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01 산재보상 사각지대 살펴보기]

2019년 노동건강연대는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지원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일하다가 다치거나 병이 들어도 여전히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다시 직장으로 복귀해야 했던 노동자, 산재보험이 너무 어려웠던 노동자, 산재 이후 제대로 일을 못 해 생계에 타격을 입은 노동자를 만나고 생계비를 지원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산재보상의 사각지대를 비로소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정우준(노동건강연대 상임활동가)

2019년 산재보험통계에 의하면 109,242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다 다쳤습니다. 노동자 100명 중 네 명이 일을 하다 다친 꼴입니다. 하지만 일을 하다 다친 사람은 이렇게 집계된 약 11만 명보다 훨씬 많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거 ‘산업재해 아냐?’라고 이야기하지만 일을 하다 다쳐도 산재보험 청구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회사에 밉보일까봐’, ‘산재보험 처리하기가 까다로우니까’ 본인이 치료를 하거나 꾹 참고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재은폐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누수 방지 방안연구』(김진현, 2018, 국민건강보험 연구용역)에 따르면 산재 은폐율이 최대 42.4%에 이른다고 합니다. 일을 하다 다친 두 명 중 한 명은 그 책임을 온전히 본인이 감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2018년 여름 즈음, 아름다운재단에서 산업재해 문제를 다뤄보고 싶다고 노동건강연대를 찾아왔을 때 번뜩 생각난 것이 바로 이런 노동자였습니다. 구의역 김군, 2018년 12월 태안화력의 김용균. 이들의 사연은 각각 너무나 특별했지만, 대한민국에서 매일 세 명씩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것은 ‘일상’입니다. 우리는 11만 명이라는 산재 노동자의 뒤편에 있는, 일을 하다 다친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회사가 어차피 납부한 산재보험인데, 왜 이걸 통해 치료비와 생계비를 도움받지 않을까? 실제로 어떤 사람들이 더 많이 다칠까? 산재은폐라는 말 뒤에 있는 노동자의 사연을 듣고 싶었습니다.

2019년, 일을 하다 다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과 이를 둘러싼 제도의 문제점들을 파악해보기 위해 노동건강연대는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지원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중 산재 노동자 생계비 지원사업은 국민기초생할보장제도에서 1인 가구에게 최소한으로 지급하는 생계급여 금액인 50만 원을 최대 3개월간 산재 노동자에게 직접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산재보험을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의 복잡하고 경직된 절차를 따르지 않으려 했습니다. 노동자가 직접 방문 신청하지 않고, 비대면으로 제출한 최소한의 서류를 가지고 지원 대상 노동자를 선택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보건학 전공자, 변호사, 노무사, 기자, 노동조합 활동가 등 전문가 7명이 한 달에 한 번 서너 시간씩 머리를 맞댔지만, 다양한 직업과 노동형태, 재해 전후의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판단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사연을 들여다보면 모두에게, 더 많은 금액을 지원해드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기에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9년 4월 25일부터 8월 20일까지, 신청해주신 89명의 노동자 중 64명에게 생계비를 지원해 드렸습니다.(<표1>과 <표2> 참조)

일을 하다 다치는 상황은 다양했습니다. <표3>에서 볼 수 있듯 갖가지 이유로, 다양한 부위를 다쳤습니다. 절단되고, 넘어지고, 추락하고,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해 정신질환을 얻고. 한 시간, 두 시간. 한 번, 두 번, 세 번을 통화해도 이 상황을 모두 담기 어려웠습니다.(산재노동자의 생생한 이야기는 본 사업의 연구보고서인 『산재보험 사각지대 해소 및 형평성 강화를 위한연구』(2020)에서 볼 수 있습니다. 보고서 보러가기.)

생계비 지원사업에서 요약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들이 무슨 일을 하다가,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 산재보험의 신청 여부 등이었습니다.

사실 지원 사업 내내 전화를 받고, 안내를 하고, 서류를 받고 심사를 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산재 노동자 지원사업에 기꺼이 동의해주신 아름다운재단과 그 후원자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근거자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회의감도 문제였습니다. 한 달에 50만원의 돈을 산재노동자에게 지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제도를 개선하는 정책연구나 현장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많은 고민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산재노동자 이야기를 함께 기획하고, 심층분석 기사를 썼던 한겨레21 변지민 기자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워낙 많은 노동자가 끔직하게 죽기 때문에 웬만한 비극은 평범해 보입니다. 산재 기사를 쓸 때마다 ‘불행을 전시하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늘 유혹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리 쓰면 산재가 ‘누군가의 특별한 이야기’가 되고 말 것 같았습니다. 저는 산재의 평범함과 보편성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누구든 겪을 수 있고, 수많은 사람이 겪고, 이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당신도 겪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한겨레21 1298호 10P)

한 해 최소 11만 명이 경험하는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제도의 불충분함과 사회적 무관심 속에 비극이 되어버리는 산재 이야기를 사회에 꺼내놓는 것. 64명이라는 작은 숫자지만 모든 비극의 형태를 겪어야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하다 다친 노동자의 삶을 바꾸고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의 밑거름이 되는 것. 아마도 89명의 이야기를 듣고, 64명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드렸던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듣습니다. 일을 하다 다친 노동자의 ‘부주의함’이나 ‘본인이 신청하지 않은 것을 누구 탓을 하냐’고 개인을 책망하는 이야기들 말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최소 11만 명의 노동자들이 다쳤을 때 믿고 의지하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누군가가 없었기에 꾹 참고 일하며, 본인이 견뎌냈던 시간과 고통의 크기를 사회는 알아채야 합니다. 일을 하다 다쳤다는 이유로 회사, 동료, 국가로부터 책망을 당하고 내쳐진 그들의 사정이 더 많이 공유되어야 합니다. 그 아픔, 고통을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사회가 그 책임을 함께 나누고, 견뎌낼 수 있도록 말입니다.

2019년 노동건강연대가 아름다운재단의 여정은 2020년과 2021년에도 이어질 예정입니다. 『노동과건강』 독자들도 관심을 가지고, 산재보험 개혁 활동에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 에필로그

2019 산재 노동자 지원 사업에 선정된 노동자들의 사연 대부분이 다 기억납니다. 어디서 일했고, 어떻게 다쳤고,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여러 번 통화를 하고 심사를 위한 서류를 정리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춰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통화, 그 후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분이 한 분 계십니다. LG유플러스에서 근무하다 돌아가신 故김태희 님입니다.

인터넷 설치기사로 혼자 작업 중 추락해 중태에 빠진 김태희 님의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은 수술비를 급히 내야 했던 동료의 신청 때문이었습니다. 지원사업 후반부였기 때문에 일도 제법 익숙해져서 이야기를 받아 적고 심사위원회에 정리된 서류를 올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산재보험 수급이 당연할 것이기에, 우선 당장 필요한 1개월만 생계비를 지원하면 될 것으로 결정했고, 지급도 금방이었습니다. 앞선 몇 달간 들었던 익숙한 사고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지원사업 몇 달 만에 누군가가 일을 하다 다친 이야기가 저에게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밤낮,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상담 전화가 오고, 자신의 다친 부위를 사진으로 받는 일이 일상이 되자 일을 하다 다친 사람의 이야기가 평범하게 느껴져 버린 것입니다. 심지어‘이 사람은 지원받기 어렵겠는데’, ‘진술 내용이 좀 이상한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어느덧‘서류에 채워지는 정보’에 급급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뒤 김태희 님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내겐 너무도 평범하게 느껴졌던 사고가,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아마도 근로복지공단의 직원, 사고를 조사하는 근로감독관도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업에 지원한 노동자 대부분은 근로복지공단에서, 회사에서 받은 홀대를 잊지 못했습니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일인데 누구도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고, 정해진 서식을 채워오라는 그 싸늘함에 상처를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한 해 수십만의 산재 노동자의 이야기가 허공에 흩어지는 것은, 그 이야기를 가장 많이 귀 기울여야 할 근로복지공단과 노동부가 그 이야기들을 노동자의 투정이나 쓸데없는 설명으로 치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의 재해 속에는 수많은 구조적 문제와 사연들이 결부되어 있습니다. 재해 하나가 숨겨질 때 이를 해결할 실마리들도 사라집니다. 2019년 2020명의 죽음은 그 사라진 실마리들이 만들어낸 숫자입니다. 평범하고 익숙하지만, 절대 평범할 수 없고 또 익숙해져서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노동건강연대가 꼼꼼하게 기록하고 알리겠습니다. 다시는 김태희 님의 이야기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2019년 11월 15일 사망한 LG유플러스 故 김태희님의 명복을 빕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