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말, 석면을 걷어내자] (상) 무엇이 얼마나 묻혔나
“땅속 온갖 유해 폐기물…30년 신음”
주민들 “쓰레기·폐유 등 다량 매립” 주장
부지 떠난 뒤 시치미 ‘뚝’ 동국제강 비난
부산시도 직무 유기 시민 피해 책임져야

최근 부산 남구 용호동 이기대 동생말 지구 도로공사 현장에서 다량의 석면포가 발견됐다. 석면포가 발견된 곳은 지난 1980년대 동국제강㈜이 슬래그를 야적한 곳으로 알려진 동생말 지구 가장자리 부분의 한 단면. 그동안 인근 주민들은 이 지역에 동국제강에서 나온 슬래그뿐만 아니라 폐선박 해체물과 폐석면, 폐유 등도 함께 묻혀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번 석면 발견으로 주민들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된 상황. 절경을 자랑하는 이기대 동생말 지역에 어떤 이유에서 폐기물이 묻히게 됐는지, 석면 등 폐기물과 토양 오염에 대한 해결책은 없는지를 집중적으로 알아본다.

동국제강은 1962년 부산 남구 용호동에 터를 잡고(현재 LG메트로시티 자리) 부산공장을 가동한 후 2000년 부산제강소를 철거하고 경북 포항으로 완전히 떠나기까지 30년이 넘는 세월을 부산시와 함께했다.

그러나 동국제강이 떠난 후 인근 주민들은 동국제강이 동생말 지역과 섭자리 인근 지역에 석면 등 다량의 유해 폐기물을 묻고도 이를 처리하지도 않은 채 헐값에 땅을 넘기고 떠났다며 동국제강이라는 기업의 비윤리성에 대해 성토하고 있다. 또한 매립 당시 감시감독을 소홀히 한 부산시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고 있다.

당초 동국제강과 부산시는 84년 2월 임대차계약을 맺고 용호동 5의3번지와 5의4번지 약 1만9천850㎡(약 6천15평)에 있는 사석을 86년 아시안게임을 위한 요트경기장 건설용으로 채취해가는 대신 그 자리에 동국제강에서 나온 슬래그(1일생산량 약 100㎥)를 매립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부산시가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는 사이 동국제강이 슬래그만 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용호동 지역에서 30년 넘게 살았다는 주민 A씨는 “당시 동국제강에서는 고철 배를 많이 들여왔는데 배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나온 쓰레기와 석면, 폐유 등을 이곳에 갖다 부었다”면서 “매립 당시 마을 주민들이 나와 일을 했는데 동국제강에서는 민원 해소를 위해 고철 등 돈이 되는 것들을 차에 싣고 내려와 주민들에게 뿌리고는 이를 되샀다”고 주장했다.

동국제강 직원이던 B씨는 “제강 공정 과정에서 수백명의 직원들이 열에 잘 견디는 석면포로 된 앞치마를 사용했다”면서 “이번에 발견된 석면포뿐 아니라 엄청난 양의 석면포가 동생말 지역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산업안전공단과 대한석면관리협회 김정만(동아대 의대 교수) 회장 등에 따르면 1970~80년대 철강 혹은 제강 공정에서 열에 잘 견디는 석면은 꼭 필요한 물질이었고 당시에는 단열재로서 석면만한 제품이 없었다.

부산시와 남구는 2002년부터 이 지역에 대한 토양오염 조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석면과 같은 유해성 폐기물에 대한 조사는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동국제강은 2001년 4월 남구청에 철강슬래그 처리 계획서를 제출, 이 지역 토양 18만t(슬래그 10만t, 황토 8만t)을 용호만 매립지역의 매립토로 재활용할 계획임을 밝혔다. 그러나 이후 매립 허가가 취소돼 계획은 없던 일이 됐다. 동국제강과 남구청은 또 매립된 철강 슬래그를 남구청이 처리하는 대신 토지를 주민 복리를 위해 활용토록 하는 조건으로 남구청에 토지를 무상 양여하는 방안도 추진했지만 이마저도 흐지부지됐다. 결국 동국제강은 이 땅을 2003년 12월 Y사에 8억원이라는 헐값에 팔고 떠나버렸다.

이후 Y사는 이곳을 유원지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을 추진했고 지난 1월에는 부산시로부터 실시계획 인가를, 2월에는 남구청으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감사원은 지난 8월 감사 결과 부산시와 남구청이 오염 토양에 대한 정화 대책 없이 사업을 허가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며 부산시에 이들 공무원 6명에 대한 징계를 요구한 바 있다.

동국제강의 폐기물 매립에 대해 부산시는 당시에는 폐기물 관련법이 미비한 상태여서 문제삼을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동국제강이 당시 묻은 석면 등이 현재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책임을 부산시나 동국제강이 져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본보는 동국제강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공식적인 답변은 해오지 않은 상태다.

이현정기자 yourfoot@busanilbo.com

이기대 동생말 관련 일지

―1980.8~1986.12 동국제강, 동생말 지역에 철강 슬래그 매립(남구청 추정)
―1984.2 동국제강과 부산시, 사석 채취를 위한 임대차계약(변경)
―1986.12 건설교통부 승인 이기대 도시자연공원 지정
―1997.7 도시계획시설(이기대 도시자연공원) 조성계획 결정 및 지적승인 고시
―2000.1 부산시의회에서 동생말 토양오염 관련 정책 질의
―2001.1 부산시 환경보건과, 보건환경연구원 주관 토양오염도 조사→지속적인 토양오염 관리 필요
―2001.4 동국제강, 남구청에 철강 슬래그 처리 계획서 제출 (용호만 매립토로 활용 계획)
―2002.2~5 동국제강, 슬래그 매립지 오염실태 용역조사(국립 경상대) →환경오염 없음
―2003.12 동국제강, Y사에 동생말 부지 매매
―2005 Y사, 부산시에 ‘이기대 도시자연공원 동생말 지구 조성사업 도시계획시설’ 신청
―2006.1~10 동생말 진입로 1차 구간 공사
―2007.1 부산시, Y사의 도시계획시설 실시계획 인가
―2007.2 남구청, Y사의 도시계획시설 건축 허가
―2007.4~10 현재 동생말 진입로 2차 구간 공사

·시리즈 자문단
―대한석면관리협회 김정만 회장
(동아대 의대 교수)
―한국광물학회 황진연 회장
(부산대 광물학연구실·교수) ―부산녹색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