폐기물관리법은 제조·해체 현장에서 나온 비산 위험이 있는 석면 제품만 지정폐기물로 관리한다.
딱딱하게 굳어져 있는 석면 제품은 일반 건설폐기물과 함께 처리된다.
한 해체업체 사장은 “우리가 아무리 잘 처리해도 최종 폐기업체가 다른 폐기물과 마구잡이로 합쳐 매립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이후 석면 채광이 끊겼고, 석면 사용의 전면금지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9개 업체가 석면채광을 목적으로 광업권을 갖고 있다.
그만큼 정부가 석면 폐해에 무감각하다는 방증이다.
충남의 S광산 소유주 이모씨는 “석면과 유사한 해포석을 채굴하려고 광산을 개발했다.”면서 “석면과 비슷한 광물은 무조건 석면 광산으로 등록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규제 실효성도 떨어져
석면 관련 규제는 실효성을 상실했다.
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해 노동관청으로부터 석면 제거 허가를 받고 철거된 건물은 749곳에 불과하다.
한 해 8만∼10만동의 건축물이 철거되는 것을 감안하면 극소수의 건물만 석면제거 허가를 받고 철거되는 셈이다.
환경부는 석면 함유 건물을 600만채(2005년 기준)로 추정한다.

정부는 1993년부터 석면 원료를 취급하는 근로자가 퇴직할 경우 건강 관리수첩을 교부하고, 퇴직 후 매년 무료 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2005년까지 관리수첩을 교부받은 근로자는 558명 뿐이다.
강남서초환경운동연합 김경란 사무국장은 “철거 신고 의무를 위반해도 30만원 이하의 과태료만 물면 되는데 누가 규정을 지키겠느냐.”면서 “석면 철거를 감독하는 근로감독관도 전국에 230명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 차원 관리 시스템 만들어야
석면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우선 사용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범정부 차원의 관리 시스템 및 석면 제거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최상준 책임연구원은 “국무조정실 등이 부처별 협력체계를 구축해 석면 사용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고, 석면 질병의 역학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대 김정만 교수는 “석면 조사인력 및 분석기관, 전문철거업체, 이들을 관리·감독할 인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석면 관리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법령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피해자 보상과 관련해 가톨릭의대 김형렬 교수는 “석면에 의해서만 발병되는 악성 중피종은 일본처럼 무조건 국가가 배상하고, 폐암은 노출이 가능한 직업에 종사했고 잠재기간이 충족된다면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면서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 환경보건법에 근로자뿐 아니라 일반 국민의 피해보상을 명시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