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01 산재보상 사각지대 살펴보기]
산재 노동자는 어떻게 가난해졌나?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산재보험은 직업과 관련된 사고와 질병으로 초래된 건강 문제, 경제적 손실로부터 개인들을 보호해주는 사회안전망이다. 휴업 때문에 발생한 경제적 손실을 보상해주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 주며, 직업 복귀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 산재보험은 1964년 7월 1일부터 노동자 500명 이상 광업과 제조업 사업장부터 시행되어 현재 5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사회보험 제도이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보장성을 강화하며 여러 문제점을 개선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문제점이 적지 않다. 산재 노동자와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들이 지속적인 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이유이다.
2019년 한 해 동안, 노동건강연대는 아름다운재단의 후원으로 산재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의 생계지원 사업과 더불어, 『산재보험 사각지대 해소 및 형평성 강화를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에서는 지난 10여 년 동안 이루어진 산재보험 제도 개혁에 대한 연구들을 종합하고, 산재보험 신청 경험이 있는 산재 노동자들과 면담을 했다. 당사자들과의 면담은 정책 결정자나 전문가 입장에서가 아니라, 사람 중심, 이용자 중심 관점에서 산재보험의 문제점,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렇게 도출한 과제들은 전문가나 정책결정자들이 생각하는 개혁의 우선순위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고, 또 노동자들의 오해나 제도에 대한 이해 불충분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용자들의 잘못된 인식조차 제도의 실재(實在)를 이루는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산재보험을 사회적 안전망으로써 개선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노동과 건강』 이번 호에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산재를 겪은 노동자들이 사고 이후 어떻게 어려움에 빠지게 되는지, 산재보험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전하고자 한다. 다만 이 글은 연구사업의 결과 보고서를 요약한 것이기 때문에 더 자세한 내용은 연구 보고서를 통해 확인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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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나?
면담에는 총 20명의 노동자가 참여했다. 남성 17명, 여성 3명이었으며 나이는 32~74세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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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산재노동자들을 힘들게 만들었나?
첫째, 산재보상과 관련하여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은 이미 산재 발생 이전부터 각종 사회경제적 곤란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측면에서 자원이 빈약하고, 이러한 자원의 열세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생애 전 과정에 누적되고는 했다. 노동시장에서 안정된 고용과 안전한 노동 환경을 보장해주는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는 충분한 인적 자본을 구축하지 못한 이들은 위험하고 불안정한 일자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 고착된 이중 노동시장 구조에서 위험한 업무는 하청업체나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전가되며, 게다가 이런 기업들일수록 위험 관리를 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들은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반복적으로 산재를 경험하고, 충분한 보상이나 치료, 요양을 하지 못한 채 작업장에 복귀하거나 더 열악한 일자리로 밀려나고는 했다. 산재보험 제도가 노동시장의 구조적 요인과 생애과정에 걸친 사회 불평등의 누적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지만, 산재보험 제도에 접근하고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조건에 처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은 제도 개선에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즉, 전문 대리인을 고용하기 어렵거나 제도이해의 수준이 높지 않은 보통 사람들, 재해를 입증하기 어려운 사람들, 산재보험 청구로 인해 일자리에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 이미 낮은 인적 자본에 덧붙여 산재 때문에 노동시장 복귀가 더욱 어려워진 사람들을 초점에 두고,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산재가 발생하고 승인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마다 여러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재해 발생 직후 긴급 대응 단계에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도시 지역 의료자원이 풍부한 곳에서는 상대적으로 문제가 덜했지만, 중증 외상에 대한 초기 처치가 잘못되거나 심각하지 않은 외상에 대해서 진단과 초기대응이 부적절하여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들이 종종 확인되었다. 이 단계는 아직 산재 신청조차 하지 못한 시점이고, 따라서 사측에서 지원하지 않는 이상 의료비용을 건강보험이나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만일 수술 같은 중증 상황에 닥치면 경제적 부담이 매우 심각해진다. 게다가 당장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생계에 곤란을 겪게 되고, 가족들이 간병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면 경제적 어려움은 더욱 가중된다. 나중에 산재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이 기간의 경제적 부담을 견딜 수 있는 저축이나 여유 자산이 없다면 경제적 회복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일부 사례에서는 응급의료비 대불 제도나 긴급 생계비 지원 같은 다른 사회보장 제도를 통해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산재 신청 이전에라도 사측에서 미리 비용을 지급해주거나 잘 갖춰진 기업복지 덕분에 이 시기를 별 어려움 없이 통과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호의적 조건을 전제로 사회보장 제도가 설계되어서는 안 된다. 한편 중증도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해도 사측의 압력이나 대체인력 부족 때문에 서둘러 업무로 복귀했다가 증세가 악화되는 경우가 있었다. 불안정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병가’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자비로 대체인력을 고용하기도 했다. 재해 그 자체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에 더해서, 재해 초기의 부적절한 보건의료 서비스와 경제적 부담은 환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건강과 생계의 회복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다. 이 단계는 말하자면 산재 노동자에게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에 해당한다. 의료기관의 서비스 질을 개선하는 것까지 산재보험 제도가 개입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 기간 동안의 한시적인 경제적 어려움을 완화해줄 수 있는 “긴급지원 서비스”는 매우 절실하다.
산재를 청구하는 단계에 접어들어도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었다. 특수고용 노동자나 자영업자의 산재보험 적용 제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우선 피해 노동자의 역량이 매우 취약하다는 문제가 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산재 위험에 많이 노출된 노동자일수록 대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자본이 열세에 있다. 이들은 산재를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거나, 불리한 지위 때문에 산재 청구에 나서기 어렵고, 또 산재를 신청하려 해도 제도에 대한 이해 수준이 낮거나 주변에 공식적․비공식적으로 도움을 받을 자원도 부족하다. 이들은 의료비용 부담이 크거나 심각한 후유증이 우려되는 상황이 되어야 산재를 청구했다. 의료기관에서 선제적으로 산재 신청을 권유하거나 안내한 경우, 또는 노동조합이나 사회단체들로부터 지원을 받은 경우에는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 신청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고 해도, 걸림돌이 남아 있다. 우선 사업주가 산재를 회피하거나 은폐하고, 자료 수집과정에서 비협조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업주들의 이런 태도는 개인 특성이라기보다 개별요율로 보험료가 산정되는 산재보험의 특성 때문에 보험료 인상에 대한 우려(사실은 해당하지 않는 경우가 많음에도), 규제 당국의 현장 점검 우려, 그리고 하청업체인 경우 원청과의 계약해지에 대한 우려 탓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기업의 권위주의적 문화나 반(反)노동 정서가 산재 신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었다. 사업주만이 문제는 아니다. 산재보험 청구 절차 자체가 복잡하고, 근로복지공단의 반응성이 낮은 탓에 노동자들은 어려움과 더불어 마음의 상처를 얻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게다가 영세사업장에 근무했거나 불안정고용 조건에 처했던 이들은 근무이력이나 산재 정황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렇게 주체 요인과 구조 요인이 만나서 나타나는 부정적 결과는 우선 산재 청구 절차의 지연이나 불승인이다. 이렇게 되면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은 한층 심해진다. 또한 병가를 낼 수 없는 처지 때문에, 혹은 의료비 부담 때문에 충분한 요양을 하지 못하는 미충족 의료(unmet needs) 상황이 발생하고, 이는 재활을 가로막거나 이후 노동시장 지위 하락을 촉진하는 요소가 된다. 뿐만 아니라, 산재를 청구했다는 것으로 인해 회사로부터 차별을 받거나 보복성 해고를 당하고, 동료와의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손해와 과실 산정을 둘러싸고 회사와 민사소송을 벌이는 경우도 있지만, 승소하든 패소하든 노동자 입장에서는 장기간의 법적 분쟁 자체가 경제적 손실과 정신적 스트레스의 원천이 된다.
셋째, 다행히 산재가 승인된다고 해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산재가 인정되고 휴업급여와 요양급여를 수급하게 되면 건강회복과 생계유지에 안전망이 마련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산재보상을 받아도 여전히 경제적 곤란에 시달린다. 요양급여에서 비급여의 몫이 크고 특히 간병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합병증이나 심각한 후유증이 남는 경우에는 지속적인 의료비 지출이 필요한데, 산재 종결이나 합병증의 불인정 때문에 부담은 한층 더 커진다. 만일 사업장이 근로자재해보장책임보험(이하 근재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면 비급여 부분을 추가로 보장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민사소송을 하거나 본인이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또한 휴업급여가 불충분하다는 점도 문제인데, 원래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이거나 일용직처럼 고용이 불안정하고 임금이 불규칙한 이들은 휴업급여 산정에서도 상당한 불이익을 경험하게 된다. 또 다른 문제는 의료서비스의 미충족이다. 산재 종결조치나 앞서 기술한 의료비 부담으로 인해 치료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 혹은 업무복귀에 대한 압력이나 병가 부족으로 인해 충분한 요양이 불가능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비용 부담이나 시간만이 아니라, 재활서비스의 질과 가용성, 접근성도 심각한 문제이다. 현재 직업 재활까지 고려하여 체계화된 재활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은 근로복지공단 산하의 병원들 이외에 찾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환자들은 양질의 재활서비스를 받을 수 없거나, 소수의 산재 전문병원을 이용하기 위해 임시로 주거시설을 구하거나 장시간 이동을 하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된다.
충분한 기간에 걸쳐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거나, 심각한 장애가 남는 경우 원래의 일터로 복귀하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미 인적자본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산재로 인해 장애까지 얻게 된 경우, 그 어려움은 배가된다. 근로복지공단의 구직 훈련/서비스가 존재하지만, 노동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매우 미흡한 상황이다. 이렇게 장애나 심각한 후유증이 남는 경우, 노동시장 복귀는 물론 일상생활 자체가 어려워지고 사회관계망이 축소되어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그러지 않아도 취약한 정신건강을 더욱 악화시키고 일부는 극단적 절망으로 인해 자살 생각이나 시도를 하기도 한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기존의 의료비 부담에 더해 노동시장 이탈이나 지위 하락으로 인한 빈곤과 경제적 어려움의 악순환이다. 산재보험의 장해급여나 장애연금 이외에 기초생활보장제도, 장애인 생활 지원 서비스 등 다른 복지제도들이 존재하지만, 대부분 신청주의에 기반해 있고, 제도가 복잡하며, 또 제도 간 연계가 불충분하다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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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평성 관점에서 어떤 제도 개혁이 필요한가?
첫째, 산재가 발생하기 전, 혹은 산재 신청 이전 단계에서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대비책은 산재보험 제도에 대한 노동자와 사업주의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다. 업무와 관련된 재해는 당연히 산재보험의 적용대상이 되며, 산재보험은 사회보장 제도로써 노동자에게 급여의 ‘권리’가 있다는 것이 폭넓게 인식되어야 한다. 최소한 노동자 스스로의 심리적 장벽이나 무지로 인해 산재청구를 기피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또한 고용주의 산재 은폐/회피 압력이 부당한 권리침해 행위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될 필요가 있다. 산재 은폐에 대한 처벌 강화는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지만, 노동현장에서 기업주와 노동자 사이의 권력 불평등 때문에 이 또한 완벽하게 작동하기는 어렵다. 불법행위의 발각과 처벌에 앞서, 현장 말단까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부정수급 예방’을 홍보하는데 기울이는 노력의 아주 일부만 권리캠페인에 투자해도 어느 정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재단을 포함한 시민사회의 대중 캠페인도,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않은 취약한 노동자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산재 발생 직후 단계에는 무엇보다도 응급/긴급지원 제도가 절실하다. 아직 산재 신청을 하기 전에 직면하는 병원비 부담, 생계 부담 등을 긴급하게 완충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며, 그 절차가 간소해야 함은 물론이다. 사회 네트워크와 경제적 여유가 충분한 이들이라면, 산재가 승인된 이후 손실을 쉽게 복구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이 ‘결정적 시기’가 생계와 의료서비스에 중대한 갈림길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피해노동자 당사자만이 아니라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기관의 역할이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병상에 있는 노동자나 돌봄 부담이 있는 가족이 근거 자료를 확보하여 행정당국에 지원을 신청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산재 신청 단계에서는 절차를 사용자 친화적으로 개선하여 노동자가 대리인 없이도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 당사자나 가족이 직접 청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의료기관이 이를 대행하거나, 취약노동자들에게 ‘국선변호인’ 제도처럼 대리인을 지원해주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의료기관이 산재 신청을 대행하는 것은 환자 입장에서 가장 편리한 대안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산재보험 요양기관의 확대, 업무 관련성에 대한 의사의 문진과 상세한 의무기록 작성, 청구 프로세스 확립 같은 구체적 보완책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공적 대리인 알선의 경우에도, 인력의 확보와 연계망 확립, 보수체계 구축 같은 구체적 세부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청구과정에 비협조적이거나 은폐를 시도하는 사업주, 이에 공모한 의료기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산재는 영세사업장에서 많이 발생하며, 기업은 산재보험료 인상이나 행정 제제에 대한 우려, 이후 원청과의 계약에서 걸림돌로 작동할 것을 우려하여 산재 사실을 은폐한다. 예방과 보상을 적극적으로 분리하고, 형평성 관점에서 개별실적요율 제도를 폐지하고 산재 예방을 위한 기술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넷째, 산재 승인 이후에도 중증 질환인 경우 비급여, 특히 간병비 부담을 덜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근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업장에 소속되어 있고, 실손의료비를 보충할 수 있는 사보험도 가입하지 않은 취약 노동자의 경우 이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산재보험 급여는 대부분 건강보험 급여 항목 및 수준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이는 사실 건강보험에서 간병급여 제도가 이루어진다면 저절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를 당장 기대하기 어렵고, 산재 노동자에게 경제적 곤란을 초래하는 핵심 요소라는 점에서 산재보험의 추가 급여가 절실하다. 또한 휴업급여의 경우에도 고용 불안정과 현재의 산정체계 때문에 불리함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산정 방식 변경이 필요하다.
다섯째, 심각한 장애나 후유증으로 인해 지속적인 치료와 재활이 필요하고, 더 이상 노동을 할 수 없게 된 이들을 위한 사례관리 프로그램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내 대부분의 사회보장 프로그램들은 신청주의에 기반하며, 부처마다 또 개별 프로그램마다 연계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당장 제도의 통합적 설계는 어렵다는 점에서, 보건과 복지서비스의 복잡한 체계를 조율할 수 있는 케이스매니저는 매우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여섯째, 의료적 재활과 직업 재활 모두 현재로서는 양과 질 측면에서 불충분하다. 근로복지공단 산하 병원의 재활서비스는 질적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숫자가 많지 않아 가용성과 물리적 접근성에서 취약하다. 일단 공적인 재활서비스 시설의 확대가 필수적이며, 이와 병행하여 안정적 재활이 가능하도록 중간집(assisted house) 형태의 시설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산재 피해 노동자들의 주거와 교통비 부담을 덜고, 이동의 편이성, 주거에서의 안정성과 편이성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산재보험이 특별히 취약한 노동자들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도록 설계된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위험의 외주화’를 가능하게 하는 한국의 불평등한 노동시장 구조, 사회적으로 기원한 불안정 노동자들의 낮은 ‘건강 역량’은 산재보험의 적용과 이용에서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사회적 결정요인을 교정하지 않는 이상, 산재의 발생과 산재보험 보호에서의 불평등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산재보험이 작동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맥락과 주체 요인에서 심각한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형평성 렌즈를 통해 제도 개혁을 추구하는 것은 형평성을 증진시키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