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0년 8월 10일 오전 11시
장소 : 서울대학교 행정관

 

<정우준 활동가 발언 전문>

사소하지 않은 죽음, 그 죽음은 노동자의 탓이 아닙니다.

안녕하세요. 노동건강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우준입니다. 오늘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의 성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지난 5월 27일 발족하여 현재 221개 단체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대전, 세종충남, 전남, 울산 등에서도 운동본부가 구성되어 21대 국회 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한 해 2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사망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꾸고자 오랫동안 시민사회단체 및 노동계가 주장해온 법입니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되었지만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된 이 법을 21대에 꼭 제정하여 더 건강하고 안전한 회사,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활동에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 8월 31일부터 한 달간 국민입법청원을 진행합니다. 오늘 함께하신 모든 분들이 법 제정에 참여해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입법뿐만 아니라 고 김재순, 이천 물류창고 산재참사, 쿠팡 노동자 사망, 삼표시멘트 사망 그리고 오늘 서울대 청소노동자 1주기까지 더 많은 현장과 연대할 예정입니다.

2019년 2020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다 돌아가셨습니다. 한 명 한 명 누군가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들이었고, 그 죽음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소중한 생명과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전하고, 변화를 만들어낸 오늘 추모식을 준비한 모든 분들의 마음을 기억합니다. 다만 정부는 오늘의 죽음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발언을 준비하며 정부가 만든 2019년 중대재해 조치현황이라는 자료를 살펴봤습니다. 노동건강연대와 민주노총, 매일노동뉴스 등이 매해 4월 28일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에 최악의 살인기업선정식을 개최할 때 사용하기 위해 요청한 자료입니다. 그 자료를 보니 오늘의 내용이 한 줄로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재해발생일 2019년 8월 9일, 보고일 8월 16일, 원청 서울대학교, 사망1명, 발생형태 기타, (검찰) 송치의견 조사생략, 비고 개인지병.”

폭우, 폭염, 태풍으로 인한 열악한 노동환경 그리고 날씨를 탓하지 않아도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었던 한 노동자의 일터에 대한 내용은 도외시 되었고, 그저 개인지병이라는 것으로 한 죽음이 정리되었습니다.

많은 노동자의 죽음을 봐왔습니다. 늘 같았습니다. 회사는 기업주는 고 김용균 노동자에게도 가지말아야할 곳을 갔다. 하지 말아야할 업무를 했다라고 했습니다. 죽음의 탓이 그에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오늘 우리가 기억하고 바꾸기 위해 노력했던 많은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한 노동자에게 닥친 불운이나 실수로만 보였을 것입니다.

1년전 오늘 4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다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두명의 노동자가 떨어졌고, 한 명의 노동자가 끼어 죽었고, 한 명의 노동자는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강북구, 포천, 남동구, 부산 동구 대한민국의 전역에서 말이죠. 우리나라에서 매번 가장 많이 죽는 유형입니다. 우리가 지금 멈춰 있다면 올해의 오늘이 작년의 오늘과 다르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노동자의 죽음은 한 노동자에게 닥친 불행이 아닙니다. 사고, 질병이라는 형태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더 힘들고 열악한 일을 수행하는 노동자가 더 많이 사망한다는 것을. 위험은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오고, 경제적·사회적으로 가장 불평등한 그 곳에서 사망이라는 끔찍한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을.

심화된 불평등과 아래로 내려온 위험을 온 몸으로 견뎌냈던 한 노동자가 2019년 8월 9일 사망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5명, 6명의 노동자가 위험과 불평등을 속에서 또 사망할 것입니다.

불평등과 위험과 다르게 노동자 생명을 담보로 만들어낸 이윤은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합니다. 원·하청관계의 사슬 가장 위에 있는 기업과 기업주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해 노동자의 사망이, 노동자 개인의 잘못이나 지병 때문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불평등으로 인한 결과 때문임을 알려야 합니다. 맞습니다. 처벌이 능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노동자 죽음에 400만원 벌금 매기는 대한민국, 노동자 죽음에 당당하게 개인의 지병과 실수를 들먹이는 기업과 사업주에게 더 강한 사회적 책임을 묻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끊어내는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관련 기사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1주기…”사소한 죽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