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맘편히 쉬어야 한다. 상병수당제도와 유급병가휴가를 즉시 도입하라!

 

최근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활방역으로 전환하면서 첫 번째 수칙으로 “아프면 집에서 쉬기”를 제시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는 아파도 쉴 수 없다. 쉼은 곧 소득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노동자가 아프거나 다쳐서 근로능력을 상실했을 때 소득을 보전해 주는 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질병 관련 소득보전 제도로 산업재해보험의 요양급여와 휴업급여가 있지만 ‘업무상 질병’에만 해당하기 때문에 대상은 매우 한정적이다.

 

몸이 아픈 노동자는 아파도 일하거나, 치료를 받기 위해 소득감소를 감내해야만 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비극을 우리는 수없이 목도해왔다. 수많은 노동자가 질병에 더한 과로로 죽어가거나 급격한 소득감소로 빈곤의 늪에 빠졌다.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단독주택 지하에 세들어 살던 모녀 일가족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은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었다. 송파 세 모녀 아버지의 암치료에 대한 소득이 보장되었거나, 어머니가 팔을 다쳐 생계활동이 중단됐을 때 소득이 보장되었다면, 세 모녀의 비극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질병에 걸린 노동자가 맘편히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부는 즉시 상병수당을 도입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OECD 36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와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상병수당을 도입했다. ILO(국제노동기구)는 이미 1952년부터 사회보장 최저기준에 관한 조약을 통해 상병수당 규정을 제시하여 각 국가에 권고해왔고, WHO와 UN는 상병수당을 보편적 건강보장의 핵심요소로서 국가수준의 사회보장 최저선에 포함하도록 요구해왔다. 한국의 경우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에 대통령령으로 상병수당을 부가급여로 실시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어서 법 개정 없이도 도입이 가능하다. 결국 상병수당 제도 시행은 정부 의지의 문제다. 아프면 쉬라고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아프면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 정부와 국회는 유급병가휴가를 즉시 도입해야 한다. 질병에 대한 소득보장제도는 상병수당 지급 외에도 회사의 법적 책임 강화를 통해 유급병가를 의무화하는 방법이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결과(2018)에 따르면, 유급병가를 보장하는 기업은 7.3%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본인이나 가족에게 상병이 발생하면 근로기준법상 연차휴가를 사용해서 치료받아야 한다. 이마저도 5인 미만 사업장은 연차휴가가 의무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유급병가휴가 의무화를 법제화하여 노동자가 안정적으로 고용을 유지하며 치료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는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누구나 아플 때 쉴 수 있어야 한다. 상병수당 도입과 유급병가휴가 법제화는 노동자가 아플 때 소득감소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우선적 과제이다. 우리는 정부와 국회가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인 상병수당과 유급병가휴가를 즉시 도입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2020년 5월 12일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건강과대안⋅민주노총⋅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참여연대⋅한국노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