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02 : 故 김용균 이후, 오늘의 현장]

‘김용균법’ 이후 현장은 변함없지만, 가능성을 열어가는 건설플랜트노동자들

하해성(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실장)

 

유난히 따뜻한 3월 중순이었다. 1인 시위를 하기 위해 시내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낯선 번호의 전화는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대답을 하기 전 짧은 순간동안 여러생각이 스쳐간다. ‘제발 사고 소식은 아니길…’ 다행(?)히 노동건강연대다. 김용균법 시행 이후 현장의 변화에 대한 글을 청하는 전화였다.

이번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은 법이 제정된 이후 27년 만의 사건이었다. 그 법이 시행된 지 60일 정도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변화’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을까? 게다가 나는 산업안전보건을 담당하게 된 지 1년도 안된 초짜다. 산별노조의 집행일꾼으로서 현장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고, 전체 산업과 전국적 상황을 볼 수 있는 위치도 아니다. 당연히 거절했지만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들의 설득력은 가히 최강이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 나는 글을 쓰기로 했고, 부채가 생겼다.

이 글을 쓰는 5월 17일은 김용균법이 시행된 후 122일이 지난 시점이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한 노동자들의 피해가 확대되고 있고, 이천 물류센터 신축현장 화재 사건이 있었다. 김용균법 시행 이후 변화에 대한 글쓰기는 더욱 난해한 과제가 되어버렸다. 능력과 경험은 부족하고 주제는 어렵다. 그래도 법이 시행된 2020. 1. 16. 이후 보고된 몇 가지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 장면들을 이어보면 어떤 시사점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장면1 사고 원인 조사에 하청노동자 참여를 배제하는 원청

3월 4일 새벽, 롯데케미칼 대산 NCC공장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 폭발로 연면적 12만여㎡ 공장 내부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고, 벽을 넘어 주위 민가의 피해가 200여건 신고되었다. 현장의 노동자들과 인근 시민들이 고막파열, 안면두부손상, 뇌출혈 등의 중경상을 입는 등 총 480여명의 인명피해가 신고된 대형 사건이었다.

이번 폭발 이전에도 대산석유화학단지에서는 2019년에만 롯데케미칼 BTX공장 벤젠누출과 화재, 한화토탈 유독성 물질 유출 등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잇따른 사건들은 대산석유화학단지의 안전문제가 심각한 수준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 폭발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석유화학단지에서 가장 위험한 공정에 노출되는 플랜트건설 하청 노동자들의 안전에 중대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사고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문제 원인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하청 건설 노동자들은 사실상 배제되었다.

사건조사 초기 노동부서산출장소와 노동단체 사이에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기로 협의가 되었다. 충남지역 노동단체들은 회의를 통해 참가인원에 대해 플랜트건설노조 충남지부(이하 충남지부) 2명, 지역 명예 산업안전감독관 2명 등을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노동부와 롯데 관계자들이 협의한 결과는 인원을 5명으로 한정하고 충남지부와 지역 명예 산업안전감독관을 각 1명씩으로 줄이는 것이었다.

인원을 줄인 이후에도 롯데 측 관계자들은 충남지부 참가자의 활동 기간을 임의로 줄이고, 일정변경을 통보하지 않는 등 특별근로감독이 형식적으로 진행되도록 활동을 차단했다. 충남지부는 제대로 된 조사를 위해 사고현장 진입을 막는 롯데 관계자들과 수차례 갈등을 겪어야 했다.

롯데 측은 하청 노동자 대표에게 자료조차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 폭발의 경우 배관의 노후화 이전에 배관공사 과정에서 결함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의심되었다. 이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충남지부는 사고 지점 배관에 대한 공사 당시 촬영한 비파괴검사 사진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자신이 용접한 부위에 대한 검사를 받아야 하는 플랜트건설 노동자들은 비파괴검사 사진을 보면 하자가 있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회사 기밀 사항이라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비파괴검사 사진은 감리업체 관계자들이 검수하도록 되어 있는 공개가 의무인 자료다. 게다가 폭발이 발생한 곳은 나프타를 분해하는 공정 중 원료를 압축하는 곳으로써 일반적으로 알려진 공정에 불과하다. 대단한 기술이나 영업비밀이 있을 수 없다. 설령 롯데만의 특별한 기술이 적용되었다고 하더라도 용접 부위만을 심층 촬영한 비파괴검사 사진으로 공정상의 기술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롯데는 하청 노동자에게 제대로 된 조사를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사고 이후 두 달이 지나도록 롯데케미칼 폭발사건의 원인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도대체 그들은 하청 건설 노동자들에게 무엇을 숨기고 싶었던 것일까?

 

장면2 하청노동자들의 분노를 부르는 원청

3월 6일에는 SH에너지화학 군산공장에서 폭발사건이 있었다. 롯데케미칼 사건에 비해 규모는 작은 폭발이었지만 작업 중 발생한 사고여서 인명피해가 컸다. 재해를 당한 3명 중 1명의 조합원이 3월 25일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다. 사고조사 결과 폭발물질은 공장에서 원료로 사용하는 펜탄가스라는 것, 반응기로 연결되는 배관에 맹판(Blind Patch, 밸브를 잠궈도 가스가 새는 경우를 대비해서 설치하는 안전장치)이 설치되지 않았었고, 화재감시자도 배치되지 않은 것 등이 드러났다.

원청인 SH에너지화학은 2~3일 전에 퍼지 작업(탱크 등의 내부에 위험한 기체를 제거하는 공정)을 했기 때문에 화기 작업 허가서를 발행했고 공정에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퍼지를 했다는 SH측의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불완전한 차단(맹판 미설치)으로 인해 밤사이 펜탄가스가 유입되었다고 추정되는 상황이었다. 사고가 난 해당 공사의 전 과정에 대해 SH측은 직접 총괄 관리하고 있었고, 배관설계와 부품 사용에 대한 결정도 SH측이 했었다. 폭발은 명백한 SH 측의 책임이었다.

그러나 SH에너지화학 측은 재발 방지를 위한 노동자 참여 제도와 적절한 유족 보상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요구를 억지 주장으로 취급하며 대화에 불성실하게 응했다. 심지어 언론에 대해서는 작업자의 잘못이 있었다는 주장을 하는 등 유족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전북지부(이하 ‘전북지부’)는 지부 전 조합원 소집을 결정했다.

일용직 건설노동자인 조합원들은 하루 작업을 나가지 않을 경우 연장근무수당과 주휴수당까지 포함해서 3공수(3일치 일당) 이상을 포기해야 한다. 게다가 최근 전북지역에 공사가 없어서 전북지부 조합원들은 대부분 일거리를 찾아 여수, 당진, 광양으로 나가 있었다. 거리도 멀지만, 무엇보다 하루라도 자리를 비우면 다른 사람이 채용되어 돌아갈 일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전북지부 입장에서는 대다수 조합원에게 피해를 감수할 것을 요청하는 절박한 결정이었다.

지부 결의대회가 있었던 4월 2일 15시 전북지부 소속 조합원 350여 명이 SH에너지화학 공장 앞에 집결했다. 350명은 조합비를 내고 있는 전북지부 조합원 거의 대부분이었다. 큰 희생을 감수하고 모인 전북지부 조합원들을 보고서도 원청의 관계자들은 대화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분노한 조합원들은 16시 40분경 공장 본관 1층과 본관 앞마당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맨날 파이프나 아르곤 가스통을 들고 다니는 조합원들의 힘은 불도저 같아서 사측의 방어선이 물에 젖은 종이처럼 찢어졌다. SH 측은 조합원들의 분노가 통제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보고 나서야 대화에 나섰다. 결국 당일 저녁 23시경 유족과 조합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합의를 도출할 수 있었다.

 

장면3 자기 역할을 착각하는 고용노동부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폭발사건과 SH에너지화학 군산공장 폭발사건은 여러 가지로 닮은 사건이었다. 원청의 하청 노동자에 대한 태도도 판박이었지만 중대재해를 대하는 노동부 근로감독관의 행동도 찍은 듯이 똑같았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은 ‘중대재해’에 대해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3조(중대재해의 범위) 법 제2조제2호에서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재해”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재해를 말한다.

      1.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
      2.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발생한 재해
      3. 부상자 또는 직업성 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재해

위 규정 어디에도 재량의 여지를 두고 있지 않다. 사고가 발생하면 피해 정도에 따라 중대재해인지 아닌지가 객관적으로 결정된다. 사고의 피해는 시간이 지날수록 확대되므로 중대재해에 미치지 않던 사고가 중대재해로 확대되는 경우는 있어도 중대재해였던 사고가 아닌 것으로 줄어들 수는 없다. 그런데 두 사건에서 담당 근로감독관들은 마치 짠 것처럼 재량사항처럼 행동했다.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폭발사건의 경우 첫날 확인된 피해자만 60여 명에 달했다. 그런데 담당 근로감독관은 ‘소속이 같은 노동자 10명이 부상당하지 않으면 중대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출처조차 알 수 없는 기준을 언급했다. 그러고는 이를 핑계로 최소한의 조치조차 취하지 않으며 롯데 측에게 시간을 벌어 주었다.

SH에너지화학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재해자 2명의 화상 정도가 피부 전체의 50%와 60%로 진단되어 3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함이 명확했다. 그런데 빠른 조치를 요구하는 현장 노동자에게 담당 근로감독관은 ‘중대재해인지 여부는 상황를 지켜봐야 한다’는 말을 한 후 작업중지 등을 발동하지 않고 늑장을 부렸다. 중대재해 규정 여부는 재량 사항이 아니라는 전북지부 간부들의 항의가 있은 후에야 담당 근로감독관은 중대재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두 상황에서 근로감독관들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감독관이 아니라 기업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노동 통제 감독관에 불과했다. 고용노동부 소속 공무원은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공무원과 중심가치가 달아야 하지만 제 역할을 간과하고 있었다.

 

장면4 보고도 보지 못하는 관리자들

5월 7일 16:40경 여수 GS칼텍스 MFC 신축 공사장에서 추락사고가 발생했다. 10m 높이에서 추락했지만 다행히 중간에 2번 배관에 충돌하면서 떨어져 재해자는 목숨을 건졌다. 관리자들은 작업자 부주의가 원인이라고 했다. 원청인 GS건설 측은 사고보고서에 원인을 ‘퇴근 시 서두름’ ‘안전벨트 미착용’이라고 분석한 후, 재발 방지 대책으로 ‘안전벨트 착용’이라고 기록했다.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여수지부 노동안전국장은 회사 측의 판단이 타당한지 확인하기 위해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현장 조사결과는 회사 측의 보고 내용과 전혀 달랐다. 재해자는 비계공으로서 당일 주요 업무를 종료하고 15:38경 검수를 받았다. 퇴근 시간까지 1시간 이상 남았기 때문에 내일 설치할 자재를 상층부로 옮겨 놓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문제는 너무 많은 업체들이 동시에 각자의 공정을 진행하면서 상하 동시 작업이 빈발하는 것이었다. 현장에 가자 동시 작업으로 인한 동선 문제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동시 작업이 잦은 곳이라 아시바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었다. 자재를 상층부로 올리기 위해 재해자는 외부 아시바를 이용하지 못하고 배관 사이의 틈을 이용해 받아치기라는 작업을 통해 자재를 올렸다. 그런데 작업한 공간에 발판도 없이, 안전위치로 돌아올 때 안전벨트를 걸 구명줄도 없었다. 재해자가 안전벨트를 할 수 있는데 퇴근 시 방심해서 안전벨트를 미착용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안전발판도 없는 철골 위에서 구명줄도 설치하지 않고 작업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노동조합 간부가 현장을 직접 가보지 않았다면 사건은 순전히 재해자의 단순 방심으로만 기록되었을 것이다.

 

장면5 법 시행 첫날 작업중지를 선언하다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전남동부경남서부지부 용접분회의 부분회장(이하 ‘A’)은 오랫동안 현장 노동안전 담당자 활동을 해오면서 화재감시자가 부족하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용접을 시작하면 숨도 크게 쉬지 못할 만큼 집중해야 불량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용접사들은 일하는 도중에는 주변 상황의 변화를 인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용접 불똥이 다른 소재에 불을 일으키거나, 주변에서 동시에 다른 작업이 시작되는지 인지하기 어려워서 사고 위험이 높다. 용접 불똥으로 2~3층 아래에서 불이 붙은 경우에는 인지하고 내려오는 사이에 화재로 번질 우려가 있어 늘 불안했다.

그래서 A는 1월 16일을 기다렸다. 김용균법이 시행된 첫날 A는 과감하게 ‘화기 감시자가 부족하다’는 것을 이유로 ‘작업중지’를 선언했다. 회사 관리자들이 화도 내고, 협박도 했지만 A는 ‘법이 개정되었으니 법 좀 지키시라’며 버텼다. 결국 회사가 졌다. 취업을 기다리던 화기 감시 경력자를 긴급히 연락해서 충원한 후에야 A의 용접작업은 시작되었다. 법이 작동된 순간이었다.

 

장면들이 의미하는 것

김용균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노동현장 변함 없다’는 사실은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고가 이미 증언했다. 하지만 변화의 가능성이 없거나 김용균법은 무용지물이었다고 평가할 문제가 아니다. 왜 법이 작동되지 않는지를 알아야 ‘김용균법’에 힘이 실리고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만들 때 더욱 힘 있는 법,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산업사회는 크고 작은 사업으로 연결된 거대한 기관차와 같은 느낌이다. 너무 빠르고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 기관차는 멈추면 쓰러지는 자전거와 같은 특성을 가졌다. 생산(공급)을 늦추면 쓰러질 것 같이 비틀거리며 더 빠른 속도를 요구한다. 이 속도가 지금 재난의 원인이 되고 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시대는 이전과는 달라져야 하고, 달라질 것이라며 뉴노멀을 말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뉴노멀은 무엇일까?

적어도 뉴노멀은 김용균법의 취지가 작동하는 현장이어야 한다. 김용균법을 제정할 때 우리가 요구했던 것은 책임져야 할 기업이 책임을 지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안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사용자들은 생산 활동이 복잡한 다단계 구조를 거치도록 만든 후 그 뒤로 숨어버렸다. 이익은 누리면서도 책임은 피할 수 있는 기업 관련 제도가 수많은 산재 사망의 원인이었기에 김용균법의 취지는 수익을 누리는 기업(도급인)이 책임에 직면하도록 찾아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와 사법부라는 시스템은 아직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건설현장으로 치면 뉴노멀은 적정한 공사 기간 즉 적정 공기(工期), 적정 인력, 적정 공사금액이어야 한다. 적정 공기가 계약 단계에 반영되어야 위험천만한 동시 작업이 사라질 수 있다. 최저 단가로 낙찰받은 하청업체들은 공사 기간을 단축해야 조금이라도 이익이 남기 때문에 타 업체의 공정은 신경쓰지 않고 자기 공사 속도만 다그친다. 상하 동시 작업을 하든 인화성 물질 작업과 화기 작업을 동시에 하든 자신들의 공정률만 보이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조금 더 천천히 공사가 진행되는 속도에 적응해야 한다. 건설노동자도 잔업과 철야를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임금이 보장되는 도급단가와 적정 공사 기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죽을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현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런 뉴노멀을 위해 정부는 김용균법이라는 시스템을 작동시켜야 한다. 시스템은 그 자체의 고유한 목적에 맞게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기관차의 속도가 중요하다고 브레이크가 가속페달 역할을 하면 그런 기관차를 타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경제발전을 생각하는 것은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부처가 할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노동부가 경제를 생각하며 가속장치 역할을 자청하고 있다. 가속장치 밖에 없는 기관차는 단지 사람 죽이는 무기에 불과하다. 노동부는 페트롤 방식의 땜질식 단속이 아니라 재해 발생을 대대적으로 알리고 그 원인을 분석해서 그 책임을 져야 할 기업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익만을 위해 눈 감고 달리는 기업에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정부 기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장면 5에서 본 것과 같이 법이 작동되도록 하는 것은 정부만의 몫은 아니다. 아쉽게도 A가 만들어 낸 장면 5는 매우 특이한 사례였다. 오히려 ‘작업중지’를 ‘불법 쟁의행위’로 몰아 인사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A는 어떤 피해도 받지 않았다. A의 사례는 김용균법을 만들기 위해 김미숙님을 비롯한 유족들이 힘든 과정을 참고, 수 많은 동지들이 투쟁한 결과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사실 작업중지권은 조항과 문구가 바뀌었을 뿐 ‘위험하면 노동자가 작업중지를 선언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본질 자체를 바꾼 것은 아니었다. 김용균법의 시행은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노동조합은 노동조합대로 현장에서 김용균법이 작동되도록 제 몫을 다하자. 노동현장의 변화는 아직 거의 없는 수준이지만 김용균법은 분명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