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죠. 그래도 이 일이 꼭 마약 같은 걸요”
[사람이 소중한 일터] “철갑을 두르고 밥 짓는 그들”…학교 급식 조리원

2007-08-16 오전 12:52:23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자신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라고 했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그저 37도의 열 덩어리로 느끼게 해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겨울 역시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차라리 겨울을 택하겠다”는 사람들이 또 있다. 일하는 내내 뜨거운 불 앞에 서 있거나 100도가 넘는 증기를 뿜어내는 식기세척기와 씨름해야 하는 급식 조리원이 그들이다.

어느새 여름방학이 끝을 보이고 있던 지난 14일 경기도 안양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급식 조리원 이정희 씨(가명, 50)와 조미란 씨(가명, 43)는 “여름은 정말 죽음이죠”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들은 경기도 안양시 인덕원에 있는 한 중학교에서 급식 조리원으로 일하고 있다

음식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더운 여름날 불 앞에 서 있는 고통을. 스스로 “급식 조리원은 3D 직업이에요”라고 말하는 이들이지만 “학교 복도에서 마주친 아이들이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면 그 모든 고통을 다 잊게 된다”며 이들은 웃었다.

중고등학교의 급식이 본격화되면서 늘어난 학교 급식 조리원. 이들은 대부분 정희 씨와 미란 씨처럼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 비정규직이다.

그들의 삶과 일터의 모습은 어떨까? <프레시안>은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삶과 일터를 들여다보기 위한 기획 ‘사람이 소중한 일터를 위해’의 첫 번째 순서로 급식 조리원 정희 씨와 미란 씨를 만났다. (☞관련 기사 : “소주 한 병 들고, 찾아 오세요”)

“평생 밥 짓고 반찬하는 게 일이었는데….” 100도 넘는 식기세척기 앞에서 녹아버린 생각

“전업주부였던 내가 학교 급식실에 첫 발을 들여놓던 날, 평생 밥하고 반찬하는 게 일이었는데 뭐가 어렵겠냐는 내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이었는지 절절히 알아버렸다.

비닐 앞치마에 장화에 모자에…. 애국가에 나오는 ‘철갑을 두른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최근 전국여성노조 전북지부가 주최한 일하는 여성 수기 공모에서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강명숙 씨의 글이다.

강명숙 씨는 이 글에서 “여름엔 찜통더위에 여기 저기 밥하고 국 끓이고 튀김하는 열로 급식실 내부는 40도를 오르내렸다. 줄줄 흐르는 땀이 옷을 적시다 못해 장화 속까지 흘렀고 찬물을 너무 많이 마셔대다 보니 나중엔 속이 메슥거리고 구토가 나오곤 했다”고 적었다.

정희 씨와 미란 씨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급식 일은 그나마 겨울이 좀 낫다”고 했다.

가만히 있어도 덥기만 한 여름날, 긴 옷에 팔에 토시를 끼고 비닐 앞치마를 두르고 장화를 신고 머리에 모자까지 쓰고, 에어컨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급식 조리실에서 하루 종일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다보면 집에서 살짝 찍어 바른 얼굴의 화장품은 어느새 흔적조차 없다.

“제일 힘든 건 식기세척기 담당일 때예요. 그게 한 번 작동을 시작하면 2시간 정도 기계 앞에 서서 닦여 나오는 급식판을 받아내야 하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열이 100도가 넘는다고 하대요. 숨을 쉬기도 힘들 정도니까…. 한 번 하고 나면 온 몸이 다 땀으로 젖어요.”

미란 씨의 말이다. 미란 씨는 지난해 3월부터 급식 조리원으로 일하고 있다.

“다 약 먹어가며, 일하는 거죠”…데이고, 넘어지고, 관절염은 기본

미란 씨는 “1년이 지나니까 온갖 관절이 다 아프다”고 했다. 수많은 학생들을 다 먹이기 위해서 대량으로 음식을 만드는 게 일이다보니 재료의 양부터 다 된 음식의 무게까지 결코 만만치 않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무거운 재료더미부터 몇 십 킬로가 넘는 국통, 밥통을 옮기는 게 일이다 보니 관절이 안 아픈 것이 이상할 만하다. 미란 씨는 “같이 일하는 엄마들 중에 관절염 없는 엄마들이 없어요. 다 약 먹어가면서 일하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산업재해도 빈번하다. 빠른 시간에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어야하다 보니 칼에 손을 베고 뜨거운 물이나 기름, 독한 세척제에 화상을 입는 작은 사고는 일상이다. 정희 씨처럼 미끄러운 바닥 때문에 넘어져 뼈가 부스러지는 큰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2005년 8월부터 조리원으로 일을 시작했던 정희 씨는 지난해 11월 급식실에 붙어 있는 창고 겸 화장실에서 나오다 바닥에 흘려 있던 세척제에 미끄러져 골반뼈가 부스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후 9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정희 씨는 음식점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성큼성큼 오르지 못했다.

70%가 100%보다 많은 이유?…다치면 84만원, 안 다치면 75만원

“산업재해로 인정은 받으셨어요?” 물었더니 정희 씨가 재밌는 얘기를 했다. “다행히 치료비도 나오고 월급도 원래 임금의 70%를 받고 있다”면서. 여기서 정희 씨가 털어놓은 ‘비밀’이 있다. “오히려 일할 때보다 월급이 더 많이 나온다”는 것. 70%만 준다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다치기 전에는 75만 원 정도 받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84만 원 정도가 들어와요. 일할 때는 일당 4만 원을 20일 치만 계산해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을 제외하고 나니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 그 정도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30일치를 다 준다고 하고 국민연금을 안 내고 있으니까요.”

미란 씨가 보여준 지난 4월의 월급명세표에는 본봉 81만4290원에서 건강보험 1만8910원과 국민연금 3만5550원을 공제하고 남은 금액이 75만9830원으로 적혀 있었다. 겨우 최저임금 수준인 것이다.

저임금에 고용불안, 비정규직 처지는 어디나 같아…”내년에는 한 명 준다더라”

아침 7시 반 정도에 출근해 오후 4시까지 일하는 이들에게 휴식시간이란 점심 식사 시간을 포함한 고작 30분뿐이다.

12시 반까지 각 교실 앞으로 밥을 가져다 줘야 하고,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식판과 음식통을 조리실로 가져와야 하기 때문에 1시부터 다시 몸을 움직인다.

때문에 미란 씨는 “계속 몸을 쓰며 일을 하는 고된 직업인데 솔직히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이 너무 적죠”라고 하소연했다. 다행히 미란 씨는 이 월급만 가지고 오로지 생활해야하는 형편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일하는 만큼의 대우를 받고 싶다는 바람을 두고 욕심이 많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저임금에 고용불안. 비정규직이 겪는 2대 고통으로 꼽히는 것들이다.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학생 수가 자꾸 줄어들다보니 조리원도 “내년에는 한 명 준다더라”는 소문이 매년 나온다.

정희 씨는 “사정이 생기거나 몸이 아파서 스스로 그만두는 건 몰라도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재계약을 안 해줘서 잘리는 건 너무 자존심이 상하잖아요”라고 말했다.

자존심, 정희 씨의 말을 들으면서 “노동자도 사람이다”라는 ‘오래된’ 문장이 문득 떠오른 것은 왜일까?

“문 잠그고, 불 꺼”…협박하던 젊은 영양사는 급식 재료를 빼돌리고

자존심 얘기를 좀 더 해보자고 했다. 조리원들은 학교마다 한 명씩 있는 영양사의 관리를 받는다. 그 관계 속에서 겪는 어려움은 없을까? 정희 씨와 미란 씨는 동시에 “많았죠”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화들을 하나씩 하나씩 털어놨다.

“한 번은 영양사가 ‘급식실에서 일어난 일을 외부로 왜 발설하느냐’면서 현관문도 잠그고 창문의 블라인드도 다 내리고 불도 끈 상태에서 조리원들을 바닥에 앉혀 각서를 쓰라고 한 적도 있어요. 당연히 인격적으로 심한 모멸감을 느꼈죠.”

당시 해당 영양사의 나이는 31살. 이유가 무엇이었다 한들, 이처럼 공포를 조성하고 ‘군대식’으로 아래 사람들을 통제하려 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그 뿐 아니예요. 음식에서 머리카락이나 돌 같은 것이 나오면 그날 그 음식 담당자가 시말서를 써야 했어요. 영양사는 하나도 책임을 안지고 다 우리에게 돌리는 거죠. 시말서를 3번 쓰면 사표를 내라고 했고요. 정말 그래서 그만둔 사람도 있었어요.”

“청소 상태가 마음에 안 들면 다 씻어서 정리해놓은 바구니, 밥솥, 국솥이 공중으로 날아다녀요. 우리가 비정규직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걸핏하면 ‘이러면 내년에 재계약이 안 된다’고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했어요. 그러면 심란해지죠.”

정희 씨는 “손톱만한 권력을 가지고 크게 이용해먹으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영양사는 결국 급식 재료를 개인적으로 빼돌린 혐의로 지난해 가을 해고됐다.

그리고 새로 온 영양사는 “다행히 인간적으로 대해준다”고 했다. 미란 씨는 “몸 힘든 거야 똑같지만 인간적인 모멸감이 사라지니까 지금은 한결 일하기가 편하다”고 말했다.

“완전히 멈추지 않으면 못 바꿔준다”…답답한 학교 행정

“이해하기 힘든” 학교 행정의 경직성도 어려운 점 중에 하나다. 10년도 넘어 한 달에 두 세 번씩 밥이 아예 안 되는 밥솥도, 위로 뿜어져나가야 할 스팀이 앞으로 쏟아져 나와 그 앞에 서 있으면 “얼굴이 고구마처럼 익어버리는” 식기세척기도, 오후만 되면 뜨거운 물이 바닥나는 작은 물탱크도, 몇 번을 고쳐달라고 이야기했지만 학교는 요지부동이었다.

미란 씨는 “참 이상하다”고 했다. “고쳐줄 수 있는 것은 금방 고쳐줄 것 같으면서도 안 고쳐주고, 잦은 고장으로 때로 비상이 걸리는데도 ‘완전히 멈추지 않으면 못 바꿔준다’고 하니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

그러면서 옆에 있는 정희 씨에게 “언니가 다친 그 계단도 그 일 있고는 당장 고쳐준다고 호들갑을 떨어놓고 아직까지 안 고쳤잖아”라고 했다. 원체 절차도 복잡하고 형식이 더 중요한 공무원 행정이라지만 “교육청은 일반 정부 기관보다 더한 것 같다”고 정희 씨는 불평했다.

이들이 일하는 학교는 지난 겨울 건물 외벽의 페인트도 다시 칠하고 창틀도 다 바꿨다. 하지만 급식 조리실 환경을 개선해달라는 요구에 대해서 학교는 답답하도록 “해 주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조리실의 환경과 조리기계의 문제는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필수적인 급식 위생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는데도 말이다.

“‘오늘 밥 맛있었어요’ 인사하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그런데 왜 계속 그 일을 하세요?”라고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사실 이 나이에 별로 할 만한 일이 없어요. 아이 다 키워놓고 마냥 놀고먹는 건 지겨운데 마땅히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이 별로 없어요.”

결혼과 출산 후 다시 직업을 가지려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어려움이다. 정희 씨는 “보험 일도 해봤지만 친척들에게 팔아야 하다 보니 남편이 싫어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 일은 야간근무나 초과근무가 없고 여름과 겨울 두 번의 방학이 있는 것도 ‘무시 못할’ 장점이다.

10년을 이랜드 그룹 유통업체 2001아울렛에서 판매직으로 일하다 급식 조리원이 된 미란 씨는 “그 때는 일당도 지금보다 작았고 하루 두 끼도 자비로 먹어야 했고 노동시간도 훨씬 길었다”고 말했다. 그에 비하면 오후 4시 쯤 퇴근해 아이들 저녁이라도 차려줄 수 있는 이 일은 ‘좋은 직업’인 셈이다.

“그리고 이 일이 참 마약과 같아요.”

미란 씨가 덧붙였다. 학교 복도에서 마주치면 “아줌마, 오늘 밥 정말 맛있었어요. 내일은 뭐예요?”라고 말해주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을 갓 나온 젊은이들도 가끔 있지만 대부분이 엄마들이거든요. 자식 같은 아이들을 위해 먹을거리를 만든다는 게 참 보람이 있어요. 인사해주는 아이들을 마주칠 때 느끼는 기쁨, 그런 거라도 없으면 못 하죠.”

얼마 안 남은 여름방학이 끝나면, 이들은 다시 급식 조리실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무게만으로도 힘에 겨운 ‘철갑옷’을 두르고 하루 종일 물과 열기와 씨름하며 우리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 것이다.

여정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