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9.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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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 김용균 특조위를 마치며…]
(5)전수경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
한밤에 도착한 발전소는 깜깜했다. 조사단 일행을 태우고 발전소 구석구석을 안내하는 승용차는 가로등 없는 시골길을 가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전기 만드는 공장이 발전소잖아요. 왜 이렇게 어둡게 해놓은 거죠?” 너무도 의아해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력손실률을 계산해서 전기를 많이 쓰면 감점이에요.”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다시 물었다. 같은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 발전소에서는 모든 것이 점수다. 조사가 진행될수록 알게 됐다. 발전소를 돌아가게 하는 것은 석탄이 아니라 경영평가라는 것을.
발전5사 ‘안전정책’ 문서에는 안전을 위한 비전이 잔뜩 들어있다. ‘석탄발전소 설계안전성 검토’ ‘위험요인 근원적 제거’ ‘글로벌 수준에 부합하는 안전경영시스템 추진’…. 하지만 발전5사 경영진의 관심은 이 문서의 뒷부분에 있는 ‘경영평가 제도 개선 건의’에 쏠려 있다. ‘안전정책’ 문서는 산재의 주요 원인을 ‘노동자의 불안전한 행동’이라 규정한 후 사고 감소를 위해 ‘작업자 실시간 확인 및 통제’ ‘협력사(하청) 벌점 및 포상’을 시행한다고 밝히고 있다. 비전을 실행하려면 발전설비 전반과 위험의 외주화 정책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필요해 보이지만, 정작 사고 감소를 위해 협력사 노동자와 협력사 통제정책만 도출되고 있다.
문서는 ‘28일 미만 요양을 하는 경미한 부상은 감점요인에서 제외’해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협력사 노동자의 산재가 경영평가 감점요인에 포섭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 이것이 발전5사의 실질적 안전정책이다.
흙 위에 금을 그어도 발로 슥 문지르면 없어지는 것처럼 발전소에서 일어난 산재들은 쉽게 지워진다. 발전5사에 산재 은폐 본능을 심어준 경영평가는 산재 당사자에 대한 불이익을 기본값으로 하고 있다. 한 발전사 정규직 직원은 0.1점 차이로 인센티브가 0이냐 100이냐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특히 내부평가는 부서장 평가, 부서 평가에 반영되면서 승진과 인센티브에도 영향을 미친다. ‘협력사 벌점 및 포상’ 제도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는 협력사 노동자들의 안전이 아닌 발전5사 임직원들의 인센티브이다.
발전사 정규직, 협력사 노동자, 공사를 위해 들어와 있는 건설사 노동자들의 사고는 신분별 감점계수로 구별해 복잡한 수식으로 계산되어 평가에 반영된다. 발전사 정규직 직원의 사망은 협력사 노동자 사망의 1.5~3배 감점, 협력사 노동자 사망은 건설노동자 사망의 5배 감점으로 계산된다. 사망, 중대재해뿐 아니라 경미한 사고도 같은 원리로 계산된다. 협력사 노동자들은 산재가 왜 감추어지는지, 왜 감출 수밖에 없는지 전하고자 애썼다. 하나의 시스템으로 생산해야 할 공정에서 위험한 작업만 쪼개서 팔고, 거기서 발생하는 위험을 감내하며 싸워왔던 수많은 김용균과 동료들이 있었다. 그들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고 나면 119로 연락하지 않고 내부 보고를 해야 돼요. 신고하면 파악해 문책할 수도 있어요.” “숨길 수 없는 사고만 나가는 거지, 골절이라든지 다 감춘다고 봐야죠.” “아차사고(사고가 일어날 뻔했지만 직접적으로 다치지 않은 사고)를 1년에 한 번 산업안전주간에 제출해요. 가짜 사례 만들어서 사진도 찍고, 실제 다친 것은 넣기 어려워요.” “경쟁 입찰에 산재 건이 들어가면 마이너스 받으니까 산재가 나도 회사에서 막으려고 하죠.” “대통령이 원청 책임을 강화한다고 했잖아요. 원청이 하청 사고 보고를 할까요. 언제든 감출 수가 있어요.”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위험한 환경과 산재에 대해 조사위원에게 최대한 정보를 주고자 애썼다. 김용균을 죽게 한 구조적 요인을 규명하고, 직접고용이라는 합당한 권고안을 내주길 바라는 마음. 그들의 간절함 앞에서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 보고서가 나온 후, 한 협력업체 노동자가 문자를 보내왔다. “고생하시는데 귀찮게 하는 건 아닌지요. 근로자들을 위해 결과 내주신 거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