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돌연사’ 한국타이어 유해물질 증거 은폐 의혹
노동청 작업환경 조사 시작전 솔벤트통 청소 지시
황예랑 기자
지난해 5월 이후 직원 7명이 심장질환으로 숨지는 등 1년6개월 사이 모두 15명이 돌연사하며 불거진 한국타이어의 노동재해 의혹에 대해 관련기관·단체들이 ‘뒤늦게’ 진상규명에 나섰다.
한국산업안전공단은 14일부터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내 유해인자 노출 수준 등 작업환경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솔벤트 등 유해물질과 사망 사이 인과관계를 얼마나 밝혀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조사를 앞두고 회사 간부가 “이전까지 사용해 온 솔벤트통을 절대 사용하지 말라”며 조장들에게 ‘철저한 청소’를 지시한 전자우편이 공개되는 등 ‘증거 감추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도 이날 “한국타이어 노조가 노동부 역학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는 조합원 모금운동을 벌이기로 약속했다”며 “노총 차원에서 민간 전문가를 위촉해 별도로 실태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한국타이어 노조는 그동안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민주노동당을 상대로 항의성명을 발표하고 노사자율안전점검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등 오히려 사태 해결에 ‘걸림돌’이 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격분한 유가족들은 지난 6일 노조의 상급단체인 한국노총 사무실을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지난 9월 실시된 노사자율안전점검 결과에서 △국소 배기장치 효율 미비 △화학물질 관리 등과 관련해 499건의 개선 의견이 나오는 등 한국타이어의 안전관리 허점은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유가족들은 특히 과도한 업무에 따른 직무 스트레스와 함께, 타이어 접착이나 세척에 쓰이는 화학물질인 솔벤트를 주요 사망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지난 4일 방송된 문화방송 <시사매거진 2580>의 실험을 보면,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쓰는 솔벤트를 흡입한 쥐의 뇌·심장근육 이상지수는 보통 쥐의 최대 7배나 됐다. 이에 대해 한국타이어는 “현재 사용 중인 솔벤트에선 자극성 물질인 톨루엔, 크실렌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으며 인체에 무해하다”고 반박했다.
사망 원인을 밝혀줄 실마리는 다음달이나 돼야 풀릴 것으로 보인다. 대전지방노동청 산업안전과 이홍주 과장은 “역학조사 결과는 이르면 12월 초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심장질환과의 연관관계를 따질 수 있는 직무 스트레스 조사 결과는 다음주께, 지난 10일 끝난 노동자 788명에 대한 ‘임시 건강진단’ 결과는 다음달께 나올 예정이다.
유가족대책위원회 조호영 대표는 “그동안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왔던 노동부와 노조가 진작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했더라면 15명이나 숨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전지역 16개 시민단체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타이어에 유가족대책위와 성실한 협상을 하라고 요구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