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석면 추방 국민캠페인이 필요하다/최예용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위원
장면 1 서울지하철 2호선 방배역. 새벽시간에 이동통신 중계기지 설치공사를 끝낸 작업자들이 바닥에 떨어진 천장재 조각과 분진을 철로변으로 쓸어내고 있다.2호선은 몇년전부터 시청역 등 많은 역사에서 냉난방시설 공사가 진행중이다. 문제는 이들 역사 곳곳에 ‘죽음의 백색가루’ 석면이 다량 함유돼 있다는 점이다. 공사 과정에서 분산되는 석면은 객차터널을 타고 인근 역사로 확산되거나 배기구를 통해 역사 주변으로 날아간다.
장면 2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대걸레 자루로 천장을 두드린다. 올 여름방학에는 교실 천장에 냉방기기 공사가 예정돼 있다. 시공사의 계획에는 석면 조사나 제거가 포함돼 있지 않다. 교육청과 학교가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면 3 강남의 한 환경단체 사무실. 경기지역 군부대의 장교가 소속과 이름을 묻지 말아달라며 전화 문의를 해왔다. 상급부대 지시로 막사를 철거하고 개·보수할 계획인데 석면이 의심되지만 조사비용이 책정되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단다.
장면 4 충남 보령의 한 바닷가. 조선업체 현장 바닥 여기저기에서 석면 조각이 흩어져 날린다. 불에 잘 타지 않는 성질 때문에 배에는 석면이 많이 사용됐다. 입구에 형식적인 가림막이 쳐져 있는 이곳은 바닷바람과 밀물로 인해 발암물질이나 중금속 물질이 날아다닌다. 주민들은 마을에 암 환자들이 많다고 걱정한다.
이상은 필자가 최근 몇개월 사이에 직접 방문했거나 전해들은 석면 공해 현장들이다. 대도시 지하철, 초등학교 교실, 군부대, 바닷가 어촌마을 등 나라 곳곳에서 석면가루가 날아다닌다. 환경오염으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지키겠다며 ‘환경보건원년’까지 선포한 환경부는 몇달째 석면관리 종합로드맵이라는 제목의 행정서류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교육부는 방학 기간을 이용해 냉방공사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할 게 뻔하다. 서울메트로와 환경부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의 석면노출과 피해조사를 요구했더니 누구를 조사할지 정하기 어렵고, 효과적인 조사방법도 없으며, 조사대상자의 폐속에 석면이 검출됐다고 하더라도 그 석면이 지하철을 타다 노출된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식의 답변이 돌아왔다.
암 정복을 외치는 보건복지부는 조기발견, 조기치료만을 앵무새처럼 되뇐다. 석면과 같은 발암물질의 발생과 노출을 줄이는 게 최선이 아니냐고 지적하면, 그것은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란다. 몸 속에 높은 수준의 발암물질이 축적됐더라도 암이 발생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는 뜻인가? 암환자가 발생해야 자신들의 존재가치가 드러나기 때문인가?
여권의 실력자들이 잇따라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았지만 환경보건문제를 담당하는 실무부서나 담당자조차도 두지 못했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해 일본에서의 석면피해 사례를 소개한 일본학자는 “석면 피해가 미나마타병보다도 훨씬 큰 세계적인 공해병 문제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무부처인 환경부와 보건복지부가 먼저 머리를 맞대고 석면과 같은 발암물질의 발생과 과노출로 인한 위험인구를 줄이는 범정부적인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이를 진행할 특별법과 전문기구도 마련해야 한다. 전문적 역량과 기능을 갖춘 국가기관으로서 국립환경보건센터도 세워야 한다.
최예용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