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책읽기]

약속한 희망은 오지 않았다

대량 해고, 개인과 지역, 그리고 삶

『제인스빌 이야기』(에이미 골드스타인 지음, 이세영 옮김, 세종서적, 2019)

김성이 (시민건강연구소)

 

제인스빌은 어떤 동네인가

이 책은 미국 위스콘신주에 위치한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의 제인스빌 공장이 폐쇄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년 동안 일어난 일을 담고 있다. 특정한 지역공동체가 8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특정 산업과 함께 성장했다가 그 공장이 멈춘 후 만나는 당혹과 혼란을 GM과 GM 협력업체 실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가족, 사회복지사, 교육자, 지역의 양당 정치인, 경제인, 언론 등 다양한 관계자의 시선으로 비추고 있다. 한 산업도시가 불황과 기업의 경영악화에 직면해서 수많은 실직자를 만들어내고 지역사회가 침체되는 현상은 제인스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몇 년 전 대규모 조선업 구조조정이 발생한 거제나 작년에 한국GM이 철수한 군산, 그보다 더 앞선 쌍용자동차의 평택에서 보았었고, 그 세 지역에서의 실직과 구조조정의 여파가 제인스빌을 능가하면 했지 결코 적지 않았다. 대량 생산과 소비의 시대, 국제 정치경제에서 소모품이 된 노동자들의 삶에 닥친 위기는 어느 한 동네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시차를 달리해서 도착할 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아직 우리는 『거제 이야기』나 『평택 이야기』를 남기지 못했지만, 자세하게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필요가 이 책에 담겨있다.

미국 위스콘신주 제인스빌 위치

제인스빌과 포트웨인을 오가는 GM 집시의 길

제인스빌 GM 공장은 1923년 쉐보레를 생산하기 시작한 이래 대공황과 전쟁, 노동자 파업을 겪으면서도 85년 동안 생산라인을 멈추지 않았던 곳이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제너럴모터스의 100만대 째 자동차를 출고할 수 있었던 것도 정부와 국민들에게 제인스빌 GM 노동자의 질적 우수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자부심을 안고 살았다. 그런 만큼 GM 공장의 근무시간과 임금, 화물 운송 시간은 각각 지역 라디오방송국 시간, 식료품 가격, 주민의 외출시간 계획 등에 이르기까지 “마법사처럼 도시의 생활 리듬을 규율”해왔고, 개인과 기업, 지역사회는 한 몸처럼 움직였다. 제인스빌에서는 부모가 같이 GM 공장이나 GM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것은 흔했고, 자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부모가 써준 추천서로 GM에 입사했다. 사람들은 “할아버지 대부터 GM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08년 12월 23일 오전 7시 7분 마지막 자동차 ‘타호’를 세상에 내놓고 GM 제인스빌 공장이 문을 닫았다. 경제위기가 닥쳤던 2008년에서 2009년 사이 미국 전역에서는 88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제인스빌과 인근 지역에서 9000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실직했다.

공장이 문을 닫은 후 남은 노동자들에게 선택지는 몇 가지 없었다. ‘GM 집시’가 되어 멀리 떨어진 GM 공장에 취업하거나, 미래를 도모하며 지역에 있는 블랙호크 기술학교에서 재교육을 받거나, 급여나 직종이 달라지더라도 당장 갈 수 있는 업체에 취직하거나, 그대로 실직상태로 살아가거나. 그러나 대부분 “계속해서 실직상태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단지 급여가 충분하지 않은 여러 직업을 전전”한다.

 

공장 폐쇄의 여파

현대 산업사회에서 노동자의 표상은 생존을 의탁하는 고용주에게 성실하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인간이다. 야간근무나 교대근무, 주말근무 그 무엇이건 기꺼이 수용하는 노동자는 오히려 집과 가족으로부터의 부재 증명을 통해 도덕적 품성과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노동자의 실직은 역설적으로 그를 집에서 볼 수 있게 됨으로써 가족에게 위기로 감지된다.

“지난달에 처음으로 아이들은 아침 시간에 아빠가 부엌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을 봤다. (중략) 아빠의 아침 식사가 던진 수수께끼를 풀고 난 알리사와 케이지아는 어느 때보다 많은 근심거리를 떠안게 되었다. 가족들이 처한 상황 때문에 원치 않는 어딘가로 끌려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이들의 불안이 물질적인 곤궁함으로 이어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전교생 절반에 가까운 학생들이 굶주리고 지친 채 학교에 오고, 소득기준선 이하의 가정에 지원하는 연방정부의 무상급식을 받았다. 친구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치약이나 낡은 청바지, 깡통 수프 같은 기증품을 보관하는 ‘파커의 벽장’을 두드렸다. 또한 ‘자신이 평생 가난을 겪어보기는커녕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리라고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을’ 아이들의 부모는 이른 아침부터 수치심을 억누르며 무료음식물 공급소 앞에 줄을 섰다. 예전 같으면 자동차공장 노동자들이 낮잡아 보던 버거킹이나 타겟 마트 일자리라도 앞다투어 구하는 바람에 그 일을 하던 하층 노동자들은 연쇄적으로 자리를 잃었다. 부모들은 자녀를 방치한 채 일자리를 찾아 떠나기도 했고, 일부는 집을 잃고 잠자리를 찾아 떠돌았다. 당장 홈리스 청소년들이 머물 집이 긴요해졌고, 지역의 자살률은 2배로 치솟았다,

 

공장 폐쇄 이후의 조치들과 그 효과

GM 제인스빌 공장 폐쇄 직후에 경제전문가라거나 고위 정치가들은 마치 준비한 모범답안처럼 실직자 재취업교육, 신규산업 투자 유치, 지역사회의 자조활동 등을 대책으로 내놓았고, 주민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처방에 따라야 했다. 이런 계획들은 제인스빌 사람들을 다시 웃게 했을까?

 

실직자 재교육

실직자 재교육은 정치적 입장이 달라도 누구에게나 폭넓은 지지를 받는 정책이었다. 한국에서도 IMF 외환위기 이후 거리에 갑자기 수많은 IT관련 재취업교육이 성행했던 것을 기억한다. 제인스빌에서도 재교육은 “사람들이 적성에 맞는 새로운 진로를 찾는 예상치 못한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며 적극 장려되었다. 그런데 당장 수입이 없더라도 졸업 후를 기약하며, 혹은 박봉의 파트타임 일자리를 병행하며 기술학교를 이수한 사람들에게 정말 믿기 어려운 사실이 나타났다. 블랙호크 기술학교에 입학한 제인스빌과 인근 지역 해고자 약 2000명의 취업률과 급여가 학교에 입학하지 않았던 해고자들에 비해 모두 낮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가장 놀라운 사실은 급료 하락폭이 가장 큰 해고자 그룹은 졸업할 때까지 블랙호크에서 꾸준히 공부한 이들이란 점이다.” 실직자 직업훈련이 고용 안정성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평가가 부재한 상황에서 재교육이 그들의 미래를 보장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해고자들을 더욱 위험에 빠트린 것이다. 심지어 더 많은 교육비를 들여서 만든 유망 프로그램 이수자도 마찬가지였다.

신규산업 투자 유치

지역의 정·재계 인사들은 기존 회사를 붙잡아 두고 새로운 기업을 유치하여 손상된 제인스빌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기금을 모으고 각종 인센티브를 만들고 경쟁하던 인접 도시와도 협력한다. 이것은 제인스빌만의 새로운 전략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미국 자동차회사들은 신차 생산라인 배치 지역을 정할 때, 후보지의 주정부와 지역사회가 세금감면과 여러 가지 재정 혜택으로 막대한 ‘지참금’을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더욱 눈여겨볼 것은 제인스빌 GM 공장을 유지하기 위해 제인스빌이 포함된 전미자동차노련 제95지역노조가 신규 입사 조합원들에게는 표준임금의 절반을 지급하는 이중임금 체계를 도입하고, 공장 내에는 그보다 더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하청업체를 들이는데 GM과 합의했다는 점이다. 위스콘신주는 이런 조건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미시건주의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지원에 밀려 유치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제인스빌 정·재계 지도자들은 제인스빌 회생의 핵심이라고 여기는 사업을 발굴하는데 바로 ‘샤인메디컬테크놀로지’(이하 샤인)이다. 샤인은 우라늄에서 진료용 방사성동위원소를 추출한다는 메디슨에 있는 스타트업 회사로서, 아직 직원이 10명에 불과하고 기술도 검증된 바 없으며, 연방 원자력규제위원회의 혹독한 평가를 거쳐야 하는 작은 기업이었다. 그런데도 샤인은 다급한 제인스빌의 열렬한 구애를 받고 앞서 GM이 그랬듯이 얼마만큼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인지 협상을 벌이기 시작한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샤인을 유치하는 게 과연 이익일까 싶은 점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사라진 수천 개의 일자리에 비해 샤인이 제안한 일자리는 100여개를 조금 넘었고, 앞으로 투자 유치에 따라 가동에는 최소한 3년 이상이 걸릴 수 있다. 고급 첨단기술을 이용하는 생명과학 산업에 과연 자동차공장에서 일하던 제인스빌 주민들이 취업할 수는 있는지, 제인스빌 한 해 예산의 21%에 달하는 재정을 샤인을 위해 지원한다는 것은 가능한지, 신생 벤처사의 사업계획 자체로 그만한 기술과 대규모 제조공정을 보증할 수 있을지 모두 답하기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은 막대한 재정 부담과 특히 핵물질 저장과 처리계획이 부재한 신사업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했는데, 샤인은 오히려 주민들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겠다면 입주를 철회하겠다고 나지막이 협박했다. 예상되는 이익과 위험을 따져보면 터무니없는 도박일 수 있는 이런 상황을 주민들이 감수해야 할까? 고부가가치의 첨단 생명 공학 기술을 상용화하여 일자리와 소득을 높이겠다는 샤인의 계획은 아직도 지켜지지 않았지만, 샤인은 제인스빌 시정부의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사업체를 유지하고 있다.

지역사회 자조활동

민간의 자선과 자조에 기반을 두었던 사회복지 시스템은 이렇게 “갑작스레 신용카드 한도를 초과하고 퇴직연금을 깨고 때로 살던 집에서 나와 친척집에서 살며 막대한 심리적 압박을 받는” 신빈곤층에 큰 도움이 될 수 없었다. 사회복지 수급 자격은 대출금보다 시세가 더 낮아져서 팔수도 없는 집이 있거나, ‘순수한 해고자’가 아니라 열악한 일자리 몇 개를 전전하다가 그나마 몇 센트 시급을 더 주는 일을 택한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고등학생 자녀가 아르바이트로 벌어들인 수입을 가구소득으로 포함하고는 기준소득을 넘었다고 푸드 셰어(식료품 할인 구매권)를 받을 수도 없었다. 심지어 푸드 셰어는 그 자체로 소득으로 산정되어 헬스넷(건강보험이 없거나 치료비가 부족한 사람들을 치료하는 무상의료 기관) 이용을 제한하기도 했다. 지역정부의 재정능력은 완전히 새로운 위험에 처한 가구 규모를 수용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마저도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어야만 도와줄 수 있다고 기다리는 형국이었다.

 

약속한 희망은 왜 오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제 제인스빌에서 이루어진 실직자 재교육이나 신규사업 투자 유치, 지역의 자선 대책이 왜 약속한 희망을 주지 못했는지 짚어볼 차례이다.

 

노동자들의 힘을 악화시키려는 정치적 시도

경제위기가 닥칠 경우 노동을 기반으로 구축된 사회적 관계를 악화시키려는 시도는 정치적으로 힘을 발휘한다. 제인스빌이 속한 위스콘신주에서는 미국 최초로 산업재해보상법(1911년), 실업수당 제도(1932년)가 만들어졌고, 메디슨 주정부 공무원 노동조합(1932년)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을 보장한(1959년) 첫 번째 주로서 20세기 미국 진보 운동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러나 공장 폐쇄 이후 지역의 공화당 상원의원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정당한 몫 이상을 받는다는 주장을 펴고 다녔고, 일자리 공약을 내세워 당선된 공화당 소속 주지사는 노동자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공공부문 노조들의 단체교섭권을 약화시키는 예산 수정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힘썼다. 이런 정치적 선동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이 도시에서 교사를 포함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살찐 고양이 같은 존재로 간주”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신임 주지사는 실직으로 병원치료를 못 받는 주민들이 넘쳐나는데도 새로운 보험시장 개척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오바마케어 교부금 3700만 달러를 집행하지도 않았다. 미국 내 손꼽히는 진보적인 지역이 왜 선거에서 이처럼 노동계급을 약화시키고 복지제도를 시장화하는 대표를 선택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조직적으로 선거에 참여하지 못한 반면, 반대편은 더욱 결집해서였다.

상품으로서의 노동, 파편화된 노동계급

실직자 재교육이 취업 기회를 보장할 것이라는 발상에는 인간의 노동이 언제든 쉽게 교육되고 다른 생산을 위해 투입될 수 있는 소모적인 상품이란 전제가 있다. 덧붙여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에 대한 자연법칙에 가까운 믿음은 일하지 않는 인간은 사회적 가치가 없는 존재로 만든다. 이런 노동 사회에서 일자리를 가지지 못한 노동자는 개인의 덕성이나 노력이 부족한 것이고,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상품화된 노동자는 지속적인 임금 하락에 직면하더라도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과정이 집단적인 노동자 정체성을 빼앗고 상품화된 개별 노동력으로 변모시켰다는 증거는 매우 극적이다. 위스콘신 노동자의 7분의 1이 노조로 조직되고 2002년 진성 조합원 수가 7,000명에 이르는 등 한때 지역에서 가장 강력했던 자동차노련 제95지역노조에는 10년 만에 438명의 진성 조합원과 4,900명의 은퇴자만 남았다. 또한 매년 치러지던 노동절 퍼레이드의 핵심적 후원자이자 참여자였던 자동차 노조원들의 이탈로 2015년에는 노동절 축제가 아예 취소되기에 이른다.

노동자들이 위기에 처한 이 절박한 시점에 이들의 정치적 목소리마저 소거된 이유는 무엇일까. 책에 등장하는 실직 노동자들의 6년 동안의 삶에 답이 있었다. 제인스빌 노동자들이 실직 후 전전하는 여러 일자리는 자동차를 만들던 기술과는 거의 무관하고, 경력이 전혀 필요 없는 단순직 일자리이기 때문에 실직 전에 비해 임금이 훨씬 줄어들었다. 노동시간은 더 길어지거나 불규칙적이었고 노동환경은 더 위험해졌다. 가족이나 자신을 돌볼 시간도 없었다. 몇 년 동안 일자리 이동을 거쳐가며 이들은 노동자로서 자부심이나 공동의 정체성을 가질 시간적, 심적 여유는커녕 얼마간의 휴식이 주어진다면 차라리 부족한 잠을 자거나, 생계에 보탬이 될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게 되었다. 각자도생이 목표인 온순한 산업예비군들로 파편화된 노동계급은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노동의 지위 변모를 알아차리기 더욱 어려워졌다.

 

시민과 노동자들의 긴축에 기댄 회복

지역 회생 계획들은 대규모 실직과 공장 폐쇄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을 묻지 않는다. 계획들은 자동차산업의 자리를 또 다른 산업이 대체하면 될 뿐이라는, 계속 상품의 생산과 소비를 창조함으로써 사회의 동력을 잃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산업이나 경제가 어려움에 처할 때 경제 회생이라는 목표에 근시안적으로 매달려 무엇이라도 성과를 내려는 정·재계 인물들이 단기적인 자구 계획을 밀어붙이고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변화 계획은 숙고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공화당 소속 폴 라이언 의원은 GM이 돌아오기만 바라지 말고 공장 부지를 다른 용도로 쓸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샤인을 제인스빌에 유치했지만, 지역사회의 자원을 독식한 샤인의 약속은 지켜지지도 않았다. 제인스빌 주민들의 일자리는 줄고 실질임금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샤인의 선례를 보면서도 제인스빌 시정부는 덜러제너럴(저소득층 상대 저가물품 판매 유통기업)이 인력 300명을 (GM의 28달러보다 적은) 15-6달러 수준의 급여로 채용하는데 1,150만 달러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약속했다. 폴 라이언은 2017년에는 폭스콘의 투자유치를 받아내지만, 투자를 약속한 폭스콘이 계획을 바꾸면서 제인스빌 옆 동네인 마운트플레전트는 쑥대밭이 되었다.

지방정부가 기업 유치를 위해서 세금 감면과 공공요금 공제, 각종 기금 조성 등으로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함으로써 지역사회와 시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복지와 편의 비용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기존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중 노동시장에 합의함으로써 전체 노동자들이 받아야 할 정당한 몫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것은 무엇을 위한 희생인가? 계획대로 회복된다 해도 시민들과 노동자는 번영을 되찾는 게 아니라 내핍을 강요당하는 게 아닐까?

 

체계화되지 못한 사회 안전망

공화당 부통령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던 지역의 유력 정치인은 “정부가 무엇을 해주기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는 지역의 너그러움과 자선활동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인스빌이 안정된 상황에서는 주민과 자선가들의 관대함과 선의가 부족한 사회적 자원을 대체할 수 있었지만, 공장 폐쇄 이후 제인스빌에서는 기업체들의 크고 작은 자선가들이 사라졌다. GM 이사진들이 각종 지역사회 비영리단체에서 빠져나가면서 이제 형편없이 작아진 파이를 두고 지역 비영리 기구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게 되었다. 여유를 잃은 사람들은 과거보다 동정심의 수준이 낮아지고, 열심히 찾으려고 노력한 사람만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공공연히 떠들기 시작했다. 관대함의 도시 제인스빌을 지탱했던 기업과 개인들의 기부삭감, 기부 공백 때문에 불과 몇 년 사이에 과거 GM에서 일했던 부모 덕분에 풍족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현재는 가난한 ‘1세대 빈곤’이 등장했다. 이들에게 에코와 푸드 셰어, 헬스넷의 문턱은 넘기 어려웠다.

 

이제 제인스빌들의 상상이 필요하다

제인스빌 이야기는 어느 소도시의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러스트 벨트로 유명한 디트로이트나 세인트루이스 또는 조선산업의 전성기가 끝난 영국 글래스고나 리버풀, 스웨덴 말뫼 같은 스러져간 산업 도시들의 목록에 한 줄 더해질 뿐이다. 자본이 상품 생산 기지로 한 도시의 몸집을 한껏 키워놓고는 더 많은 이윤을 찾아 감시와 규제가 약하고 인건비가 싼 또 다른 도시로 훌쩍 떠난 사례는 한 둘이 아니다. 지구 곳곳이 이렇게 자본의 수탈로 폐허가 되도록 지켜보기만 할 것인가.

제인스빌은 인간의 삶이 단 하나의 경제 형태, 즉 시장경제에 전적으로 의존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의 축소판이다. 모든 사람들이 GM의 노동자로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그 속에서 인생을 마칠 것으로 예상했지만, GM이 사라진 자리에 노동자로서 자신을 팔 것 외의 생계수단이 없는 것이다. 책 속에서 실직 노동자들의 겪는 저임금, 상시적 실업, 불완전한 사회안전망은 너무도 공통적이다. 전적으로 임금노동에 기반한 삶에서만 의미를 구할 수 있고 복지가 노동에 대한 대가로 주어진다는 전통적 노동관을 넘어서지 않으면 지금의 위기는 항구적으로 인간을 무화시킬 것이다.

저성장과 긴축의 시대, 게다가 국경을 넘는 노동자들과 긱 이코노미와 인공지능 기술까지 과거형과 미래형의 산업이 공존하는 전혀 다른 사회가 우리 앞에 도착해있다. 기계적 효율성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노동하는 인간의 가치는 계속 하락할 수밖에 없다. 거대한 생산의 시대에 단일 주력상품을 만들기 위해 형성되었던 도시의 퇴장을 보면서, 우리는 노동 사회를 위해 구축된 노동윤리에 질문을 하고, 그런 윤리를 바탕으로 비대해진 성장중심주의 산업사회의 유토피아를 문제시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과 자유가 자본과 권력자들의 탐욕 혹은 선의에 좌우되거나 시험의 대상이 되지 않고도 그 자체로 존중되는 새로운 사회의 구성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