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덜 죽겠습니까
[주장] 사람 살리는 사회가 되기 위한 작은 제언 ‘산업안전보건법의 일상적 적용 필요하다’
▲ 경향신문의 기획 기사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
ⓒ 노동건강연대 |
<경향신문>의 기획 기사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가 이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덕분에 노동자의 죽음을 추적하고 죽음의 구조를 분석해 온 내가 일하고 있는 작은 시민단체 ‘노동건강연대’가 바빠졌다. 질문이 다양하게 들어오는데 결국 이렇게 수렴된다.
“여태껏 그리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어떻게 하면 덜 죽을까요? ”
해법을 말하기 전에, 그날 그 표지에 적힌 1200명의 무명의 이름 옆에 ‘끼임’, ‘떨어짐’, ‘뒤집힘’, ‘깔림’, ‘부딪힘’, ‘물체에 맞음’ 등이라고 적힌 죽음의 이유가 세계 경제 대국 7위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기엔 조금은 어색한, 충분히 예방이 가능했던 죽음이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더 튼튼한 설비로, 더 안전한 장치로 노동 환경이 만들어져 있었다면 지금쯤 살아있을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마냥 슬퍼만 하기에는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다.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현장에선 수많은 징후가 있었을 것이다. 어디선가 떨어져서 전신 마비가 된 사람, 물체에 맞아 몸 어딘가가 으스러진 사람, 어디엔가 끼었지만 가까스로 살아나 팔다리 어딘가를 잃은 사람 등 죽음의 명단에 끼지는 않았으나 위험한 현장의 피해자였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큰 사고가 아니더라도 어떤 사람은 떨어질 뻔하다가 간신히 무언가를 잡고 버텨 가슴을 쓸어내렸을지도, 또 어떤 사람은 날아오는 묵직한 물체를 간신히 혹은 우연히 피했을 수도 있다. 그 징후를 겪어낸 사람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살고 있다.
아픔이 쌓이고 불안이 쌓이는 가운데 간신히 한 사람씩 죽는 것이다. 엄청 어려운 확률인데 한국에서는 아니다. ‘영국에서 1명이 죽을 때 한국에서 10.2명이 죽는다’는 2017년 산업안전보건 통계자료만 봐도 그렇고, 조심하지 그랬냐는 말이나 그 사람이 잘못해서 죽었다는 기업의 습관적인 발표 속에서도 보인다. 한국은 다르다. 한국은 확실히 다른 선진국보다 일하는 사람이 많이 죽는다.
2003년 즈음, 노동건강연대는 영국의 “기업에 의한 살인을 처벌하자”는 운동을 국내에 소개했다. 한국에서도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노동자 사망을 기업에 의한 살인으로 규정하고, 위험 구조를 만든 그 기업을 처벌하자고 주장했다.
곧바로 어려움에 직면했다. 어떻게 ‘기업’이라는 단어에 ‘살인’이라는 무서운 단어를 가져다 붙이냐는 비난을 받았다. 한국의 법체계는 영국 법체계와 다르니 힘들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 사이 영국에선 법이 만들어졌다. 2006년부터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시작하면서 ‘위험의 구조를 만들고 방치하는 것은 기업’이라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죽음의 데이터를 보다 보니 매년 건설업 사망 노동자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어느 순간 하청 노동자가 많이 죽는 걸 봤다. 현장에서만 돌던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은 그 데이터를 근거로 2012년에 처음 언론에 등장한다. 참고로 2019년 최악의 살인기업은 포스코건설이다.
위험을 만들어놓고 일을 시킨 기업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단순하게 처벌하고 말자는 뜻이 아니다. 기업에 사망이나 다침을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하자고 정부에서, 국회에서 최선을 다해보자고 선언하자는 것이다.
많이 어려울 것이다. 기업이 위험을 예방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지금껏 쓰지 않던 돈을, 아주 많이 써야 한다고 하면 당장에 반발이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또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완벽하게 부정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어느 기업이 위험한 구조를 만드는지, 그것이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일상적 적용이 필요하다
▲ 산업재해, 재난, 참사로 인한 피해자, 유가족 등이 지난 1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국회를 통과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 이른바 ‘김용균법’의 실효성을 비판하며 위험의 외주화 중단과 진상규명위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 |
ⓒ 이희훈 |
동시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일상적 적용이 그것이다. 2018년 12월 11일 태안화력에서 생을 마감한 고 김용균씨는 한국 사회에 산업안전보건법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그런데 잠깐 기억을 돌려보자. 혹시 콜센터에 전화할 일이 있을 때 상담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전화를 건 사람이 상담노동자에게 위해를 끼친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조처를 한다는 안내 문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2018년 10월 18일, 법 시행으로 인해 사업주가 노동자의 환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정부는 노동자 보호를 위해 그렇게 기업을 강제할 수 있다. 실마리를 찾아보자.
산업안전보건법은 1981년도에 만들어진 법이지만, 그 법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결과 누구도 법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1981년 이래로 정부가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위험한 현장을 예방하기 위한 사업주의 의무를 자세하게 나열하고 있는데,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아무것도 안 했다는 뜻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노동자라면 하는 일이 제조업이건, 건설업이건, 서비스업이건 상관없이 당신의 회사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을 언급하는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그 법에는 사고를 예방해야 할 의무뿐 아니라 질병을 예방해야 할 의무 또한 존재한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화상을 입지 않게, 배달 노동자가 무면허 운전을 하지 않게, 백화점에서 일하는 판매 노동자가 고객들에게 화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사업주가 해야 할 예방 의무를 규정한다. 제조업 공장 노동자가 어디 가서 미끄러지지 않게 공장 바닥을 청결하게 해야 할 의무도 있고, 엘리베이터 수리 노동자가 일하러 들어가는 밀폐된 공간을 안전하게 만들어야 할 의무도 있다.
이 법은 일하는 모든 사람의 공간과 환경에 적용된다. 이런 작지만 중요한 노력이 쌓여 일하는 누군가의 아픔을 예방하는 법이다.
법전에서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산업안전보건법, 사업을 시작하는 기업들이 꼭 지켜야 하는 의무로 만들어보자. 사업을 하는 중간에라도 꾸준히 위험 예방조치를 해야 함을 잊지 않도록 끊임없는 감독과 일벌백계가 중요하다. 안 쓰던 돈을 들여야 하는 일이고, 기업에서도 끊임없는 관리가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을 현실에서 존재하게 해야 한다. 사람들이 사고, 질병,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 정부가 서서 지켜줘야 한다. 아, 며칠 전 종로에서 보석을 만드는 노동자들에게 산업안전보건법 강의를 했는데, 이런 말이 나왔다. “우리가 학문하는 것도 아니고, 뭔 사업주 조치나 물질안전보건자료가 이렇게 어려워?”, 지금 산업안전보건법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동자들이 살기 위해 어려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게 쉽게, 현실감 있는 정책을 써주길 바란다.
정부와 국회는 공식적으로 어떤 말이라도 해라. 지금도 늦었지만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아 아무 것도 못 하겠으면, 일단 청와대와 국회에 노동자 사망 현황판이라도 만들어보자. 365일 중에 노동자인 사람이 안 죽는 날이 며칠 없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면 달라지지 않겠나. 우리, 한 발짝이라도 내딛자. 제발.
기사원문 : 오마이뉴스 <어떻게 하면 덜 죽겠습니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94847#dvOpin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