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책읽기]

이 정도면 별로 과로한 것 같지 않다? 그러다가 죽였다

『과로 자살』(가와히토 히로시 지음, 김명희·노미애·다나카 신이치 옮김, 한울, 2019)

 

류한소(노동건강연대 회원)

‘당당한 자세보다는 최대한 슬픈 표정을 짓고 검은색 옷을 입는 것이 좋다.’

 

과로사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고인의 죽음에 대해 산재를 신청한 후 근로복지공단 질병판정위원회에 진술을 위해 참석할 때 이러한 내용을 공유한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가족의 죽음과 업무와의 관련성을 판단하는 데 유족의 말투와 옷의 색깔이 영향을 끼칠 리 없고 끼쳐서도 안 되지만, 그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법정근로시간을 준수하고 퇴근하는 것을 ‘칼퇴’라고 부르며 눈치 주는, 과로에 대한 인식이 부재한 사회에서 과로로 가족이 사망했을 때, 일터는 이를 무조건 은폐하고 고인의 탓으로 떠넘기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이를 면밀하게 조사하고 보상하고자 하는 국가의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터에서 마지막까지 재가 될 정도로 태워진 고인의 명예를 지키고자 할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그렇지 않을까. 일본에서 1988년 만들어진 ‘과로사 110번’이라는 전국적인 상담 창구에서 과로사, 과로 자살 유족을 상담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공론화시키는 데 참여했던 『과로 자살』의 저자 역시 이러한 어려운 사정을 매우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노재보상(우리로 치면 산재보상)을 둘러싼 Q&A에는 과로 자살로 노재를 신청하고자 하는 유족에게 일러주는 상세한 당부들이 나와 있다. 노동기준감독서(우리로 치면 근로복지공단, 이하 노기서)에서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유족이 주기적으로 전화해서 담당 직원과 조사 계획을 물어보아 조사 상황을 확인할 것, 고인이 회사 동료 누구와 가까웠는지 유족이 미리 파악한 다음 노기서 사람들이 회사 동료들의 의견을 청취한다고 할 때 구체적으로 누구를 만나도록 요청할 것, 고인이 주변에 알리지 않고 정신과 진료를 받았을 수도 있으니 고인의 수십 년간의 의료기록을 확보할 것 등. 아마도 저자는 이 책이 일본의 과로사·과로 자살 현상을 분석하고자 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현재 절망적인 상황에 맞닥뜨려 이를 헤쳐나가고자 분투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세한 Q&A를 쓰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더욱이 일본의 과로사와 과로 자살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고 결국 과로사 방지법 제정을 가능하게 한 것이 유족들의 고통스러운 힘이었음을 알고 있기에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그러한 과정을 담은 책으로, 과로사 110번의 상담 사례에서 시작하여 과로 자살의 특징, 원인, 배경, 역사, 이를 줄이기 위한 앞으로의 제언 등을 서술하며 ‘과로 자살’에 대한 종합적 논의를 시도하는 책이다.

과로사란 말 자체도 아직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인 것 같지는 않은데 과로 자살이란 무엇일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제목이었지만, 그간 언론에서 심심찮게 보도된 죽음들이 과로 자살을 가리키는 것이란 것을 곧 깨달았다. ‘사람의 인생에서 일이 다가 아닌데, 왜 그것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못했을까.’ 안타까움이 섞여 있긴 하지만 고인에 대한 책망이 여전히 담겨 있는 이러한 생각에 대해 『과로 자살』은 말한다, “바라는 일은 오직 하나, 5시간 이상 자고 싶다.”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태, 그 막다른 길에 몰린 상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것이 바로 과로 자살이라고. 즉 과로로 인해, 소위 말하는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건강이 악화됐고 그로 인해 자살에 이르게 되는 것이 과로 자살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여기서 ‘과로’에는 비단 장시간 노동뿐만 아니라 야간노동, 교대근무를 비롯한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발생하는 육체적 부담과 무거운 책임, 성적 괴롭힘을 포함한 직장 내 괴롭힘 등의 정신적 부담이 모두 포함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과로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는 것이 아닐까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 한 명에게 과중한 업무가 주어지는 일터, 혹은 모두를 쥐어짜는 일터는 이미 다른 노동조건도 열악한 데다 수직적인 조직 문화,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한 일터일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노동조합을 비롯해 이에 대해 집단적으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창구가 없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과로 자살』의 저자는 그간 노재 인정을 위해 회사를 조사해 보았을 때, 이미 그 회사들이 무보수 연장근로, 임금 체불 등 많은 법률 위반 사례가 있었다고 말한다. 또 하나 발견된 과로 자살의 특징은 특정한 업종, 특정한 직책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과중한 업무에 처해 목숨을 끊게 된 신입사원도 있지만,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다른 직원들을 내보내야 하는 역할을 맡은 중간 관리자 또한 과로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하루 24시간을 감시당하듯 직장과 사생활을 가리지 않고 폭언을 듣는 여성 노동자도,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일터를 벗어나지 못하는 남성 노동자도 과로 자살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과로를 유발하는 요인이 광범위하다는 사실은 일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안전한 일터를 상상하는 우리의 시야 또한 넓어져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책은 과로 자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다방면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꼼수식’ 노사협정이나 노동계약으로도 넘을 수 없는 노동시간의 한계를 법률로 정하기, 실패가 허용되는 일터, 일자리를 잃어도 살 수 있는 사회안전망 만들기, 정신 건강 위기에 직면한 노동자들이 적절한 의학적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특히 사회 초년생들에게, 여러 경로를 통해 교육을 실시하기 등등. 앞서 말한 유족 및 이들과 연대하는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2014년 제정된 일본의 과로사 방지법도 이러한 방안 중 하나일 것이다. 이 법안은 주로 과로사와 과로 자살에 대한 국가의 책무성을 명시하고, 이에 대한 조사 및 통계 자료 마련, 국가적 차원의 캠페인 지원 등을 포함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보면, 이 법안은 우선 은폐되고 있는 과로사·과로 자살의 문제를 드러내고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과로 자살의 업무 관련성을 판정하는 법원 판결문에서 앵무새처럼 등장하는 말 ‘업무와의 관련성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별로 과로한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기업을 편들면서 노동자의 나약함을 탓할 때, 그 ‘이 정도’를 바꾸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면 몇 달 전 고용노동부는 과로사 방지법 제정에 대해 “일본을 제외한 외국 입법례가 없으며 과로사 개념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과로사 방지법 제정에 반대의견을 피력했다고 한다. 고용노동부는 일본을 제외한 외국 입법례가 없다는 것을 말하기 전에 왜 일본과 한국에만 이러한 사회적 요구가 생겨났는지를 먼저 자문해 봐야 하지 않을까. 더욱이 먼저 과로사 방지법을 제정한 일본보다 노동시간과 자살률이 높은 한국적 특수성을 알고 있다면 말이다.

더불어 이 책의 저자인 가와히토 변호사는 과로사 110번이 개설된 이후 30년 동안 과로사 노재 인정과 기업 보상 측면에서는 진전이 있었지만 과중 노동 실태는 개선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의 과로사 방지법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살인기업’이자 싼값으로 노동자들의 목숨을 대체하며 이익을 얻고 있는 기업의 책임을 묻는 것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례에서도 과로 자살이 발생한 병원, 방송사, IT 업체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가고 싶어 하는 직장이고 심지어는 ‘몇 달 전 자살한 사람이 있는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란 질문을 면접자들에게 당당하게 던지곤 한다. 그런 점에서 과로 자살을 발생시키는 기업의 책임을 묻는 것, 나아가 과로 자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실행되기 위한 토대를 만드는 것은 특정한 법 하나의 범위를 벗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보다 앞서 이를 경험하고 해결책을 강구해 나가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이후 우리가 대응의 진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