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 및

산업기술보호법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

“국민의 알권리와 건강권을 침해하는 산업기술보호법, 위헌이다!”

일시 / 장소 : 202035() 오후 2/ 헌법재판소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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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국민의 알권리와 건강권을 침해하는 산업기술보호법은 위헌입니다.

 

올 해는 자욱한 미세먼지와 꽃샘추위 대신 코로나 바이러스가 봄을 시샘하고 있습니다.

반올림에게 봄은 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와 함께 시작됩니다.

내일은 故황유미님의 13주기입니다.

지금까지 반올림에 제보된 피해자는 683명이고, 그 중 19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 분 두 분 어렵게 직업병을 인정받아 온 결과, 이제 산재를 인정받은 분이 64분이 되었습니다.(2020년 3월 5일 기준) 먼저 길을 만들어온 분들 덕분에 직업병을 인정받기가 조금은 수월해졌습니다. 오랜 기간 책임을 회피해왔던 몇몇 기업들도 문제를 인정하고 보상제도를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반도체·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는 이제 우리 사회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올 해 초 삼성전기 백혈병 피해자 故장동희님이 산재를 인정받았습니다. 인쇄회로기판(PCB)을 만드는 일로 직업병을 인정받은 최초의 사례입니다. PCB 공정은 다양한 유해화학물질을 다루고, 방사선, 야간교대근무 등 반도체, LCD 공장과 매우 유사한 유해요인이 존재하는 업종입니다. 반올림은 반도체, LCD를 넘어 전자산업 일반에서 직업병 문제를 드러내고 작업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위험을 알리는 일을 계속해나갈 것입니다.

작년 초에 돌아가신 삼성SDI 백혈병 피해자 故황선민님은 본인이 직접 작성했던 재해경위서를 남기고 산재가 인정되는 걸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고인이 백혈병에 걸린 후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산재결정이 미뤄지고 있습니다. 노동부가 산재처리를 간소화하여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겠다고 했지만, 몇 년씩 산재인정이 지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산재보험 제도가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더 개선되어야 합니다.

특히 알 권리의 경우에는 오히려 후퇴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지난 해 8월 2일 국회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외면하고 산업기술보호법(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개악시켰습니다. 개정된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면,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는 공개될 수 없고, 산업기술을 포함하는 정보는 취득목적과 달리 사용하고 공개하면 처벌한다고 합니다. 알 권리는 노동자의 생명 안전 보호를 위해 정말 필수적인데도, 산업기술보호법은 그런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최근에 산업기술보호법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가 전혀 과장이 아니었음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2월 19일 서울행정법원은 작업환경측정보고서 정보공개청구소송에서 비공개 판결을 내렸습니다. 작업환경측정보고서는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직업병 입증을 위해서 당연히 확인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서울행정법원은 개정된 산업기술보호법을 언급하면서 비공개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개정 산업기술보호법은 유해물질에 대한 알권리와 사업장의 유해환경에 대해 공론화할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법입니다. 결과적으로 일터의 위험이 알려지는 것을 막아, 국민들이 사고와 질병, 죽음으로 그 피해를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는 헌법소원 청구를 통해 이 법이 위헌임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알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은 독성화학물질만큼이나 위험합니다. 헌법재판소에 요청합니다. 국민들의 알권리와 건강권 실현을 위해 산업기술보호법을 제대로 바로잡아 주십시오.

2020년 3월 5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

 

산업기술보호법 제9조의2 등 헌법소원 청구 주요 내용

 

1.

청구인들은 반올림(시민단체), 삼성 직업병 피해가족, 과거 삼성 반도체 작업환경 자료 정보공개 청구인 및 대리인, 반도체 공장 안전보건 문제 연구자(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산업보건학 교수, 공중보건학 교수), 언론인 및 지역주민입니다.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는 1) 법률로써 해야 하고(일부 내용을 하위법령에 위임하더라도 일반적ㆍ포괄적 위임은 금지됩니다. 포괄위임금지원칙), 2) 그 법률은 집행당국의 자의적인 법 집행이 가능하지 않도록 명확해야 하며(명확성원칙), 3) 과잉금지원칙(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준수해야 합니다.

 

2.

그런데 심판대상 조항 중, ① 개정 산기법 9조의2국가기관 등으로 하여금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를 공개해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첫째, 명확성 원칙에 위반됩니다.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핵심기술’ 지정 방식은 매우 추상적ㆍ전문적이며 광범위한데(ex. “30나노 이하급 D램에 해당되는 조립ㆍ검사 기술”), 그 ‘관련성’에 대한 판단 기준 조차 전혀 제시되지 않아, 비공개 정보의 대상 범위를 도무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법 집행당국이나 관련 기술을 보유한 사업주 등이 자의적으로 비공개 대상 정보를 정할 수 있습니다.

둘째, 과잉금지 원칙에 반합니다. 국가핵심기술 보호라는 목적 자체는 정당할 수 있으나, 그 기술 보호와 무관한 정보까지 비공개될 수 있어 목적 달성에 적합한 수단이라 할 수 없고(수단 적합성 위반), 국민의 생명ㆍ건강에 관한 정보는 예외적 공개대상으로 하는 등 알권리 등을 덜 제한하는 수단이 얼마든지 있으며(침해 최소성 위반), 관련 기술 보유 사업장에 관한 알 권리가 전면적으로 배제될 수 있어 보호법익 간에도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합니다(법익균형성 위반).

 

3.

또한 심판대상 조항 중, ② 개정 산기법 14조 제8호(및 제36조 제4항)는 산업기술 관련 소송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적법한 경로를 통해 산업기술이 포함된 정보를 제공받은 자가 그 정보를 제공받은 목적 외 용도로 사용ㆍ공개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한다는 것이고, ③ 개정 산기법 제34조 제10호(및 제36조 제6항)는, 정보공개청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를 수행하면서 산업기술에 관한 정보를 알게된 자가 직무상 알게된 비밀을 누설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한다는 것으로,

첫째, 포괄위임금지 원칙과 명확성 원칙에 위반됩니다. 처벌규정의 구성요건 일부를 하위법령에 위임하고 있으나 그 위임의 필요성(긴급한 필요 또는 법률로써 구성요건을 상세하게 정할 수 없는 부득이한 사정)과 예측가능성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산업기술 관련 소송”, “산업기술을 포함한 정보”, “산업기술에 관한 정보”, “제공받은 목적외 다른 용도” 부분도 매우 불명확하여 금지 대상을 예측할 수 없고, 따라서 자의적 법집행이 가능합니다. 위 조항들이 모두 형사 처벌에 관한 조항이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항이라는 점에서 포괄위임금지 및 명확성 원칙 위반 여부는 특히 중요합니다.

둘째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됩니다. 산업기술 보호라는 목적 자체는 정당할 수 있으나, 그 기술 보호와 무관한 정보의 사용ㆍ공개 혹은 산업기술 보호를 위한 사용ㆍ공개까지 막을 수 있어 그 목적에 적합한 수단이라 볼 수 없고(수단 적합성 위반), 대상 정보의 개별적 보호가치를 따져 비공개 대상을 판단하거나 부당한 목적이 개입된 사용ㆍ공개만을 금지함으로써 표현의 자유 등을 덜 제한하는 수단이 얼마든지 있으며(침해 최소성 위반), 관련 기술을 보유한 사업장의 작업환경에 관한 공익적 문제제기, 직업병 피해를 인정받기 위한 정보 수령까지 일체 차단될 수 있어 보호법익 간에도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합니다(법익균형성 위반).

 

4.

위와 같은 이유로 위 조항들은 청구인들의 알권리, 생명ㆍ건강권,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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