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되고, 방치되는 비정규직 산재
사설

작업장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해 사망하는 비율이 정규직에 견줘 비정규직이 두 배 이상 많다는 조사결과가 어제 공개됐다. 2천여개 사업장을 표본으로 잡아 지난 2∼5월의 산재사고를 살펴보니, 34명이 산재로 숨졌는데, 이 가운데 21명이 비정규직이었다.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는 올 들어 사고나 과로 등으로 숨진 노동자가 일곱명인데, 모두 다 비정규직이었다고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산업재해의 벼랑 끝으로 내몰려 있는지 잘 보여주는 수치이다.
재해 대책은 정확한 실태 파악을 기초로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산재 통계는 여전히 엉터리다. 이번 조사도 기존의 산재 통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노동부, 경총과 양대 노총 등이 함께 구성한 산재통계개선위원회에서 내놓은 것이다. 위원회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승인 통계를 단순 합산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사업장의 관리자가 산재발생 기록표를 작성하도록 하고 조사원이 다달이 방문해 이를 집계하는 방식을 하도록 했다. 이 결과, 2∼5월 재해율은 올 공식 통계로는 0.13%이나 이번 조사에서는 재해율이 0.22%로 나타났다. 은폐된 산재사고가 조사방식의 작은 변화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런 은폐는 비정규직 산재사고에서 더 횡행하고 있다. 사업주들이 산재건수가 많은 데 따른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보상금이나 병원비 등으로 때우고 이른바 ‘공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그 대상자는 힘없는 비정규직이기 일쑤다.

비정규직 산재 대책으로 시급한 건 이들의 노동환경에 맞는 법과 제도의 손질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는 파견·하청업체 노동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원청업체가 연대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부도가 나거나 감당 능력이 없는 하청업체의 산재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인데, 현실에서 원청업체가 연대책임을 지는 일은 드물다. 따라서 원청업체에 연대책임을 엄격하게 물을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또 산업 부문별,고용 형태별로 세밀한 규정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산재사고 은폐가능성이 큰 건설업종에 대해선 특단의 감독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관련 업체들이 업종 혹은 지역별로 연대해 노동자의 건강기금을 공동으로 마련해 대처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겠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기본권을 강화하는 것도 또 하나의 산재 대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