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경북일보)

정부는 제대로 된 경제사회 정책을 마련해 실질적인 ‘거리두기’ 가 가능하도록 시급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코로나19 환자 치료를 위한 공공병상·인력·자원을 시급히 확충해야 한다.

 

정부가 지난 4일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를 2주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불가피한 조처다. 세계적으로 감염 확산과 사망이 증가하는 심각한 상황이고, 한국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환자 증가추세이기 때문이다. 아직 감염 확산 초기일뿐이라는 평가가 주요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문제는 정부가 국민들이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경제·사회적 조건을 마련하는 데에는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가 역학적 대응에 상대적으로 성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적 후폭풍에 대한 사회정책은 사실상 공백 상태다.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말레이시아 등의 나라들이 GDP의 10%를 넘는 재정을 투입하며 경제위기 고통을 맞닥뜨린 국민들을 살릴 사회정책을 펴고 있는 반면 한국은 GDP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거리두기가 지속가능하도록 하는 기본적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환자 급증에 대비할 공공병상·인력·자원도 부족해 보인다. 대구 유행 당시에도 부족한 공공병상과 타 지역 공공의료기관, 자발적 의료인들의 자원봉사에 의존하고도 충분한 의료적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현재 정부의 공공의료 및 인력 확충 계획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한국은 유럽 등과 비교해 공공병상 비율이 턱없이 낮고 중환자병상 수도 충분치 않은 나라다. 다가올 위기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정부가 보다 엄중한 상황인식을 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같이 거리두기 실질화 정책을 방기해서는 방역도 실패할 수 있고, 환자 급증 시 대응할 공공의료자원이 없어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우리는 아래와 같은 정책을 시급히 펼 것을 촉구한다.

 

1. 정부는 거리두기가 실제 가능하도록 필요한 사회정책을 즉시 시행해야 한다.

지난 한 달 동안 현실적으로 거리두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미 확인되었다. 청도대남병원의 비극적 사태와 요양병원 감염 사례들에서 드러나듯 시설에 수용된 취약계층은 거리두기는커녕 집단발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노동자들도 거리두기가 어렵다. 구로 콜센터 사례처럼 아플 때도 출근해 북적이는 대중교통을 통해 밀집된 일터로 가야 한다. 많은 간접고용·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환경개선을 요구하기는커녕 무급휴직 강요와 해고위협에 처해있다. 자영업자들은 소득감소로 한계상황을 맞이했다. 결국 거리두기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며 문을 다시 여는 사업장이 생기고 있다. 돌봄 공백이 생긴 어린이와 노인은 방치되어 있다. 사회정책이 없으면 거리두기는 지속될 수 없다.

정부 대책이라고는 재난생계지원이라며 내놓은 재정 10조원 미만의 찔끔 지원과 자가격리 위반자에 대한 강력 처벌 뿐이다. 국가 책임은 방기하면서 개인 책임만 강조할 일이 아니다. 정부는 요양병원 등 수용시설이 과도한 밀집 수용으로 감염에 취약하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긴급하게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고 돌봄 노동자를 확충해야 한다. 노숙인과 쪽방 거주자 등 무방비 상태인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대책도 필요하다. 또 외주화 등 비정상적 고용조건과 이것이 낳은 열악한 노동환경을 해결해야 한다. 유급휴가와 상병수당을 보장하고 재난시기에는 해고를 금지해야 한다. 자영업자와 고용안전망 사각지대에 있는 국민에게는 현실적 도움이 될 수 있는 규모의 재난지원금을 신속하게 지원해야 한다. 지금은 재정건전성을 운운할 때가 아니다.

또 방역정책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포르투갈은 의료보험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없도록 이주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공중보건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이유였다. 이런 선례를 따라야 한다. 방역정책 때문에 위기를 맞거나 건강과 생명을 잃는 사람도 없어야 한다. 지역의료원 등 국공립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치료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이나 HIV 감염인 등을 위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2. 국공립병상과 중환자병상, 의료인력 및 필수의료자원 확보 현황과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대구에서는 3월 초 4000여명의 환자가 발생했을 때 2300명이 집에서 대기해야 했고 3월 중순까지 발생한 사망자 75명 중 17명(23%)이 입원도 못하고 사망했다. 공공병원이 부족한 지자체에서는 확진자가 다른 지역으로 원정치료를 가야 했다. 공공병상 부족 문제가 이미 표면화됐다. 특히 중환자병상이 충분한지 의문이다. 정부는 지난 4일 대형병원 97곳의 음압 중환자실 100~110개를 확보했다며 하루 50명의 확진자를 감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하루 500명의 환자가 발생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1000개의 중환자병상을 확보할 계획이 있는지 우리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인력도 마찬가지다. 대구 환자 급증 당시처럼 의료인 개인들의 자발적 헌신에 기대서는 안 된다. 지속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당시보다 더 많은 환자 발생 시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단기·미봉책으로나마 민간병원 의사인력을 활용할 계획을 세워야 하고, 장기전에 대비해 이제부터라도 공공의과대학 설립 등으로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할 의사를 훈련시켜야 한다. 특히 한국은 병상당 활동간호사가 OECD 3분의 1 수준으로 적고 유휴간호사가 많다. 공공병원 중심으로 간호인력을 대폭 늘려 훈련하는 것으로부터 환자급증에 대비해야 한다.

또 정부는 의료진 보호장비와 필수의료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환자 급증 시 영국처럼 비닐로 의료진 보호복을 대체해야 하고 스페인처럼 확진자의 15%가 의료인일 정도로 의료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유행 당시 방호복과 마스크가 부족해 의료진이 가운만 입고 진료하거나 방호복을 아끼려 휴식 없이 환자를 돌봐야 했다. 이탈리아처럼 인공호흡기 부족으로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하는 일도 결코 없어야 한다. 지금부터 국가가 책임지고 생산·비축해야 한다.

현장에 있는 의료인들조차 환자 급증에 대비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공공병상과 중환자병상, 의료인력, 의료자원이 실제로 얼마나 확보되어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우리는 정부가 공공병상과 중환자실 병상, 의료인력과 자원 등에 대해 실태를 조사하고 확충 계획과 함께 이를 투명하게 공개해 의료현장이 최전선에서 버틸 수 있도록 현실적 준비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지금은 2차 유행을 대비해 판데믹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제도와 공공 의료체계를 준비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여러 가지 불편함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해 이를 이겨내고 있는 시민들의 고통이 헛되지 않으려면 이 시간을 잘 활용해야만 한다. 즉 더 늦기 전에 거리두기를 가능하도록 하는 모든 사회 경제적 수단을 간구해야 한다. 또 방역에 최선을 다 한다 해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은 충분히 있다. 공공보건의료 체계에 대한 준비를 시급히 시작해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2020. 4. 7.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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