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지하철 투신자살… 70%가 무직자

조선일보 | 기사입력 2007-06-22 02:58 | 최종수정 2007-06-22 05:36

서울 1~8호선 2000년 이후 분석 올들어서만 22명 투신사망… 신병비관이 절반 취업난·실직 영향으로 20~40代가 50% 넘어 사고 잦은 곳 대부분이 스크린도어 설치안돼

지하철 역사 선로(線路)에 뛰어드는 투신 자살이 계속 늘고 있다. 올 들어 이달 21일까지 서울 지하철(1~8호선)에서 22명의 아까운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 달에 4명꼴로, 작년(34건·한 달 3명꼴)에 비해 30% 가까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1일 본지가 서울메트로(1~4호선 운영)와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 운영)로부터 지하철 투신 관련 자료(2000년~올해 6월 21일 현재까지)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투신자들은 주로 인적이 뜸한 지하철 역사를 찾아가 자살을 시도했다. 또 자살사고가 발생한 지하철역들은 대부분 스크린도어(screen door·플랫폼과 선로 사이의 차단 문)가 설치돼 있지 않은 곳들이었다.

◆지하철 자살 실태

지난 17일 오후 2시쯤 서울 지하철 5호선 군자역에서 30대 남성이 선로에 뛰어들어 숨졌고, 지난 6일 오후 10시에도 지하철 4호선 노원역에서 우울증을 앓던 70대 노인이 전동차에 몸을 던졌다. 이달에만 21일 현재까지 5명이 지하철에 목숨을 던졌다.

지하철 투신 사망(서울 지하철 기준)은 2000년 21건에서 경기침체가 극심했던 2003년 52건까지 급증했다가 2004년 34건으로 감소하는 듯했다. 그러나 2005년 41건으로 다시 증가했고 올해도 40건을 넘을 전망이다.

200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사망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지하철 2호선 구의역인 것으로 집계됐다. 6명이 투신자살했다. 1호선 노량진역·송내역과 5호선 까치산역과 군자역, 4호선 한성대입구역도 같은 기간에 5명이 숨져 투신사고 다발(多發)지역으로 꼽혔다.

이들 역은 공통적으로 ▲비교적 승객이 많지 않아 자살방해 요인이 적고 ▲인근에 서민·중산층이 많이 사는 곳들이다.

◆20~40대 남성의 무직·생활고(苦) 자살 많아

지하철 투신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직업이 없거나 생활고를 비관한 경우가 많다. 연령별로는 20~40대가 많고,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많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300여 건의 열차 자살사고를 분석한 결과 무직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70%에 달했다. 또 신병을 비관한 사고가 전체의 절반 가량인 160여 건을 차지했다. 남성 자살자가 216명으로 여성(85명)의 3배에 달했다.

직업별로는 공장 근로자 24명, 회사원 13명, 공무원 6명, 자영업 4명 순이었다.

◆지하철 자살 막으려면

서울 지하철 2호선 이대역과 강변역은 지난해 6월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이후 투신사고가 끊겼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각각 3건씩 인명사고가 났던 것과 대조적이다.

역사 플랫폼과 선로 사이 공간을 차단하는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면 투신 행위가 원천 봉쇄된다. 지하철 역사에 스크린도어가 있다고 해서 자살을 하려던 사람들이 모두 자살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자살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충동적인 자살 시도의 경우 스크린도어에 의해 일단 좌절되면 마음을 고쳐먹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스크린도어가 자살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현재 서울 지하철역 265곳 가운데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곳은 20곳으로 10%에도 못 미친다.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곳 중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곳은 신도림역 단 한 곳에 불과하다. 철도전문가 김해곤씨는 “스크린도어가 먼저 설치된 2호선 강남·삼성·교대역 등은 사고가 상대적으로 적게 발생했다”면서 “유동인구가 많아 광고 유치가 잘 되는 곳 위주로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다 보니 사고 다발 지역의 스크린도어 설치가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측은 예산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두 기관은 “2010년까지 전 지하철 역사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는 목표를 갖고 있지만, 2300억~26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충원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지하철 역사 분위기를 바꾸는 것도 자살사고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다. 4호선 동작역에선 2005년에만 네 명이 자살했다. 지상(地上)에 세워진 역사인데다 비교적 한적해 자살충동을 느끼기 쉬운 곳이었다. 그러나 2006년부터 역장이 음악 방송을 시작한 이후엔 자살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국립서울병원 정신과 남윤영 박사는 “자살은 인적이 드문 장소와 시간대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데 이때 음악이나 방송, 안내 표지판을 적극 활용하면 ‘죽고 싶다’는 생각을 방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이 노력하면 분명히 지하철 자살을 줄일 수 있다.

[송혜진 기자 enavel@chosun.com]

[박시영 기자 joeys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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