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석면의 공포] (하) 정부대책 아직 먼길

[서울신문]2007-06-15

“저마다 석면 전문가라고 행세하지만 제대로 된 전문가는 거의 없다.”
1970년대부터 석면을 연구해 온 백남원 전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14일 “이제 겨우 석면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는 단계인데, 제대로 석면을 분석하거나 해체할 수 있는 전문가가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석면 함유 여부를 정확히 진단하고, 제거할 수 있는 전문가는 전무하다시피한 상황이다.
정부나 학계 모두 이제 막 연구를 시작하는 단계여서 전문가라고 먼저 우기면 그만이다.

●철거비용 10배… 업체들 ‘눈독´
노동·환경부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아직 석면 분석·해체 기술자를 교육시킬 만한 기관이 없고, 분석·해체 업자에 대한 등록, 인증, 지정, 허가 등의 제도도 없다.
장비 기준도 물론 없다.”고 말했다.
어떤 업체든 석면 제거 계획서만 잘 작성해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면 해체작업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석면 해체업’이 건설업계에서 가장 유망한 분야로 급부상한다.
지하철의 경우 1개 역마다 10억∼50억원의 석면해체 비용이 들어간다.
석면을 제대로 제거한 뒤 건축물을 철거하려면 기존보다 10배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
그만큼 수익성이 높다는 얘기다.
석면 해체 기술자들이 사용하는 보호마스크와 방진복을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들도 한국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열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진다.

●석면 수입업자가 해체업자로
시장이 커지면서 단순 철거업체들은 대부분 석면 해체업으로 돌아섰다.
과거 석면을 수입해 떼돈을 벌었던 업자들이 속속 해체업에 뛰어드는 진풍경까지 벌어진다.
강남서초환경운동연합 김경란 사무국장은 “과거 수입업자들은 어느 제품에 석면이 함유된지를 잘 알기 때문에 이 정보를 바탕으로 해체업을 하고 있다.”면서 “석면 조사자, 해체업자, 사업주와 감독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면 해체를 둘러싼 과열현상은 비리로 이어지기도 한다.
석면을 처리하지 않고 건축물을 철거하는 현장을 포착해 노동부에 신고한다고 협박, 수억원을 갈취한 석면연구소 소장과 환경전문지 사장 등 4명이 검찰에 구속됐다.
이들은 최고의 석면 전문가로 꼽혀온 인물들이었다.
백남원 전 교수는 “석면을 둘러싼 이권다툼이 사회 문제가 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자격증을 선점하려는 이전투구도 벌어진다.
현재 석면 관련 협회 3곳 가운데 2곳은 노동부에서,1곳은 환경부에서 인가를 받았다.

대학 교수나 업체를 중심으로 꾸려진 협회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공인 교육기관이라고 주장하며,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수강료는 3일 교육에 1인당 10만원 이상이다.

한 협회 관계자는 “돈 앞에서는 업자나 교수나 마찬가지”라면서 “앞으로는 석면 자격증 장사가 가장 유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석면 관련 교육을 위임할 수 있는 근거법을 마련하고, 석면 해체업에 대한 허가제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