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불평등, 건강 불평등, 사망 불평등

정규직에 비해 심리적·신체적 건강 수준 떨어지는 비정규직…자녀들이 건강하지 않을 확률도 더 높아

▣ 조계완 기자kye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eyeshot@hani.co.kr

2005년 한림대 의대 조정진 교수가 국내 329개 사업장 노동자 8522명을 대상으로 직무 스트레스를 연구한 결과, 우울증 유병률은 정규직이 15.7%로 가장 낮고, 계약직이 16.3%, 일용직이 22.7%로 가장 높았다. 2003년 이향란(연세대 보건대학원)씨의 병원노동자 스트레스 조사에서도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직업 불안정성과 직무 위험성이 높고, 정신사회적 스트레스는 정규직이 19.50인데 비정규직은 21.68로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998년 노동건강연구회가 국내 12개 사업장의 산업재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원청 정규직의 재해 천인율(1천 명당 재해율)은 7.4인 반면, 하청 노동자의 재해 천인율은 17.0으로 비정규 노동자가 훨씬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 가지 연구 사례는 이른바 ‘건강 불평등’, 즉 비정규 노동자일수록 스트레스가 더 높고 건강 수준이 낮다는 것을 뚜렷하게 수치로 확인해준다.

△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건강 수준에서도 불평등을 겪는다. 서울의 한 대형 할인매장에서 일하는 판매 여성노동자들.

거의 모든 항목마다 훨씬 높은 스트레스

노동자의 종사상 지위(정규직 혹은 비정규직)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물론 직무 스트레스 불평등도 낳는다. 왜 그럴까? 계약직, 하청 노동자 등 비정규직은 고용불안 속에서 계약을 지속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 크고, 저임금으로 인해 소득을 벌충하려고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할 뿐 아니라 위험하고 해로운 작업환경에서 일하는 것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권영준 한림대성심병원 교수(산업의학과)는 “비정규 근로자들은 고용의 특성으로 인해 정규직에 비해 낮은 임금 수준과 장시간 근로, 과중한 노동강도 그리고 유해한 작업환경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건강 불평등은 자연히 사망 불평등으로까지 이어진다. 건강 수준의 불평등이 아동기, 청소년기, 성인기의 전 생애에 걸쳐 존재하면서 사망 불평등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2005년에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5만9천 명의 산업재해자가 발생했는데 이는 전체 재해자의 69.9%를 차지한다. 또 사망자는 1389명으로 전체 산재 사망자의 55.7%를 차지했다. 저임금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은 임금 격차뿐 아니라 재해·사망에서도 불평등을 겪고 있는 것인데 힘들고 위험한 일은 죄다 비정규직한테 떨어지기 때문일까?

연세대 원주의대 고상백 교수 등이 2003년에 국내 조선소의 원청 정규직 681명과 하청 비정규직 10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비정규직의 직업적 특성과 사회심리적 스트레스’ 조사를 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스트레스 불평등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 조사 결과 ‘직무 요구도’(일에 대한 부담과 작업량)가 높은 집단은 정규직 340명(55%), 비정규직 605명(62.9%)으로 비정규직일수록 일에 대한 부담이 더 높았다. ‘직무 자율성’이 낮은 집단을 보면 비정규직 476명(52.1%), 정규직 143명(23.9%)으로 비정규직이 업무권한이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사회적 지지’(동료와 상사의 지원)가 낮은 집단은 비정규직 615명(63.2%), 정규직 257명(41.2%)으로 비정규직이 지지도 훨씬 적게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직무 불안정’이 높은 집단은 비정규직 841명(81.5%), 정규직 36명(5.3%)으로 비정규직일수록 극도의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 ‘직무 긴장도’가 높은 그룹 역시 비정규직 293명(33.5%), 정규직 52명(9.1%)으로 비정규직의 긴장도가 훨씬 높았다. 고상백 교수는 “고용 형태가 비정규직일수록, 또 직업적 특성에서는 직무 요구도가 높을수록, 사회적 지지가 낮을수록, 직업불안정이 높을수록 스트레스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직무 스트레스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항목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해 훨씬 높은 사회심리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직무 요구도는 높고 직무 자율성은 낮은 ‘고긴장 집단’ 중에서 사회적 지지도가 낮은 집단(고립된 고긴장 그룹)은 정규직 42명(6.9%), 비정규직 152명(16.1%)으로 나타났다. 이는 비정규직일수록 과도한 스트레스에 노출돼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노동건강연대 이상윤 정책국장은 “비정규직은 주관적인 평가뿐 아니라 객관적인 건강지표에서도 정규직에 비해 더 나쁜 모습을 보인다”며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증,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고 혈압이 증가하고 심혈관계 질환이 발생할 위험성도 더 높다”고 말했다.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는 불완전 노동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과도한 직무 스트레스를 겪는 등 정신건강을 위협받고 있다는 얘기다. <한겨레>가 2006년 12월 손미아 교수(강원대 의대)팀과 함께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비정규직 노동자 건강 실태조사 결과, 현대차 공장에서 지나친 스트레스로 고통받고 있다고 응답한 노동자들은 정규직에선 15.13%(2194명 중 332명)였으나, 비정규직은 42.64%(129명 중 55명)나 됐다.

△ 비정규 노동자들은 건강검진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다. 한 금속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청·장년기 건강은 아동기 부모의 지위에 따라

비정규직의 과도한 스트레스는 음주·흡연으로 인한 건강 위험을 높이고, 이는 각종 암 등 사망 위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2003년 백도명 서울대 교수(보건대학원)가 ‘국민건강영양조사’(1998)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주 동안 앓았던 질병 증상’을 정규직은 48.7%, 비정규직은 53.1%가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 3개월간 앓고 있던 만성 질병’도 정규직은 58.7%, 비정규직은 61.8%가 안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해 혈압과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비정규직에서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을 뜻한다.

흥미로운 건 아동 시절의 부모의 사회경제적 위치(종사상 지위 등)가 본인이 성인이 됐을 때의 건강 수준에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경상대 김학주 교수(사회복지학)는 유년기의 사회경제적 차이가 성인기까지 건강위험 요인에 장기간 노출되는 누적 과정을 통해 질병을 발생시킨다고 설명한다. 김 교수가 ‘한국노동패널’ 1차연도(1998)∼8차연도(2005) 자료(30∼59살 총 6597명)를 사용해 분석한 결과, 부모의 종사상 지위가 정규직인 경우 자녀가 청·장년기에 건강하지 않을 확률은 8.8%인 반면, 부모가 비정규직이면 15.1%로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가 무직 또는 가정주부일 경우에는 자녀가 청·장년기에 건강하지 않을 확률이 28.7%였다.

또 부모가 정규직일 때 자녀가 청·장년기에 암이 발병할 확률은 0.2%인 반면, 비정규직일 때는 1.6%로 훨씬 더 높았다. 부모가 정규직일 때 자녀가 성인이 되어 위염·위궤양·십이지장궤양에 걸릴 확률은 3.6%인 반면, 비정규직일 때는 5.4%로 높았다. 김 교수는 “부모의 종사상 지위가 낮을수록 암, 위염, 만성중이염 등으로 자녀가 고통받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부모의 종사상 지위가 본인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미치는 영향은 부모가 정규직일 때는 플러스(+)로, 비정규직일 때는 마이너스(-) 방향으로 함께 움직이는 양상을 보였다”고 말했다. 특히 부모가 정규직일 때 자녀가 청·장년기에 흡연할 확률은 28.3%인 반면, 비정규직일 때는 37.1%로 더 높았다.

한편, 부모의 지위가 정규직일 때 자녀가 청·장년기에 정규직인 비율은 40.8%, 비정규직인 비율은 6.0%인 반면, 부모가 비정규직일 때 자녀가 정규직인 비율은 37.1%, 비정규직인 비율은 13.1%로 나타났다. 즉 부모가 비정규직일수록 자녀도 비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부모가 정규직일 때 자녀가 비정규직이 될 가능성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이다. 김 교수는 “아동기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성인이 됐을 때의 주관적·객관적 건강지표 모두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청·장년기의 건강 수준은 해당 시기 본인의 사회경제적 지위뿐 아니라 아동기의 부모의 사회경제적 차이에서도 비롯된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은 산업안전보건 제도에서도 배제되고 있는데, 낮은 건강검진 수검률이 대표적이다. 금속·중금속 화학물질 중독 등 국내 특수 건강진단은 2005년에 3만2445개 사업장에서 64만6천 명이 받았다. 그런데 2006년 산업안전연구원의 조사를 보면, ‘지난 1년간 건강진단을 받은 경험’이 하도급 업체 노동자 중 정규직은 조사대상 137명 가운데 118명(86%)인데 비정규직은 103명 중에서 71명(68.9%)으로 훨씬 적었다. 고상백 교수는 “비정규 노동자들은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고, 고용기간이 건강진단 주기보다 짧다 보니 건강진단 시기를 놓치거나 특수 건강검진 대상에서 누락되고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을 위한 건강검진 제도를

이와 관련해 비정규직 고용 형태에 맞는 (특수) 건강검진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하청, 하도급,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급증하고 있는데,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체계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안전에 대한 의무와 책임 소재가 복잡하고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노동건강연대 이상윤 정책국장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은 작업장 모델에 기초해 물리적인 벽으로 둘러싸인 제조업 공간을 다루는 것으로, 변화하는 노동시장 구조를 담지 못하고 있다”며 “원청 사업주에게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보건 책임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특수 건강진단을 위해 업종별·지역별 건강수첩을 만들 필요도 있다. 부정기적으로 여러 사업장을 옮겨다니는 비정규 고용의 특징을 감안해, 사업장 위주의 특수 건강진단이 아니라 업종별로 묶어서 어느 회사에 있어도 주기적으로 특수 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은 뒤 비용은 사용자에게 청구하면 된다.

민주노총은 지난 6월4일 노동안전보건위원회 내에 ‘취약분과’를 새로 발족했다. 이 분과는 비정규, 영세사업장, 여성, 이주노동자 등 불안정 노동자들의 노동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한 실태조사와 제도 개선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아무리 아프고 스트레스에 시달려도 일자리를 잃을까봐 쓰러지기 직전까지 일해야 하는’ 가장 열악한 처지의 취약 노동계층의 노동건강권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한 셈이다. 민주노총 김은기 노동안전부장은 “취약계층 가운데 하루 종일 서서 억지로 미소를 지어야 하는 백화점 여성노동자들의 직무 스트레스도 심각하다”며 “이들에게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권리를 보장하고, 중간중간에 의자를 설치해야 하는 업무규정을 제대로 지키도록 하는 노력도 취약분과에서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