産災소송 일단 하고보자?…승소율 겨우 10%

작년 1536건 6년새 두배나 늘어복지공단 “정작 받을 사람이 피해”

산부인과 전문의인 A씨는 2002년께 본인 차량을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입었다.

A씨는 출근길 사고여서 업무상 재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했으나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A씨는 교통사고 당시 근로자가 아닌 공동사업자 지위에 있었고, 설령 근로자였더라도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산재보상금을 지급해 달라는 행정소송이 폭주하고 있다. 산재보상금 지급액이 지난 6년간 두 배 이상 늘었는데도 산재소송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급증하는 추세다.

이는 산재로 인정받을시 산재보상금으로 소송비용을 충분히 건질 수 있다는 근로자들의 그릇된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산업재해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판결이 가끔 소개되면서 근로자들의 기대심리를 부추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근로자가 승소하는 사건은 10건 중 1건에 불과하다. 무턱대고 소송을 냈다가 변호사 비용만 날리는 일이 허다하다.

◆ “산재 인정해 달라” 소송 봇물

= 2000년 892건에 불과하던 산재보험 관련 행정소송은 지난해 1536건으로 증가했다. 6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올해도 9월까지 1234건의 행정소송이 새로 접수됐다. 근로자들은 과로로 인해 질병이 생겼고, 업무상 재해로 사고를 당했다고 주장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보상금 지급을 거부하자 소송에 나선 것이다.

산재 소송은 일반적으로 1년 가까이 걸린다. 사고경위 등을 법정에서 일일이 설명하고 업무와 사고의 인과관계를 따지는 시간이 오래 걸려 재판 횟수가 많아진다.

소송에 대응하느라 전국 6개 근로복지공단 지역본부에 있는 담당 직원 70여 명도 막대한 서류작업에 몸살을 앓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행정처분에 납득하지 못하면 이의신청하면 되지만 많은 근로자들이 직접적인 소송을 선택하고 있어 일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 불필요한 소송에 행정력 낭비

= 그런 반면 근로자들의 승소율은 극도로 낮다. 실제 올해 들어 9월까지 산재보험 소송과 관련해 근로복지공단 패소율은 12.5%에 그쳤다. 2000년 패소율이 37.7%에 달했으나 2003년 22.8%, 2006년 13.2%를 거쳐 계속 낮아지고 있다. 그만큼 근로자들이 소송을 내도 이기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법원이 근로복지공단 기준보다 산업재해 범위를 확대하는 판결을 내기도 하지만 이는 극히 드문 일이다.

이미 많은 사건이 대법원 판례로 확정됐고,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토대로 산재 기준을 정하다 보니 근로자들이 소송을 내도 번번이 패소할 수밖에 없다는 게 산재 관련 전문가들의 얘기다.

승소율이 이처럼 낮은데도 막무가내 소송이 줄지 않는 것은 상대적으로 보상 규모가 크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산재보상금에는 요양급여, 휴업급여, 장해급여, 유족급여, 상병연금, 간병급여 등이 있다. 이를 모두 합치면 1인당 평균 1300만원 수준에 이른다. 반면 소송비용은 수백만 원 수준에 그친다. 물론 소송비용도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지만 산재로 인정받기만 한다면 이런 비용을 만회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근로복지공단 측은 “업무와 관련 없는 일로 부상을 입은 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으면 정작 업무상 재해를 입은 사람이 선의의 피해를 볼 수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소송 등을 준비하느라 소요되는 행정력 낭비가 막대하다”고 강조했다.

[강계만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