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판례 따라잡기]
산재보험 보상범위 넘는 교통사고, 나머지 보상은 보험사 책임

김미영 기자

특수고용직이 대부분인 퀵서비스업계에서 사용하는 은어 가운데 ‘퇴직금’이라는 말이 있다. 교통사고 보상금을 일컫는 말이다.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퀵서비스업계를 떠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거액의 교통사고 보상금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퀵서비스맨이 교통사고 가해자가 되면 종종 행방불명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퀵서비스맨들의 꿈은 노란색 영업용 번호판을 달고 산업재해보상보험에 떳떳하게 가입할 수 있는 권리다.

퀵서비스맨 뿐만 아니다. 운전을 생업으로 삼는 대부분 운수노동자에게 교통사고는 생사여탈권을 쥐락펴락하는 ‘삼신할매’와 같은 존재다. 그렇다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정한 범위를 초과하는 교통사고 피해가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은 어떻게 될까.

고속도로 갓길에서 대형화물차 들이받은 후 즉사

가스경보기 설치회사의 일용직 신아무개씨는 2000년 8월29일 회사 대표 정아무개씨가 운전하는 트럭을 타고 있었다. 신씨와 정씨는 담배인삼공사가 발주한 가스경보기 설치 공사를 위해 청주에서 신탄진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오전 10시25분,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서울기점 89.4킬로미터 지점. 정씨는 3차로에서 갓길로 차선 변경을 했다. 때마침 고속도로 확장공사를 위해 도로의 갓길에 대형화물차량이 주차 중이었다. 정씨의 트럭은 대형화물차 좌측 뒷부분을 들이 받았다. 신씨와 정씨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자동차보험회사 약관 “산재법상 재해보상 시 보상 제외”

신씨와 정씨는 업무상재해로 인정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보상을 받았다. 유족들은 정씨가 몰던 트럭의 자동차보험사에 피해보상을 요구했지만 보험사는 이를 거부했다. 약관의 면책조항에 따라 이 사고의 피해를 보상할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업무상 자동차종합보험 약관에는 “배상책임이 있는 피보험자의 피용자로서 산재보험법에 의한 재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에 대하여는 보상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결국 유족들은 자동차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보험사 부담 고객에 이전, 면책조항 무효”

이 사건의 원고는 신씨와 정씨의 유족이고, 피고는 ㅅ화재해상주식회사다. 1심 재판부는 유족의 손을 들어줬으나 2심에서 뒤집혔다. 기존 판례가 업무상 자동차보험회사의 약관을 그대로 인정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교통사고로 인한 근로자의 손해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지급하는 보상액보다 크면 보험회사가 이 차액을 배상해줘야 한다”고 확정판결했다. 판결요지는 이러하다.

“피해 근로자들의 손해가 산재보험법에 의한 보상범위를 넘는 경우에도 보험사가 면책된다면 보험사가 부담해야 할 위험을 고객에게 이전시키는 결과가 되므로 (약관은) 무효다. 따라서 산재보험법에 의한 보상범위를 넘는 손해가 발생한 경우 보상하지 않는다는 면책조항은 효력이 없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노사관계에서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인한 손해는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근로기준법에서 사용자의 각종 보상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현재 산재보험이 이를 담당하고 있고, 자동차사고에 의한 피해나 노동자의 손해도 보상하고 있다.

재판부는 “업무용 자동차보험 약관에서 정한 면책조항의 본래 취지는 산재보험에 의한 전보가 가능한 범위에서는 제3자에 대한 배상책임을 전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동차보험의 대인배상 범위에서 제외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는 목적은 거액의 손해배상책임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피보험자에게 법적으로 손해배상책임이 남아있는데도 면책조항을 이유로 이를 거부한다면 자동차보험의 취지와 어긋나게 된다.

대법원 2005년 3월17일 다2802 손해배상(자) 파기환송
대전고등법원 2002년 12월12일 판결 2001나8439
청주지방법원 2001년 9월28일 판결 2001가단48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