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빈|노동건강연대 활동가

 

대학생 때였습니다. 방학이면 친구들이 하나둘씩 공장에 알바를 하러 갔었습니다. 다음 학기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요. 봉제나 제조업 공장에서 두 달간 빡세게 일하면 400만원 정도를 벌 수 있었기에 다른 알바 자리보다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못 마땅히 바라보던 한 선배가 “너네 그런 데서 일하지 마.”라고 조언해준 적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한국인들 일하는 곳에서 일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죠.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더라도 업장에 절반 이상이 외국인 노동자라면 바로 도망치라고 했습니다. 내국인이 적은 업장은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임금체불도 많고 다치는 사람도 많다는 게 그 이유였죠.

그게 10년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 선배는 조금은 인종차별적인, 그리고 현장 노동을 하찮게 보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이 조언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닙니다. 이주노동자가 접하게 되는 노동환경은 실제로 위험이 편재해 있고, 지금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표면적인 차원에서 위험은 추락, 협착, 붕괴, 질식, 감전, 화상, 동상 등의 이름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 이름들은 실제 일하는 사람들의 몸이 부서지고 망가지는 순간을 묘사하는 것 이외에 다른 사실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왜 일하는 사람들이 떨어지고 끼이고 깔리고 숨이 막혀 죽거나 다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단어들의 나열은 현상을 묘사하기만 하며, 그들을 그저 불운한 사람으로만 만들어버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어들의 이면을 살필 수 있는 지성이 있습니다. 즉, 사람이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원인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방할 수 있습니다.

노동건강연대에서는 2019년 9월 25일 “이주노동자가 처한 위험과 현실”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진행했습니다. 이 특강에서는 한국인 노동자보다 이주노동자가 왜 더 위험에 노출된 채 일할 수밖에 없는지를 발제와 대담을 통해 풀어나갔습니다. 이날 이야기된 내용의 핵심은 고용허가제라는 제도가 위험한 노동환경을 전혀 개선하지 않아도 되게끔 사업주를 위한 방패막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왼쪽부터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활동가, 서울대 보건대학원 이주연 선생님,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 사진 출처 : 노동건강연대

고용허가제는 어떻게 위험을 재생산하는가?

이날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계신 이주연 선생님께서 발제를 짧게 해주시고, 이후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지구인의 정류장’이란 공간의 김이찬 대표, 노동건강연대의 박혜영 활동가, 이주연 선생님의 대담이 이어졌습니다.

이주연 선생님은 이주노동자가 처한 위험이 비단 그들만의 위험이 아니라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곳은 예전에는 정주노동자들이 일하던 곳이었어요. 지금은 그 직장에서 구인을 못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주노동자들이 없다면 그 자리는 또 누가 가게 될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만의 위험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어요.”

그런데 문제는 일터에 상존하는 이 위험들이 고용허가제 때문에 도저히 개선될 전망이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고용허가제라는 제도의 핵심은 노동자의 직장 선택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입니다. 이주노동자는 고용노동부가 허가한 특정 업·직종, 특정 사업장에서만 일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업주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여합니다. 이주노동자는 고용노동부가 지정한 사업장에서 지정한 기간 동안만 일할 수 있으며, 근무지를 이탈하거나 3개월 이상 미취업 상태로 있을시 미등록, 즉 이른바 ‘불법 외국인’이 됩니다. 그런데 근무지 이탈 신고는 사업주가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또 취소할 수 있습니다. 멀쩡히 잘 근무하고 있는데도 사장 마음에 안들면 언제든지 미등록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임금을 체불하고 폭행을 일삼는 등 사업주가 명백히 악질인 경우에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요청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가 재취업하기 위해서는 고용노동부의 알선을 거쳐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등록이 됩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3일에 한 번씩만 문자로 사업장 한 군데를 안내해 줍니다. 사업주가 그를 고용하지 않으면 또다시 3일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취업처를 찾지 못한 채 3개월이 지나게 되기도 합니다. 미등록이 되는 거죠. 혹은 그 사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임의의 사업장에서 일하게 되면 또 미등록이 됩니다. 운 좋게 3개월 내에 이직하게 되더라도 이전보다 더 나은 곳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당신이라면 이런 제도적 구속 안에서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아니, 선택을 할 수나 있으신가요?

이주노동자는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 돈을 계속 벌기 위해, ‘불법외국인’이 되지 않기 위해 늘 불안에 떨며 죽음에 이를지도 모르는 노동환경과 작업지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원치 않는 이유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기가 원해서 불법이 되는 이주노동자는 없습니다. 거꾸로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이 비자를 받고 외국에서 살게 됐어요. 근데 불법체류자가 되고 싶습니까? 쫓기는 삶이 될 거잖아요.” 김이찬 대표가 이날 한 말입니다.

이주연 선생님이 이날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이주노동자 중 상대적으로 자유로이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중국 동포들에 비해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의 ‘치명률(산재사고 중 사망에 이르는 정도)’은 1.8배나 되었습니다. 2017년 기준 전체 노동자 중 등록 이주노동자는 2.3%인데 반해, 전체 산재사망자 중 9.4%가 이들이었습니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전체 노동자 산재율은 감소한 반면, 이주노동자 산재율은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즉, 실제로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업장의 위험요소를 꾸준히 유지하는 데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인 것이지요.

게다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장에서 사망 사건이 발생해도 사업주는 벌점을 1점, 최대 2점밖에 받지 않습니다. 이주노동자 1명을 고용하면 최대 30점을 받는데 말이지요. 이런 제도적 배경은 사업주에게 굳이 돈을 들여 위험을 예방할 조치를 취하는 일을 쓸모없는 일이라고 여기게 만듭니다. 이렇게 고용허가제는 위험을 재생산하는 데에 혁혁한 공로를 쌓고 있습니다.

 

2009년 사업장이동 가능조건이 일부확대되기 전, 사업장을 이동할 수 없는 이주노동자의 치명률은 1.8배 더 높게 나타납니다. 사업장 이동 금지를 골자로 하는 고용허가제가 노동자의 건강권에 미치는 영향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처 : 이주연 선생님의 PPT 자료.

2007년부터 2014년 사이 전체 노동자 산업재해율은 감소하였으나, 이주노동자 산업재해율은 오히려 증가하였다. 출처 : 이주연 선생님 PPT 자료

청소업체 비용보다 저렴한 이주노동자의 목숨값

2019년 9월 10일 영덕의 ㈜수성수산에서 발생한 기업살인 사건을 들여다보면 이주노동자를 구속하는 차별적인 제도가 어떻게 그들의 목숨까지 앗아가게 만드는 위험이 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수성수산은 10명이 근무하던 영세한 사업장이었습니다. 오징어 내장을 빼낸 뒤 세척하여 오징어 젓갈을 만드는 공장입니다. 그런데 그날, 공장 지하탱크의 배수관이 막혔습니다. 오징어 내장을 따로 분류해 폐기하기는 하지만, 세척과정에서 내장 일부가 배수로로 흘러들어가는 일은 막을 수 없기 때문이죠. 그렇게 8년 동안 쌓인 내장이 배수관을 막았습니다.

사장은 이주노동자에게 배수관을 뚫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청소업체를 부르기는커녕 마스크도 지급하지 않고 그를 지하탱크로 내려보냈습니다. 탱크 안에는 8년 동안 부패한 오징어 내장에서 나온 유독가스가 가득차 있었습니다. 먼저 내려간 1명이 소식이 없자 추가로 3명을 더 내려 보냈습니다. 그날 세 사람이 죽고, 병원에 후송된 나머지 한 사람도 다음날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미등록 이주노동자였고, 노동환경을 선택할 권리가 박탈된 상태였습니다. 생계에 쫓겨 위험을 무릅씁니다. 노동환경이 날 죽일지도 모르는 곳이라 하더라도 사장의 지시에 따라 일을 해야 합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게 되는 위험을 회피할 권리는 그들에게 없습니다. 청소업체를 부르자고 건의해 봤자 추방시킨다는 협박과 물리적 구타가 돌아올 게 뻔하기 때문이죠.

사업주는 사과하려는 태도는 일절 보이지 않고서 유족들에게 합의를 종용했습니다. 막 한국에 와 경황이 없는 유족들과 회사 기숙사에서 속전속결로 합의를 본 것입니다. 한국에 가족이 있는 베트남 출신 노동자 팜반따오씨의 유족만이 합의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현재 사업주는 구속기소된 상태인데,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구경북지역 연대회의의 최선희 집행위원장에 따르면 사업주는 경찰서에서도 유가족들에게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우겼다고 합니다.

영덕 수성수산은 이번 사고로 4명이 죽었으니 사업장 평가에서 벌점을 2점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죽은 자리에 다른 이주노동자를 고용한다면 최대 30점의 가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죽음에 이를지도 모를 노동환경은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같은 자리에 다른 사람이 들어올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의 목숨 값은 청소업체를 부르는 비용보다 더 저렴해집니다. 최선희 집행위원장은 현재 포항 시청에 비슷한 수산가공업체 폐기물 저장 탱크 관리 실태를 전수 조사하라 요구해 놓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포항시나 영덕군이나 미적지근한 반응만을 보이고 있습니다. 같은 유형의 죽음은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사진 출처 : KBS 뉴스 화면 캡처

인간을 불법으로 만드는 이상한 제도, 누가 고쳐야 할까?

이주노동자는 오늘날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구성원입니다. 농촌에서는 이제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소리가 나옵니다. 제조업 공장, 건축 현장에서도 이주노동자는 회사에게 이윤을 만들어주는 아주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혹은 현재 하고있는 일이 비자가 허락하지 않은 것이라는 이유로 다양한 차별과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위험은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기까지 합니다.

특히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은 너무나 가혹합니다. 그들은 늘상 불안에 떨며 살고, 위험의 목전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특강에서 김이찬 대표는 “저는 미등록 비율이 높아지는 것도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부가 유일한 중개자거든요. 알선한 일자리가 너무 위험하고 계약도 하나도 안 지키는 곳인데 불구하고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고용허가제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하고 노동환경의 위험요소를 개선하지 못하게 만드는 제도라는 사실에 대해 정부가 책임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주연 선생님 역시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이동금지제도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하고 있어요. 이것을 정부가 모를 리가 없습니다.”라며 정부의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이주연 선생님은 우리들에게도 인식의 전환을 촉구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건 ‘그러게 왜 미등록으로 살아, 왜 불법으로 살아’가 아니라 ‘무엇이 이들을 불법으로 만드는 거지?’인 것이에요.”

일터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죽음과 부상이 반복될 때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을 의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개인적이거나 기계적인 차원이 아니라 구조적인 차원에서 찾아야 합니다. ‘불법’ 인간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양산하고, 그럼으로써 그들이 일하는 환경에 산적한 위험요소들을 방치하게끔 만드는 제도. 그것이 바로 이주노동자가 처한 위험의 구조적 원인입니다.

2019년 10월 20일, 광화문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시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이주노동자 대회가 열렸습니다. 또한 아시아 직업 환경 피해자 권리 네트워크(ANROEV, Asian Network for the Rights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Victims)라는 국제 연대기구 대회가 지난 10월 27일부터 29일까지 한국에서 개최되었습니다. “기업 살인 이제 그만(No More Victims)”이라는 이 대회의 슬로건이 우리들의 구호가 되고, 우리들의 노동환경을 안전하게 만드는 힘이 되길 바랍니다.

2019년 10월 20일 토요일, 이주노동자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고 있다. 이날 이주노동자 대회에서는 고용허가제 폐지,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폭력적 단속 추방 중단 등 다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사진 출처 : 노동건강연대

2019년 10월 27일-28일 서울대 호암회관에서는 아시아 직업 환경 피해자 권리 네트워크(ANROEV)가 진행되었다. 이 양일간 “기업 살인 이제 그만”이라는 구호 아래 아시아 22개국의 산재 피해자, 활동가, 화학물질 피해자 등이 모여 “이주노동자의 안전보건”, “위험의 외주화”, “대기오염과 시민 건강”, “산업단지와 지역 사회 건강”, “청소년/인턴 노동과 건강”, “환경참사”, “가습기 살균제 및 라돈 참사”, “과로사와 과로자살”, “전자산업과 안전보건” 등의 주제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진행되었다. 사진 출처 : 노동건강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