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물질에 손 담그고 일하는 몽골인 노동자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 <29> 이주노동자 지원활동가를 명예산업안전감독관으로!

2007-08-16 오후 2:11:53

“‘그냥’ 찾아왔습니다”

한국에서 일을 시작한 지 8개월 정도 지난 ‘저거’라는 몽골인이 상담소를 찾아왔다.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흔한 핸드폰도 없었다. 자신이 일하는 공장의 이름도 제대로 대지 못했다. 회사 연락처도 모르고 근로계약서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생활에 도움을 줄 마땅한 친지도 없었다.

그가 우리 상담소를 찾아온 이유는 ‘그냥’ 이었다. 그가 일하는 공장 근처에 또 한 사람의 몽골인이 일하고 있었는데, 아직 친구라고 할 정도로 가까워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서로의 생활에 대해 얘기는 하는 정도의 관계였다. 그 사람이 저거의 일상얘기를 듣고는 ‘그렇게 참고 일만 하지 말고 당신 상황이 어떤지에 대해 얘기나 한번 들어 보자’ 라고 해서 온 것이다. ‘그냥’ 왔다는 저거 씨는 근로조건에 대해 끝없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거 씨의 근로시간이나 임금과 같은 것들은 다른 이주노동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이 많아서 거의 매일 밤 9시나 10시까지 일하고, 일요일은 한달에 한 번 정도 쉬고, 임금은 최저임금이고, 사업장 분위기는 꽤나 억압적이고, 사업주는 툭하면 “몽골로 돌려보내겠다”고 그에게 겁을 주곤 했었다.

“독한 냄새가 나는 약품, 손에 닿으면 따끔거려요”

통역을 통해 저거의 이야기들을 듣고 적어가다가 저거씨의 손에 눈길이 갔다. 손이 뭔가 이상했다. 부은 듯도 하고 붉은 빛깔을 띤 듯도 하고, 엄지손톱 모양도 좀 이상했고, 피부는 거칠었다. ‘손이 왜 이런가’를 물어보았더니 일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저거씨가 일하는 회사는 자동차 부품을 다루는 회사였다. 저거씨는 부품을 닦는 일을 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들여온 자동차 부품을 손으로 잡고 어떤 액체가 담긴 통에 그 부품을 담궜다가 꺼내서 깨끗이 닦아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깨끗해진 부품에 칠도 하였다.

그 액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도 저거 씨에게 설명해준 적이 없었지만 저거 씨는 그 액체가 인체에 유독함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저거 씨에게 지급한 작업용 장비는 면장갑뿐이었는데, 면장갑은 액체에 닿으면서 며칠 가지 않아 헤지곤 하였다. 그리고 약품이 피부에 닿으면 손이 따끔따끔거렸다. 저거씨는 그 현상을 “불에 닿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물을 준비해놓고 손이 따끔거릴 때마다 물속에 손을 담그는데, 그러면 따끔거리는 게 좀 덜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액체는 냄새가 아주 심했는데 마스크도 쓰지 않고 일을 했다. 그는 공장이 있는 건물의 옥상에 있는 가건물에서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서 혼자서 일하는데, 그렇다고 옥외는 아니고 가건물에 만들어진 창문을 통해서 환기가 될 뿐이었다.

따끔거리는 것 외에 어떤 불편한 증세가 있는지를 물어보았더니, 시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두통이 생겼다는 것이다. 식욕도 떨어지고. 그러나 병원이나 약국에 간 적은 없었다고 했다.

“한국어를 모르니, 무슨 약품인지도 몰라요”

그 공장에서는 유기용제를 세척제로 사용한다고 여겨졌다. 아무런 보호장구도 없이. 그렇다면 저거 씨는 유기용제 중독의 우려가 있었다. 저거 씨에게 일단 그 액체가 담긴 통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를 확인해보라고 했다.

저거씨가 한국어를 모르니 써올 수도 없고, 그 흔한 핸드폰도 없으니 사진으로 찍어오라고 할 수도 없어서 그냥 그림을 그려오라고 했다. 그리고 빨리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 당장 다음날 액체를 확인하고 업무가 끝나는 9시경이라도 사무실로 연락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저거 씨는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저거 씨의 상태가 염려되어 당시 함께 왔던 몽골인에게 연락해보았지만 그 사람도 저거 씨를 만나기 힘들다고 했다. 일이 더 바빠졌는지 전처럼 오다가다 만나기도 힘들고, 그 회사는 다른 사람의 출입을 매우 싫어해서 공장에 찾아가서 저거 씨를 만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난 후, 저거 씨가 아닌 옆공장 몽골인이 뭔가를 가지고 상담소로 왔다. 저거 씨는 바빠서 올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라벨은 액체가 담긴 통에 붙여있던 것이었다. 저거 씨는 그림을 그리기도 그렇고 해서 아예 라벨을 떼어서 보낸 것이다. 라벨에는 그 액체가 유기용제로서 유해물질이라는 표시는 있었지만 이름은 없었다. 저거 씨가 다루는 물질이 유해물질임을 확인하고 나니 이제는 저거씨의 현재 상태에 대해 전문의의 진단을 받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옆공장 몽골인에게 저거 씨가 당장 전문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하고, 저거 씨에게 전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즉시 우리에게 연락해줄 것도 함께.

아무런 설명 없이 일단 계약부터 한다

옆공장 몽골인에 의하면, 저거 씨는 ‘힘들지만 꾹 참고 일하겠다’는 생각이었고, 자칫 몽골로 되돌아가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에 대해 ‘참는 것도 상황에 따라서다, 그리고 진단 후 문제가 있으면 회사는 옮길 수 있고, 그런다고 몽골로 되돌아가게 되는 일은 없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여 전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후 저거 씨는 또다시 연락이 뚝 끊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회사를 방문하여 그 유해물질을 확인하고 저거 씨를 병원으로 데려가 진단을 받게 하고 싶었다. 억지로 끌고서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건 마음이고, 연락이 끊어진 저거씨가 마음을 바꿔 연락해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상담하면서 직업병이나 사고의 위험이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계약할 때 어떤 종류의 일을 하는지, 어떤 약품을 사용하는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들은 적이 있는지’를 종종 물어본다. 그러면 100이면 100, 이구동성으로 그런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본국에서 계약할 때는 한국에서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게 되는지 짐작할 수도 없고, 한국에 온 후에도 회사에서 먼저 설명해주기 전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일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유해물질을 사용하는 회사에서 노동자에게 물질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중독되지 않도록 충분한 조치를 취하는 회사를 본 적이 없다.

언제까지 ‘인력’과 ‘예산’만 탓할 것인가

때로는 그런 내용을 상담소에서 인지하기도 하지만 그런다고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그리 많지 않거나 너무 늦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관련 정부기관에 얘기하면 담당 공무원들도 안타까워한다. 그럼에도 “인력이 부족하고 예산이 부족하여” 적절하게 관리가 되기 힘들다고 한다. “예산 늘리기도 매우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로 한다.

그러면 예산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늘어서 담당인력이 충분해질 때까지 차라리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일부 권한을 부여하고 정기적으로 사업장을 방문하여 환경을 체크하고 개선사항을 체크하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라는 제도도 있는데 말이다.

석원정/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