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고 멍들어도 미소짓는 ‘스튜어디스’
생리불순·위장장애는 기본, 유방암 발병률 높아
김미영 기자(매일노동뉴스)
올해로 3년차 스튜어디스 이소영(가명) 씨는 두달 전 사표를 냈다. 얼마 전 실시된 제주항공 객실여승무원 공채에 무려 989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로 스튜어디스는 ‘선망의 직종’이다. 그러나 이 씨는 ‘더 이상 비행을 계속하다가는 죽을 것 같다’는 공포 속에서 사직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꿈에 그리던 승무원이 되고나서부터 찾아온 불면증과 위장병, 식이장애는 그나마 참을 수 있었지만 갑자기 생리가 멈추고 심각한 우울증까지 앓게 되면서 이 씨는 ‘비행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까지 이르렀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소영 씨가 사표를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늘어나는 항공수요, 빡빡해지는 스케줄
환율이 떨어지고 해외여행도 크게 증가하면서 항공수요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국제선 여객운송실적은 2004년 2천693만1천명에서 지난해에는 3만270만7천명으로 557만6천명이나 늘었다. 국제선의 노선(주간 운항횟수) 역시 2004년 950회에서 지난해는 1천147회로 197회나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객실 여승무원 수는 2004년 5천59명에서 올해 4월 현재 6천300명으로 1천241명 늘어나는데 그쳤다.
때문에 요즘 객실 승무원들은 매달 셋째주에 나오는 근무시간표를 보면 울상부터 짓는다. 예전에는 가까운 중국과 일본의 경우 하루 2회, 즉 왕복으로 근무가 끝났지만 지난 2~3년 전부터는 하루 3회 비행, 왕복+편도 1회로 노동강도가 대폭 강화됐다. 또, 보통 6시간 소요되는 동남아의 경우도 예전에는 1박2일 스케줄이었으나 최근에는 2팀이 함께 출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출국할 때 객실서비스를 담당했던 팀은 출발 당일 다른 비행기를 통해 귀국하고, 함께 출발한 ‘엑스트라’라고 불리는 다른 팀은 다음날 출발하는 비행기에서 객실서비스를 담당하는 체제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미주나 대양주처럼 2박3일이 걸리는 10시간 이상 장거리 비행을 하거나 주간 3회 비행 시 3박4일 간 보장휴가를 부여한다. 그러나 이 제도 역시 주간 3회째 비행을 장거리 비행으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보장휴가 사용을 대폭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우리나라 항공 객실여승무원의 평균 비행시간에 대한 조사나 통계는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이 없다. 그러나 ‘한달 평균 110시간 비행’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객실 승무원들은 입을 모은다. 항공법에서 승무원에게 월 110시간 이상의 비행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행보다 보통 2시간 앞서 진행되는 브리핑이나 대기시간까지 포함할 경우 승무원들의 근로시간은 이보다 훨씬 늘어난다.
올해로 13년 째 대한항공에서 객실승무원으로 김지희(가명) 씨는 “휴가 사용이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면서 “요즘 스튜어디스 결혼식에 가면 함께 일하는 동료 스튜어디스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생리불순, 만성피로, 기억력 감퇴 호소
지난 2002년 원진재단 노동환경건강연소(소장 임상혁)의 ‘아시아나항공 관련 종사자들의 작업환경 평가와 건강영향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외국 승무원들이 평균 비행시간은 50~80시간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60~117시간으로 나타났다. 아시아나 객실승무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응답자 90%가 ‘업무가 힘들다’고 응답했으며, ‘근무조건 가운데에서 가장 어렵게 생각되는 부분’으로 2명 중 1명은 비행스케줄을 꼽았다.
이러한 장기비행은 여성에게 생식기관에 이상을 가져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항공승무원연맹(AFA)의 캘리포니아 거주 조합원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이들의 유방암 발병률은 일반 사람들보다 30%나 더 높게 나온 것으로 보고됐다. 전문가들은 승무원의 유방암 발병원인으로는 ‘우주방사선 노출’을 핵심적으로 꼽고 있다. 방사선 노출 정도는 위도가 높을수록 증가하며, 극점의 방사선 노출 정도는 적도 부근의 2배에 달한다. 때문에 외국 항공사들은 극점 부근을 경유하는 비행(폴라 루트)을 제한하고 있으나 우리나라 항공사의 경우 ‘비행시간을 30분 단축할 수 있다(워싱턴 행)’는 이유로 ‘폴라루트’를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 김지희 씨는 “폴라루트의 경우 시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는 조종석은 방사선 노출로부터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승객들에게도 일정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대한항공사는 지난 2003년부터 매년 10월마다 승객들을 상대로 유방암 예방 캠페인을 벌이면서도 폴라루트 경유 노선을 폐지하지 않고 있어 ‘병 주고 약 주는 꼴’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이밖에도 생리불순과 위장장애는 객실 승무원이 흔히 앓고 있는 질환이다. 노동환경연구소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은 업무를 수행하면서 평소와 달라진 건강상 문제점으로 무기력(58.9%), 피부질환(50.8%), 생리불순(43.6%), 피로(77.2%), 기억력 감퇴(74.9%), 소화불량(48.8%) 등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근골격계 질환, 제조업보다도 심각
장기비행 뿐만 아니라 좁은 비행기 안에서의 객실서비스는 심각한 근골격계 질환과 상해를 동반하고 있다. 사실 항공사가 객실 승무원을 채용할 때 가장 우선 시 하는 것은 ‘외모’가 아니라 ‘체력’이다. 아시아나항공의 객실승무원으로 입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악력ㆍ 윗몸일으키기ㆍ배근력ㆍ허리유연성 등 4개 항목의 체력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그도 그럴것이 객실 승무원들은 매번 비행 시마다 2L 음료수병 7개가 들어있는 15kg 상당의 알루미늄 박스를 번쩍 들어서 옮기는 것은 기본이다. 또한 난기류를 만나 비행기가 요동을 칠 경우 객실 승무원 대부분은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승무원 73%는 화물과 난기류, 카트 등에 의한 상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승무원의 자각증상호소율 역시 38.2%로 제조업(16.4%), 의료산업(18%)의 2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와 항공사, 수수방관
장기비행에 따른 건강 이상과 근골격계 외에도 객실 승무원들은 항공기 내 유해물질 노출, 소음, 압력 및 낮은 산소분암, 직무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 등으로부터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 건설교통부가 승객 안전을 위해 조종사의 건강상태를 점검하는 것 외에 객실승무원을 상대로 한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진행된 바 없다. 노동환경연구소 임상혁 소장은 “아시아나항공 객실승무원의 작업환경 평가와 건강영향 연구를 진행할 당시 객실승무원 상당수가 ‘산재’라는 말조차 낯설어할 정도였다”면서 “실제로 근무 중 상해를 입어도 90% 이상이 공상으로 처리하거나 개인적으로 치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임 소장은 “우리나라에서 항공산업 노동자의 안전보건 정책은 전무하다”면서 “객실 승무원들의 어떤 위험요인에 얼마나 노출되고 있는 지부터 제대로 조사하고 작업환경 개선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2007년07월24일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