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막을 수 있었던’ 죽음
위험의 한복판으로 내몰린 하청노동자, 반복되는 죽음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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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20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액화 천연 가스 탱크 절단 작업을 하던 하청노동자 박아무개씨가 죽었다. 용접 절단 작업 중 절단된 18t짜리 구조물(테스트 캡)이 넘어지면서 박씨를 덮쳤다. 노조 측이 공개한 표준작업지도서에는 작업 전 테스트캡이 낙하하거나 튕겨나가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절단작업 전에 크레인과 테스트 캡을 체결하고 작업을 수행하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크레인은 두 시간이 지난 후에나 도착했다. 안전 지침이 전혀 지켜지지 않은 채로 작업이 진행되었었던 것이다.
6일 뒤인 9월 26일, 이번엔 거제 대우조선소에서 하청노동자 지아무개씨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골리앗 크레인으로 10t짜리 선박용 블록을 내리던 중 신호수(지씨)가 블록에서 하차했는지, 걸쇄가 풀렸는지, 블록은 거치대에 고정이 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골리앗 크레인 와이어가 끌어 올려졌다. 걸쇄만 풀린 상태에서 크레인이 와이어를 끌어올리자 균형을 잃은 신호수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곧바로 블록이 넘어지며 깔렸다. 급하게 크레인을 철수시키려다 사람이 죽었다.
노동건강연대가 집계를 시작한 2005년 이래 2018년까지 현대중공업(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 포함)에서는 97명의 노동자가, 대우조선해양(자회사인 삼우중공업, 대우조선해양건설 포함)에서는 5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현대중공업은 노동건강연대, 민주노총, 한국노총, 매일노동뉴스가 매년 함께 선정하는 최악의 살인기업에 2015년, 2017년 두 차례나 선정된 영광스런 전례도 있다.
하청노동자를 죽이는 구조가 있다
이 두 사건은 조선소에서 일어난 사고라는 점, 현장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이외에도 사망한 두 노동자가 모두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라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이윤을 위해 작업공정을 외주화하는 과정에서 위험이 증가하여 발생한 사건인 것이다.
금속노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본부는 이 가스저장탱크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을 휴직시키고 하청업체에게 공정을 떠넘겼다. 해양사업본부의 한 관계자는 “정규직 일하는 게 뻔하니 맨아워(Man Hour, 노동일)가 더 들어가게 되고 정규직을 시키면 오히려 손해가 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청업체 (주)원양은 후려쳐진 단가로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비용을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크레인을 부르지 않고 작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노동자들은 위험의 한복판으로 내몰렸고, 한 하청노동자가 사망에 이르렀다.
대우조선소에서 죽은 하청노동자 지씨는 지난해 8월까지 7년동안 (주)성동조선해양에서 근무했으나 조선업 불황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인해 희망퇴직 당했다. 퇴직 이후 생계에 어려움을 겪던 그는 지난 7월 대우조선해양의 사내하청업체 (주)건화의 재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입사하게 된다. 그가 건화에서 맡게 된 업무는 성동조선에서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크레인 신호수’였다. 구조조정은 지씨로 하여금 7년간 하던 일을 더이상 못하게 만들었고, 지씨는 전혀 새로운 일에 몸을 적응시켜야만 했다. 그리고 세달 뒤 그는 10t짜리 블록에 깔려 사망했다.
죽음의 위협이 하청노동자에게 더욱 가까이 있다는 사실은 2018년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조사위원회(조선업 국참위) 최종보고서 및 2019년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김용균 특조위) 최종보고서에서 밝혀진 바 있다.
이 두 보고서는 공통적으로 다단계 하청 구조가 실제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위험을 더욱 증폭시킨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중대 재해 사건 발생 시 원청은 처벌받지 않거나 미약한 행정처분만 받게 되고, 따라서 그 책임 소재는 모호해진다. 그러는 와중 현장 안전 관리는 허술해진다. 현장 작업자의 노동환경 개선 요구는 다단계 하청구조의 벽 앞에서 멈춰선다. 반면 원청의 작업지시는 원/하청의 벽을 뚫고 산업안전보건법을 무시하고 안전 지침을 무효화한 뒤 현장 작업자에게 직접 도달한다.
뿐만 아니라 지난 9일 국정감사에서 이용득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9년 5월까지 조선업종에서 중대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총 116명이었는데, 그중 98명이 하청노동자였다.
노조 측에서는 현장 안전관리점검에 하청업체 노동자도 참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꾸준히 요청해왔다. 그런데도 고용노동부의 특별안전관리점검에는 원청 노동자(현대중공업 노조)만이 참여 가능하다. 실제로 죽어나가는 건 하청노동자들인데 자신이 죽게될 지도 모를 일터를 점검조차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도대체 어떤 의미인 것일까.
반면에 현대중공업에서 97명이 죽어가고 대우조선해양에서 50명이 죽어가는 동안 원청의 대표는 단 한번도 기소되지 않았다. 심지어 올해 초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사망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동일공정에 한해서만’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게끔 개악되었다. 노동 환경을 결정하는 최종결정권자는 반복되는 죽음을 방기한다 해도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는다. 전면 작업중지권을 확대하고 기업과 기업주를 강하게 처벌하지 않는 한, 그리고 노동 환경 개선 과정에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는 한 노동자의 죽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반복되는 죽음을 멈추기 위하여
김용균 특조위 보고서는 1명의 하청노동자가 늘어날 때마다 0.75명의 산재 피해 노동자가 늘어난다고 보고했다. 조선업 국참위 보고서는 명시적으로 “다단계 재하도급의 원칙적 금지”를 제안하고 있다. “이렇게 비용절감을 위해 공기에 쫓기는 가운데 사내협력업체의 본공과 계약직 그리고 재하청 노동자들에 의존하여 공정을 진행하면서 부지불식 간에 생산이 우선하게 되고 안전은 점차 중요성이나 작업에서 고려할 절차나 요건에서 밀려나게 되는 경향을 가진다”는게 그 이유이다.
그러나 이 두 보고서가 밝힌 사고 예방 대책 및 권고안은 전혀 시행되고 있지 않다. 기업에겐 굳이 이 권고를 수용해야 할 이윤동기가 없다. 정부는 권고의 내용을 강제할 어떤 조치도 행하고 있지 않다. 우리 모두가 사람을 죽지 않게 할 방법을 알고 있는데도 기업과 정부만이 나몰라라 하고 있다.
이번 두 사건 이후 시민사회에서는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문재인 정권의 노동자 생명안전 제도 개악 박살! 대책위원회(약칭 위험의 외주화 금지 대책위)’를 발족했고, 오는 16일 오후 7시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당신의 일터는 무사하신가요?’ 문화제를 개최하기로 했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죽음을, 예방할 수 있는 사고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훈은 지난 9월 24일 김용균 투쟁 백서 <김용균이라는 빛> 발간 기념 북 콘서트에서 “죽음의 숫자가 너무 많으니까 죽음은 무의미한 통계숫자처럼 일상화되어서 아무런 충격이나 반성의 자료가 되지 못하고 이 사회는 본래부터 저러해서, 저러한 것이 이 사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여기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통계의 숫자는 그저 숫자로만, 원래부터 그런 숫자로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삶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숫자는 하나씩 늘어난다. 즉, 그곳에 삶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마지막 지표가 바로 숫자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다시 통계의 숫자로부터 숫자로 대체되어버린 삶의 자리를 되찾아 가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