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5명 사망’ 위험의 외주화가 만든 승강기 잔혹사
티센크루프 하청 노동자 엄씨는 왜 죽어야 했는가
엘리베이터는 없으면 크게 불편한 만큼 우리들의 일상에 자리 잡은 하나의 이동 수단이다. 몸의 거동이 불편한 이들, 오래 걸으면 다리가 아픈 이들부터 음식을 배달하고 택배를 전해주는 이들까지. 특히 사회적 약자를 세상과 연결하는 데 큰 공헌을 한 기술이다. 위아래로 연결돼 모든 층을 원활하게 오가며 사람들을 이동시켜주는 엘리베이터는 이제 고층 건물만이 아니라 2층짜리 건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편리함을 전하기 위한 그 기술까지 가는 길에, 이 엘리베이터 뒤에서 사람이 죽었다.
2019년 10월 12일 10시 30분경,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의 5층짜리 호텔 리모델링 공사장에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위한 사전 작업을 하던 하청 노동자 엄아무개(48)씨가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엄씨를 포함한 3명의 노동자가 작업하고 있었다. 2명이 건물 1층에서 자재를 관리하는 사이, 엄씨는 혼자 작업 발판용 비계를 설치하기 위해 엘리베이터 승강로 내부 4층(높이 약 12m) 부분으로 이동하였다. 이어 엄씨가 작업을 진행하던 도중 비계를 떠받치고 있던 부분이 무너졌고 엄씨는 1층 바닥으로 추락했다. 사고 이후 고용노동부는 해당 작업에 대해 부분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엄씨가 설치하려고 했던 비계(飛階·건설 현장에서 쓰는 가설 발판 구조)는 공사 현장의 높은 곳에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 가설물이다. 이 철골 발판 덕분에 현장 노동자들은 작업 공간을 확보한다. 그러나 비계를 설치하는 작업은 건설 현장에서 ‘최전선’에 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사고를 당할 위험이 높은 작업이다. 길이 없는 허공에 길을 만들어나가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험한 만큼 노동자를 위한 안전 관리가 중요한 작업이다.
‘사고 없는 우리 현장, 보호구 착용부터.’ 지나가다 마주치는 공사 현장에는 노동자가 안전 수칙을 지키면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내용의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쓰여있다. 당일 엄씨는 보호구를 착용했고 안전벨트 역시 라이프 라인에 설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회사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도 사고는 일어났다. 안전벨트와 라이프 라인이 제대로 결속되지 않았던 것이다. 현장에 이를 지적해줄 관리·감독 인력 한 명 있었더라면, 또 추락 사고에 대비하여 승강로 바닥에서 2m 위에 설치하도록 되어있는 안전 그물망이라도 있었더라면 엄씨는 살 수 있었다. 작업 현장에서 우선순위가 되어 마땅한 현장 노동자의 목숨이 또다시 안전에 대한 비용 부담을 줄이는 과정에서 꼴찌로 밀려났다. 엄씨는 곧바로 바닥으로 떨어졌고,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끝내 숨졌다.
이번 엄씨가 사고를 당한 공사의 계약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호텔의 건물주가 S건설에 건물 전체 리모델링 공사를 맡겼고, S건설은 철거, 전기통신, 소방, 마감, 엘리베이터 설치 등의 여러 공사를 각각 분리하여 발주하였다. 그중 엘리베이터 설치공사는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이하 티센)와 W업체가 공동으로 맡게 되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설치를 담당한 W업체가 공사 물량이 많아 공사기간 내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완료할 수 없다고 했고, 해당 설치 공사는 다시 S업체에 구두로 넘겨졌다.
엄씨가 소속되어 있는 R업체는 티센으로부터 설치공사 전 작업발판용 비계를 설치하는 업무를 받았다. R업체는 티센과 연간 계약을 맺고, 비계 작업발판 설치 및 자재를 옮기는 작업 등의 엘리베이터 설치공사 이전 단계의 시공을 진행하는 승강기 설치 중소업체다. R업체와 같은 티센의 하청업체는 티센으로부터 직접 업무와 돈을 받으며 관리된다. 사전에 대기업 제조업체가 정한 공사 단가를 기준으로, 공사 건수에 따라 공사비를 받는 것이다.
하청업체의 사업장과 시설, 장비 등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관리 권한은 원청에 있다. 그러니 티센이 준 작업을 하던 R업체의 노동자 엄씨가 일하던 현장의 안전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일어난 사고는 당연히 원청인 티센의 책임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엄씨의 사고 하루 전 10월 11일, 티센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자신들이 작업을 준 업체의 노동자는 자신들의 책임 범위 밖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주장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답은 승강기 산업 구조에서 횡행하고 있는 ‘공동 수주’와 불법 하도급에 있다.
편법으로 부활한 불법 하도급, ‘갑-을’은 여전히 숨어있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승강기 설치 공사는 기본 하도급이 불가능하다. 승강기 발주를 대규모로 묶어 가져가 버리는 대기업 제조업체의 횡포를 막아 독립적으로 승강기를 제조하는 중소업체가 설 자리를 마련하고, 대기업 제조업체(원청)와 중소 설치업체(하청) 간의 불공정거래와 불법 파견을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개정 당시 대기업 제조업체는 현장에서 작업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사 수주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며 크게 반발하였다.
이러한 흐름에서 승강기 산업에 만연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공동수급’이라는 방식이다. 앞서 말한 티센과 W업체의 컨소시엄이 이에 해당한다. 공동수급은 대기업 제조업체와 중소 설치업체가 하나의 컨소시엄을 꾸려 공동으로 공사를 수주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러나 동등한 협력관계처럼 보이는 이 컨소시엄은 실은 한쪽에 매우 불리한, 기울어진 관계였다. 하도급 금지의 시도가 무색하게, 새로운 하도급이 발명된 것이다.
일단 수익 구조를 살펴보자. 행정안전부는 공동수급 계약을 맺은 업체들은 발주자로부터 각각 공사비를 지급받도록 정해놓았으나, 실제로는 발주자가 대기업 제조업체에 공사비를 넘기면, 대기업 제조업체가 이 공사비 중 일부를 각 중소업체에 분배한다고 한다. 한정애 의원실에 따르면 이 수익 배분은 대체로 대기업 85%, 중소 설치업체 15%로 이뤄진다. 한편, 설치와 같은 위험한 현장 업무는 중소업체로 몰린다.
이 공동수급과 병행되는 수많은 불법 하도급은 계약 및 시공과정을 한층 복잡하게 만든다. 여러 단계로 나뉘어 쪼개지는 승강기 설치공사의 작업은 컨소시엄 하에 둔 여러 하청업체와 그 하청의 하청(다단계 하청)에 주어진다. 또는 이번 공사의 S업체처럼 계약서에는 표기되지 않지만 구두로 계약을 한 하청업체에 맡겨지기도 하고, 공사 도중 해당 작업을 맡은 업체가 바뀌기도 한다.
기획재정부는 공동수급 계약서에 공사에 참여한 설치업체 전체와 각각의 서비스 단가를 명시하게 하고 있으나, 역시나 많은 경우 대형 제조업체는 계약서에 이를 표기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대형 제조업체가 중소 설치업체에 ‘빈 계약서’를 보내고, 이를 받은 업체는 각 계약이 어떻게, 얼마에 이루어졌는지도 모르는 채 계약서에 도장만 찍고 공사를 진행하는 일도 흔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건설 현장에서 각종 사고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공기단축’은 기본으로 일어난다. 계약하고 공사를 하는 과정 그 어디에도 R업체와 현장 노동자들과의 소통은 없다. 대기업 제조업체가 일방적으로 정한 빠듯한 공사 기한이 중소 설치업체에 전달된다. 중소 설치업체의 입장에서는 납득이 가지 않아도, 새로운 일감을 받지 못하거나 매일 지연 수수료를 납부하지 않으려면 일단 해야 한다. 당시 엄씨를 포함한 노동자 세 명은 비계 설치 및 해체 작업으로 약 40만 원을 받았는데, 정해진 기간 안에 작업을 완료하지 못하면 매일 계약금의 30%를 현금으로 납부하게 되어 있었다. R업체가 맡은 승강기 설치공사 전의 작업(비계 설치)의 경우는 하루 안에 끝내는 것이 관행이다.
불이익과 더불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많이 설치해야 손해가 없으리라는 다급함 또한 작용한다. 수익을 맞추기 위해 무리한 작업을 진행하다가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나 R업체와 같이 대기업 제조업체가 공사 건마다 중소업체에 줄 액수를 사전에 정해놓은 구조에서는, 설치하는 사람을 많이 쓰고 공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인건비 부담이 커지게 된다. 따라서 중소업체는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대한 빨리 공사를 끝내고자 한다. 열악한 수익 구조 속에서 안전 관리는 따져볼 틈 없이 ‘빨리빨리’를 외치는 현장이 만들어진다.
‘공동으로 책임진다’는 취지의 이름과는 다르게, 공동수급의 돌아가는 꼴은 불법 하도급을 연상시키는 영락없는 ‘위험의 외주화’였다. 계약 및 시공과정이 복잡해질수록, 동시에 계약서에 많은 정보가 생략되어 있을수록 불법 하도급이 행해졌는지는 불분명해지고, 또 사고가 났을 때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밝히기도 어려워졌다. 이렇게 현장에서 명확했던 갑과 을의 관계가 완벽히 가려진다. 그래서 티센은 당당하게 말한 것이다. 각 협력사는 티센과 동일한 협상력을 갖는 동등한 관계이며, 그렇기에 설치의 구체적인 작업 내용과 안전 조치는 해당 업체의 몫이라고.
기업의 진정한 변화는 기업에 의한 살인을 끝내는 것이다
이번에도 티센은 엄씨의 죽음을 R업체의 책임으로 미룰 가능성이 크다. 언제나 원청은 자신의 회사에 직접적으로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면 책임질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또 이번 경우, 엄씨가 맡았던 업무는 승강기가 들어오기 이전 단계라는 애매한 시간대이다. 이를 빌미로 티센은 엄씨가 맡았던 작업을 ‘승강기 설치’ 과정이 아닌 공사 전체 과정의 일환으로 따져 S건설에 책임을 미루기도 쉽다. 추후에 이러한 공방이 이어지게 되면, 그곳에서 R업체는 티센에 엄씨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도의적 책임’이라도 말할 수 있는 컨소시엄에 포함된 업체도 아니며, 계약서에는 명시조차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2012년 티센의 노동자들이 잦은 구조조정과 동종 업계보다 열악한 수준의 임금에 반발하며 전면 파업에 돌입했을 때, 티센의 박양춘 전 대표는 전원 고용과 직원을 고려한 사내 분위기 조성으로 응하였다. 그의 말대로 회사 내부의 ‘변화’를 끌어내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만년 업계 3위였던 티센이 2위로 차지하게 되었고, 2017년의 매출은 2010년의 13배로 늘었다. 그리고 티센은 이러한 ‘일하기 좋은 기업’, ‘사회적 책임 실현’ 등의 시도들로 성공을 끌어낸 기업으로 널리 홍보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승승장구 뒤편에는 소리 없이 신음하던 티센의 하청 노동자들이 있었다. 2018년 3월 28일 이마트 다산점에서 무빙워크를 수리하다 발판에 가슴이 끼여 사망한 이아무개(21)씨, 같은 해 10월 11일 부산의 한 아파트 승강기를 교체하다가 추락하여 사망한 김아무개(53)씨, 2019년 3월 27일 부산 한 아파트의 노후 승강기 철거 및 신규 승강기 교체공사 도중 추락하여 사망한 장아무개(34)씨와 이아무개(32)씨. 그리고 다치고 죽어도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을’들까지. 엄씨의 죽음은 이 죽음들의 연장선에 있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에게 직접 일을 준 누군가가, 노동자가 다치거나 죽지 않고 일할 수 있게 책임지라는 것. 하청이라는 이유로 만들어진 여러 상황이 얽혀 누군가가 억울하게 죽고 그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가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드는 일만은 막자는 것, 그뿐이다.
티센은 지금까지 편법과 불법을 계속 행해오며, 끝에 있는 누군가가 죽음으로 밀릴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확인했다. 그런데도 이 상태를 지속한다면, 이는 ‘기업에 의한 살인’으로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젠 티센이 변화를 증명하기 위해 하청 노동자를 죽이는 외주화 관행을 끊어야 한다. 현장에서 작업하는 노동자에게까지 닿는 ‘진정한’ 변화 말이다.
다른 대기업 제조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외국에 본사를 둔 엘리베이터 제조업체들은 본사에서는 지켰던 안전시스템, 가령 ‘시스템 비계'(기존 비계에 비해 규격화된 자재로 조립하여, 설치와 해체가 편리하고 무엇보다 안전성이 우수하다)는 물론, 추락방지망조차 설치하지 않았을 만큼 안전 관리에 소홀하다. 그렇게 5년 동안 12명이나 설치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이제 대기업 제조업체들은 더는 사람이 죽지 않고 일할 수 있게, 책임을 다하여 그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경영을 위해 힘써야 할 때이다.
정부도 공범이다
한편 하도급을 불법으로 막아도, 공동수급이 하도급의 다른 이름인 편법일 뿐이라고 법원이 판결을 내려도, 여전히 대기업 제조업체는 그늘에서 이를 고의로 반복하기도 한다. 이 그늘은 정부가 대기업 제조업체에 사람의 삶에 비해 너무나도 가벼운, 내지는 거의 눈감아주는 수준의 벌을 줌으로써 유지된다.
최규석 작가의 만화 <송곳>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여기서는 법을 어겨도 처벌 안 받고 욕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이득을 보는데 어느 성인군자가 굳이 안 지켜도 될 법을 지켜가며 손해를 보겠소?”
노동법을 잘 지키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회사가 한국에서 어떻게 적응하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장이다. 그렇다. 죗값보다 수익이 훨씬 크다면 언제라도 불법 하도급을 소환하려고 하는 대기업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정부도 하청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다.
소중한 만큼 무거운 하청 노동자의 목숨에 걸맞은 처벌을 위한 ‘중대 재해 기업처벌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러 차례 반복되어 왔기에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기업에 의한 살인’을 처벌하자는 법이다. 정부는 이에 응해 더는 어디에서도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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