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에 눈 감은… ‘부끄러운 건설강국’
작년 669명 사망… 노동자만 희생양으로
하도급 구조로 안전보단 비용절감 우선
관리감독 소홀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
2009-7-29
‘안전불감증’이라는 경고 자체에 둔감하다. 가족 단위 산책길 근처에선 안전장치 없이 대형 철골 구조물 공사가 이뤄지고, 시민들 머리 위로 타워크레인이 뱅글뱅글 돌아간다. 신축 고층 건물에서 인부들이 안전줄을 걸지도 않은 채 작업하는 풍경도 낯설지 않다.
지난 2월 노동자 3명의 목숨을 앗아간 판교신도시 터파기공사장 붕괴, 지난 6월 기사 1명이 숨지고 철도가 마비된 타워크레인 사고, 25일 인부 5명이 희생된 경전철 철골구조물 붕괴사고. 안전수칙을 지키고 장비 검사와 안전 관리·감독을 제대로 했으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세계적인 건설 강국’을 자부하면서 정작 안전에는 눈감은 현실이 계속되는 한 노동자들이 줄줄이 죽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27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지난 3월 현재 전국에서 벌써 건설 노동자 143명이 산업재해(업무상 질병 또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에는 전년도(630명)보다 6.2% 증가한 669명이 건설현장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전 산업부문의 산업재해 사망자 증가율이 2007년 2406명에서 지난해 2422명으로 0.7%에 그치고, 제조업 등 다른 업종에서는 오히려 줄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건설현장의 상황은 심각하다. 지난해 건설 현장에서 사고로 숨진 사람은 592명으로, 업무상 질병을 뺀 전체 사고 사망자 1448명의 40%를 차지했다.
건설업계에서는 건설현장의 사망자 숫자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통계는 산재보험 처리를 받은 사람만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건설노조 한 관계자는 “실제 사망자는 정부 발표보다 15∼20% 많을 것”이라며 “건설 현장에서 하루에 2명꼴로 희생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건설 노동자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공사기간과 예산을 줄이기 위해 ‘안전은 뒷전’으로 여기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종국 건설노조 안전국장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비용 절감이 우선되는 상황에서 안전수칙이 제대로 지켜질 리 없다”며 “무리해서 휴일에도 공사하다 보니 안전관리 감독을 맡은 원청업체 직원은 쉬고 일용직 노동자만 일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건설회사들이 안전수칙과 교육을 강화하더라도 안전에 둔감한 사회분위기가 몸에 밴 현장 근무자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공염불이다. 결국 당국의 강력한 단속과 처벌로 안전의식을 확립하는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단속은 물론 처벌이 솜방망이여서 안전 불감증을 키우고 있다.
이영록 건설산업연맹 정책국장은 “노동부의 산업안전 근로감독관 숫자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건설현장에 대한 지도 감독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노동부 인력으로 힘들다면 민간 차원의 ‘명예 산업안전감독관’을 둬서 안전 감독의무를 부여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이 국장은 이어 “호주나 독일에선 대형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그 업체는 업계에서 퇴출하는 시스템인데 우리는 업체 고의와 과실이 명백한 경우에도 처벌은커녕 벌금 아니면 기소유예인 정도”라면서 “‘몇 년 이하 징역’처럼 상한선이 아닌, ‘몇 년 이상’의 하한선을 정하는 등 산업안전보건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