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곤 가스는 무해하다, 위험한 건 회사다
고성하이화력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죽은 노동자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2019년 10월 4일 고성하이화력발전소 건설 현장 배관 안에서 49세 노동자 주모씨가 숨이 멎은 채 발견되었다. 배관 내부엔 아르곤 가스로 가득 차 있었고, 산소 농도는 배관 입구 부분이 8.5%, 바닥 부분이 4%였다. 산소농도가 8%이하로 내려간 상태에서 8분 이상 호흡하면 100% 사망에 이르고, 산소 농도가 6%이하로 내려가면 40초 이내에 혼수상태에 빠진 뒤 사망한다.
발견 당시 주씨는 호흡은 멎었지만 맥박은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응급치료사는 20분이 지난 뒤에야 도착했다. 현장에서는 그를 살려내려 심장 제세동기를 사용하려 했지만 고장나 있었다. 때문에 이 노동자의 정확한 사망 시점은 현장에 있던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하해성 건설플랜트노조 정책국장에 따르면, 주씨가 죽은지 며칠이 지난 후, 고성하이화력발전소의 시공사 SK건설은 주씨의 아들과 현장 답사를 했다. 유가족은 SK건설에 도대체 산소측정기를 왜 지급하지 않았냐고, 얼마나 비싼 물건이냐고 물었다. SK건설 관계자는 “이럴 줄 알았으면 현장에 전부 지급할 걸 그랬습니다”라며 멋쩍게 대답했다고 한다. 할 수 있는데 안했고, 사람이 죽었다.
게다가 현장을 조사한 근로감독관은 밀폐공간 업무 매뉴얼만 조사했다. 동료 노동자들과 건설플랜트노조는 제세동기가 왜 고장나 있었는지, 현장 응급치료사가 왜 20분이 지난 뒤에야 도착했는지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
SK건설은 노동건강연대가 “기업에 의한 살인” 집계를 시작한 2005년부터 2018년까지 노동자 66명을 죽인 기업이다. 2018년 라오스에서 SK건설이 부실공사로 지은 댐이 붕괴되어 죽은 라오스 사람 49명까지 더하면 115명이다. 올해 5월에도 경기도 이천의 SK하이닉스 공장 증축 현장에서 하청 노동자 1명을 추락시켜 죽게 만들었다. 2019년 6월 SK건설은 국토부가 선정한 상호협력 우수 건설사로 선정되었다.
이번 사건으로 죽은 주씨는 SK건설의 하청업체인 (주)성도이엔지 소속 노동자였다. 2018년 5292억원의 매출을 낸 성도이엔지는 2019년 9월 18일에도 용인에서 (주)STI의 반도체 공장 신축 현장에서 한 노동자를 죽였다. 공교롭게도 이 공장이 입주한 반도체 클러스터 단지는 SK하이닉스와 SK건설의 주도로 만들어지고 있다. 또한 지난 2016년 SK건설이 수주한 한국석유공사의 울산석유비축기지 지하화 공사의 하청을 도맡아 작업하던 중 배관 폭발로 노동자 2명을 죽게 만들기도 했다.
아르곤 가스는 무해하다, 위험한 건 회사다
주씨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아르곤 가스는 2013년 5월 10일 현대제철에서 노동자 5명을 죽게 만든 기체이기도 하다. 당시 현대제철 대표이사는 해명이랍시고 “아르곤 가스는 인체에 무해하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해 말하기도 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아르곤은 무색무취의 기체로 그 자체로는 인체에 무해하다. 공기 중에도 섞여 있으며 들이마신다고 해도 인체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다만 공기보다 1.1배 더 무거워 환기가 되지 않는 공간에서는 공기를 위로 밀어내어 산소가 부족해진다. 이러한 아르곤의 속성을 응용해 용접 작업시 용접부위가 산소와 만나 녹슬지 않게 하기 위해 아르곤 가스를 주입하는 공법이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산소 부족이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그러므로 아르곤 가스를 사용한 현장에서는 산소측정기를 이용해 현장의 공기가 어떤 상태인지를 확인해야한다. 주로 배관이나 밀폐공간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에게 산소측정기는 필수다.
그러나 회사는 지급하지 않는다. 참고로 현장에서 사용하는 산소측정기는 30만원 가량이다. 회사는 노동자에게 들이는 돈을 최대한 줄이고 싶어 한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위험을 알고 있더라도 회사에 요청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라 증언한다. 상명하복 문화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어떤 요구는 해고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하여 노동자는 ‘내가 조심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건설 현장 등에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 형태의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누구에게 요청해야할지도 모호하다. 현장의 설비를 책임지는 회사와 자신을 고용한 회사가 달라 권한과 책임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 무해한 무색무취의 기체는 부지불식간에 위험한 것으로 돌변한다. 노동자는 자신이 이유도 모른 채 정신을 잃는다. 노동자의 위험은 회사가 만들어낸다. 30만원 아끼려고 말이다.
이미 정부도 알고 있었던 죽음의 외주화
앞서 언급한 2013년 현대제철 사건은 당시 큰 사회적 관심을 모았다. 노동건강연대도 현대제철이 있는 충남 당진으로 내려가 지역 노동자들과 함께 현대제철의 대표이사를 고발했다. 당시 현대제철에서는 노동자가 계속 죽고 있는 중이기도 했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조사한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 특별감독 결과 보고서에 이목을 집중했다. 놀랍게도 고용노동부는 “전로 내부 내화벽돌 축조 작업업체와 아르곤 가스 배관 연결 작업업체를 체계적으로 통합·관리하지 못한 게 근본적인 원인”이라 지적했다.
당시 노동부 방하남 장관은 “원청업체의 관리감독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선진화”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즉, 정부는 다단계 외주화 작업 방식이 불러온 분할된 노동 환경이 노동자를 죽인 근본 원인임을, 그것이 ‘후진적’ 제도이며 그리고 그 책임이 원청에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현대제철은 이 사건 이후 2013년 10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노동자 5명을 더 죽였다. 2013년 12월 5일에는 현대제철 대표이사가 대국민 사과까지 발표하였다. 하지만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 점검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고 말한 바로 다음날인 12월 6일 또다른 하청 노동자가 죽었다. 현대제철은 2014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된다.
기업의 필수 업무를 외주화 하는 과정에서 노동자의 생명에 대한 위협이 급격히 증가한다는 사실은 어느덧 오늘날 한국에 사는 우리들에게 아주 익숙한 명제가 되었다. 우리는 2016년 구의역 김군, 2017년 삼성중공업 하청 노동자들, 2017년 STX 하청 노동자들, 2018년 김용균의 죽음을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2019년 김용균 특조위 최종보고서에서는 외주노동자 1명이 늘어날 때마다 산업재해가 0.75회 증가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는데, 놀랍게도 2013년의 정부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정부 관계자들은 역시 우리 일반 시민들보다는 더 똑똑해 이렇게 한발 앞서 나갔었나보다. 우리들보다 더 많은 노동자의 죽음을 봐 왔고 조사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외주화된 사업에 투입되는 노동자가 더 쉽게 죽거나 다친다는 사실을 ‘본래 그러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번 사고에 이르기까지 동료가 죽은 자리에서 다시 일하다 죽는 노동자들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을리 없다.
현재 고성하이화력발전소 건설 현장에는 해당 배관 공사에 한해 부분적으로 작업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아르곤 가스를 사용한 용접 작업은 다른 공정에서 여전히 많이 진행되고 있다. 바로 옆에서 동료가 죽는 걸 본 노동자들이 그가 하던 업무를 계속 이어받아 하고 있다.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환경은, 다단계로 외주화되어 분할된 노동 환경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이번 달에만 3명이 죽은 민간화력발전소 건설현장
다른 한편 2019년 10월에는 고성하이화력발전소와 같은 민간화력발전소를 짓다가 노동자 2명이 더 죽기도 했다. 지난 10월 1일 삼성물산이 짓고 있는 강릉안인화력발전소 공사에 참여하는 바지선에서 H빔을 옮기던 크레인 갈고리에 가슴을 맞아 노동자 1명이 사망했다. 또한 10월 19일 강릉안인화력 건설 현장에서 낙석에 맞아 정신을 잃은 노동자가 병원에서 숨졌다.
SK건설과 삼성물산은 모두 민간화력발전소의 건설을 수주한 회사이자 동시에 민간화력발전법인의 주인이기도 하다. SK건설은 고성하이화력발전소의 법인 고성그린파워(주)에 지분 10% 납입을 약속했다. 삼성물산 역시 강릉안인화력발전소의 법인인 (주)강릉에코파워의 2대주주이다. 즉 SK건설과 삼성물산은 발주사라는 가면을 쓰고 노동자에게 공기단축 압박을 마음껏 넣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SK건설은 9월 16일 공정 목표 달성 100일 작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20일만에 그 현장에서 노동자가 죽었다. 공정 목표를 재촉하는 와중에 하청 노동자는 어디에 어떤 유해요소가 있는지 전해듣지 못한 채 조용히 죽어갔다. 정신 없이 돌아가는 현장의 어디에서 어떤 위험 요인이 발생하고 있는지, 현장 감독자는 알지 못했다.
삼성물산의 경우는 SK건설처럼 가시적인 캠페인을 진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발전소 완공이 빨라지면 빨라질 수록 비용은 절감되고 이윤은 증가한다. 강릉에서 죽은 두 노동자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기업은 살인면허라도 발급받았나?
2013년 현대제철이 아르곤 질식으로 노동자 5명을 죽인 뒤 관계자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노동건강연대는 당시 현대제철을 직접 고발했기에 판결문을 받아볼 수 있었다. 현대제철에겐 5000만원의 벌금이 떨어졌다. 대표이사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안전보건관리 책임자인 생산 본부장에게는 업무상과실치사죄 및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위반죄로 징역2년에 집행유예3년의 판결이, 정비본부 팀장에게는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금고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이 내려졌다.
이 처벌은 당시 구미불산누출 사건 등 전국적으로 화학약품 사고에 예민하던 시기에 내려진, 이례적으로 강력한 처벌이었다. 기업에 의한 살인사건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기소된 기업들에게 부과되는 벌금은 평균 432만원이다. 노동건강연대가 직접 고발장을 쓴 사건 중에는 벌금 100만원으로 끝난 케이스도 많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 액수는 사람이 노동자라는 정체성으로 죽었을 때 기업에게 가해지는 처벌 현황이다.
SK건설은 현대제철보다 훨씬 더 경미하게 처벌될 것이다. 아마 법원은 그렇게 판단할 것이다. 흔하디 흔한 업무상과실치사상 사건, 산안법 위반 사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될 것이다. 사업주에게 고의는 없었다고 여겨질 것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사람이 죽을수도 있다는 게 법원의 태도다. 당연히 노동자는 계속 죽을 것이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기업은 무슨 살인면허라도 발급받은 양 사람들을 계속 죽여나가면서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사람을 죽였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티끌만한 벌금만 내면 끝이다. 현대제철은 2013년 13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아르곤 질식으로 5명을 죽이고 선고된 벌금 5,000만원은 2013년 매출의 0.00037%였다. 이게 과연 합당한 벌금인가?
SK건설에게 부과될 벌금은 얼마일까? 과연 2019년 매출 대비 퍼센테이지에 0이 몇개나 새겨질까? 2018년 매출과 평균 벌금 432만원으로 예측해 본다면, 지난해 매출이 6조4300억원 가량이었으니 0.000067%(소수점 이하로 0이 4개)라는 값이 나온다.
2013년 현대제철은 형식적으로나마 ‘대국민 사과’라도 했다. 반면 SK건설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며 반대편에서는 여전히 공사기간 단축을 재촉하며 노동자의 위험을 증폭시키고 있다. SK건설 사장 안재현은 2019년 신년사에서 “한 건의 사고가 (SK건설의) 생존과 성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제발, 진정으로 그렇게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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