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소식]

코로나19 판데믹 속에서 전 세계 수많은 노동자들이 건강과 생계의 위험에 처해있다. 지역에서, 국가에서, 또 국제연대를 통해 노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분투하는 중이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에 유학 중인 이주연 회원이 현지의 상황을 소개하는 글을 보내주었다. 원고는 4월 말 시점에서 작성된 것이다.


 

이주연(노동건강연대 회원, 토론토대학교 박사과정)

 

전 지구적 감염병 위기 속에서 최전방 노동자들이 주목받고 있다. 직접 환자를 상대하는 보건의료 노동자뿐만 아니라 식료품 생산과 유통 과정에 관여하는 수많은 노동자의 노동이 시민들의 건강과 일상을 유지시켜주기 때문이다. 내가 거주하는 캐나다에서는 방역 대책의 일환으로 필수 업종을 제외한 전 사업장이 문을 닫은 지 한 달이 지났다. 급여 수준이나 노동환경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했던 많은 노동자들이 ‘필수 노동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이 노동자들의 위상을 갑자기 높여줄 리 없다. 우리 사회를 떠받쳐온 ‘보이지 않는 노동’이 이제야 가시화되기 시작했을 뿐이다.

소위 ‘필수 노동’에 대한 필요가 커지고 노동 강도가 높아지면서 최전방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일이 어느 때 보다 시급해졌다. 하지만 ‘필수 노동자’라는 새로운 이름은 노동자에게 의무와 역할만 더할 뿐 일터에서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권리가 저절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글에서 현재 캐나다에서 코로나19가 보건의료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사례와 이에 대응하기 위한 노동운동의 활동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코로나19로 드러난 장기요양 서비스 민영화, 영리화, 분권화의 민낯

4월 23일 기준, 온타리오주 전체 코로나19 사망의 70% 이상이 장기요양시설(장기요양원과 노인 전용 거주시설 포함)에서 발생했다(전체 사망자 713명 중 516명). 온타리오주 피커링(Pickering)에 위치한 오카드 요양원에서 입소자 40명이 사망하고 입소자와 노동자가 각각 131명, 66명이 감염될 만큼 코로나19의 타격이 매우 컸다. 한편, 간병 노동자 1,000명 이상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고, 알타몬트 요양원 소속 간병 노동자 한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어찌된 연유에서인지 온타리오 주정부는 현재까지도 장기요양시설 관련 확진자, 사망자 수를 정확히 집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코로나19 희생자는 언론이 추적한 숫자보다도 훨씬 많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캐나다의 전문가, 활동가들은 이 문제의 원인이 다름 아닌 지난 수십 년 동안 온타리오주에서 빠르게 확산된 장기요양 서비스의 민영화, 외주화라고 말한다. 온타리오주 전체 626개 요양원 중 58%가 민간 회사 소유이고, 비영리 자선단체 24%, 지자체 16%, 병원 등 기타가 2%를 소유하고 있다. 장기요양원의 만성적인 인력난과 그에 따른 서비스 질 저하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왔다. 대부분의 저임금 간병 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다수의 요양원에 동시에 소속되어 일해 왔는데, 이러한 노동환경이 여러 요양원으로 코로나19 감염을 확산시킨 중요한 매개요인으로 지목되었다.

캐나다 공영방송 CBC 보도에 따르면, 요양원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하는 사전적, 적극적 감독인 ‘거주의 질 감독(resident quality inspections)’ 건수도 급격히 감소했다. 2016년과 2017년 거의 모든 요양원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던 감독이 2019년에는 전체 626개 요양원 중 고작 9개 요양원에 대해서만 실시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 감염병 통제 위반 적발 건수도 2014년과 2017년 사이 매년 150~250건이던 것이 2019년 50건으로 줄었다. 2018년 보수당 도그 포드(Doug Ford) 집권 이후 사전적, 적극적 감독에서 불만 제기나 중대 사건 발생에 대한 대응적, 사후적 감독 체계로 전환된 결과다. 코로나19 대응에서도 주정부는 장기요양시설에 대한 직접 관리 감독을 회피하고 방역을 전적으로 요양시설의 자체 역량에 떠넘겨 버렸다. 민영화, 외주화에 기인한 여러 문제가 중첩해 있던 장기요양시설의 노인들은 경영진의 태만이 더해져 코로나19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되었다.

 

노동운동의 대응

SEIU Healthcare(서비스 노동자 국제연대 보건의료지부)는 온타리오주 보건의료 노동자 6,000명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이다. 3월 23일 장기요양원 간병 노동자 한 명이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을 받은 이후부터 SEIU Healthcare는  주정부와 경영진에게 노동자들에 대한 적절한 개인 보호장비 제공 등을 계속해서 요구해왔다. 한 기업이 운영하는 두 장기요양원(Anson Place, Eatonville Care Centre)에서 46명 이상의 입소자가 사망하자, 4월 17일 온타리오 주지사에게 공개서한을 보내면서 보건당국이 두 요양원을 직접 관리할 것을 요구했다.

4월 21일,  SEIU Healthcare는 노동관계위원회에 긴급조정을 신청하여 주정부가 세 개 요양원(Altamont Care Community, Anson Place, Eatonville Care Centre)을 직접 관리하도록 중재를 요청하였다. 세 요양원이 개인 보호장비와 인력 부족으로 자체 방역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정부가 관리 감독을 거부하면서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불필요한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발한 것이다. 긴급조정 신청 당시 이 세 요양원에서 입소자 68명 이상, 노동자 1명이 사망하였고, 수백 명의 입소자와 노동자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판데믹의 정점에서, 최소한의 예방 조치인 개인 보호장비 지급을 위해 노동관계위원회에 조정신청까지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비극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노동관계위원회는 4월 24일 SEIU Healthcare의 긴급조정 신청을 신속하게 수용했다. 노동관계위원회는 온타리오 주정부와 장기요양원의 대응이 불충분했음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 노동부 감독관은 앞으로 두 달간 세 개 요양원을 매주 방문하여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의무 이행 여부를 점검한다. 감독관은 요양원의 산업안전위원회에 참석한다.
    • 세 요양원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에게 입소자와 노동자의 코로나19 감염과 사망 실태에 대해 매일 보고한다.
    • 세 요양원은 코로나19 확진 환자의 코호트 격리 등의 방역 조치를 실행한다.
    • 세 요양원은 인력이 적절하게 충원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한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매주 인력 실태를 보고한다.
    • 세 요양원은 모든 방문자와 직원들이 적절한 개인 보호장비를 착용할 수 있도록 한다.

SEIU Healthcare가 조정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주정부 보건당국이 세 요양원을 직접 통제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온타리오 정규간호사 68,000명, 간호대 실습생 18,000명을 대표하는 온타리오 간호사협회(Ontario Nurses’ Association)도 4월 17일, 노동자의 개인 보호장비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한 장기요양원 네 군데를 고등법원에 고발하였다. 네 개 요양원이 온타리오주 ‘감염병 예방과 통제에 관한 기준’을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법원 명령을 신청한 것이다. 4월 23일, 법원은 신청을 받아들여 해당 장기요양원이 공중보건지시(Public Health Directives)를 준수하라고 명령했다. 간호사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에 대한 (예컨대, 개인 보호장비의 종류 등에 관한) 의사결정은 간호사가 전문적, 의학적 판단에 기반해 결정하도록 명령했다.

 

캐나다 사례의 교훈

캐나다 사례는 장기요양서비스가 공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민간 영리 기업에 의해 장악된 사회의 비극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장기요양서비스가 민영화, 영리화, 분권화되면, 지금처럼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쳤을 때 무능한 기업과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만 남게 된다. 기존에 만들어 놓은 세세한 법과 규칙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나마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노동운동이 존재했기 때문에 도망친 기업과 정부를 소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캐나다 장기요양 서비스가 기업의 ‘자율적인 실천’에 크게 의존해온 만큼, 소환된 정부가 파편화된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긴 시간 지속된 정부의 역량 공백이 빠르게 메워질 리 없지 않은가.

노동조합들의 계속된 요구에 온타리오 주정부도 뒤늦게 움직이고 있다. 온타리오 주지사 도그 포드(Doug Ford)는 5개 장기요양원의 심각한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캐나다 군대에 도움을 요청했고 연방정부가 이를 승인하면서 4월 24일부터 군대 인력 250명이 본격 투입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취약한 노인이 밀집한 장기요양원에 대한 제대로 된 지원 체계를 우선해서 마련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군대를 동원하여 코호트 격리하는 손쉬운 전략을 택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온타리오 공무원노조(CUPE)는 군대 인력을 투입하는 것이 해답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요양원 내 코로나19 확진 환자를 온타리오주 병원들로 이송해서 치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온타리오주 병원들이 현재 가동률 70% 이하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요양원 환자들을 치료할 역량이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코로나19 위기의 한 가운데서 캐나다 노동운동은 계속해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기업과 정부, 사회를 움직여야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장기요양 서비스 체계의 위기를 부인하지 않지만, 강력한 요구가 없다면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리더십을 갖는 개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캐나다 사람들은 지난 2003년 사스의 위기가 보건의료체계 개혁의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기억하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