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죽었는데 벌금 432만 원, 끝
[김용균의 죽음 1주기]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필요한 이유
노동자 산재 사망을 줄이기 위해서는 기업 경영의 우선순위와 자원 할당 구조의 변경이 필요하다. 그리고 변경을 위해서는 노동자 안전과 건강에 대한 기업 최고 경영자의 관심과 의지가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변화를 달성할 수 있을까?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을 데려다가 몇 번의 교육을 한다고 해서 이런 것이 바뀔 수 있을지.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면 기업 경영자 본인이 처벌받을 수 있고, 기업 경영에 타격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지. 의문이 이어진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 산재 사망에 대한 기업과 기업의 최고 경영자의 책임을 묻기 위한 활동이 지난 15년간 펼쳐져 왔다. 그 결과 처음에는 생경하다 여기던 많은 이들이 관련 제도의 필요성에 공감하기 시작했고, 법률가들과 학자들도 이러한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조금씩 논의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정부도 이러한 여론의 압력을 의식하고 정책의 필요성에 일부 동의하여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체계 내에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운동 진영의 요구를 담고자 노력하였고, 그 결과 작년 12월에 국회를 통과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시 관련 조항이 일부 담겼다.
그 결과 가중처벌 규정과 법인의 벌금의 최고액이 높아졌다. 하지만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 한계 때문에 실제 현실에서 법의 취지는 달성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것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아니라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라는 특별법이 필요한 이유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주목할 내용은 우선 △원청이 행해야 할 안전조치, 보건조치를 하지 않아 하청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책임이 있는 원청의 행위자 역시 같은 법에 따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바꾸었다. 이어서 △산재사고로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이가 형이 확정된 후 5년 이내에 다시 같은 죄를 범할 경우 그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하는 가중처벌 규정을 신설하였다. 또한 △위와 같은 죄를 범할 경우, 행위자를 처벌하는 것 외에 그 행위자가 속해 있는 법인에게 과할 수 있는 벌금형의 액수를 10억 원 이하로 상한을 규정하는 조항을 신설하였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이는 형벌과 별개로 200시간의 범위에서 산업재해 예방에 필요한 수강명령을 병행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을 아무리 뜯어고친다 한들, 앞서 언급한 문제의식을 현실화하기는 힘들다. 이는 산업안전보건법 자체가 가지고 있는 법적 한계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는 법률에서 아무리 처벌 상한을 높인다 한들 ‘경범죄’로 취급받고,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직접 행위자가 아닌 원청의 최고 경영자를 처벌할 수 없으며, 산업안전보건법상 양벌규정에 의한 법인 처벌 규정으로는 실제 재판에서 법인에게 높은 벌금을 부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차례차례 살펴보자. 우선 첫째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은 법 조항 내 최고 형량과 상관없이 ‘경범죄’로 취급되어 법원에서 형량이 높게 선고될 수가 없다. 이전 법에서도 현재 법에서도 최고 형량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이다. 그러나 실제 법원에서 이러한 정도의 형벌이 내려진 예가 없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이 대법원에서 제출받은 산안법 위반 사건 처리현황을 보면, 2009년부터 2019년 6월까지 1심 법원이 선고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6144건 중 징역·금고형이 선고된 사건은 35건에 불과했다. 징역·금고형 비율은 0.57%로 1%가 채 되지 않는다. 이전 자료지만 2016년 발생한 사망사고에 대한 평균 벌금액은 432만 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는 법원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는 ‘고의범’이 아닌 ‘과실범’으로, ‘작위범’이 아니 ‘부작위범’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죽이려고 의도해서 죽인 것이 아니고,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해서 죽인 게 아니고 무언가를 하지 않아서 죽게 만든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죄로 취급을 받는 한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아무리 최고 형량을 높게 규정한 들, 법원에서 실제 최고 형량에 가까운 판결이 내려지기는 힘들다.
이는 법원의 양형기준 문제가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목적이 산재 예방을 위해서 사업주가 이러저러한 것을 하도록 의무를 지우기 위한 법이지 특정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숙제를 안 한 것에 대해 엄벌을 하려면 숙제를 안 한 것이 사회적으로 ‘중죄’임이 먼저 규정되어야 하는데, 이것 없이 숙제 안 한 사람 엄하게 처벌하라고 형량만 높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다. 바로 이렇기에 노동자 산재 사망을 ‘기업에 의한 살인’으로 규정하는 특별법이 필요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대기업의 최고 경영자가 처벌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최고 형량을 높인다 한들, 그리고 설사 법원에서 높은 형벌을 내리는 데까지 간다 한들, 대기업의 최고 경영자는 이 법으로 처벌하기 힘들다. 이는 한국의 형법 체계가 ‘자연인’만이 범죄의 주체가 될 수 있고 처벌할 수 있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원칙에 따라 법 위반의 ‘직접적’ 책임이 있는 자연인만을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주가 행해야 할 안전상의 조치, 보건상의 조치, 원청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 등을 위반한 ‘자연인’이 원청의 경영자 또는 대기업의 경영자라는 사실을 근로감독관, 검찰이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자, 현장소장 등이 처벌받고, 사업주가 처벌받는 경우는 법인이 아닌 개인사업자인 영세사업장의 경우로 제한된다.
이러한 이유로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인한 산재사망 범죄를 5년 이내에 재범하면 가중처벌하는 조항 역시 ‘기업’ 혹은 ‘법인’ 대상 재범 여부가 아니라 ‘개인’ 대상 재범 여부이므로, 한 기업에서 같은 사망사고가 여러 번 발생했다고 해서 그 기업을 가중처벌할 수는 없다. 기업은 범죄 주체가 아니기에 법률 위반 행위가 누적되지도 않는다.
세 번째, 마지막 이유는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기업’이라는 조직 혹은 ‘법인’은 강하게 처벌할 수 없어서이다. 산업안전보건법 내에 ‘기업’ 혹은 ‘법인’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양벌규정에 의한 법인 처벌 조항이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법인이 법인에 속한 개인에 대해 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감독할 의무를 위반한 것에 대한 벌칙이기에 역시 과실범에 속하여 ‘경범죄’로 취급되고, 법 조문상 형량과 관계없이 높은 벌금형이 선고되기 힘들다.
이러한 취지를 반영하여 형사정책연구원은 자연인의 의무위반 행위를 매개로 법인 처벌이 이루어지는 것은 오늘날 거대화・복잡화・조직화한 기업의 위법행위 구조와 부합되지 않는다는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궁여지책으로 법인 제재의 다양화 관점에서 산재사망 범죄를 저지른 이에 대한 ‘수강명령’ 제도를 신설하였으나, 수강명령 역시 법인의 최고 경영자 등 책임 있는 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안전보건 조치 위반으로 인한 산재사망 범죄를 저지른 개인에게 병과하는 것이므로 현장소장 혹은 안전보건관리자가 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 실효성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라는 특별법이 필요하다. 산재사망을 유발하는 것을 범죄로 보고 또 중죄로 규정하는 조항을 담은 특별법이 필요하다. 개인뿐 아니라 기업 조직 자체를 처벌하는 조항을 담은 특별법이 필요하다. 그리고 조직의 범죄는 조직의 최고 경영 책임자에게 최종 책임을 묻는 조항을 포함하는 특별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은 산재사망 예방뿐 아니라 ‘기업 처벌’을 위한 사회적 논의의 시작점이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논의는 각종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도 치외 법권의 영역에서 전혀 처벌받지 않는 각종 기업범죄에 대한 처벌을 어찌할 것인지, 사회적 논의를 촉발할 것이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은 기업은 각종 범죄를 저질러도 왜 처벌받지 않는지, 왜 처벌받아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것인지 평범한 시민들이 가진 의문에서 출발하는, 그리고 그 의문을 해결하는 대중적인 입법운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