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해온 이상윤 활동가

 

처벌 수위 낮은 산업안전보건법
기업들 위반 반복…문제의식 느껴
세월호 등 사회적 재난까지 포함
고 노회찬 의원 숙원 정의당 재발의
21대 국회 움직일 수 있는 건 여론

이 범죄의 재범률은 ‘97%’다. 대검찰청의 범죄통계 분석((2007~2017년)을 보면 2017년 기준으로 전과 1범이 471명, 전과 2범이 300명, 전과 9범도 105명이나 됐다. 같은 범죄자가 계속해서 같은 범죄를 저지른다는 뜻이다. 이 수상한 범죄의 이름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다. 산업재해를 다루는 그 법이다. 지난해 산재사망자 수는 2020명(사고 855명, 질병 1165명)이었다. OECD 가입국 중 산재사망률은 1위(23년 동안 21번)다. 이 정도라면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법에 뭔가 문제가 있다. 이 법만으로는 안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산업재해를 일으키는 범죄를 제대로 처벌할 수도, 예방할 수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2006년 최악의 살인기업선정식으로 시작된 제정운동은 10여 년 동안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으나, 2018년 김용균씨 사망사고를 계기로 관심이 모아지기 시작했고 2020년 현재 다양한 입법운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5월27일 170여 시민사회단체가 연합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가 출범했고, 7월2일 자체 법안을 발표했다. 운동본부는 ‘국민입법청원제도’를 이용해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법안을 상정하겠다는 계획이다. 국회에선 6월11일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1호 법안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다. 7월1일엔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대표를 맡은 국회 생명안전포럼이 창립됐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포함해 사회적 재난 예방과 해결책을 연구하는 이 모임에는 민주당 의원 24명과 정의당 강은미 의원, 미래통합당 김기현 의원도 합류했다. 민주당 당대표선거에 출마한 이낙연 의원은 9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민주노총은 올해 반드시 처리할 ‘전태일 3법’ 중 하나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지정하고, 대대적인 입법운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논의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는 산재뿐 아니라, 가습기살균제 사고와 세월호 참사처럼 정부와 기업에 모두 책임을 물어야 할 ‘사회적 재난’에 대한 예방과 처벌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다.

매년 반복되는 끔찍한 산재사건에도 물렁했던,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처벌은 가능해질까. 2006년 살인기업선정 시작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을 해온 이상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 공동대표(노동건강연대 대표, 의사)를 만나 법 제정의 의미를 들어봤다.

– 의원입법 외에 국민입법청원을 준비하고 있죠.

“네. 올해 10월 상정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어요.(8월 24일~9월 22일 입법동의운동 후 10월 상정 목표) 한 달 안에 10만명의 동의청원을 얻으면 법안이 법사위에 상정되는 거죠. 짧은 시간 안에 그 인원을 모으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의원들한테만 기대 있을 수가 없어서요. 20대 국회에서 노회찬 의원이 발의했는데 상임위에서 토론 한 번을 안했어요. 지금까지 국민입법청원이 10만명을 넘은 것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관련 법안뿐이에요. 10만명의 동의를 얻을 수만 있다면, 국회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파워가 생긴다고 봐요. 그런데 10만명을 모을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 산재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인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 어려울까요.

“일반산재와 산재사망은 조금 달라요. 일반산재는 일하다 보면 누구나 한번은 겪을 수도 있는 문제지만, 산재사망은 많아도 굉장히 극단적인 형태거든요. 우리 사회 저소득계층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점차 계층간 이동이나 분리가 심해지고 있잖아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면 ‘그런 일이 있어? 한국에서?’하고 놀라죠. 윤리적, 도덕적 감성을 건드리지만 그게 자기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보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아주 특수하고 예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죠. 사망한 노동자 탓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하다가 아프거나 다치고도 그 사람이 몸 관리를 안 해서, 술 마시고 담배를 피워서, 좀 더 조심하지 않아서…. 이 문제가 우리 모두가 연관된 어떤 구조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생각을 하기가 힘들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회원들과 산재피해자 가족들이 지난 5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21대 국회 우선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회원들과 산재피해자 가족들이 지난 5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21대 국회 우선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정운동본부도 국민입법 추진
“취약 계층에 위험 돌리는 시스템
사고 일어날 때마다 잠시 아파하고
다시 ‘원래대로’ 살 것이냐
다른 경로를 택할 것이냐 묻는 것”

– 2006년 살인기업선정식을 시작으로 15년 째 입법운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기업살인법’이라고 불렀죠.

“네. ‘산재사망은 살인이다’라는 구호로 시작했어요. 저희는 그 구호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길 바랐어요. 산재를 개인의 책임이나 운명, 어쩔 수 없는 경제활동의 부산물로 보던 시각에서 ‘산재살인은 막을 수 있고, 범죄다’라는 프레임으로 바꾸고 싶었어요. 그런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지면 (산재사망은) 살인이니까 살인자는 당연히 처벌해야 한다는 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죠. 기업과 사업주를 강하게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자체가 목적은 아닌 거예요.”

–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사회에서 기업이라는 주체가 행하는 행위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기업은 자연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형벌체계에서 벗어나 있거든요. 죄를 저지르려면 의도가 있고 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기업은 (사람이 아닌 조직이라) 의도를 가질 수 없으니 처벌할 수 없다는 거예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의미는 한 사회에서 기업이 중요한 행위자라는 것을 확인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개인이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받는 것과 똑같이 기업도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을 받는다는 룰을 기업에 적용하는 최초의 사례로 만드는 겁니다.”

– 김용균씨 사망사고를 계기로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면서 기업의 책임이 강화됐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법이 필요한가요.

“현행법은 기업경영자를 처벌하긴 어려워요. 기업은 처벌할 수 있지만, 양벌규정이라는 형태로 처벌하게 돼있거든요. 개인(현장관리자)을 처벌하되, 그 개인을 관리·감독해야 할 의무를 법인이 소홀히 했다고 책임을 묻는 게 양벌규정에 의한 법인처벌이거든요. 법인이 처벌받는 이유가 범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라 관리·감독을 잘 못 했다, 이를테면 부모가 자식이 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잘못 가르쳤다는 거죠. 산재는 기업의 범죄인데, 이런 논리로라면 범죄로 볼 수 없는 거예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도 사회적 행위자다. 산재의 책임은 기업과 최고경영자에게 있다.’ 이것을 확실히 하려는 거예요.”

– 끔찍한 사고들이 많았지만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김용균씨 사고, 구의역 사고도 원청은 모두 빠져나갔고 벌금만 부과됐죠. 이 법이 제정되면 산재문제가 해결될까요.

“산재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이에요. 여러 문제가 얽혀있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해법이 아니라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라고 봐요.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문제가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된다고 해도 산재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수 있어요. 이법은 도깨비방망이도 아니고 마법의 탄환도 아니에요. 만능 해법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산재사망 문제 해결을 위해선 많은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이 법은 산재 해결을 위한 마중물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정답이 아니라 정답으로 가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한 거죠.”

[커버스토리]“산재사망은 막을 수 있는 범죄, 기업 처벌 못한다면 법에 문제 있는 것”

– 산재 해결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방법은 뭘까요.

“산재는 불평등의 문제예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층에 위험과 피해를 돌리면서 발전해 온 한국 사회의 구조와 관련돼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산재사고를 보면 분노하지만 차근차근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아…이게 이런 거였어?’ 해요. 산재문제를 정말 해결하고 싶다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경로를 선택해야 하는 거죠. 법 하나 만든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 거예요. 일부에게 위험하고 힘든 일을 떠넘긴 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잠시 가슴 아프고 분노하고 다시 원래대로 살 것이냐, 아니면 다른 경로를 택할 것이냐. 저희는 이제 다른 경로를 선택하자고 말씀 드리고 싶은 거예요. 소위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혁명이 일어났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한 국가 내에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해요. 한 사회에 사는 서로 다른 계층이 점점 더 만나는 일이 없어지고 있어요. 서로가 서로를 몰라요. 알게 되더라도 그렇구나…그런가보다…어쩔 수 없지 하고 넘어가는 거죠.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을 착취하는 구조를 공고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존재하고, 그 시스템이 있는 한 산재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거죠.”

– 특별법의 형태로 새로 제정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가장 중요한 건 더 많은 목소리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당사자들이 눈 앞에 보여야 하고, 더 많은 현장이 공개돼야 해요. 사람들이 불편하더라도 불편한 것을 직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제3의 세계가 있다는 걸 알려야 해요. 김용균씨 사망 사고를 계기로 미흡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는데, 사실 그 이전에도 처참한 사고는 많이 있었어요. 김용균씨 사고가 묻히지 않고 법개정까지 이끌어낸 건 정말 김용균씨 어머니의 노력 때문이거든요. 그걸 빼곤 설명할 수가 없어요. 삼성반도체 백혈병이 인정될 거라고 생각하는 전문가는 소수였어요. 저도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 황유미씨 아버지가 10년을 포기하지 않고 싸우셨죠.

“네. 죽은 사람은 말을 할 수 없고, 그럼 남은 사람들이라도 당사자의 목소리로 얘기를 해줘야 해요. 당사자의 증언이 제일 힘이 세요. 그런데 당사자들에게 다 나서라고 요구할 수 없어요. 당장 생계가 막막힌 분들이 많기 때문에 여기에 매달려서 같이 운동해달라고 하기 어렵죠. 기업들은 그런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유족들에게 ‘민형사상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언론에 알리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돈을 줘요. 피해 당사자들이 나서지 않는 것이 당연하죠. 그렇기 때문에 노동조합이나 저희 같은 사회단체들이 (그분들이) 나오실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 21대 국회의원들의 의지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기업들의 로비 때문에 절대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냉소하는 분들도 많은데요.

“기업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관련해 대놓고 로비를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아마도, 반기업정서를 깔고 있는 법이라고 부담스러워 할 수는 있겠죠. 저는 이 문제를 반기업이라든지, 산업현장의 극단적인 사고 사례로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산재는 한국사회에 내재된 지독한 불평등 문제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해결하는 게 국회의원들의 몫이잖아요. 국회를 움직일 수 있는 건 결국 여론이에요. 힘들고 오래 걸리더라도 한국 사회에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계속 응시하고 더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중대재해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하는 ‘중대재해’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발생한 재해’ ‘부상자 또는 직업병 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재해’이다. 강은미 의원(정의당)이 발의한 법안도 이 정의를 따른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에서 만든 법안에선 “사망 등 재해 정도가 심하거나 다수의 재해자가 발생한 경우로서 다음 각 호의 결과(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 부상자 또는 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재해)를 야기하는 것을 말한다”고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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