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들어 죽어갈 순 없다”
[인터뷰] 이병근 서울도시철도노조 승무본부장, 공유정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이꽃맘 기자 iliberty@jinbo.net / 2007년10월25일 13시09분
기관사 공황장애 일반인의 7배, “충격적이다”
국내최초로 이뤄진 도시철도 기관사에 대한 정신건강검진 결과에 대해 이병근 서울도시철도노조 승무본부장과 공유정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의 의견을 들어봤다.
이들은 모두 “충격적”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동안 많은 기관사들이 공황장애,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 시달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전문 의료기관에 의해 증명된 건 처음이고, 사고와 상관없이 도시철도 기관사들이 일상적으로 정신질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증명된 것이 처음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최종보고서는 비교대상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로 하지 못하고 일반인구로 선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병근 승무본부장은 “그동안 지하철 타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시는 분들도 많았다”라며 “개인적으로 처리하거나 사측에 의해 전직된 경우, 휴직과 퇴직 등의 경우도 포함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과정에서는 조사대상을 놓고 노사가 갈등을 겪기도 했다. 노조 측은 그동안 전직한 기관사와 휴직, 퇴직, 사망한 노동자들까지 모두 역학 조사할 것의 필요성을 제기했으나 공사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병근 승무본부장, 공유정옥 소장 모두 “이번 조사는 한계적”이라고 지적했다.
조사 결과에 대해 공유정옥 소장은 “철도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모두 비슷한 결과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라며 “그러나 도시철도의 경우 지하철 길이가 다른 구간보다 길고 크기도 크고, 지하로만 다닌다는 점, 또한 현재 1인 승무를 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가장 심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근로복지공단, 사상사고 경험 없으면 산재 인정 안 해
특히 이번 조사는 사상사고를 겪지 않더라도 기관사들이 일상적으로 정신질환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 의학적으로 증명되어 의미가 있다.
이에 대해 공유정옥 소장은 “그간 근로복지공단은 사상사고로 발생한 정신질환만 산재로 인정해 왔다”라며 “근무 환경 자체가 기관사들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증명되어 이후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인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4년에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한 7명의 도시철도 노동자 중 사고 경험이 있는 4명만 산재로 인정된 바 있다.
도시철도공사, “기본적 요소도 담겨지지 않은” 복귀프로그램 11월 강행
현재 서울도시철도노조 승무본부는 사측이 마련한 복귀프로그램을 폐기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이 복귀프로그램은 최종보고서에서도 문제점이 지적된 바 있다. 복귀프로그램은 복귀결정을 의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사측이 결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성모병원 산업의학과는 현행 복귀프로그램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요소도 담겨있지 않다”라고 지적하며, “자칫 요양자의 복귀가 업무 부적합자의 색출이나 심지어 강제적 복귀로 인한 심리 상태 위축을 유발해 실제 업무 복귀를 못하게 될 가능성 또한 있어 보인다”라고 문제점을 설명했다.
이렇게 문제점이 제기됨에도 도시철도공사 측은 오는 11월부터 복귀프로그램을 시행하겠다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이병근 승무본부장은 “복귀프로그램이 있어야 하는 것에는 동의한다”라고 전제하고, “복귀프로그램은 노측이나 사측처럼 비전문적인 집단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학적 견해를 가진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라며 “그러나 현재 복귀프로그램은 사측이 일방적으로 만든 것이며 이를 강행하겠다고 하고 있어, 기관사들의 복귀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문제점을 덮기 위한 수단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노동조건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이들 모두,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노동조건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최종보고서에서는 1인 승무의 문제점이 지적되었으며, 2인 승무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병근 승무본부장은 “도시철도에서 시행하고 있는 1인 승무가 노동자 개인에게도 정신건강의 위협으로 다가오는 것은 물론, 시민들에게는 사고의 위험을 안겨주는 것”이라며 “우리는 병들어 쓰러져 갈 순 없기에,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도시철도노조 승무본부는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오는 11월 1일부터 시행을 강행하려는 복귀프로그램을 저지하고, 근본적인 책임 주체인 서울시에도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싸움을 벌일 이다.
공유정옥 소장도 “현재 도시철도공사는 노동자에 대한 현장통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노동조건은 더욱 안 좋아지고 있다”라며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노동조건의 혁신적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